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마케팅/이야기농업&스토리두잉'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11.08.26 거미줄네트워크
  2. 2011.08.25 매출은 소통의 크기만큼
  3. 2011.08.24 대한민국 농업, 이야기옷을 입다
  4. 2011.08.23 왜 이야기 농업인가?
posted by e비즈북스 2011.08.26 10:37

거미줄네트워크
인생은 농사보다 상위의 개념이고 실재하는 현실이다. 영겁의 인연으로 세상에 나왔다가 온 생명짓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니  ‘산다는 것’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가 존재하므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농부는 농업적 삶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사람이다.

예전에 살던 우리집은 시골집이라서 곳곳에 거미들이 많았다. 종류도, 모양도, 성질도 다 달랐지만 먹이를 유인하기 위하여 상상도 못할 공간에 거미줄을 치고, 먹이가 걸렸을 때 거미줄 위에서 거미가 펼치는 그 놀라운 마술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 작은 몸에서 무수히 많은 거미줄을 뽑아낼 수 있을까?

flicker = -_Cat_-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이동과 탄력성, 최선으로 진화한 물리화학적 공간구성, 신호전달체계, 선으로 이어진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공간에 매료되지않을 수 없었다. 거미줄 선 하나하나가 민감한 센서로 여겨지면서 그들을 볼 때마다 감탄했다. 그 무렵 어느 날, 책상에 앉아서 농촌쇼핑몰에 관련되는 개념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린투어, 시장, 사람, 쇼핑몰, 커뮤니티… 그리고 이야기, 이들을 하나로 묶는 개념은 무엇일까? 이 대목에 이르러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거미줄이 연상되었고 거미줄의 곳곳에 항목들을 하나하나 배치하게 된 것이다. 각 항목들은 따로따로인 듯 연결된 듯 하면서도 독립적이다. 인터넷이 만드는 거미줄 바로 그 자체였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농민이기 이전에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개성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사람의 관계로 보면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관계 맺는 사람의 범위가 매우 좁았다. 우선 마을 이장님, 가족, 이웃 사람들, 품앗이 나누는 옆 마을 사람들, 읍내의 초중고 동창생 녀석들, 도시로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 그리고 사돈댁, 거래처 사람들 정도가 전부였다. 손가락으로 꼽아도 될 만큼 인연은 제한적이고 단조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지리산 골짜기 오지 중의 오지인 함양에 살고 있다 해도 전화선만 깔리면 인터넷 광랜이 깔리는 세상이다. 이사를 가자마자 서울 성북구에 사는 사람과도 친구가 되고 대전에 사는 아무개하고도 거래의 인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를 통하여 이웃들이 생겨나고 동호회가 연결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독후감을 교류하며 끼리끼리 연결된다. 동시에 다수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인터넷 시대의 인적 관계는 숫자의 의미, 지역적 제한, 인식 총량의 범위를 넘어서는 확장성을 지니게 된다.

시장으로 보면
서울 가락시장, 대전 도매시장, 대구 도매시장 등 지역별로 존재하는 도매시장이 가장 중요한 판매처였다. 어쩌다가 도시지역의 아파트 부녀회 등과 거래를 하곤 했지만 지속적이지는 않았다. 농산물을 팔고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나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진 조건, 주어진 시장인 도매시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친환경 농업인들은 생활협동조합, 혹은 도농공생적 유통기구와 연계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비율로 보면 극히 미미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에는 전국  ‘5,000만 명의 마음’이라는 소비시장에 다가서는 것이다. 택배 시스템의 발달로 4,000원 내외로 하룻밤만 자고 나면 대한민국 어디든지 물건을 보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시장의 의미와 소비의 지형이 하늘과 땅만큼 달라진 것이다.

