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1.02.08 09:26
아리바바 그룹의 일곱 개 계열사

중국 야후(cn.yahoo.com), 전 중국에서 가장 큰 검색엔진 중 하나


2005년 8월 11일 야후는 아리바바 인터넷기술유한회사와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고 10억 달러를 아리바바에 투자하게 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로써 야후는 아리바바의 30%의 지분을 갖게 되었고, 또한 중국 야후의 검색엔진과 포털, 메신저 등의 모든 자산을 아리바바에 인도한다고 밝혔다. 그 결과 아리바바 회사는 야후의 강력한 검색 기술과 함께 풍부한 자료와 전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자원들을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이 전략적 동맹 관계가 성립됨에 따라 아리바바 회사는 야후의 전세계 1위 검색 능력의 도움을 받아 더욱 뛰어난 서비스를 연구·개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계는 아리바바의 세력이 더욱 커지게 했다.

중국 야후의 메인페이지

커우베이口碑(www.koubei.com), 중국 최대의 생활 정보 사이트

한국어로 ‘입소문’이라는 뜻의 커우베이는 중국 최대의 생활 검색엔진으로 아파트 임대료, 음식점 정보, 취업, 쇼핑 등의 지역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회도 제안한다. 2004년 6월 항저우에서 창립된 이래 커우베이는 계속하여 지역 주민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데 주력했으며, 2006년 10월 아리바바가 정식으로 전략적인 투자를 하여 커우베이를 인수했다.

커우베이의 메인페이지

아리마마阿里妈妈(www.alimama.com), 인터넷 광고 거래 플랫폼

2007년 성립된 광고연맹사이트로, 인터넷 광고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이트 및 블로그와 광고 발주업체를 연결시켜주는 웹사이트다. 아리마마는 ‘광고는 상품이다’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광고를 상품이 시장에 출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소비자와 판매자들이 모두 보다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아리마마는 광고는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광고주와 판매자가 상호 간편하게 찾도록 함으로써 알려주었다. 그 후 아리마마는 ‘싼바오’라는 서비스를 진행하였는데, 이것은 장기 이용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일정한 소득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리마마는 오늘날 40만 개의 홈페이지와 18만 개의 블로그와 제휴를 맺고 있으며 매일 8000만 명의 네티즌과 접하고 있다.

아리마마의 메인페이지

아리소프트웨어阿里软件(www.alisoft.com),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역시 2007년에 세워졌으며, 중국의 4000만 개가 넘는 중소기업들에게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인터넷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아리소프트웨어는 전세계적인 제품 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기업들이 인터넷 서비스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고자 할 때나 인터넷상의 보안 기능이 필요한 경우에 도움을 준다. 아리소프트웨어는 지난 5년간 30여 개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제치며 급성장하고 있다.

아리소프트웨어의 메인페이지


이것이 바로 일곱 개의 계열사로 이루어진 아리바바 제국이다. 이 제국의 일곱 개 회사는 기본적으로 인터넷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기에 중국 인터넷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즈푸바오는 중국 최대의 C2C를 무대로 중국 온라인 결제 시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성장했으며, 매일 교역 총액이 4억 위안을 넘는다. 즈푸바오는 현재 합작하고 있는 부분이 매우 광범위하다. 컴퓨터 온라인 판매 직영점인 다이얼도 즈푸바오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은 즈푸바오가 온라인 결제 서비스에서 점유하고 있는 범위가 더욱더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리소프트웨어는 역시 중소기업의 각종 기술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아주 쉽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커우베이가 제공하는 각 지역별 정보 사이트는 앞으로도 더욱 많은 정보를 확보해 나갈 것이며 국민들의 생활에 편리와 다채로움을 더해줄 것이다. 마윈은 이런 일곱 개 계열사들을 아리바바 그룹이라는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로 만들었다. 이러한 다양한 인터넷 기업들의 결합이 창조해 낼 수 있는 가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중국인터넷쇼핑몰리포트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e-비즈니스일반
지은이 진건국 (e비즈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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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1.02.08 09:19
아리바바 그룹의 일곱 개 계열사

