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2.10.16 09:19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비아냥과 무시 속에서


IT 슈퍼리치들의공 통점 중 하나는 회사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꾼 그들인데도 수많은 비웃음과 무시를 당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대학원생이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창업을 한 이유는 자신이 개발한 검색 서비스를 누구도 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인터넷 포털 업체인 익사이트, 야후, 인포시크, 알타비스타 관계자들을 찾아가 검색엔진을 판매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인포시크의 창업자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당장 꺼져”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찾아간 모든 회사로부터 거절당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만든 검색엔진으로 구글을 창업했던 것이다.

마이클 델 역시 중간 유통상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다이렉트 마케팅을 펼칠 때 다른 기업들로부터 곧 실패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마이클 델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매번 같은 소리를들어야만했다. 마이클 델은 영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22명의 기자 중 21명이 델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소비자들에게 직접 컴퓨터를 판매하는 델의 수익모델이 미국에서만 통하고 영국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10년 동안 델은 영국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실패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빌 게이츠가 미국 컴퓨터 업계에서 유명인사가 되기 시작한 것은 한 잡지에 <불법 복사는 도둑질>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는 무료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빌 게이츠는 미국 전역에 있는 컴퓨터광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만 했다. 그런 시국에서 소프트웨어로 돈을 벌겠다는 발상은 시대를 앞서가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빌 게이츠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IBM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대형 컴퓨터를 만드는 IBM은 데스크톱 컴퓨터의 가치를 과소평가했고 마이크로소프트 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신의 뜻대로 몰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손정의가 야후에 150억 엔을 투자했을 때는 ‘일본에서 온 마지막 거품남’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손정의는 추가로 300억 엔을 더 투자하게 되는데 나중에 이 금액의 가치는 360배를 뛰어넘게 된다. 닌텐도가 미국 시장에 패미컴을 발표할 때 이를 비웃는 사람도 많았고, 참가한 박람회에서는 주문을 받지도 못했다. 뉴욕에서 패미컴을 판매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또 어떤 업체에서 패미컴을 유통하려고하자 직원들이 회사의 오명이 될 것이라며 이를 뜯어말릴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패미컴이 미국에 발매되자 그해 크리스마스시즌에만 190만 대를 판매했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6100만 대가 넘도록 팔리게 된다.

앤디 그로브는 ‘인텔 인사이드’ 광고 마케팅을 통해서 코카콜라와 나이키에 비견되는 브랜드 파워를 구축하게 된다. 하지만 인텔 인사이드캠페인을시작할 당시만해도 언론에서는 돈을 하수구에 버리는 행위라면서 비난했다. 루 거스너가 처음 비즈니스 컨설팅 서비스를 시행할 때에도 반대하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오늘날 IBM은 글로벌 비즈니스 컨설팅 서비스 분야에서 최우수 기업으로 손꼽힌다.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이 컨설팅과 서비스 비즈니스 분야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을 창업하기 전 제프 베저스는 D.E. 쇼라는 회사에 다녔다.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라는 특명을 받은 그는 인터넷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온라인에서 책을 판매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지만 퇴짜를 맞았다. 아무도 그의 아이디어에 흥미를 갖지 않았고 그는 실망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하기 위해서 부사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던 안정된 직장인 D.E. 쇼를 그만 두고 아마존을 창업하게 된다.

