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2.10.12 10:39


IT 슈퍼리치를 키운

위대한 부모들



오늘날 자수성가한 많은 IT 슈퍼리치를 보면 그들 스스로 뛰어나고 훌륭해서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IT 슈퍼리치들의 성공 신화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헌신적인 사랑과 남다른 교육열로 자녀를 키운 훌륭한 부모가 자리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위인전이나 평전이 그러하듯 IT 슈퍼리치를 만들어낸 부모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레이크사이드 학교에 재학 중인 시절부터 단짝친구 사이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동료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할 때 폴 앨런은 회사의 지분을 60 : 40으로 해야 한다는 빌 게이츠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폴 앨런은 오래 전부터 친구로 지내오고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해왔으니 50 : 50이라고 생각했지만 빌 게이츠는 자신이 일을 더 많이 했다면서 60 : 40을 고집한 것이다. 결국 폴 앨런은 빌 게이츠의 요구대로 합의한다.

1977년 빌 게이츠는 다시 지분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개발의 더 많은 부분에 기여했고 하버드 대학교까지 그만두고 일에 매진했기때문에 64%를 자신이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도 빌 게이츠는 60 : 40이었던 지분 구조를 64 : 36으로 나누자는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창업의 일등공신은 폴 앨런이었고프로그램 개발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절친한 친구와 싸우고 싶지 않았던 폴 앨런은 빌 게이츠의 요구조건을 들어준다. 1977년 2월 3일 당시 맺어진 그들의 계약 내용을 보면 빌 게이츠가 얼마나 철저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계약 내용 중에는 전업 학생이 되면 비즈니스 관련 업무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이는 하버드 대학교로 복학할 수도 있는 빌 게이츠 자신을 위한 항목이었다. 그리고 12조에는 빌 게이츠가 폴 앨런과의 파트너 관계를 해지할 수도 있다는 내용도 넣었다.

여전히 빌 게이츠와 친구 사이로 지내는 폴 앨런은 자신의 자서전인 『아이디어맨』에서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폴 앨런에 의하면 빌 게이츠가 64%를 요구한 이유는 만약 수입을 2 : 1로 나누게 되면 자신이 반발할 것을 알기에 빌 게이츠가 얻을 수 있는 최대 지분을 64%로 계산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거래에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대치를 얻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빌 게이츠인만큼 폴 앨런이 협상으로 그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빌 게이츠의 뜻대로 64 : 36으로 지분 구조가 바뀌는 계약에 서명을 한 앨런은 이것이 도서관 사서의 아들인 자신과 변호사의 아들인 빌 게이츠의 차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보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폴 앨런의 푸념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앨런의 생각을 탄식 섞인 농담으로 생각지 않고 오히려 공감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며 자녀의 성격이나 가치관까지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록히드 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린시절 스티브워즈니악은 과학이 곧 종교였던 엔지니어인 아버지로부터 과학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여섯 살 때 그의 아버지는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크리스털 라디오 세트를 사주었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가며 라디오를 조립할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스스로 전자장치를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짜릿함과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다양한 과학실험을 했고, 과학 경진대회에서 온갖 상을 휩쓸었다.

그의 인생에 아버지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버지가 구독하는 공학 저널이었다. 워즈니악이 컴퓨터를 접하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이 바로공학 저널이었던 것이다. 공학 저널에서 에니악ENIAC 컴퓨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고 컴퓨터의 세계로 빠진 그는 이를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아버지의 영향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방향을 빨리 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고, 후에 애플 II 컴퓨터를 통해 세계적인 컴퓨터 엔지니어가 될 수 있었다.

델 컴퓨터를 창업하여 159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 마이클 델 역시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밥상머리 교육으로 경제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 1965년 2월 마이클 델은 치과의사였던 아버지 알렉산더와 증권 중개인이었던 어머니 로레인 사이에서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유대인 집안답게 교육에 철저했다. 친척 중에는 유독 의사가 많았고 그의 형제들 역시 의사가 되었다. 사실 마이클 델도 의사가 되기 위해서 텍사스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아버지는 승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자녀들이 게임을 하다가 서로 격해지면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아이들을 혼냈지만 나중에는 각각 불러서 반드시 승리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증권 중개인답게 모든 관심사가 경제에 있었다. 그래서 가족이 식사를 할 때에는 연방은행의금리에서부터 기업의 주식 시세 그리고 인플레이션과 석유 위기 등 경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어린 시절부터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했던 그는 경제에 대한 남다른 관념을 갖게 되었다. 마이클 델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에게 사탕을 팔면서 뛰어난 사업가적 수완을 발휘했다. 당시의 담임교사는 이제 겨우 여덟 살이었던 델을 보면서 그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의 뛰어난 경제감각을 이야기할때 빠지지 않는 것은그가 열두 살에 펼친 우표 사업이다. 우표 수집이 취미였던 친구의 아버지 덕분에 마이클 델도 자연스럽게 우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오르는 우표의 특징을 알게 된 그는 어머니로부터 자주 들었던 상업적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우표는 경매를 통해서 거래가 이루어졌는데 중개인들의 수수료는 비쌌다. 그래서 그는 직접 우표를 구입하려는 사람과 판매하는 사람을 연결시켜주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들었다. 먼저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중국 음식점에서 잔심부름을 하여 돈을 모은 후 우표를 구입했다. 열두 살에 불과했던 그는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만약 우표를 팔고 싶을 때는 중개인을 이용하지 말고 자신에게그 일을 맡겨보라고 홍보했다고 한다. 자신이 확보한 우표를 판매하기 위해서 직접 제품 카탈로그를 만들었고 수집가들을 위한 잡지 『린스 스탬프 뉴스』에 광고를 냈다. 그는 우표 가격의 변동사항을 조사하여 가장 좋은 값에 우표를 판매하는 시기를 선택하여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자녀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교육법을 가지고 있던 훌륭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IT 슈퍼리치들이 단순히 부모를 잘 만나서 성공하게된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IT 슈퍼리치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들 부모의 양육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제 IT 슈퍼리치의 부모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IT 슈퍼리치의 조건>중에서.김정남.e비즈북스.10월 출간







IT 슈퍼리치의 조건

저자
김정남 지음
출판사
e비즈북스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수년간 IT 칼럼을 써온 저자는 IT 슈퍼리치들의 특별한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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