농장 주변의 자연환경
농장 밭둑을 땅강아지가 기어가고 한밤중에는 오묘한 불빛을 반짝이며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 어느 농부는 디지털카메라로 땅강아지를 접사로 찍고 여러 각도로 찍어서 블로그와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땅강아지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추억을 상기시킨다. 생산하는 작물과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 땅강아지 이야기에 고객들은 반가운 댓글을 단다.  “어머! 그래 맞아! 어릴 적 고향 뚝방길에서 본 기억이 나!” 고객들은 땅강아지 이야기에 즐거워한다. 시간이 갈수록 땅강아지 이야기 조회수는 늘어가고, 온라인으로 농장을 방문하는 사람도 그만큼 늘어난다. 땅강아지가 살고 지렁이가 살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자연환경, 어릴 적 발가벗고 뛰어 놀았던 냇가와 억새풀의 살랑거림, 그리고 300년 된 동구 밖 느티나무가 눈앞에 보이는 우리 동네의 풍경 한 컷….

이런 것을 담아낸 한 농부의 이야기가 주목받는 세상이 되었다. 굳이  “제가 생산한 농산물은 안전하고 깨끗합니다”,  “아삭아삭하고 맛있어요”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네티즌들은 그들의 경험 속에서  “아! 이곳에는 이런 생태계 주인공들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땅도 깨끗하고, 물도 오염이 안 된 곳이겠구나! 마을 인심도 좋겠네”,  “주인의 저런 감수성을 보니 진심 어린 농사를 짓고 있겠구나” 하며 말하지 않아도 신임하게 된다. 농장 주변의 산, 강, 냇가, 식물과 동물, 바람, 햇빛 그 외 모든 자연의 요소들이 이야기에 녹아들어 밑재료로 쓰이는 세상이다.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존재들이다.

전통 문화유산
조상의 흔적이 묻어 있는 문화유산들은 아무리 도시화가 진행되고 인구집중이 된다 하더라도 대부분 농촌공간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농장 주변에는 널리 알려진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전통 문화유산들이 많다. 그 하나하나마다 소중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하고 이야기로 만들어 보자. 백과사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콘셉트로 도시민에게 안내하는 향토 가이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작업들은 생산하는 농산물이나 삶의 이야기에 역사적이고 깊이가 있는 문화 감성적 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출처 : 이야기농업>, 안병권
posted by e비즈북스 2011.08.25 09:52

매출은 소통의 크기만큼
자작농업, 가족농업, 다품종 소량생산, 자연의 지혜를 활용할 줄 아는 노하우를 지닌 사람들. 전통에 기반하고 사실에 발맞추며 고단하게 삶을 꾸려온 우리나라 농민들의 기본 특성이다. 그리 넓지 않은 논밭에서 온 식구가 다 달라붙어 머리를 짜내 영농설계를 하고 작목을 선택하여 땀을 흘린다. 온전하게 자신을 다 바쳐 농사를 짓는다. 정부나 전문가들이 권하는 작목이든, 반대로 농사를 지었든 이 땅의 농어민들의 삶과 노동은 그들이 쏟은 정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는 그만큼의 이익이 어디론가로 흘러 들어갔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농민들은 정의롭지 못한 독점적 경제체계가 조장하는  ‘경쟁’이라는 마취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농촌을 지키며 헌신해온 것이다. 지난 20여 년, 농업비즈니스 현장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세기로 접어든 2000년 즈음의 상황을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전과 이후의 차이는 정치체계로 보면  50년 가까이 집권하던 보수세력을 대신하여 야당이 정권을 잡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일이다. 농업의 입장에서 보면 외형적인 시스템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었고, 여전히 다국적 곡물기업들과 국내 거대 유통자본의 이익은 철저히 관철되고 있었고, 사회 전반에 만연된 농업 경시풍조는 여전했다. 식량자급률은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국민의 정부는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집행한 사회 각 분야에 걸친 인터넷의 접목과  IT 기술에 집중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소통’과 관련한 사회기반시설이 매우 빠른 속도로 대중의 저변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농업의 영역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초래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의 범위, 세상을 보는 눈이 예전과는 전혀 다른 형질을 띄고 깊어지고 넓어진 것이다. 나는 이 흐름을  ‘혁명적’이라고 생각했다.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들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새로운 시스템’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 바로 소통의 도구  ‘인터넷’으로 인해 한국의 농업에 살길이 열린다고 판단했다.

