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1.02.18 16:49


사랑의 블랙홀

줄리언 바지니의 《빅퀘스천》을 베타테스트 하다가 문득 반발감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영화와 소설의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그래서 이럴 것이다'라고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람이 영원히 살면 따분해서 지루할 것이라면서 카렐 차페크의  <마크로풀로스의 사건>을 들었습니다.

불사(不死)의 유액을 마시고 342세까지 산 여자 주인공은 결국 연장하고 연장하는 인생을 저주로 생각하게 되고, 더는 유액을 먹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녀의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 뜻에 동조해 유액 제조법을 불에 던져 태운다.

과연 그럴까요? 거북이는 500년을 사는 동물인데도 -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무지 재미없게 살죠. 잘 살지 않는가? 거북이가 산다면 사람이라고 500년에 좌절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거북이가 오래 살았다고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flickr - flickrfavorites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영화가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24시간이 무한히 반복되는 날에 빠진 빌 머레이의 이야기인데 《빅퀘스천》에서 내세우는 가치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매사에 불만이 많은 빌머레이는 봄의 소식을 알린다는 그라운드호그 데이를 취재하기 위해 따분한 소도시에 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재수없게 웅덩이에 빠지고, 길에서 우연히 만나 아는 체하는 동창은 보험 영업사원이고, 하필이면 눈 때문에 고립되서 도시 밖을 빠져 나가지도 못하는 불운한 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게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죠.

300년을 사는 것보다 더 따분한 악몽 같은 상황에 빠진 셈. 영화의 빌 머레이는 나름 대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현금수송차를 털어 돈도 마음껏 써보고,평소에 하고 싶었던 자기계발도 하고, 여자들의 정보를 알아내서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고 말이죠. 빌 머레이는 성공과 쾌락을 무한히 추구합니다만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빅퀘스천》에서도 이런 의문이 나옵니다. 성공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쾌락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가?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서인지 빌 머레이는 끝없이 도전하다가 마침내 한 명의 여인에게 막힙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볼 때 나라면 다른 여자를 공략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랑한다면 다르겠지만 말이죠.
어쨌든 이 미션임파서블의 여인을 공략하려고 몇 백일 혹은 몇 년을 시도했는지 모르지만 아슬아슬하게 매번 실패합니다. 그리고 끝내 성공하지 못하게 되자 좌절감에 빠져 마침내 자살까지 하고 맙니다. 즉 성공과 쾌락도 인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여기까지는 줄리언 바지니가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살해도 다음날 다시 부활^^

이런 무한이 반복되는 어느날, 매일 아침 마주치던 노숙자 노인에게 거하게 선심을 씁니다. 하지만 그날은 노숙자 노인에게는 생애의 마지막 날이죠. 어떻게 해서든 이 날은 장례를 치루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노인을 살려보겠다고 애를 쓰지만 하늘의 운명은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 후 빌머레이는 개과천선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사는게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죠. 그리고 그날 도시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는 사람들을 살려주고,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해서 연애 컨설팅도 해줘서 연인들을 맺어줍니다. 매일 아침 귀찮게 하던 보험 영업사원 동창에게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안겨주는 보험을 가입해 주기도 하구요. 뭐 어차피 돈을 낼 일은 없을 테니. 

이런 이타주의자가 된 빌머레이의 개과천선한 모습에 반한(의사 뺨치는 의학 지식에, 피아노도 잘 치고,고민 상담도 해주고, 남을 잘 배려하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능맨, 유일한 약점은 머리숱이 적다는 정도?) 미션임파서블의 여인이 넘어옴으로써 빌머레이는 마침내 평생(?) 소원을 쟁취합니다. 그리고 그 날을 끝으로 덤으로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매일에도 종지부를 찍습니다.
 
이 영화 마지막의 빌머레이는 <빅퀘스천>에서 언급한 사람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성공, 행복, 쾌락, 이타주의, 사랑)을 거의 다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중되지 않게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죠. 즉 영원한 삶이 따분하다는 줄리언 바지니의 가정은 이 영화에서 반박됩니다. 물론 결국 모든 가치의 기저에 깔린 사랑이 중요하다는 대전제는 똑같습니다만.

영생을 다룬 영화들 중에는 불멸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그것은 시나리오 작가가 우울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줄리언 바지니는 알베르 카뮈가 삶이 부조리하다고 심각해 하는 것은 본인의 성격 탓이라고 비판합니다. 인생에 목적이 정해지지 않아도 만화 스누피처럼 부담감이 없어서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줄리언 바지니는 주장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줄리언 바지니도 이 영화의 작가에 비하면 지극히 우울한 성격 같군요. 저도 한 우울하고 비관적인 편입니다만.

줄리언 바지니는 이타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남을 돕는 게 인생의 의미라면 더 이상 도와줄 남이 없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인데 만들어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까? 그러면 그게 이타주의인가?

이에 대한 답은 이 영화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도움을 준 사람들을 모두 모아 놓고 파티를 즐겨라. 도움을 주는 것이 꼭 희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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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인생이 따분하다고 싶을 때 보면 도움이 될 영화 사랑의 블랙홀입니다.

사랑의 블랙홀
감독 해롤드 래미스 (1993 / 미국)
출연 빌 머레이,앤디 맥도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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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에도 없는 책을 봤더니 필을 받아서 영화 리뷰까지 쓰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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