아리바바阿里巴巴(www.alibaba.com), 세계 최대의 B2B 사이트

아리바바 그룹의 주력 회사인 아리바바는 중국과 전세계 소기업 및 중소기업들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적인 B2B 전자상거래 선도회사다. 아리바바는 세계 수출입업체들을 위한 영어로 된 www.alibaba.com과, 중국 국내 거래를 위한 중국어 사이트 www.alibaba.com.cn, 합작투자를 통해 일본 안팎으로의 무역을 용이하게 위하여 일본어로 운영되는 www.alibaba.co.jp의 사이트들을 통해 전세계 수백만의 바이어와 기업을 매일 연결시켜 준다.

이러한 운용방식은 아리바바가 많은 회원을 확보할 수 있게 하였다. 왜냐하면 매우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바바의 첫 페이지를 열어보면 모두들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중소기업들의 합작회사를 찾아주고, 일할 사람들을 찾아주며, 도매가격에 물건을 사들일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기업을 광고하고 상품에 대한 정보를 더욱 확실히 알리는 데도 도움을 준다. 아리바바는 중소기업들이 고려해야 하는 모든 방면을 주도면밀하게 도와주며, 특히 중소기업의 영업, 홍보 방면에 전문가를 초빙하여 실무 교육을 받게 하였다. 또 중소기업에게 무역거래의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신용정보 사이트인 ‘청신퉁诚信通’을 만들어 기업들이 더 나은 회사와 교류하고 안정적으로 판로를 확장시킬 수 있게 하였다. 

아리바바닷컴의 메인페이지

2007년 아리바바는 대출 서비스에 주력하여,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아무 것도 저당 잡히지 않고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중소기업들이 더욱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중소기업들은 가지고 있는 자원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에 아리바바는 그들의 이러한 필요를 인식하고 공략하였다.
 
타오바오淘寶(www.taobao.com), 아시아에서 제일 큰 C2C 사이트

타오바오는 처음에 개설되었던 그 타오바오가 아니다. 2003년 설립 당시 타오바오는 B2B 사이트로 출발했지만 이후 C2C의 타오바오와 B2C의 타오바오를 합친 것으로 발전했다. 창립 이후 C2C 시장의 잠재력을 간파, C2C를 위주로 운영한 것이 지금의 타오바오다. 타오바오는 각 개인 상인들에게 무료로 부속 쇼핑몰들을 하나씩 제공하여 자유롭게 상품 거래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타오바오의 메인페이지

2008년 1분기까지의 실적을 보면, 타오바오는 회원 수가 이미 62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중국의 인터넷 쇼핑몰 판매자의 대다수를 확보했다. 또한 2008년의 실적을 보면, 타오바오의 총 거래액은 999억 6000만 위안에 달했다. 지난 2007년 한 해의 총 거래액은 433억 위안이었는데 말이다. 2008년 타오바오는 B2C업무인 타오바오왕푸淘寶网鋪를 신설했다. 타오바오왕푸는 판매자에게 좀 더 개선된 서비스 기능을 제공하고자 설치된 것으로 더욱 전문적이고 독자적인 사이트를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더욱 다양화된 기능을 통해 판매자가 자신의 사이트를 대중에게 보다 더 부각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타오바오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으며 하루하루의 거래액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타오바오는 현재 중국의 가장 큰 전자상거래 사이트로 중국 인터넷 쇼핑몰 시장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뒤에서 따로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즈푸바오支付宝(www.alipay.com), 중국 점유율 1위 에스크로 서비스

즈푸바오는 2004년 창립 이후 시종일관 ‘신뢰’를 서비스의 핵심으로 삼았다. 즈푸바오는 고객들의 온라인 결제의 안전을 확실하게 하였고, 고객들이 즈푸바오를 통해 인터넷에서 상호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게 했다. 이는 건전하고 깨끗한 인터넷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아주 의미 있는 발전이었다. 즈푸바오는 전자상거래에 ‘편리, 안전, 신속’의 세 가지를 제공하는 데 힘써 온라인 지불 방식의 새로운 해결 방안으로 떠올랐다.

