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08. 6. 3. 11:37

쇼핑몰 사입
처음에는 쇼핑몰에서 왔다고 하면 시장 상인들은 누군지 모르니 상품 사진을 찍으면 뺨을 때리기도 했다. 2003년까지는 동대문의 건장한 경비원들에게 끌려 가기도 했다.
 처음에는 쇼핑몰 한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2002년부터 쇼핑몰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상가 측에서도 통제하기 시작했다. 동대문 상인들이 “옷도 많이 사가고 하니깐 신고하면 하라고 하자”고 결정해서 운영회에서 미리 신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서 운영증 받으면 목걸이로 걸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 시기도 있었다. 승인을 받는 절차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업체만 승인을 해 주고, 새로운 곳은 잘 안 해주기도 했었다. 요즘은 신고를 하라는 말도 없고 매장에 있는 상품을 직접 찍어서 올리는 사람들도 없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2004년 전문몰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부터 샘플을 사입하여 집에 가서 찍어올리는 방식으로 변했다. 동대문3B의 사입자 같은 경우에는 샘플을 갖다 주었고 시즌 바뀔 때는 오히려 붙잡아서 끌고 가서 시장을 다니지도 못했다.

대부분의 매장들이 사진을 못 찍게 한다. 커다란 사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새벽 넘어선 한산한 시간에 매장으로 들어가서 우선 칭찬부터 하는 거다. “여기 옷이 정말 예쁘다. 옷이 너무 예쁘게 잘 나왔네요. 우리 옷도 많이 사 가는데…….”라고 하면서 운을 띠운다. 그리고는 이 옷 좀 판매하고 싶은데 방법 없느냐고 물어 본다. 그러면 대부분 사가라고 한다. 사갈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무슨 돈이 있겠는가? 그럼 앉아서 설명을 하는 거다.
“우리 인터넷에서 쇼핑몰을 하는데 이 옷을 사진을 찍어서 쇼핑몰에 올려서 주문이 들어오면 와서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방식입니다.”라고 열심히 설명을 해도 대부분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다. 그리고 대부분은 홈쇼핑인 줄 안다. 그리고는 “안 해요” 또는 “그런 거 안 하거든요”라고 대답을 한다.
그 중에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한 것 같은 집이 있으면 다음날 사진 찍으러 오겠다고 말하고 우선은 돌아온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또 가서 “사진을 찍으러 왔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찍으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얼굴이 확 바뀌는 사람도 있다. 셔터를 누르려고 하면 뭐 하는 사람이냐며 화를 낸다. 이렇게 설명하며 다니다 보면 10집 중에 겨우 한 집 정도 성공을 한다.
 보통은 성격이 좋고 오픈된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허락을 해준다. 그 날 따라 말빨이 좋거나 주인의 기분이 좋아서 허락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매출이 많다고 얘기를 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던 것이 뉴존 2층에 있는 ‘코코’의 트레이닝복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지속적으로 올릴 곳을 겨우 10군데 정도 마련했다. 사실 10집도 상당히 많은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 사입을 할 때도 찍어도 된다고 하는 곳에서 무조건 사진을 찍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장사가 무척 잘 되고 바쁜 집에서는 쇼핑몰 이야기를 할 틈도 없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이상하게 보기 일쑤였다. 그 당시에는 쇼핑몰이란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주로 예쁜 옷이 팔리는 곳 중에서 좀 한산한 곳을 골라서 시도를 했다.


쇼핑몰 사진
3B를 처음 운영할 때도 300~400 정도의 상품 사진이 있었다. 매장에서 찍어서 막 가져다 올렸다. 그때는 포토샵으로 사진을 예쁘게 수정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불과 2000년 초반까지도 초고속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는 인터넷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사이트의 이미지가 빨리 뜨도록 하기 위해서 용량을 줄이는 것이 포토샵의 주된 임무였다.
그러다 초고속 인터넷이 일반화 되었던 2003~2004년에는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인터넷 속도는 예전보다 빨라졌기 때문에는 용량보다는 사진의 선명도를 높이는 것이 초점이었다. 쇼핑몰이 많이 생기면서 다양한 제품을 파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쇼핑몰이 많이 생기다 보니 시장에서 좀 더 많은 제품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을 했다. 그 이전에는 매장에서 사진을 찍어서 해상도가 깨지면 용량을 줄였다면 이때는 사진을 풀로 찍어서 사진 용량이 크더라도 상품의 질감을 살릴 수 있도록 선명도를 높이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다 2년 전부터는 상품 사진이 단순히 상품을 보여주는 역할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미지를 위한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상품 페이지가 단순히 하나의 상품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상품과 이미지가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독자적인 컨텐츠가 되었다.