flicker = MrMitch

이전에는 각 농가가 생산한 농산물은 밭떼기상을 통하든, 계통출하를 하든, 작목반별로 모아지거나 개인이 직접 운반하여 가락시장 혹은 각 지역의 도매시장으로 들어가 경매에 참여한다. 경매장으로 들어선 순간 어머어마한 물량에 주눅이 들고, 내가 가지고 간 물건은 이미 농민의 손을 떠나 운명 또한 내 것이 아니게 된다. 해당 시장의 경매사가 특유의 경매 손장단으로 가격을 정하고 청과상들은 물건을 매입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된 농산물 가격은 2~3일 이내에 제반 수수료를 정산 후 통장에 입금된다. 가격이 좋으면 좋아서 술 한잔, 헐값이면 속상해서 술 한잔했다. 하지만 공허하고 슬픈 마음으로 술을 마시는 날이 다반사였다. 이후 내가 넘긴 물건은 앞자리상, 도매상, 소매상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소비영역으로 넘어가는 흐름이었다.

상품과 상품에 대한 정보가 생산영역에서 소비영역으로 한 방향으로 올라가기만 했고 내려오지는 않았다. 농사짓기 위하여 흘린 땀, 고향의 가치, 아이디어, 살아가는 이야기, 추억 등은 일체 인정되지 않고 오직 눈에 보이는 상품만이 경쟁의 무대에 올려지고 만 것이다. 그러니 좋은 값을 받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려워지게 되었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듯 최우수 1등이라는 좁은문을 통과하기에는 무리수였다.

그래도 달리 판매할 방법이 없으므로 상추 4kg짜리 한 상자가 인건비는 고사하고 박스가격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경매가격이 매겨지는 것을 알면서도, 도매시장으로 1년 내내 밀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받아만 줘도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면서 말이다. 물량이 넘친다는 소문에 갈아엎기도 수차례였다. 밭떼기상에 헐값으로 넘겼더니 순식간에 오르는 가격, 계약한 물량 가격이 떨어지니 거들떠도 안보는 유통업자의 모습은 전형적인 농식품유통의 왜곡현상이다. 현대판  ‘농산물 머슴’을 산 것이나 진배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가기 시작하면서 농산물시장에 상상을 넘어서는 변화가 도래한다. 생산영역과 소비영역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도농간 공통분모가 커지고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게 된다. 다양한 인터넷 쇼핑공간이 등장하게 되면서 굳이 할인마트나 백화점, 시장에 나가지 않아도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구매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음식’이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추억’ 혹은  ‘이야기’를 함께 먹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평생 하루 세끼 매일매일 먹는 것이 단조로워 보이지만 이는 몇백년, 몇천년을 이어져온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질리고 말고의 문제도 아니고 그만두거나 많이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앞으로도 대대손손 이어져가는 성질의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솜씨,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의 이야기가 담긴다. 그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이어져온 가장 살가운 콘텐츠이자 역사인 것이다.

안전한 먹거리인가? 믿을 만한 사람들이 생산한 것인가? 어떻게 먹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과 더불어 어릴 적부터 몸에 녹아 있는 고향, 추억, 엄마의 손맛과 그리움 같은 개념들이 급격하게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바쁘게만 살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소비자들의 눈에 자신들이 놓치고 살았던 고향의 모습들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공간에 제한받지 않고 양방향 혹은 다중방향으로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고 질서정연하게 펼쳐놓은 쇼핑몰을 찾고 농가의 홈페이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자신의 고향을 찾고, 추억을 먹고, 도시공간과 농촌공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상품과 마음을 진심으로 보게 된다. 인터넷 공간에서 사진, 글, 영상, 소리 그리고 하나로 묶여진 UCC로 사람들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2000년 이후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웰빙 열풍은 인터넷 네트워크의 발전을 타고 농업에 대한 가치기준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매출을 결정하는 요인이 얼마나 큰 면적의 농사를 짓는가 혹은 얼마나 오랫동안 농사를 지었는가, 아니면 그 시기에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기발한 품목을 생산했는가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민들과 얼마만큼 소통을 잘하는지,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가 있는지가 관건이다. 물론 상품의 품질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진솔함이 생산과정에 녹아드는 농업인의 생활 자체가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기꺼이 신뢰감을 주는 농민의 이야기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야기농업>안병권

