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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출은 소통의 크기만큼
    창업&마케팅/이야기농업&스토리두잉 2011. 8. 25. 09:52

    매출은 소통의 크기만큼
    자작농업, 가족농업, 다품종 소량생산, 자연의 지혜를 활용할 줄 아는 노하우를 지닌 사람들. 전통에 기반하고 사실에 발맞추며 고단하게 삶을 꾸려온 우리나라 농민들의 기본 특성이다. 그리 넓지 않은 논밭에서 온 식구가 다 달라붙어 머리를 짜내 영농설계를 하고 작목을 선택하여 땀을 흘린다. 온전하게 자신을 다 바쳐 농사를 짓는다. 정부나 전문가들이 권하는 작목이든, 반대로 농사를 지었든 이 땅의 농어민들의 삶과 노동은 그들이 쏟은 정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는 그만큼의 이익이 어디론가로 흘러 들어갔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농민들은 정의롭지 못한 독점적 경제체계가 조장하는  ‘경쟁’이라는 마취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농촌을 지키며 헌신해온 것이다. 지난 20여 년, 농업비즈니스 현장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세기로 접어든 2000년 즈음의 상황을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전과 이후의 차이는 정치체계로 보면  50년 가까이 집권하던 보수세력을 대신하여 야당이 정권을 잡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일이다. 농업의 입장에서 보면 외형적인 시스템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었고, 여전히 다국적 곡물기업들과 국내 거대 유통자본의 이익은 철저히 관철되고 있었고, 사회 전반에 만연된 농업 경시풍조는 여전했다. 식량자급률은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국민의 정부는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집행한 사회 각 분야에 걸친 인터넷의 접목과  IT 기술에 집중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소통’과 관련한 사회기반시설이 매우 빠른 속도로 대중의 저변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농업의 영역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초래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의 범위, 세상을 보는 눈이 예전과는 전혀 다른 형질을 띄고 깊어지고 넓어진 것이다. 나는 이 흐름을  ‘혁명적’이라고 생각했다.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들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새로운 시스템’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 바로 소통의 도구  ‘인터넷’으로 인해 한국의 농업에 살길이 열린다고 판단했다.

    flicker = MrMitch

    이전에는 각 농가가 생산한 농산물은 밭떼기상을 통하든, 계통출하를 하든, 작목반별로 모아지거나 개인이 직접 운반하여 가락시장 혹은 각 지역의 도매시장으로 들어가 경매에 참여한다. 경매장으로 들어선 순간 어머어마한 물량에 주눅이 들고, 내가 가지고 간 물건은 이미 농민의 손을 떠나 운명 또한 내 것이 아니게 된다. 해당 시장의 경매사가 특유의 경매 손장단으로 가격을 정하고 청과상들은 물건을 매입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된 농산물 가격은 2~3일 이내에 제반 수수료를 정산 후 통장에 입금된다. 가격이 좋으면 좋아서 술 한잔, 헐값이면 속상해서 술 한잔했다. 하지만 공허하고 슬픈 마음으로 술을 마시는 날이 다반사였다. 이후 내가 넘긴 물건은 앞자리상, 도매상, 소매상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소비영역으로 넘어가는 흐름이었다.

    상품과 상품에 대한 정보가 생산영역에서 소비영역으로 한 방향으로 올라가기만 했고 내려오지는 않았다. 농사짓기 위하여 흘린 땀, 고향의 가치, 아이디어, 살아가는 이야기, 추억 등은 일체 인정되지 않고 오직 눈에 보이는 상품만이 경쟁의 무대에 올려지고 만 것이다. 그러니 좋은 값을 받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려워지게 되었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듯 최우수 1등이라는 좁은문을 통과하기에는 무리수였다.

    그래도 달리 판매할 방법이 없으므로 상추 4kg짜리 한 상자가 인건비는 고사하고 박스가격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경매가격이 매겨지는 것을 알면서도, 도매시장으로 1년 내내 밀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받아만 줘도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면서 말이다. 물량이 넘친다는 소문에 갈아엎기도 수차례였다. 밭떼기상에 헐값으로 넘겼더니 순식간에 오르는 가격, 계약한 물량 가격이 떨어지니 거들떠도 안보는 유통업자의 모습은 전형적인 농식품유통의 왜곡현상이다. 현대판  ‘농산물 머슴’을 산 것이나 진배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가기 시작하면서 농산물시장에 상상을 넘어서는 변화가 도래한다. 생산영역과 소비영역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도농간 공통분모가 커지고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게 된다. 다양한 인터넷 쇼핑공간이 등장하게 되면서 굳이 할인마트나 백화점, 시장에 나가지 않아도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구매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음식’이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추억’ 혹은  ‘이야기’를 함께 먹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평생 하루 세끼 매일매일 먹는 것이 단조로워 보이지만 이는 몇백년, 몇천년을 이어져온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질리고 말고의 문제도 아니고 그만두거나 많이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앞으로도 대대손손 이어져가는 성질의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솜씨,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의 이야기가 담긴다. 그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이어져온 가장 살가운 콘텐츠이자 역사인 것이다.

    안전한 먹거리인가? 믿을 만한 사람들이 생산한 것인가? 어떻게 먹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과 더불어 어릴 적부터 몸에 녹아 있는 고향, 추억, 엄마의 손맛과 그리움 같은 개념들이 급격하게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바쁘게만 살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소비자들의 눈에 자신들이 놓치고 살았던 고향의 모습들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공간에 제한받지 않고 양방향 혹은 다중방향으로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고 질서정연하게 펼쳐놓은 쇼핑몰을 찾고 농가의 홈페이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자신의 고향을 찾고, 추억을 먹고, 도시공간과 농촌공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상품과 마음을 진심으로 보게 된다. 인터넷 공간에서 사진, 글, 영상, 소리 그리고 하나로 묶여진 UCC로 사람들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2000년 이후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웰빙 열풍은 인터넷 네트워크의 발전을 타고 농업에 대한 가치기준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매출을 결정하는 요인이 얼마나 큰 면적의 농사를 짓는가 혹은 얼마나 오랫동안 농사를 지었는가, 아니면 그 시기에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기발한 품목을 생산했는가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민들과 얼마만큼 소통을 잘하는지,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가 있는지가 관건이다. 물론 상품의 품질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진솔함이 생산과정에 녹아드는 농업인의 생활 자체가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기꺼이 신뢰감을 주는 농민의 이야기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야기농업>안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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