쇼핑몰 광고
처음 쇼핑몰을 시작했을 때는 포털 사이트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었다. 따라서 포털 사이트에서 유료광고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래도 쇼핑몰을 알리는 홍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쇼핑몰을 홍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스팸 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것이었다. 주로 커뮤니티 사이트나 홈페이지였다. 그 때는 기업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서 작던 크던 회사들은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홈페이지가 있으면 좀 더 앞서나가는 좋은 기업처럼 생각하여 명함에 홈페이지 주소를 넣고는 하였다. 그래서 철물점이나 작은 인테리어 회사도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런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서 ‘옷을 파는 쇼핑몰입니다. 인터넷 업체입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이렇게 게시판에 글을 남긴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홈페이지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게시판 관리자나 혹 한두 사람이 들려보곤 하였다.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들어오는 것이 소중한 시기였다.
검색엔진도 그다지 활성화가 되지 않은 시기였다. 야후나 라이코스 정도가 큰 검색엔진이었는데, 대부분의 검색엔진은 직원이 10명 미만의 규모였다. 검색엔진으로 전화를 해서 “우리 사이트 왜 앞에 안 띄워줘요? 검색해도 우리 사이트가 안 나와요” 라고 말하면 앞에 띄워주고 그랬다. 검색엔진에 등록하는 것도 물론 무료였다. 동대문3B는 그 때 다 등록을 했기 때문에 사이트 등록비용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메일을 보내서 등록을 하는데 기간은 한 달 정도 걸렸었다.
이러다가 엠파스에 카테고리 배너 광고가 생겨났다. 예를 들어 여성의류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그 위에 배너 광고가 같이 뜨는 것이다. 즉 카테고리를 클릭하면 사이트 위에 배너 광고가 뜬다. 그 당시에 광고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광고를 하면 바로 매출이 발생할 정도로 상당히 효과도 좋았다.
그러다 2003년 중순 경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면 검색 결과에 배너가 뜨는 검색 배너 광고라는 신개념의 광고를 도입하였다. 최초의 키워드 광고였던 셈이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듣고 네이버 담당자가 전화를 해서 광고가 바뀐다고 하자 “도대체 이게 뭐냐? 이걸 바꾸면 나는 어떻게 하느냐? 소비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클릭하는 게 쉽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걸 검색하게 하는 게 쉬우냐? 있는 자리 클릭하면 바로 나오는데 왜 검색하게 만드냐? 누가 동대문3B를 검색하느냐?”고 항의를 했다. 효과가 좋은 카테고리 광고를 없애고 검색을 하면 나오는 방식으로 바꾼다니 억울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제 망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때는 소비자들이 ‘여성의류’라는 키워드를 검색해서 내 쇼핑몰로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한 시간 동안의 긴 통화를 하면서 설명을 들은 끝에 검색 배너 광고도 선점을 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효과가 없었으나 키워드를 여러 개 사서 도배를 하니깐 점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광고에 중독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효과가 있으니깐 광고를 했는데, 조금씩 늘어나던 광고비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에 네이버에서 지식인이 활성화되면서 지식인 광고라는 것이 생겼다. 텍스트 광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의문문 형태의 문장에 물음표를 붙인 광고 문구로 광고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대문’을 검색하면 “동대문 상품이 가장 많은 쇼핑몰은 어디일까?”라는 것과 같은 형태의 문장이 뜨는 광고다. 그러면 지식인인 줄 알고 누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클릭율이 높은 광고였다. 그 후에 텍스트 광고인 파워링크와 오버추어인 스폰서 링크가 주류가 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쇼핑몰 배송
배송은 우체국을 사용했다. 대한통운이나 이런 택배회사들이 그 때도 다 있었지만, 택배비가 우체국 등기보다 비쌌고 픽업도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배송을 할 물건을 우체국으로 다 들고 가서 보냈다. 동네마다 우체국은 다 있으니깐. 그러다가 물량이 몇 십 개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택배회사가 와서 가져갔다. 그 때는 택배비를 다달이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물량을 보낼 때 바로바로 현금으로 지급했다. “오늘 몇 개입니까?” “몇 개요” “반품은 몇 개입니까?” “몇 개요” 그러면 그 금액만큼 돈을 줬다.



출처: 다음카페-매출두배 내쇼핑몰 만들기
<동대문3B 김성은의 부자쇼핑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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