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5.03.27 17:05

자매브랜드 필로소픽에서 출간한 <비트겐슈타인의 인생 노트>.


이 책의 기획단계에서 저도 약간 관여를 했는데 그 이유는 자기계발에 맞는 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기드물게 출간에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우리 출판사가 비트겐슈타인 책을 7권이나 냈는데 그 역량을 활용해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너 자신을 개선하라. 그것이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서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초등학교 교사 시절, 음악 모임에서 만난 광부가 세상을 개선하고 싶다고 하자 이렇게 충고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훗날 다른 친구들에게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고 하는군요. 요즘 저의 좌우명입니다.

이틀에 한 번, 이 말을 곱씹으면서 자신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 꽂힌 말은 이것입니다.


"한 시대는 다른 시대를 오해한다. 그러나 왜소한 시대는 자기만의 추한 방식으로 다른 모든 시대를 오해한다."

『문화와 가치』 98〔176〕쪽
(MS 174 5v: 1950)


어쨌든 자기계발 성격이 있어서 찬성했는데 초고를 보니 이상한 것입니다.

"친절하시오"

이 말은 아무래도 비트겐슈타인이 할 말은 아닌 것같은데?

실제로 저 충고를 들은 파니아 파스칼은 무척 분개했다고 합니다.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비트겐슈타인이 친절을 운운하다니. 파니아 파스칼은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파니아 파스칼에 심정적 지지를 보내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

'이대로는 곤란하다'

마치 두서없이 적어내린 일기장같은 느낌? 사실 일기장 내용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견해를 말했고 편집진과 저자가 계속 피드백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온 책.



사실은 가볍게 내려고 했는데 언론이 상반기 주목도서라고 띄어준 덕에 표지를 세번 바꿨습니다. 나오니까 표지가 잘나왔다고 칭찬이 자자^^


어쨌든 책이 나오고 읽어보니 초고보다는 훨씬 괜찮았습니다. 초반에 두서없이 일기처럼 되어 있던 부분들도 정리가 되었구요. 그리고 이번에 읽고 내린 결론.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 남자 -> 부럽습니다.

목숨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었던 남자 -> 존경합니다.

그러나 허영심은 버리지 못했던 남자 -> 저는 잘 버릴 수 있는데... 허영심? 먹는건가요?


아마 비트겐슈타인이 천재여서 허영심과 자부심이 잘 구별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보도자료에서는 '자기완성을 위해 분투하고 또 좌절했다'라고 썼는데(이 문장, 제가 삽입했어요^^) 대부분은 허영심에 기인했습니다.

'잎새에 이는 허영심에도 괴로와했다'

라는 표현이 걸맞는데 이 꿈을 꾸고 자책하는 내용이 인상깊습니다.


파울이 미닝에게 내 놀라운 음악적 재능에 매부인 제롬이 얼마나 열광했는지를 말했다. 전날 내가 멘델스존의 곡을 너무도 훌륭히 불렀다는 것이다. …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바로 위의 형이자 라이벌입니다. 어릴때부터 같이 티격태격한 사이죠.


이 형제들은 재산문제에 휘말려 죽을때까지 서로 안보게 됩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재산이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파울은 전쟁때 한손을 잃어버린 피아니스트였는데 동생과 툭하면 언쟁을 벌였습니다. 나중에 둘은 각자의 영역(피아노와 철학)에 대해서 디스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어떻게 평가하나 노심초사합니다. 파울이 자신의 피아노 공연후 루트비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변에 물어봤다고 합니다. 소심하긴^^.


어쨌든 이 꿈을 꾼후 비트겐슈타인의 심정은 이렇습니다.


잠에서 깨어 나의 허영심에 화가 났다. 아니 수치스러웠다. (대략) 지난 두 달간 이런 꿈을 꾼 적이 없다. 즉 꿈속에서 거짓말을 하고 너절하게 처신하고는 더러운 기분으로 깨어난 적이 없었다. 이것이 꿈인 것에 대해, 이런 꿈을 일종의 경고로 보내주신 것에 신께 감사드린다. 내가 완전히 비열해지거나 또한 미쳐버리지 않도록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너무 심각하죠? 비트겐슈타인은 완벽한 인간이 되길 원했습니다. '너 자신을 개선하라'는 아마 자신에게도 되뇌인 말일지도 모릅니다. 어찌보면 불가능한 일인데 이를 위해서 끝없이 고민한 천재의 생각을 읽는게 이 책의 의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실력없이 허영심이 강하면 허풍선이 되지만 실력이 뒷받침이 되면 걸작품이 나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트겐슈타인은 철학보다 글작가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죽음에 임박해서도 글쓰기를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완벽주의 성격은 문장의 높은 완성도로 이어졌는데 덕분에 아포리즘으로 손색없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게 이 책에 찬성한 이유였습니다. 읽고보니 꽤 괜찮은 책입니다. 원래 제목 후보로 '철학을 뺀 비트겐슈타인'을 넣었는데 기각되었습니다. 카피로도 못 써먹었네요. 사실 아주 빠지진 않았고 곳곳에 철학에 접근하는 자세에 대한 말들이 있습니다.


