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1.02.07 10:45
중국 인터넷 쇼핑몰 시장의 간판스타들

아리바바 CEO 마윈(馬云)

마윈은 타오바오와 아리바바의 창시자이며 중국 전자상거래의 아버지라고 알려져 있다.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물이고, 아리바바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보물창고다.”
“하늘 아래 그 어느 것도 불가능한 일은 없다.”
“하늘 아래 어렵고 복잡한 거래를 없애자.”

날카롭고 뾰족한 얼굴, 당당한 기풍을 풍기며 누구에게도 속박당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일을 하는 사람. 양 옆구리에 복수의 칼을 차지 않는 인정이 두터운 사람. ‘서호논검’이라고 하는 인터넷 포럼을 주최하여 중국 인터넷 기업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모이게 만든 사람. 그가 바로 인터넷 쇼핑몰 영역을 종횡무진하는 ‘마윈’이다.

어렸을 때 마윈은 말썽꾸러기 소년이었다. 마윈은 어릴 때부터 친구를 위해, 의리를 지키기 위해 종종 싸움을 벌여 열세 바늘이나 꿰맨 적도 있었으며 수차례 강제 전학을 당했다. 부모님에서부터 선생님, 이웃들 모두가 이 아이의 장래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마윈은 일류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으며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은 두 번, 대학 입학시험은 세 번을 치렀는데, 그 중 첫 번째로 본 대학 입학시험에서 수학은 1점을 받았다. 그가 세 번째 시험을 보러 가기 전 그의 선생님은 “네가 만약 시험에 합격한다면 내가 성을 바꾸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마윈은 창업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에게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나 자신도 사업에 성공하였습니다. 제가 성공했기에, 나는 청년 창업자들의 80%는 꼭 성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리바바 CEO 마윈 - 컴퓨터를 잘 모르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984년 마윈은 천고의 고생 끝에 항저우 사범대학교 외국어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의 성적은 종합대학에 지원하기엔 5점이 부족했지만, 다행히 그가 지원하려는 대학에 결원이 생겨 운 좋게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를 가득 안고 입학한 그는 학생회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마윈은 항저우 전자공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러다 1991년 드디어 사업계에 첫 발을 내밀었다. 친구와 함께 ‘하이바오’라는 작은 번역사를 설립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첫 달 수입은 700위안으로 월세 2000위안을 내기엔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것을 본 주위 사람들은 더 이상의 운영을 말렸지만 그에게는 계속 해 나간다면 분명 길이 열릴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혼자서 커다란 대마자루를 메고 이니아오, 광저우 등의 지역으로 가서 물건을 사들여 자신의 번역회사를 선물, 꽃 등을 파는 전형적인 소형 가게로 전환했다. 선생님에서 사업가로 방향을 전환했던 그는 자신이 얻은 첫 번째 교훈을 이렇게 전한다. “내가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신념은, 진정 돈을 크게 벌고 싶은 사람이라면 돈을 가볍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머릿속 가득 오직 돈만 생각한다면, 절대로 돈을 벌 수 없습니다.”

1994년 말에 우연히 미국에 가게 되었을 때, 마윈은 처음으로 ‘인터넷’을 접하게 되었다. 컴퓨터에 관해서는 일자무식이었던 마윈은 친구들의 도움과 소개로 조금씩 인터넷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당시 인터넷에는 중국에 관한 자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마윈은 중국 자료를 다루는 영어 번역 사이트를 개설해 보았다. 신기하게도 3시간 후, 네 통의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주위의 반응에 비교적 민감했던 마윈은 인터넷이 앞으로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예측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중국 국내 기업들의 홍보 자료를 인터넷에 올려 전세계로 퍼뜨리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그는 항저우의 능력 있는 청년 교사로 그의 학교 교장은 외사처(대외홍보, 대외접대 등 모든 대외적인 업무를 학교의 대표로 수행하는 부서) 대외협력실 실장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꿈이 있었기에 학교 내의 안정적인 지위와 그 이상의 혜택을 모두 내려놓고 의연히 자리를 떠났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인터넷은 매우 생소하고 낯선 존재였다.

사실 이 때는 전세계적으로도 인터넷이 처음으로 보급되던 시기로, 양쯔위엔(제리 양)이 야후를 창립한 지 1년도 채 안 되었을 때였고, 또한 북경의 중국과학원 교수 첸화린이 최초로 인터넷을 사용해 미국으로 이메일을 보낸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을 때였다. 이러한 실정 속에, 인터넷 개통이 언제 가능할 지도 모르는 항저우에서 마윈은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인터넷으로 회사를 창업할 계획을 그려놓았다.