애플 컴퓨터는 태생에서부터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애플 I 컴퓨터를 만든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가 이를 사업화하자고 하자 누가 자신의 제품을 구입하겠느냐며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애플 I은 컴퓨터광들의 모임인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자신의 제품을 HP에도 보고했지만 HP 역시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에 인력과 자금을 지원할 생각이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만약에 HP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의 발명품을 받아들였다면 오늘날의 애플은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공동 창업자 중에 한 명인 론 웨인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주식 10%를 넘기고 회사를 떠났다. 만약 그가 10%의 주식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2010년 말 기준으로 26억 달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투자를 받으려고할 때 역시 고난은 계속된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한 투자자였던 돈 밸런타인을 찾아가자 ‘이단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대중화시켜 컴퓨터를 재발명했다는 소리를 듣는 매킨토시를 처음 개발했을 때 역시, 애플 내부에서는 그렇게 환영받는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IT 역사상 가장 훌륭한 TV 광고로 손꼽히는 <1984> 역시 이사회로부터최악의 광고라며 방영이 취소되도록 압력을 받았다. 하지만 미리 구입한 광고 방영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송을 하게 된다. 매킨토시가 출시된 직후에는손이 세 개 필요한 컴퓨터라면서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매킨토시가 초기의 판매부진을 극복하는 데는 레이저 라이터의 역할이 컸다. 레이저 라이터를 통해서 전자출판이 창조되면서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이 매킨토시를 구입하기 시작했기때문이다. 하지만 레이저 라이터 역시 애플의 임원들과 직원들에게 비난을 받거나 무시를 받은 프로젝트였다. 아이맥을 개발할 때 스티브 잡스는 플로피디스크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제거했고, 맥북에서는 옵티컬 드라이브(CD-ROM 드라이브)를 없앴는데 이 때문에 그는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음악산업을 뿌리부터 바꾸었다는 아이팟iPod을 공개할 때 역시 사람들은 아이팟의 이름을 패러디하여 ‘멍청이가 우리 기기에 가격을 메겼다Idiots Price Our Devices’라든가 ’나는 다른 기기가 더 좋아I Prefer Other Device’라면서 비아냥거렸다. 특히 『와이어드』의 한 기자는 「아이팟을 부수자Smash the iPod」라는 제목의 컬럼을 써 스티브 잡스의 머리를 내려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애플 부활의 일등공신 아이팟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점 중에서 가장 돈을 잘 벌기로 유명한 애플 스토어 역시 처음 시장에 진출할 때는 『비즈니스위크』로부터 2년 안에 큰 고통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휴대폰의 역사를 새로 쓰는 아이폰 역시 『블룸버그』의 메튜린 기자와 존 드보락 같은 유명 컬럼니스트에게 비난을 들었고 다른 휴대폰 제조 업체들로부터 고전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들었다. 특히 스티브 발머는 애플이 아닌 다른 회사가 내놓았다면 아무런 흥미를 끌지 못했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아이패드가 공개될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글의 회장인 에릭 슈미츠는 큰 전화기와 태블릿 PC의 차이를 알려달라면서 비관적으로 반응했고 닌텐도의 CEO 이와타 사토루는 아이팟 터치가 더 커졌을 뿐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빌 게이츠 역시 펜과 키보드가 없어서 힘들 것이라고 했다. 언론이나 인터넷에서도 아이패드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얼마나 혹평이 쏟아졌는지 스티브 잡스는 우울과 충격 속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IT 슈퍼리치의 조건>중에서.김정남.e비즈북스.10월 출간








IT 슈퍼리치의 조건

저자
김정남 지음
출판사
e비즈북스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수년간 IT 칼럼을 써온 저자는 IT 슈퍼리치들의 특별한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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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1.10.10 13:57

[기획의 신 스티브 잡스]를 보면, 스티브 잡스는 철처한 기획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가 손댄 IT, 영화, 음반에 이르기까지 성공을 거두웠다. 그는 '창의적인 기획자'로서 남들과 다르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해적'과 같았다.

스티브 잡스에 관한 평전은 예약판매에서 높은 판매량 호조를 보이고 있을 정도로 스티브의 삶은 대중에게 여전히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시중에는 스티브 잡스의 '혁신', '창조력', '기획력',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하면서 수많은 책도 출판되었으며, 한 편으로 너무 맹신적인 스티브 열풍으로 간주하며 비판의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미경제 전문지인 <포브스>에서  ‘그의 업적을 명확히 평가해야 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나오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잡스는 선지자(visionary)가 아니라 좋은 의미의 기회주의자(opportunist)”라고 할 수 있다. 또 “애플의 대표 제품인 아이맥·아이팟·아이튠스·아이폰·아이패드 모두 애플이 처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 시대가 되자 다른 기회주의자처럼 잡스도 기존의 제품을 조합해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했다”고 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스티브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그가 호인이 아니었다는 여러 일화들을 알 수 있다. 특히 오랜 사업 파트너였던 워즈니악과의 충돌을 보면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고 자기 위주로 모든 일을 진행시켜야 하는 전형적인 악당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적재적소의 인재 활용, 배치, 협상력, 개발능력, 화술등은 스티브 잡스가 종합적인 기획 능력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자신을 마케팅하는 능력도 갖춘 최강의 기획가임을 다시 보여 준다.