어쨌든 비트겐슈타인의 말로 글을 끝내겠습니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논리철학논고』 5.6




비트겐슈타인의 인생 노트

저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이윤 (엮음) 지음
출판사
필로소픽 | 2015-03-16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그들에게 전해주시오. 나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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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5.03.17 00:02

남산 백범광장은 저에게 친숙한 곳입니다. 초등학교를 근처에서 나왔거든요. 당시에는 야외음악당이라고 불렸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달팽이 집과 거북이가 있었는데 달팽이집은 무서워서 안올라가고 거북이를 타고 놀았습니다.

어쨌든 도서관에 갔다가 시력이 나빠진게 느껴져서 탁트인 곳을 찾다보니 이 곳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남산타워 부근은 올라가기도 힘들고(^^)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한가하게 사색하기가 힘듭니다. 이곳은 비록 건물들이 많이 있지만 공간이 넓고 무엇보다도 한적해서 좋습니다. 서울에서 일요일 낮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공원을 찾기가 쉽지 않죠.



어쨌든 공원을 걷다가 보니 처음 눈에 띈 동상은 백범 김구 선생님. 설명이 필요없는 독립운동가.



그리고 그옆에 동상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손병희 선생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예전에 어렴풋하게 동상이 있었던 기억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까이 가서보니 이시영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의 호가 성재(省齋)였는데 젊은 커플이 왔다가 한자가 약해서 '성'자를 못 읽었습니다.




이시영 선생은 국사 책에 나온 독립운동가입니다. 신흥무관학교(신흥강습소)를 형 이회영과 함께 세웠는데 여기에 자금을 댔습니다...라고 국사책에 나왔습니다. 그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집안이 대단한 집안이었습니다. 이시영 선생의 가문은 조선에서 손꼽히는 갑부 가문이었는데 독립운동에 형제들이 모두 투신하고 전재산을(쉽게 비유해서 나라가 망하자마자 명동땅을 650억에 급매로 처분하고) 독립운동 자금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만주에서 굶고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문.
사실 이 가문이 돈이 많았던 이유는 형제 중 하나가 조선 최대 갑부 이유원의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 재산을 상속받았는데 독립운동자금으로 쓴 거죠. 이유원의 재산 형성과정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으리라 판단됩니다. 어떤 책에서 보니 평판 좋은 대지주였다고 하는데 땅이 너무 많아서 소작인에게 소작료를 적게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부정적으로 보냐하면 이 집안이 이렇게 땅과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쥐고 있어야 합니다. 조선이 망한 이유는 기득권 세력이 변화를 거부했기 때문이죠. 그 책에서는 이유원을 경화거족이라고 지칭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서울 양반가문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서울 양반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서 권력을 잡는거죠. 이시영 선생만 해도 조선 최후의 영의정이자 친일파인 김홍집의 사위였고 이유원도 영의정 출신입니다.

 

어쨌든 돈을 어떻게 모았던 간에 나라가 망하자 이 가문의 형제들은 돈만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6형제중 이시영 선생만이 해방된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조선을 책임진 가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비슷한 케이스로 철학자로 유명한 비트겐슈타인 가문을 예로 들수 있겠네요. 비트겐슈타인 가문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최대 갑부 가문으로 유럽 3대부자였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1차대전으로 몰락하고 마는데 이 집안 역시 전쟁자금에 많은 돈을 기부했고, 가문의 아들 3명 역시 모두 나가서 싸워서 1명은 전사, 1명은 오른팔을 잃는 부상,1명은 포로(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가 됩니다. 패전국 의 운명--.  세 명중 두 명은 참전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전쟁터에 있지 않는 것을 수치로 여겨서 모두 참전합니다. 오른팔을 잃어버린 사람도 다시 전선에 나가겠다고 할 정도니.

이 집안이 1차대전때 전재산을 쏟아붓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후 2차대전 직전 히틀러한테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는 대가로 대부분 강탈당합니다. 히틀러가 전쟁 준비중이라 바쁜 와중에도 친히 유대인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싸인을 했다는군요.


이제보니 이시영 선생가문이나 비트겐슈타인 가문이나 시기가 비슷하군요. 근현대사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격동의 시대였던 것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 가문

저자
알렉산더 워 지음
출판사
필로소픽 | 2014-12-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유럽 역사상 가장 독특한 재벌 가문의 이야기비트겐슈타인 가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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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5.01.06 14:38

19세기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가대표 부호. 유럽 3대 부자.