posted by e비즈북스 2011.08.24 10:10


대한민국 농업, 이야기옷을 입다
나라가 열리고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살림이 지속되어 오는 동안 우리에게 농업은 나라의 근본이고 전부였다. 외침이 있거나 자연재해가 오거나 혹은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에 대응하면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이 땅에서 나오는 것들로 온전히 먹고살았다. 상황이 어려워져 고단하게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기도 했지만, 이웃 간에 상호부조相互扶助하면서 보릿고개를 넘겼다. 문화를 일으켰고, 아이를 낳아 키웠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농업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만든 역사 그 자체이고,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20세기 초, 지배층의 무능력으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고, 해방 후에는 정치권력과 재벌권력의 이해관계에 끌려다니고, 다국적 곡물메이저의 요구에 따라 중화학공업을 위한 저곡가 저임금정책의 희생양이 되었다. 농촌은 피폐해져  갔고,  사람들은  떠났고,  수많은  토종씨앗과  전통과  추억들이  사라져  갔다.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식량자급에 혁혁한 공헌을 했던 밀(우리밀)도 사라졌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목화도 사라졌다. 풍부한 감성과 이야기를 만들어주던 토종씨앗과 다양한 먹거리들도 흔적을 감추고 말았다. 

flicker = Skånska Matupplevelser


‘경쟁’만이 살길인양 농업을 부추기는 투기세력들에 의해  “농업은 돈이 안 돼!”라는 왜곡된 홀림에 눈이 멀었다. 그 사이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것들이 어찌 그 뿐이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농촌을 잃어버렸고, 농업을 놓아버린 채 살았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조절을 위한 사회적 기제機制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만약 이 상태로 농업을 방치하다가 기상이변을 비롯한 천재지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외국의 곡물농사가 어느 순간 망가지거나 수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현재의 식량문제는 우리가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가역적 상황이 아니다.

최악의 경우  5,000만 명 중  3,700만 명이 굶어야 한다. 나라를 유지할 수 없는 최악의 사태인 것이다. 만인이 공노할 엄중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더 싼 것을 사다 먹으면 되지”,  “과잉영양을 조심하세요”,  “통큰세일” 같은 사탕발림 속에서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농업의 공익성을 외면한 채 그저 값싸게 대량생산하는 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그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수입하면 된다며 비교열세 운운하는 어리석음에 목을 맨다면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죄악이다. 21세기 초, 농촌인구의 노령화와 이농으로 절대적으로 노동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가족단위 농업으로 근근이 유지되는 농촌이 한 켠에 있고, 잃어버린 감성을 찾아 헤매는 도시가 다른 한 켠에 있다.

“내 소비처만 있었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 어디 없나요?”


대다수 농민들은 판매처가 마땅치 않고, 도시민들은 정감어린 먹거리에 목이 마르다.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허공을 향해 하소연하는 형국인 것이다. 그렇게 농촌과 도시의 상처가 깊어 갈 즈음 인터넷 시대가 왔고, 다시 10여 년이 흘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시대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소통’과  ‘공유’를 기본으로 하는 열린 공간, 인터넷이 무르익어 가자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혁명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1인 미디어의 시대가 다가오자 사람들의 눈에 그동안 애써 등한시했던 농업의 가치가 새롭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농업은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내 안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flicker = Travel Salem



그 흐름에서 우리 농업의 살길을 보았고, 잃어버린 것들을 복원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찾은 일이 ‘The STORY’다. 농촌 이야기로 꿈을 꾼다. 땀, 분노, 슬픔, 열정을 지닌 채 대한민국 농부로 살아온 고단한 일생을 주재료로, 하늘님, 구름님, 바람님, 땅님, 똥님, 물님과 지금까지 버텨온 모든 것을 밑재료로 삼는다.

