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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숙사에서 탄생한 구글
    e비즈북스의다른책들/IT 삼국지 2010. 12. 14. 09:36
    기숙사에서 탄생한 구글

    인터넷 웹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던 래리 페이지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불현듯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웹을 다운로드해서 각 웹페이지 간의 연결 구조, 즉 링크를 분석해보기로 한 것이다. 래리 페이지가 작업에 들어가자 세르게이 브린도 기꺼이 동참했다. 래리 페이지는 인터넷 웹상에서 링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링크가 많이 된 웹 페이지는 그만큼 가치가 있음을 뜻하였다. 하나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른 사이트의 주소를 링크하는 것은 일종의 투표와도 같았다. 학자 집안에서 자란 데다 박사 과정을 밟는 대학원생으로서 논문을 중요하게 여기던 래리 페이지에게 링크는 논문으로 치면 인용과 비슷했다. 훌륭한 논문일수록 다른 논문에서 참고문헌으로 인용될 확률이 높다.   

    래리 페이지는 인터넷상에서 링크된 횟수를 가지고 각 웹페이지의 순위을 정하는 작업을 하고자 했다. 그리고 웹페이지의 순위를 매길 때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더했다. 만약 논문이 권위 있는 학술지에서 언급되면 그만큼 더욱 가치 있는 논문일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단순히 링크의 횟수뿐만 아니라 링크를 건 웹사이트의 명성에 가중치를 더하였다. 이를테면 「뉴욕타임스」처럼 권위 있는 언론사의 사이트에서 링크를 한 웹페이지라면 일반 블로그에서 인용한 링크보다는 더 높은 순위에 올라갈 수 있는 공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랭킹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래리 페이지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렵고 무모한 일이었지만 세르게이 브린의 천재적 수학 실력 덕분에 어려운 난제들을 차근차근 풀어갈 수 있었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래리 페이지는 웹페이지의 순위를 정하는 알고리즘을 검색에 접목해보고자 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검색엔진은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와 관련한 웹페이지를 순위에 따라 보여주었기 때문에 검색어와는 관련성도 떨어지고 중요하지 않은 웹페이지만 잔뜩 늘어놓는 기존의 검색엔진보다 훨씬 뛰어난 검색 결과를 보여주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자신들이 만든 검색엔진을 백럽이라고 불렀으나 나중에 구글로 바꾸었다. 구글은 원래 해안가의 모래 숫자나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의 숫자처럼 셀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수를 뜻하는 구골Googol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연구실 동료였던 숀 앤더슨Sean Anderson이 회사 이름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던 중스펠링을  ‘Google’로 잘못 적으면서 구글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flickr - manfrys


    구글 검색엔진이 서비스를 시작한 곳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서버였다(그래서 구글의 처음 인터넷 주소도 google.stanford.edu였다). 구글은 기존의 검색엔진보다 탁월했기 때문에 스탠퍼드 대학교 내에서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점차 늘어나는 사용자들의 검색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컴퓨터가 더 필요했다. 그러나 학생 신분이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지도 교수의 도움으로 학교 자금에서 1만 달러를 지원받았지만 구글을 제대로 서비스하기에는 컴퓨터가 부족했다. 결국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학교 곳곳을 돌며 컴퓨터 부품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잡동사니 부품들을 모아서 컴퓨터를 만들었는데, 이때 효율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하우를 쌓게 된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을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대형 서버 컴퓨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저가의 개인용 컴퓨터를 병렬적으로 연결해서 서버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비록 돈이부족해서 고육지책으로 생각해낸 방법이었지만, 최소의 비용으로 컴퓨터를 만들고 이를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은 오늘날 구글이 성공하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주변의 컴퓨터 부품을 최대한 활용해서 컴퓨터를 구축해도 항상 장비가 부족했던 둘은 스탠퍼드 대학교에 새로 컴퓨터가 배달될 때 이를 몰래 가져다 쓰는 대담한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련된 컴퓨터 장비들은 래리 페이지의 기숙사 방에 설치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방이 컴퓨터로 가득 찼다. 그래서 검색엔진을 다듬는 실제 작업은 세르게이 브린의 방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인터넷 웹페이지를 방문해서 데이터를 모아오는 작업은 네트워크에도 부담이 되는 문제였다. 이들이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긁어 올 때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네트워크는 종종 과부하에 걸렸고 학교 전체 인터넷망이 다운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벤처기업의 요람인 스탠퍼드 대학교답게 이를 관대하게 넘어가주었다.

    구글 서비스가 나날이 인기를 더하자 래리 페이지는 이를 사업으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박사 과정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 포털 업체에 구글을 백만 달러에 팔 생각이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당시 검색 점유율 50%가 넘었던 알타비스타를 시작으로 야후, 익사이트, 인포시크 등 당시 내로라하는 각종 포털 업체들을 찾아가서 구글을 시연해 보였다. 하지만 당장 꺼지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계속해서 기업들에게 거절을 당하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좌절감을 느꼈다. 너무 화가 났지만 포기는 하고 싶지 않았기에 둘은 결국 학교를 떠나서 직접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구글의 창업 과정을 보면 시대를 앞선 선구자들의 비애가 느껴진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검색엔진이 인터넷 시대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포털 업체들은 검색을 수많은 인터넷 서비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구색을 맞추는 차원에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할 뿐 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구글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고정관념으로 현실을 보는 사람은 미래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려는 사람들은 고정관념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인정 받기가 힘들다. 70년대 중반 스티브 잡스가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2 컴퓨터로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미치광이 취급을 당한 것처럼 말이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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