천재소리를 듣는 5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슬하에 뒀다면 가문의 앞날은 탄탄대로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첫째,둘째,셋째 아들은 자살. 넷째 아들은 한 팔을 잃은 장애인, 막내아들은 동성애자. 큰 딸은 노처녀, 막내딸은 이혼녀. 막내딸의 이혼한 남편도 자살. 가족 구성원 대다수가 암으로 사망. 가족간의 불화로 죽을때까지 보지 않기.

이쯤되면 막장드라마에 어울리는 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최고 철학자라고 평가받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입니다. 가족사만 보면 막장드라마로 손색이 없는데 1,2차 세계 대전이란 거대한 역사와 예술, 문화, 사회상이 겹쳐서 대하드라마급으로 승화됩니다.




8남매인데 1명은 안보이죠? 안보이는 1명만 빼고는 순탄하지 못한 인생을 삽니다.

사실은 다같이 찍었는데 어둡게 나와서 보이지 않아 짤렸습니다. 이제보니 데스노트급.


아버지 카를 비트겐슈타인이 자수성가해서 쌓아올린 가문의 막대한 부는 근대에서 현대로 바뀌는 유럽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1차는 아버지 유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으로, 2차는 1차 세계대전때 애국심으로, 3차는 유대인 딱지를 떼기 위한 나치정권과의 목숨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이번에 출간된 자매브랜드의 신간 <비트겐슈타인 가문>을 읽고서 내린 요약 정리한 내용입니다. e비즈북스 담당자답게 돈을 기준으로 서술합니다--.  막대한 돈이 어떻게 사라지는가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물론 인문 교양 독자라면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아마도 19세기에서 20세기 초를 풍미한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철학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 해당하는 내용을 보겠죠. 내용은 원제에서 잘 드러납니다.


the house of wittgenstein: a family at war


어쨌든 어떤 유럽 대부호 가문의 가족사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의 유럽, 특히 오스트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제가 이 책을 보고 드라마처럼 콘텐츠를 구성해볼까 고민하다가 역량 부족으로 포기했습니다. 혹시 드라마 작가가 있으면 이 책을 통해서 모티브를 얻어보시길. 그래도 기회가 되면 이 콩가루 집안의 관계도는 그려보고 싶군요. 그게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제가 그나마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콘텐츠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e비즈북스 2014.03.21 15:59

자매브랜드 필로소픽의 비트겐슈타인 시리즈(?)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WITTGENSTEIN’S NEPHEW)가 출간되었습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작품으로 1997년에 국내에 소개되었던 책이고 이번에 배수아 작가님의 번역으로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알고보니 <죽기 전에 꼭 읽어야할 책 1001>에 소개된 책이군요.




표지가 강렬하죠? 표지는 에곤쉴레(Egon Schiele)의 자화상입니다. 누군지 몰라서 조사했더니 28살에 요절한 클림트의 제자라고 하는군요. 사실 토마스 베른하르트도 이번에 책을 내면서 처음 접했습니다.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철학 책에 비하면 가볍게 읽겠다고 원고를 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문단이 끊어지지 않잖아? 어디서 쉬어야하는 거지? 알고보니 베른하르트의 특징이라고 하더군요. 덕분에 컴퓨터의 연산 처리능력을 테스트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원고를 검토한 편집자가 문서가 수정이 안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핀잔을 줬습니다. 그러길래 평소 PC를 잘 관리해야지. 에러만 나면 나를 찾고 그래. 그래서 나름 잘 관리한(?) 저의 PC에서 열고 수정을 해보려했는데 역시 마찬가지 증상. 이거 문서파일이 잘못되었네. 누가 만든거지?


배수아 작가님인데요.

다시 보내달라고 해야겠네.


그런데 원고를 곰곰히 살펴보니 이상했습니다. 이거 왜 문단이 안끊어졌지?

이때만해도 책이 끝날때까지 한 문단이란 것을 몰랐습니다. 언젠가는 끊어지겠지...

일단 여기서 문단을 끊고 수정해보지. 그리고 문제해결.

PC의 성능은 114,000자를 통으로 처리하려면 버벅입니다^^


어쨌든  이 책이 그의 작품중에 대중에게 쉽게 읽힌다고 합니다. 다른 책은 쉽게 접근하기 힘들겠습니다. 저는 책의 내용보다는 작가의 사상이 더 흥미가 갑니다. 베른하르트는 자국을 혐오해서 이렇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작가연보를 발췌하겠습니다.