그리고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을 버무려 인터넷 공간에서 나의 인생을 직접 디자인하여 상품에 녹여 내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이야기’가 되고 정감어린 이야기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 일련의 작업 혹은 개념을  ‘이야기농업’이라 부른다. 지금은 이야기를 생산하고 이야기를 소비하는 시대다.

농업의 구동축이 생산만이 전부이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생산의 전 과정을 포함하고 농사짓는 농부의 삶도,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도 상품의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고 그 자체가 이야기가 되어 상품으로 판매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야기농업은 농민들과 커가는 아이들과 영혼이 메마른 도시민들을 위한 것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 지속가능한 자연을 위한 또 다른 농업이다. 이야기농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영혼,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잃어버린 고유한 것들을 복원시키는 우리들의 미래를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운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 대한민국 농업은 이야기옷을 입어야 한다.

《출처:이야기농업》


 

posted by e비즈북스 2011.08.23 10:41

왜 이야기농업인가?
이 책의 모든 것은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나의 삶, 만나고 헤어진 인연, 이루어졌거나 실패한 일을 포함하여, 죽으나 사나 미련하게 몸담고 살았던 농업인으로서의 삶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여 년간 유기농산물 유통사업을 하면서 좌절과 희망을 번갈아가며 맛보았다.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 희망 뒤에는 좌절이 따르고 그 뒤를 또 다른 희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는 것이다. 결국 희망과 좌절은 서로 놓을 수 없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맛에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이야기는  ‘생각의 내용’일 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을 지천명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스토리이야기를 대하는 나의 자세는 마케팅의 한 요소인 스토리텔링의 범주, 생산한 물건을 잘 팔아야 하는 수단으로서의 범주를 넘어선다. 땅에서 바다에서 생산한 먹거리가 우리들의 밥상 위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생산주체인 농부와 소비주체인 고객이다. 그러므로 생산활동과 소비활동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혜택과 이익은 우선적으로 양 주체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보고픈 욕심에 미력하나마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flicker = MrMitch

그러던 중 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했고 다시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페이스북을 필두로 꿈결 같은 소셜 네트워크 시대가 우리 곁으로 다가섰다.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시대가 열리면서  ‘전체’의 이익이라는 미명 하에 가려져 있던  ‘개인’의 독특함이 발현되는 1인 미디어의 시대가 된 것이다. 부당하게 드리워져 있던 농업에 대한 선입견과 이익결정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상품과 경쟁구조에 억눌려 보이지 않던 사람과 사람, 도시와 농촌, 그 안에 사는 사람들 간의  ‘관계’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관계는 농촌이야기로 인하여 또 다른 관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현재 농촌에 존재하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심에서 밀려나 변방에 존재하던 농민이 만들어낸 스스로의 이야기, 자신만의 이야기, 인생이 농축된 이야기는 당당하게 5,000만 소비대중이 감성의 바다에 큼지막한 배를 띄우는 것과 같다. 남의 배로 고기잡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를 갖는 셈이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처럼 이야기는 한 인간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구체적인 수단이자 목표가 되고 있다. 나는 농부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내서 자유로운 영혼을 마음껏 구가하는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농업은 내 운명 스스로 만들어 이름 붙이는 실천적 삶이고, 우리의 정신문화 복원운동이다.

이야기농업 디자이너로 오늘을 대하는 것을, 20년 가까이 농업의 흔적을 한 그릇에 담아 맛을 내려는 노력으로 이해한다면 고마운 일이 되겠다. 도시와 농촌, 생산과 소비, 독자와 나, 그리고 모든 농업적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로 엮이면서 강해진다.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바꾸게 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감정을 갖게 만든다. 그것이 이야기농업의 힘이다.

“농부님!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이야기농업> 안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