1995년 4월, 마윈과 그의 부인은 또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2만 위안을 모아 전문적으로 기업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주는 ‘중궈황예中國黃頁’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3개월 후 항저우 근처에 있는 상하이에서 정식으로 인터넷을 개통하게 되자 마윈의 업무량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각 기업들이 뒤늦게 자신들의 사이트를 개설하느라 급급하게 되자 마윈은 그만의 선견지명으로 더욱더 큰 이윤을 남기게 되었다. 중영 대조(중문으로 되어있는 내용을 영어로 번역) 2000자, 컬러 사진 한 장이 담긴 사이트 하나를 개설하는 데에 2만 위안이 시작 가격이었으니 말이다. 3년이 채 되지 않아 마윈은 5000만 위안의 이윤을 남기게 되었으며 중국 국내에서 점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97년 대외경제무역부의 요청에 따라, 마윈은 자신의 창업 동반자들을 이끌고 지휘하여 대외경제무역부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인터넷 중국상품교역시장, 인터넷 중국기술 수출교역회, 중국상인모임, 인터넷 광교회, 등 일련의 국가대표급 홈페이지들을 만들었다. 이러한 경험은 마윈에게는 아주 진귀한 것이었다.

1999년 초, 미래를 보다 멀리 바라본 마윈은 항저우로 다시 돌아와서는 2차 창업을 진행했다. 그는 전자상거래 영역에 개입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세계에서 만들어진 각각의 전자상거래 홈페이지는 기본적으로 전세계 상위 15%에 속하는 대기업의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그러나 마윈은 중소기업이 발달한 도시인 저지앙에서 자라나 가장 낮은 계층의 시장에서부터 맞붙어 싸우며 올라왔기에 중소기업의 어려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의연히 결정을 내렸다.
“고래를 포기하고 새우를 잡겠다. 즉 상위 15%의 대기업을 포기하고 오직 85%의 중소기업의 사업을 돕겠다.”

또한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만약 기업을 사람처럼 부자 기업과 가난한 기업으로 나눈다면 인터넷은 가난한 기업들의 세계이다. 대기업은 자신들만의 전문적인 홍보업체를 통해 거액의 광고비를 들이지만, 작은 기업들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인터넷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가난한 기업들의 혁명을 주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마윈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이렇게 무대를 제공해주어 전세계 중소기업의 수출입 정보를 더욱 많이 얻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소기업은 백사장의 한 알의 모래로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모래알이 하나하나가 모여 단단한 돌이 되는 것처럼, 인터넷을 통해 하나로 뭉친 돌은 그 힘이 매우 강력하여 큰 돌과 견줄 수 있다. 인터넷 경제의 특색이 바로 작은 것으로 큰 것과 싸우고 빠른 것으로 느린 것과 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1999년 9월 마윈의 아리바바 홈페이지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아리바바를 만든 취지는 중소기업을 미래에 다가올 부의 문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인터넷이 막 뜨겁게 퍼지고 있던 시기였지만 투자자들이나 일반 대중들이나 모두 관심을 포털사이트에 쏟고 있을 때였다. 마윈은 이 시기에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개설해 국내의 대세를 거스른 행동을 취했다. 아리바바는 전세계 인터넷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르고 독특한 체계를 갖추었으며 국제 매체들은 야후, 아마존, 이베이 이후의 네 번째 인터넷 형식이라고 칭하였다. 아리바바가 채택한 독특한 방식은 바로 B2B 방식이었다. 오늘날의 미국에서도 이러한 성공 사례는 찾기 힘들다.

전자상거래의 영역에서 마윈은 자신의 독특한 시각과 선견지명을 나타냈다. 창업하던 해에 아리바바의 회원은 고작 8~9만 명밖에 안되었다. 그러나 2000년에는 50만에 달했고, 2001년 인터넷계의 혹한기라고 불리는 때에도 100만 명의 회원을 만드는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전세계 최초로 회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선 홈페이지가 되었다. 2년 뒤 2003년에는 회원의 수가 350만에 달했고, 2004년에는 6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하였다.

1999년 아리바바가 개설된 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마윈은 계속해서 타오바오, 즈푸바오, 아리마마, 아리소프트웨어, 커우베이 등의 사이트를 만들었으며 중국 야후를 인수하기도 하였다. 아주 작은 기업으로 시작한 아리바바는 점점 성장하여 이렇게 커지게 되었다. 현재 아리바바 그룹은 이미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이 되었다. 아리바바는 중국인들에게 ‘아리바바 제국’이라 불리며 마윈은 그 제국의 제왕이라 불린다. 마윈은 일전에 한 기업을 최선을 다해 경영하여 일곱 개의 계열사를 운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아리바바는 이미 일곱 개의 계열사를 세웠다. 마윈은 아리바바가 앞으로 더 이상 계열사를 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인터넷 쇼핑몰 리포트>. e비즈북스.진건국




니하오만 알아도 중국으로 가라

저자
김현주, 김정수 지음
출판사
e비즈북스 | 2015-07-0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중국 시장, 인터넷이 정답이다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
가격비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