포스트 PC를 열어온 스티브 잡스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IT시대의 강자는 누가 될까..
이제 '기획자'의 시대는 가고 또 어떤 것에 집중해서 혁신을 이뤄내는 시대가 될 것인지 한 시대를 열고 닫은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면서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posted by e비즈북스 2011.10.07 10:21
굿바이! 스티브 잡스(Steve Jobs), 우리는 고마웠어요..

2011년 10월5일, IT계의 신화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라는 큰 별이 지고 말았습니다.
출근해서 '스티브 잡스 사망'이라는 기사에 깜짝놀랐고, 잠시 동안이나마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후 끝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사망 소식과 업적, 남겨진 애플의 미래를 점치는 갖가지 전망 심지어 그의 죽음의 원인으로 작용한 췌장 신경 내분비종양의 분석(?)마저 뉴스가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포스트PC 시대를 가져온 혁신자였으며, 훌륭한 기획자였습니다. 그는 많은 일화를 남겼고, 그의 많은 명언들과 감동적인 프리젠테이션은 그를 추앙하게 만드는 세력(?)까지 생겨나게 만들었습니다.
고인을 깍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스티브 잡스도 인격적으로 결점이 없는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그럼에도 '스티브 잡스도 월1200만짜리 기술자'에 불과한 한국 IT시장에서 그의 존재는 새로운 바램이었고 대안이었습니다.

이제 그 별이 지고, 남겨진 애플에 어떤 혁신이 또 어떤 도전으로 새롭게 세계 IT 판도를 바꿔나갈 지 금궁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새로운 서막이 시작된 IT 시장에 귀추를 주목해 봅니다.  

인생에는 헛된 것이 없으며 실패마저도 삶의 양식이 되어 현재의 스티브 잡스를 존재하게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은 우리 모두에게 삶을 바라보는 데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또한 창의적인 기획력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경험이야말로 소중한 자산이라는 교훈을 전해준다.
(p.241, [기획의 신 스티브 잡스])


 
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31 09:44
스티브 잡스의 재림

1985년 9월 16일,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지 9년 만에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는 애플2 컴퓨터의 성공으로 억만장자가 된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의욕적으로 만든 매킨토시의 판매가 당초 목표였던 200만 대에 턱없이 부족한 25만 대에 그치자 스티브 잡스의 입지가 급속히 축소되었다. 그런 와중에 당시 CEO였던 존 스컬리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펩시콜라 사장으로 일하던 존 스컬리를 직접 만나서 평생 설탕물이나 팔 거냐면서 애플로 데려온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처음에만 해도 둘은 찰떡 궁합이었다. 존 스컬리 역시 스티브 잡스의 스승을 자처하면서 나중에 CEO 자리를 물려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 운영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서 치열한 정치 싸움이 벌어졌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개발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운영으로 사내에 많은 적들을 만들었다. 그런 데다 매킨토시의 실패로 스티브 잡스는 더 이상 회사에서 버티기 힘들었다. 결국 애플의 회장직을 내놓은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NeXT)라는 컴퓨터 회사를 창업했다. 그러나 넥스트마저도 실적이 별로 좋지 못했고,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기 시작했다.   

