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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 마음을 가진 책
    카테고리 없음 2009. 3. 23. 02:31
    쇼핑몰은 장사 수완이다10점
    이 책이 나온 지도 어느 새 1년이 지났다. 이 책은 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책 가운데 판매량으로 따지면 높은 등수에 드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좋아한다.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책을 쓴 저자의 마음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저자 허상무님은 자신이 누군지 밝혀지기를 꺼리시는 분이라 함부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매출 규모로는 어지간한 오프라인 중소기업에 맞먹는 쇼핑몰을 운영하시는 분이다.

    이 분을 알게된 계기는 Daum의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 카페인 <내가게>에 올라온 운영수기 때문이었다. 초보운영자들이 현장에서 겪는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할 때 누구보다 친절하고 자세히 조언을 해주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지켜봤다. 조언의 내용을 보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단답식으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문제의 이면에 작동하고 있는 비즈니스 메커니즘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에 바탕을 두고 근원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이어서 다른 글들과는 현격히 수준 차이가 났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초보창업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이랄까, 내가 초보 시절에 겪었던 어려움을 다른 사람도 겪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그런 선한 마음이 깔려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 정도 규모의 쇼핑몰을 운영하는 분들 가운데 상당 수는 연락해 보면 돈도 안되는 책을 왜 내냐? 내 노하우를 알려주면 경쟁자나 늘어날 텐데 뭐하러 책을 쓰냐?는 식으로 나오는 분들도 꽤 된다. 같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라서 그런 분들에게 서운한 감정은 없다. 그런데 허상무님은 나중에 만나봤을 때 돈이나 노하우 유출 같은 얘기는 아예 하지도 않고 본인은 학력이 높지 않고 글솜씨도 없어 저자로 적당하지 않고 쇼핑몰 하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못 될 거라는 점을 가장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계약하고 나서 보니 원고를 집필하는 시간은 어떤 전문작가보다도 짧았고(당시에 막 첫아이를 낳은 데다가 쇼핑몰 운영하랴 엄청 바빴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원고의 품질도 책을 여러번 내 본 저자들에 비추어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수십 수백번의 반복적 체험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이라서 그런지 그것을 뽑아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 속에서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글이 씌어진 것 같았다. 또한 논리의 전개나 맞춤법 띄어쓰기도 편집자가 별로 고생하지 않고 교정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된 수준이었다.

    문제는 제목이었는데 저자의 핵심 메시지가 인터넷 쇼핑몰이라고 해서 HTML이나 포토샵, 상품페이지 같은 기술적 부분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장사와 유통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장사수완'이 쇼핑몰 성공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는데 '장사수완'이라는 표현이 책의 제목으로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은데다가 컨텐츠가 좋기 때문에 굳이 제목으로 낚시질을 하기보다는 본질로 승부하자는 생각으로 '쇼핑몰은 장사수완이다'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되었는데 매출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매출이 많지 않은 책 가운데 두 부류가 있다. 책을 잘 못 만들어서 그런 경우는 속이 무척 상한다. 그런데 좋은 책인데도 무슨 이유로건 잘 알려지지 않아 매출이 많지 않은 책은 전혀 아쉽지 않다. 정보의 가치는 알려진 범위가 좁을수록 높은 법이고 널리 알려진 만큼 그 지식 가치는 떨어지는 법이다(주식거래에서 고급 정보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은 소수의 독자들이 읽지 않은 다수보다 큰 깨우침을 얻어서 손해를 피하거나 성공할 수 있었다면 출판인으로서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물론 저자에게는 더 많은 인세를 못 드려서 미안하지만 다행이 이 책의 저자분은 인세로부터 해탈할 만큼의 여유가 있으신 분이라 그런 부담이 없다.

    ps. 나중에 어떤 독자분이 이 책을 읽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는 서평을 보내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로서도 좀 의외였다.
    http://ebizbooks.tistory.com2009-03-22T17:31:35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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