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1.08.26 10:37

거미줄네트워크
인생은 농사보다 상위의 개념이고 실재하는 현실이다. 영겁의 인연으로 세상에 나왔다가 온 생명짓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니  ‘산다는 것’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가 존재하므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농부는 농업적 삶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사람이다.

예전에 살던 우리집은 시골집이라서 곳곳에 거미들이 많았다. 종류도, 모양도, 성질도 다 달랐지만 먹이를 유인하기 위하여 상상도 못할 공간에 거미줄을 치고, 먹이가 걸렸을 때 거미줄 위에서 거미가 펼치는 그 놀라운 마술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 작은 몸에서 무수히 많은 거미줄을 뽑아낼 수 있을까?

flicker = -_Cat_-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이동과 탄력성, 최선으로 진화한 물리화학적 공간구성, 신호전달체계, 선으로 이어진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공간에 매료되지않을 수 없었다. 거미줄 선 하나하나가 민감한 센서로 여겨지면서 그들을 볼 때마다 감탄했다. 그 무렵 어느 날, 책상에 앉아서 농촌쇼핑몰에 관련되는 개념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린투어, 시장, 사람, 쇼핑몰, 커뮤니티… 그리고 이야기, 이들을 하나로 묶는 개념은 무엇일까? 이 대목에 이르러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거미줄이 연상되었고 거미줄의 곳곳에 항목들을 하나하나 배치하게 된 것이다. 각 항목들은 따로따로인 듯 연결된 듯 하면서도 독립적이다. 인터넷이 만드는 거미줄 바로 그 자체였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농민이기 이전에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개성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사람의 관계로 보면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관계 맺는 사람의 범위가 매우 좁았다. 우선 마을 이장님, 가족, 이웃 사람들, 품앗이 나누는 옆 마을 사람들, 읍내의 초중고 동창생 녀석들, 도시로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 그리고 사돈댁, 거래처 사람들 정도가 전부였다. 손가락으로 꼽아도 될 만큼 인연은 제한적이고 단조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지리산 골짜기 오지 중의 오지인 함양에 살고 있다 해도 전화선만 깔리면 인터넷 광랜이 깔리는 세상이다. 이사를 가자마자 서울 성북구에 사는 사람과도 친구가 되고 대전에 사는 아무개하고도 거래의 인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를 통하여 이웃들이 생겨나고 동호회가 연결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독후감을 교류하며 끼리끼리 연결된다. 동시에 다수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인터넷 시대의 인적 관계는 숫자의 의미, 지역적 제한, 인식 총량의 범위를 넘어서는 확장성을 지니게 된다.

시장으로 보면
서울 가락시장, 대전 도매시장, 대구 도매시장 등 지역별로 존재하는 도매시장이 가장 중요한 판매처였다. 어쩌다가 도시지역의 아파트 부녀회 등과 거래를 하곤 했지만 지속적이지는 않았다. 농산물을 팔고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나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진 조건, 주어진 시장인 도매시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친환경 농업인들은 생활협동조합, 혹은 도농공생적 유통기구와 연계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비율로 보면 극히 미미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에는 전국  ‘5,000만 명의 마음’이라는 소비시장에 다가서는 것이다. 택배 시스템의 발달로 4,000원 내외로 하룻밤만 자고 나면 대한민국 어디든지 물건을 보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시장의 의미와 소비의 지형이 하늘과 땅만큼 달라진 것이다.

농장 주변의 자연환경
농장 밭둑을 땅강아지가 기어가고 한밤중에는 오묘한 불빛을 반짝이며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 어느 농부는 디지털카메라로 땅강아지를 접사로 찍고 여러 각도로 찍어서 블로그와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땅강아지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추억을 상기시킨다. 생산하는 작물과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 땅강아지 이야기에 고객들은 반가운 댓글을 단다.  “어머! 그래 맞아! 어릴 적 고향 뚝방길에서 본 기억이 나!” 고객들은 땅강아지 이야기에 즐거워한다. 시간이 갈수록 땅강아지 이야기 조회수는 늘어가고, 온라인으로 농장을 방문하는 사람도 그만큼 늘어난다. 땅강아지가 살고 지렁이가 살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자연환경, 어릴 적 발가벗고 뛰어 놀았던 냇가와 억새풀의 살랑거림, 그리고 300년 된 동구 밖 느티나무가 눈앞에 보이는 우리 동네의 풍경 한 컷….

이런 것을 담아낸 한 농부의 이야기가 주목받는 세상이 되었다. 굳이  “제가 생산한 농산물은 안전하고 깨끗합니다”,  “아삭아삭하고 맛있어요”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네티즌들은 그들의 경험 속에서  “아! 이곳에는 이런 생태계 주인공들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땅도 깨끗하고, 물도 오염이 안 된 곳이겠구나! 마을 인심도 좋겠네”,  “주인의 저런 감수성을 보니 진심 어린 농사를 짓고 있겠구나” 하며 말하지 않아도 신임하게 된다. 농장 주변의 산, 강, 냇가, 식물과 동물, 바람, 햇빛 그 외 모든 자연의 요소들이 이야기에 녹아들어 밑재료로 쓰이는 세상이다.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존재들이다.

전통 문화유산
조상의 흔적이 묻어 있는 문화유산들은 아무리 도시화가 진행되고 인구집중이 된다 하더라도 대부분 농촌공간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농장 주변에는 널리 알려진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전통 문화유산들이 많다. 그 하나하나마다 소중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하고 이야기로 만들어 보자. 백과사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콘셉트로 도시민에게 안내하는 향토 가이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작업들은 생산하는 농산물이나 삶의 이야기에 역사적이고 깊이가 있는 문화 감성적 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출처 : 이야기농업>, 안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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