한편 애플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다. 비록 스티브 잡스는 떠났지만 그의 선견지명으로 인해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획기적인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매킨토시에 레이저 프린터를 결합한 사무용 솔루션을 기획했다. 당시만 해도 모니터상의 글과 그래픽을 종이로 인쇄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Adobe)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을 사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250만 달러를 어도비에 투자하는 한편 관련 기술을 라이선스받기로 했다. 또한 일본을 직접 방문해서 매킨토시에 맞는 최적의 프린터를 찾아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티브 잡스가 있을 때는 이러한 노력이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나간 이후 얼마지 지나지 않아 매킨토시의 기능을 극대화한 페이지메이커(PageMaker)나 포토샵(Photoshop) 같은 킬러 소프트웨어가 등장했다. 페이지메이커와 포토샵의 등장 이후 매킨토시가 출판업계와 그래픽 디자이너 같은 전문가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서 애플 역시 기사회생하는 듯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애플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매킨토시가 큰 인기를 끌긴 했지만 스티브 잡스 퇴출 이후 개발력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새로운 히트작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이었다.   

flickr - Photo Giddy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반면 매킨토시는 정체 상태에 빠져 버렸다.애플은 윈도우95의 등장으로 매킨토시만의 장점도 빼앗기고,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MS 오피스마저 출시되지 않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스티브 잡스를 몰아냈던 존 스컬리가 실적 부진으로 애플에서 쫓겨나고, 그의 후임이었던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 또한 윈도우95라는 유탄을 맞고서는 회사를 그만둔 상황이었다.   

그 후 애플은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의 CEO인 길 아멜리오(Gil Amelio)를 영입했다. 그는 카메라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인 CCD를 발명한 엔지니어이자 무너져가는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부활시켜 능력을 인정받은 경영자였다.

평소 애플의 팬이었던 길 아멜리오는 의욕적이었다. 그는 회사의 여러 문제점들을 금방 파악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몇 년째 아무런 성과가 없는 운영체제 개발이었다. 매킨토시가 빛나는 것은 뛰어난 운영체제 덕분이었는데 운영체제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니 회사의 명성과 경쟁력도 하루하루 떨어져갔다. 그렇지만 애플 내부에서는 운영체제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었다.   

결국 길 아멜리오는 고육지책으로 외부에서 운영체제를 구입해오기로 했다. 회사의 자존심을 버리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그만큼 사내의 개발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마침 빌 게이츠가 애플의 이런 사정을 알고는 직접 길 아멜리오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사의 운영체제인 윈도우NT를 매킨토시에 맞게 수정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길 아멜리오는 빌 게이츠가 매킨토시의 인터페이스에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 게이츠가 윈도우NT를 제공해주는 대신 매킨토시의 핵심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길 아멜리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안을 거절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솔라리스(Solaris)도 알아보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이런 와중에 애플 출신의 장루이 가세(Jean-Louis Gassee)가 만든 BeOS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다.   

장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를 회사에서 쫓아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인물이다. 그의 제보 덕분에 중국으로 출장가려던 존 스컬리가 회사로 돌아와서 스티브 잡스의 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다. 장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그만둔 후에 매킨토시 사업부를 맡았다. 하지만 그는 영업맨 출신으로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몇 가지 실책을 거듭하다가 결국 존 스컬리와 함께 회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회사를 그만둔 장루이 가세는 새로운 형태의 운영체제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컴퓨터를 개발하는 비Be라는 회사를 차렸는데, 비 사의 직원 대부분이 애플에서 일했던 개발자들이었던 만큼 운영체제도 자연스럽게 매킨토시와 궁합이 맞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길 아멜리오는 장루이 가세가 만들고 있던 BeOS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때만 해도 BeOS는 애플의 매킨토시에 사용될 가장 유력한 운영체제였다.   

하지만 애플이 새로운 운영체제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한 넥스트 직원들의 활약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넥스트 직원들은 스티브 잡스 몰래 당시 넥스트가 만들고 있던 운영체제를 애플에 보여주었는데, 애플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나중에야 이 소식을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자신에게 중대한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면에 나서서 직접 애플과 협상을 시도했다. 협상력 하면 스티브 잡스 역시 뛰어난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애플과 장루이 가세 사이에 끼어든 스티브 잡스는 화려한 언변을 뽐내며 CEO인 길 아멜리오의 마음을 빼앗았다. 결국 길 아멜리오는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를 4억 달러가 넘는 거액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스티브 잡스는 11년 만에 애플의 고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당시 애플의 사정은 그야말로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길 아멜리오가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매킨토시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10%에서 3%로 추락했고, 회사는 실리콘 밸리 역사상 최악의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이었다. 주식 역시 기업 10년 역사상 최저가로 떨어졌고, 결국 길 아멜리오는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애플 역사상 최악의 위기에서 이사회는 자신들의 구세주로 스티브 잡스를 선택했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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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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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17 09:54
아이팟에서 아이폰으로

