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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고속통신망 서비스의 시작, 두루넷과 하나로.
    e비즈북스의다른책들/1_대한민국IT史100 2010. 12. 10. 08:57
    두루넷과 하나로가 초고속통신망 서비스를 시작하다

    믿기 어려웠던 초고속통신망 광고

    56Kbps 모뎀을 겨우 지원하기 시작하던 어느 날 TV에 초고속통신망 광고가 등장한다. 탤런트 권해효 씨가 권투를 하다 쓰러지는 두루넷 광고와 금난새 씨가 지휘를 하자 아름다운 선율이 각 가정 위를 흐르는 하나로통신 광고였다. 처음 이 광고가 등장했을 때 나는 10Mbps가 넘는 속도로 인터넷을 쓴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몇 년에 한 번씩의 간격으로 두 배씩 올라가던 속도가 갑자기 수백 배로 뛴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런 속도가 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비쌀까 싶었다. 그런데 10Mbps가 불과 ·4만 원 선이라니 믿기 어려웠다. 당시 56Kbps 전용선이 50만 원 전후였고, E1 T1급 회선이 수백만 원을 넘었던 시절임을 생각하면 4만 원 정도로 메가급 이상의 속도가 나는 회선을 쓴다는 것은 쉽게 납득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1999년 5월, 관악구에 유일하게 하나로 ADSL이 들어온다는 센추리 오피스텔로 이사를 해서 직접 사용해봤다. 그리고야 깨달았다. 세상이 바뀌었음을. 그림 하나 화면에 뿌리는 데 몇 분씩 걸리는 답답한 인터넷의 시대는 이제 사라진 것이다.

    두루넷(www.thrunet.com)의 1998년 초고속통신망 광고


    ADSL 이전에 KT에서 밀었던 것은 ISDN
    케이블과 ADSL 이전에 정부 및 한국통신이 밀었던 통신망은 ISDN이었다. 1993년 12월 29일에 한국통신(KT)은 ISDN(종합정보통신망)의 상용 서비스를 시범 개시했다. ISDN서비스는 전화선 하나에 8대의 통신기기 연결이 가능하고, 2회선을 이용해 2대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속도는 기존 56Kbps 모뎀보다 두 배가 넘게 빠른 128Kbps를 지원했기 때문에 ‘꿈의 통신망’으로 부르며 언론에서 크게 보도했고, PC통신 사용자들의 기대도 컸으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보급에는 난항을 겪었다. 몇 년 후 한국통신은 ISDN-II를 다시 내놓고 최지우, 김민종 등 유명 탤런트까지 동원해 TV광고와 지면 광고를 집행했으나 이때는 ADSL 등의 초고속인터넷망에 밀려 결국 실패한 방식으로 사라졌다.

    유명 탤런트까지 동원해 광고했지만 보급에 실패한 ISDN


    두루넷과 하나로가 초고속통신망 서비스를 시작하다.

    ISDN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인 1998년 7월 1일, 케이블TV망을 이용한 초고속통신망 서비스인 두루넷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56Kbps 모뎀시대에서 갑자기 수십 수백 배 빠른 초고속인터넷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IT강국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이어서 1999년 4월부터는 하나로 통신에 의해 세계 최초의 ADSL서비스가 시작된다. 같은 해 6월에는 한국통신이 ADSL 시범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초고속인터넷 상용서비스 시대가 열렸다. 이후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꾸준히 증가하여 2002년 1000만 명을 넘어섰다. 4인 가정을 기준으로 본다면 가정마다 1회선이 깔린 셈이다.

    한국통신은 ISDN을 포기하고 1999년 12월부터는 ‘메가패스’란 상품명으로 ADSL 서비스를 시작하며 2000년 밀레니엄 시대에는 밀레니엄 마케팅을 한다는 3M 전략을 들고 나왔다. 2000년 안에 100만 가구 가입을 목표로 한 것이다. 한국통신은 예상보다 빠른 2000년 9월에 가입자 100만 명을 넘어서고 연말에는 185만 명을 달성한다. 이에 따라 2000년 말에는 국내 초고속통신망 가입자가 300여만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20002년에는 데이콤, 온세통신, 드림라인까지 초고속통신망 사업에 뛰어들어 더욱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고,  2002년 10월에는 국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돌파한다.

    CJ드림의 드림엑스 서비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08 한국인터넷백서’에 따르면 2007년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1471만 명으로 전체 가구의 약 90%에 가까운 가입률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100명당 가입자 수는 29.9명으로 4인 가구 기준으로 대다수 가구에 이미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된 상태가 되었다.

    또한 2002년 8월부터는 13Mbps급의 VDSL을, 2004년 12월부터는 50Mbps급의 VDSL을 시작했다. ADSL의 경우 전화국에서 5.5Km까지 서비스가 가능하지만, VDSL은 2.5Km까지만 가능하며 최대 속도는 300m 이내에 가입자가 있어야 한다는 제약사항이 있었지만 기존 전화선으로도 광가입자망통신(FTTH)에 버금가는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점은 대단한 일이었다. 2007년 12월 기준으로 50Mbps 이상의 속도를 보이는 가입자가 701만여 명으로 47.7%를 차지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FTTH로 교체되고 있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회선으로 인터넷을 즐기는 나라가 되었다.


    [잠깐] ISDN에서 ADSL로 넘어간 이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속통신망 국가로 성장하면서 인터넷 인프라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ADSL의 보급이 큰 힘이 되었다. 정부가 1998년에 ADSL을 초고속 인터넷 표준으로 채택한 것에는 당시 정통부 장관이던 배순훈 장관의 결정이 큰 역할을 했다. ADSL은 반경 5킬로미터를 넘어가면 통신 속도 및 안정성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단점 때문에 땅이 넓은 미국에서는 인터넷 회선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던 기술이다. 그러나 배순훈 장관은 한국의 경우 전화국 반경 5킬로미터 이내에 대부분의 가구가 있기 때문에 기존에 깔린 전화선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ADSL을 통해 초고속망 도입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10년 뒤의 광케이블(FTTH) 보급 전까지는 ADSL로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ISDN 대신 ADSL를 채택했다. 반면 독일과 일본은 IDSN을 선택함으로써 느린 회선으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대한민국IT사100파콤222에서미네르바까지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중태 (e비즈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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