1968년 오스트리아 국가상 수상. 베른하르트는 수상소감 연설에서 오스트리아를 “앞으로도 거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며, 모든 것이 교환 가능한 무대 소품의 국가”라 일컫고, 오스트리아인들을 무감각하고 “빈사 상태에 빠진 인간들”이라고 불러 최초로 국가와 충돌함.


이런 모습은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이란 신문(프랑스의 '르몽드'와 비슷한 스위스의 대표적인 '일간지')을 봐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신문에 실린 모차르트의 오페라 '차이데'에 관한 글을 보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이 신문을 사보려면 80km떨어진 잘츠부르크까지 가야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와 주인공은 자동차를 타고 이 도시에 갔지만 신문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열받은 그들은 오스트라아를 전국일주 하다시피해서(신문찾아 320km) 신문을 구하러 돌아다녔지만 결국 실패. 알고보니 여름에는 이 신문을 갖다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에 열받은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을 스페인에서, 포르투갈에서, 그리고 허름한 호텔 하나밖에 없는 모로코의 작은 마을에서조차 일 년 내내 언제든지 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게 안 되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그토록 유명하다고 하는 도시들에서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을 살 수 없었다는 사실, 심지어 잘츠부르크에서조차 불가능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분노했고, 지루하고 낙후된 나라, 촌스러운 주제에 역겨운 과대망상이 하늘을 찌르는 이 나라가 참으로 지긋지긋했다.


이게 자전적 소설이므로 베른하르트가 이 경험을 한 것같습니다. 그래서 저런 수상소감을 말했나 봅니다. 초반부에 자신의 병원 경험담도 이야기하는데 어느 나라나 의사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공통적인 정서인 것같습니다.

배수아 작가님의 역자후기를 보니 오스트리아에서는 “조국에 침 뱉는 자”, “조국을 더럽히는 자”라는 평을 듣는다고 합니다. 베른하르트의 증오가 어느 정도냐 하면  저작권법이 유효한 기간 동안은 자신의 작품이 오스트리아에서 출판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유언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17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와 배수아 작가님의 번역을 읽고 싶은 분들은 빨리 서점에 가십시오. 만약 서점에 없으면 빨리 갖다놓으라고 서점 직원에게 독촉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osted by e비즈북스 2014.01.29 15:28

우리 출판사의 다른 브랜드인 필로소픽에서 비트겐슈타인 4번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침묵의 시절 :1919 -1929 >입니다.


국내 최초로 번역된 도서입니다. 어떤 독자 분께서 우리 출판사 대표님이 비트겐슈타인 빠(?)인 것 같다는 평을 하셨네요. 26개월 동안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책 4권을 출간했으니 그런 평가가 나올 만도 합니다. 그런데 아직 또 한 권이 출간 대기중이고 또 다른 한 권을 기획 중입니다. 어쨌든 이 책은 국내 최초로 번역된 책입니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과 이 시절을 연계해서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변천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저자 바틀리 3세는 비트겐슈타인의 동성애를 폭로해서 학회에서 제명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의 내용에서 동성애는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습니다.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폭력 교사로 오인받았던 비트겐슈타인의 초등학교 교사시절입니다.


<비트겐슈타인 평전>에서는 수학을 못한다는 이유로 여자애를 패서 재판정에 가서 부인을 한 것을 평생 마음에 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폭력 교사라는 것은 누명이라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재판까지 간 것은 오스트리아 교육개혁 운동에 대한 반동의 물결에 휘말렸기 때문이라나요? 당시 오스트리아 학교는 폭력이 흔했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 교사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체벌에 일관성이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증언이 있다고 합니다. 사적감정이 들어간 체벌이 가장 안 좋잖아요?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이 학부모들과는 상당히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농촌 마을 수준에 맞지 않게 교육에 열정적인 교사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을에서 똑똑한 아이들을 모아놓고 3시간 이상 과외를 시켰는데 어린이들도 노동해야 했던 가난한 농촌에서는 쓸 만한(?) 인재를 빼앗기는 셈이었던 거죠.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손꼽히는 갑부 가문이자 20세기 최고 철학자가 후원해주겠다고 해도 똑똑한 아이들이 학업을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이 어떤 인물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초등학교 제자 가운데 나중에라도 비트겐슈타인의 실체를 알았던 사람은 한 명뿐이라고 합니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마을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을 안 썼는데 출간되고 나서는 마을에서 비트겐슈타인에 관련된 학회가 열린다고 하는군요.


어쨌든 이 시절의 비트겐슈타인이 궁금한 독자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지금 교보문고에 깔려있으니 설날 때 읽을 좋은 기회입니다. 인터넷 서점으로 링크를 안 한 이유는 지금 주문하시면 2월 3일에 받아봅니다. 나중에 연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