이와 같이 애플은 아이팟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신화가 된 아이폰 개발에 착수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애플이 휴대폰 시장 진출을 심각하게 고려한 것은 MP3 기능을 가진 휴대폰이 증가하면서부터다. 아이팟은 애플의 핵심 사업인데 만약 MP3 기능이 추가된 휴대폰이 보급되면 회사의 재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애플은 휴대폰 산업에 직접 진출하지 않고 모토로라와 합작하여 로커(ROKR)라는 MP3폰을 만들었다. 로커는 아이튠즈를 이용해 음악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아이튠즈 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로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디자인도 형편없었고, 소비자들이 사용하기에 불편했을 뿐만 아니라 노래도 100곡 정도밖에 저장할 수 없었다. 또한 휴대폰으로 직접 음악을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PC로 다운로드해서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직접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이미 애플은 뉴턴이라는 PDA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정리한 상품이 뉴턴일 정도로 처절한 실패를 안겨준 제품이었다. 그럼에도 애플이 또다시 손안의 컴퓨터 시장에 진출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데스크톱 운영체제인 맥 OS X를 조금만 수정하면 작은 휴대용 기기에서도 충분히 구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애플은 2000년대 초반부터 태블릿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다. 손으로 각종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을 연구하던 중 이 기술을 휴대폰처럼 좀 더 작은 화면에 적용하면 훨씬 멋진 제품이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멀티터치 기반의 인터페이스를 도입하면 기존 스마트폰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였던 불편한 조작 체계를 단번에 뒤엎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 발매 전 가졌던 인터뷰에서 아이폰이 1984년 매킨토시 등장 이후 가장 혁명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flickr - TechShowNetwork


애플은 새로운 사업 분야에 진출할 때 스스로 확실한 통제권을 가지려고 한다. 애플은 누군가에게 지배받을 생각이 없는 자존심 강한 회사이다. 따라서 이동통신사의 통제를 받으면서 아이폰을 팔 생각이 없었다.   

휴대폰 산업은 이동통신사가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곳이었다. 이동통신사와 휴대폰 업체의 관계는 봉건시대의 영주와 농노에 비견될 만했다. 이동통신사는 휴대폰의 기능과 사양을 결정할 뿐 아니라 가격과 판매 방식에도 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동통신사가 어떤 휴대폰을 밀어주느냐에 따라서 판매량이 결정되는 만큼 휴대폰 제조사들은 이동통신사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통신사가 원하는 것은 고객들을 일정 기간 약정으로 묶어둘 수 있는 제품일 뿐 특출나게 뛰어난 품질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휴대폰 사업은 최첨단의 이미지와 다르게 다른 IT 분야에 비해서 제품 발전 속도가 더딘 분야였다.

스티브 잡스는 휴대폰을 개발하는 데 아무런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았다. 콘텐츠도 이동통신사를 거지치 않고 직접 판매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그의 태도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던 만큼 버라이즌(Verizon)에서는 애플과 함께 일하는 것을 단번에 거절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직접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할 생각도 하였지만, 다행히 미국의 또 다른 이동통신사인 AT&T에서 애플의 휴대폰에 관심을 보였다. AT&T는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애플의 아이폰 같은 매력적인 단말기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AT&T는 그동안 회사가 누리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애플과 제휴하기로 결정했다.   

