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1.02.10 09:33
이취의 CEO 샤오이붜邵亦波

‘대두신동’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샤오이붜는 학생 시절 대단히 풍채가 좋고 머리도 비상한 우수한 학생이었다. 이 별명은 중학교 때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는 각종 경시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아 왔었는데 이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당시 그의 꿈은 수학자였다. 만약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가지 않았거나 유학을 갈 생각을 하지 않았었더라면 지금은 수학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17세가 되던 해에 화동사범대학교 제2부속고등학교에서 1학년으로 다니고 있던 그는 미국의 유명 대학으로 유학을 갈 결정을 하였다. 명석한 두뇌와 투철한 의지로 무장한 그는 성공적으로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마치고 미국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의 몇 개 대학이 그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겠다고까지 하였으며 결국 그 중 하나인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였다.

샤오이붜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전액 장학금으로 하버드에 입학한 최초의 중국인이다. 그는 완벽한 학생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매년 반장을 도맡아 하였으며, 모범학생으로 선정되었다. 하버드에서는 물리학과 전자공학을 전공하였고, 1995년 두 개의 학위 모두 전체 1600명의 졸업생 중 12등이라는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하버드 학부 졸업 시, 그는 맥킨지와 보스턴 컨설팅사 양 쪽으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았다. 그는 보스턴 컨설팅사에서 2년 동안 일하였고, 최우수 사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회사의 지원을 받아 MBA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다. 보스턴 컨설팅사는 그에게 9만 달러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급했고, 그에 대한 유일한 조건은 MBA 졸업 후에도 계속해서 함께 일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은 샤오이붜를 잃었으나 중국은 이취를 얻게 되었다.

이취의 CEO 샤오이붜

샤오이붜가 이취를 개설하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귀국하기 전,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이베이 사이트에 경매물품으로 등록했다. 그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가 구입할 당시 500달러였던 TV가 2년 동안 사용한 후에 이베이에서 550달러에 판매된 것이었다. 샤오이붜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적 네트워크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나의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는데 특히 생활 속에서 편리함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다. 만약 내가 다른 방식을 통해서 TV를 팔았다면 아마 30%~40% 정도밖에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살려 중국에서 이베이의 수익모델인 C2C를 이용한 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샤오이붜는 회사의 수익모델을 정한 이후 보스턴 컨설팅사와 가오셩사에서 일하던 경험을 살려서 투자와 금융 관리 부분에 재능을 보였고 결국 빠른 시일 내에 미국으로부터 40만 달러의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투자받은 40만 달러와 기타 비용 9만 달러를 들고 상하이로 돌아왔던 때가 1999년 6월이었고, 샤오이붜가 26세가 되던 해였다. 그로부터 2개월 후 이취는 샤오이붜를 사장으로 하여 정식 출범하게 되었다. 그는 동업자로 탄하이인을 택하였으며 그 해 11월 이취는 미국으로부터 650만 달러의 자금을 다시 한 번 투자받게 되었다.

샤오이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본인이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창업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창업의 과정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아무리 큰 이상과 포부가 있다 하더라도, 또 그에 걸맞은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금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라는 말을 한다. 이취는 중국 전자상거래 부문에서 제일 처음으로 자금을 투자 받은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이취가 출범했을 무렵 중국에서 전자상거래는 매우 생소한 것이었으며 시장이 발전되어 있지도 그 규모가 크지도 않았다. 인터넷 시장의 체계가 확실하게 잡혀있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첫 투자자를 찾는 과정은 이취가 중국의 전자상거래 시장에 자리 잡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었으며 당시의 고난과 역경은 이후 이취가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샤오이붜는 창업을 막 시작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당시 그의 회사는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빌려 시작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직업이 있었다. 따라서 본업에 종사한 후 저녁이나 주말에 되면 그제서야 모여서 사업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작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은 두 달 동안 밤낮없이 일에 매달려 결국 기초 완성 작업을 끝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 1999년 8월 18일, 이취는 정식으로 사이트를 열었다. 샤오이붜의 말에 따르면 이취가 설립되었던 초기에는 “큰 사건은 가끔씩 터지지만, 소소한 어려움들은 항상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한동안 매출액 면에서 타 기업들에 비해 투자 대비 효과가 매우 적었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2000년, 인터넷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던 시기였다. 당시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모두 자금을 투자하던 시기였고, 오히려 신중한 선택을 하려는 사람에게 왜 다른 사람들이 움직일 때 움직이지 않느냐는 질책을 하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많은 기업들이 맹목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다행히 샤오이붜는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런 식으로 계속 행동해 나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그는 이취를 백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기업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처음 시작할 때의 목표였다는 것을 직원들에게 상기시키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신경 쓰지 말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 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샤오이붜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은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이베이와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2002년 3월, 이베이는 3000만 달러로 이취 주식의 33%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주의 권리를 가질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베이의 이러한 행동은 일종의 ‘신호’였는데 이것은 이취의 가치가 9000만 달러가 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이취는 6700만 달러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시나新浪를 뛰어넘어 중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이트가 되었다. 샤오이붜는 이베이와의 합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베이로부터 여러 경험과 이념을 배웠습니다. 이제 그들과 합작하여 중국의 전자상거래 시장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초를 닦읍시다.”
 
2003년 말 30세의 샤오이붜는 아주 충격적인 결정을 하는데, 이취를 2억 2000만 달러를 받고 이베이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현재 샤오이붜는 투자자와 사업가라는 두 직책을 갖고 있다. 그는 산모 전용 사이트인 ‘베이비트리babytree’의 총 투자자이며, 미국 경영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동업자로서 눠판마이诺凡麦의약회사의 사장이기도 하다. “진솔한 사람이 되고, 열심히 일하자”라는 말은 샤오이붜가 젊은 창업자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

중국인터넷쇼핑몰리포트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e-비즈니스일반
지은이 진건국 (e비즈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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