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1.12.20 12:09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의 시초인 월드와이드웹은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팀 버너스리가 1989년경 개발한 것이다. 이후 인터넷은 지속적으로 발전했고 웹을 이용하기 위한 도구인 웹브라우저 역시 함께 발전하였다. 다양한 초기 브라우저들이 나타나는 와중 각종 프로그램과 통신 규약을 개발, 연구하던 NCSA에 의해 모자이크라는 웹브라우저가 1993년에 출시된다. 이 모자이크의 개발을 주도했던 창립자들이 만든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가 바로 인터넷의 부흥을 이끈 1세대 웹브라우저이다. 넷스케이프는 별다른 경쟁 없이 시장을 독점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웹브라우저가 된다.



이렇게 넷스케이프가 큰 성공을 거두는 와중에 스파이글래스라는 다른 기업에서도 모자이크의 소스를 사용한 웹브라우저를 제작하고 있었고 이 웹브라우저는 결국 마이크로 소프트에게 넘어간다. 1995년 8월에 공개된 1 버전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윈도우 95에 포함된다. 이후 계속된 발전을 거치며 1996년 8월에 공개된 3 버전은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최신 HTML 기술을 지원하고 액티브X와 자바Java 환경을 갖춘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넷스케이프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부각된다. 이후 1997년 11월 공개된 4 버전은 윈도우 98에 내장되어 출시되어 윈도우 98 운영체제의 전 세계적인 인기를 등에 엎고 넷스케이프와의 1차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한다. 넷스케이프는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인터넷 익스플로러에게 빼앗기지만 지속적으로 개발을 이어갔다. 그러나 2002년 이후로는 사용자층을 거의 잃어버리고 개발이 중단되어버렸다.


넷스케이프 72 : 마이크로소프트 18
치열했던 마이크로소프트와 넷스케이프의 경쟁에 얽힌 재미있는 비화가 있다. 넷스케이프를 몰락시킨 인터넷 익스플로러 4가 출시되던 시기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 본사의 앞마당에 거대한 철재 익스플로러 모형을 설치해놓았다. 자신들의 부흥을 선언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를 본 넷스케이프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고, 앞마당의 괴악한 철재 모형을 넘어뜨린 후 자신들을 상징하던 인형을 올려놓았다. 또 그 구조물 위에 당시 시장 점유율을 나타내는 “넷스케이프 72 : 마이크로소프트 18”이라는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4가 나온 이후로도 넷스케이프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6이 나올 때까지 경쟁을 이어왔지만, 결국 몰락하였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시장의 9할을 점유할 정도로 거대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성공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선물이었으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이미 시장에서 경쟁은 끝났고 더 상대해야 할 경쟁자가 없었던 것이다. ‘끼워 팔기’에 대단한 비판을 받던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자가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개발을 중단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치열하게 기능을 개선하고 성능을 향상시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독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우리나라도 윈도우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6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다양한 인터넷 콘텐츠와 서비스가 사용자의 증가와 요구에 따라 증가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기업과 정부는 신중하지 못한 자세로 기형적인 웹 풍토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금융이나 교육 등 국가에 핵심적인 서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가 지켜야 하는 신호등과 같이 웹사이트를 제작할 때에도 엄연한 표준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윈도우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에만 맞게 콘텐츠와 서비스를 생산한 것이다. 게다가 경각심 없이 액티브X 기술을 무분별하게 사용했고, 그 결과 국내 사용자들의 보안에 대한 인식을 무디게 하고 수준을 떨어뜨렸다.
<파이어폭스 스토리 & 가이드북>.안재욱.e비즈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