애플과 AT&T의 제휴가 결정되었지만 두 회사간의 문화 차이로 인해서 공동 작업은 쉽지 않았다. AT&T가 격식을 차리는 회사였던 데 비해 애플은 청바지를 입는 자유분방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AT&T는 애플 직원들에게 자사의 임원이 참가하는 회의에는 꼭 양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애플 직원들은 양복 자체가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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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16 10:24
아이팟 탄생 비화

아이팟의 탄생에 얽힌 우여곡절은 사연이 길다. 먼저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기업가적 면모에 큰 변화가 있었다. 전과 달리 소프트웨어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나 구글의 창업자들에 비해서 하드웨어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넥스트와 픽사를 거치면서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뒤집혔다. 넥스트와 픽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개발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사업이 잘 안 되자 넥스트는 기존의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소프트웨어 전문업체로 거듭났고, 픽사 역시 하드웨어 사업부를 매각하고 3D 에니메이션 회사로 전환했다. 스티브 잡스는 1994년 인터뷰에서 컴퓨터는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두 배 뛰어난 제품은 만들기도 힘들고, 운이 좋아서 1.3배나 1.5배 정도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 있지만 그래 봐야 6개월이면 따라잡히고 만다고 한탄하였다. 그러면서 소프트웨어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애플이 몰락한 것은 운영체제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위기에 빠진 애플을 구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운영체제를 들고서 다시 애플에 돌아왔다.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애플의 요직에 앉혔다. 그렇게 넥스트에서 데려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천여 명의 인력이 모여서 개발한 것이 바로 맥 OS X이다. 당시 맥 OS X은 애플의 운명을 결정 짓는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운영체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응용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했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처음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처럼 외부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찾아다니면서 맥 OS X용으로 소프트웨어를 발매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와는 굴욕적인 계약을 감수하면서까지 MS 오피스의 공급을 약속받았지만, 다른 회사에서는 호응이 없었다. 매킨토시의 시장점유율이 한 자릿수에 그쳤기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매킨토시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자신의 도움으로 성공을 거둔 어도비의 외면이었다. 어도비가 자신의 요청을 거절하자 스티브 잡스는 직접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애플에서 사진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인 아이포토iPhoto나 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아이무비iMovie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게 된 배경에는 이런 사건들이 있었다.   

flickr - Oliver Lavery


이때 스티브 잡스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다. 세상이 CD에서 DVD 시대로 넘어간 것으로 생각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에 DVD-ROM을 기본 장착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MP3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CD에 있는 음악을 컴퓨터로 변환해서 MP3 파일을 만들거나 그 반대로 MP3 파일을 CD로 저장해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컴퓨터 회사들은 CD에서 음악을 추출해서 MP3로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였고, CD 라이터를 장착하여 MP3 파일을 CD로 복사하기 쉽게 만들었다. 하지만 애플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MP3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도 않았고 매킨토시에는 DVD-ROM을 장착했기 때문에 CD에 음악을 저장할 수도 없었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스티브 잡스는 매우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졌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에 CD 라이터를 추가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MP3 파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개발자들에게 크리스마스까지 음악 소프트웨어를 완성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 기간 안에 애플 내부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애플은 매킨토시에서 인기가 많았던 사운드잼 MPSoundJam MP 의 제작사인 캐시디 & 그린Cassady & Greene과 공동으로 음악 소프트웨어 아이튠즈iTunes를 개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4개월간의 개발 끝에 2001년 1월 맥월드 엑스포에서 아이튠즈를 발표한다. 처음 등장한 아이튠즈는 사운드잼 MP보다도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무료였기 때문에 꽤 인기가 좋았다.   

아이튠즈는 단순한 음악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아이튠즈가 보여주는 비전은 현재의 애플을 지탱하는 중요한 전략을 담고 있다. 아이팟 탄생의 핵심이 되는 디지털 허브가 바로 그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여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소비자들이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PDA 등 각종 전자기기를 컴퓨터에 연결하여 데이터를 관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컴퓨터가 전자기기들의 허브의 역할을 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착안하여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허브 전략을 수립했다.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등을 매킨토시에 쉽게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각종 소프트웨어를 지원했다. 그러면서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제품 중에 유독 휴대용 MP3 플레이어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MP3 플레이어에서 가능성을 본 스티브 잡스는 사내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지시했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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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0.01.28 11:28

오늘 새벽 모 일간지 기자님께 '아이패드ipad가 출시되었습니다!' 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때 저는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슬렁 출근해서 문득 문자를 보고 아이패드에 대해서 알아보니, 그때 바로 자료를 찾아 포스팅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막 밀려오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게 MP3 값이라니요...


01. 완전체 아이패드
제가 본 아이패드는 한 마디로 '괴물'이었습니다. 넷북, 게임기, MP3, PMP, 동영상, E북 등 현존하는 거의 전자기기들이 합쳐진 '완전체 키메라'였습니다. 증강현실, 증강현실 여러 군데에서 노래를 불렀던 아이폰조차 그러려니 했던 저 같은 사람도 아이패드의 스펙을 보면서는 구미가 당기더라고요.

구체적으로는 여느 넷북의 기능 말고도

인터넷으로는 멀티터치 기능을 제공합니다. 마치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쓱쓱 손가락을 튕겨가며 서핑을 하고 화면을 분할해서 각각의 내용을 따로 확인할 수도 있고요.

위성사진이나 로드뷰 같은 것도 큰 화면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이걸 응용하면 인터넷 쇼핑몰이나 광고 등 얼마든지 가지치기가 가능해지겠더라고요. 마케터들께서는 이 기능에 주목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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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역작이라더니, 과연 IT계의 황소개구리답네요.


02. 아이패드와 출판시장
그리고 아이패드의 많은 기능 중에서 편집자인 제가 가장 주목한 기능은  e북 리더입니다. 아이패드에서는 아이북 앱을 통해 책을 쉽게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책 역시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릴 수 있고요. 화면도 10인치 노트북만한 데다가 컬러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다양한 기능을 한 몸에 가진 디바이스의 가격이 아이팟 정도라는 것입니다. 메모리에 따라 499달러에서 829달러까지라니까 대략 50여 만원에서 90여 만 원 사이로 가격대가 형성되겠네요.

크든 작든 많은 산업이 아이패드의 영향을 받겠지만, 아이패드의 칼끝이 맨 먼저 향하게 되는 곳은 어딜지, 언론/출판계가 과연 아이패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동안 (당분간은) e북의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습니만,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출판시장의 외연이 확장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구조로 개편될 것인지...

누군가는 이것을 기회로 삼아 새로운 출판/언론 시장을 개척하겠지요. 저는 (적어도 한국내에서는) 외국어/어린이 교육 관련 출판 업종 중에서 하나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실제로 뉴스를 찾아 보니 아이패드의 등장으로 웅진씽크빅과 예림당, 청담러닝 등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하네요. 저는 길벗과 뜨인돌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03. 아이패드의 한계와 가능성
물론 아이패드에도 단점은 존재합니다.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면서도 가격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어딘가를 포기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예를 들어 아이패드에서는 플래시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하네요.

또 유료구독을 하지 않아도 넷북으로 언론사 포털 뉴스를 볼 수 있고 불법 P2P 텍스트 파일이 아니더라도 여러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무료도서들을 합법적으로 내려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 일부에서 기대하는 '아이패드가 언론/출판계의 구세주가 되기'에는 풀어야 할 숙제들이 아직 매우 많습니다. e-Ink도 안 된다고 하는데, 스토어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면 빛좋은 개살구가 될 것이고요.

또 지금까지의 '일부' 애플 기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예쁜 액세서리처럼 소비될 가능성도 있겠고요. 그렇게 된다면 앱스토어 등에서 판매되는 게임의 방향이나 도서들의 성향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전은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물이 99도까지 잠잠하다가 100도에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이고, 그렇게 우리들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혁신에 삶을 맞춰가는 것 같습니다. 




많이 다급해져서인지 글이 호들갑스럽네요.
어쨌든 저 같은 도서관의 생쥐는 충격을 좀 받았습니다.

아이패드는 혹하는 디자인만큼이나 한계도 예를 들어 최홍만용 아이폰이라는분명합니다만, 그 이상의 가능성이 보이는 제품입니다.  지금 당장의 아이패드보다는 앞으로 나올 차세대에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기대와 우려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