개설 초기부터 타오바오는 매매하는 쌍방에게 안전한 지불 방식으로 즈푸바오를 제공했고, 즈푸바오는 이러한 신임에 힘입어 신속하게 모두에게 환영을 받는 온라인 안전 결제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회원은 전체 C2C, B2C 그리고 B2B 영역에 걸쳐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2008년 5월 6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즈푸바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이미 8000만 명을 넘어 섰고, 즈푸바오의 일일 거래 총액은 3억 5000만 위안을 초과하였으며, 하루에 체결되는 계약 건수도 150만 건을 넘었다.

즈푸바오는 또 여러 은행들과 합작하여 고객들이 원하는 신상품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었으며 금융업체들이 온라인 결제 영역에서 가장 신임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즈푸바오는 오늘날 지불가능 범위를 C2C, B2C, 온라인 게임, 디지털 통신, 상업 서비스, 비행기 표 등의 영역까지 확대하고 있다. 즈푸바오는 오늘날 아주 간단하고도 편리하며 신뢰받는 중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결제 방식이 되었다.

즈푸바오의 메인페이지



니하오만 알아도 중국으로 가라

저자
김현주, 김정수 지음
출판사
e비즈북스 | 2015-07-0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중국 시장, 인터넷이 정답이다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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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1.02.07 10:45
중국 인터넷 쇼핑몰 시장의 간판스타들

아리바바 CEO 마윈(馬云)

마윈은 타오바오와 아리바바의 창시자이며 중국 전자상거래의 아버지라고 알려져 있다.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물이고, 아리바바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보물창고다.”
“하늘 아래 그 어느 것도 불가능한 일은 없다.”
“하늘 아래 어렵고 복잡한 거래를 없애자.”

날카롭고 뾰족한 얼굴, 당당한 기풍을 풍기며 누구에게도 속박당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일을 하는 사람. 양 옆구리에 복수의 칼을 차지 않는 인정이 두터운 사람. ‘서호논검’이라고 하는 인터넷 포럼을 주최하여 중국 인터넷 기업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모이게 만든 사람. 그가 바로 인터넷 쇼핑몰 영역을 종횡무진하는 ‘마윈’이다.

어렸을 때 마윈은 말썽꾸러기 소년이었다. 마윈은 어릴 때부터 친구를 위해, 의리를 지키기 위해 종종 싸움을 벌여 열세 바늘이나 꿰맨 적도 있었으며 수차례 강제 전학을 당했다. 부모님에서부터 선생님, 이웃들 모두가 이 아이의 장래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마윈은 일류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으며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은 두 번, 대학 입학시험은 세 번을 치렀는데, 그 중 첫 번째로 본 대학 입학시험에서 수학은 1점을 받았다. 그가 세 번째 시험을 보러 가기 전 그의 선생님은 “네가 만약 시험에 합격한다면 내가 성을 바꾸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마윈은 창업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에게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나 자신도 사업에 성공하였습니다. 제가 성공했기에, 나는 청년 창업자들의 80%는 꼭 성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리바바 CEO 마윈 - 컴퓨터를 잘 모르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984년 마윈은 천고의 고생 끝에 항저우 사범대학교 외국어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의 성적은 종합대학에 지원하기엔 5점이 부족했지만, 다행히 그가 지원하려는 대학에 결원이 생겨 운 좋게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를 가득 안고 입학한 그는 학생회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마윈은 항저우 전자공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러다 1991년 드디어 사업계에 첫 발을 내밀었다. 친구와 함께 ‘하이바오’라는 작은 번역사를 설립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첫 달 수입은 700위안으로 월세 2000위안을 내기엔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것을 본 주위 사람들은 더 이상의 운영을 말렸지만 그에게는 계속 해 나간다면 분명 길이 열릴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혼자서 커다란 대마자루를 메고 이니아오, 광저우 등의 지역으로 가서 물건을 사들여 자신의 번역회사를 선물, 꽃 등을 파는 전형적인 소형 가게로 전환했다. 선생님에서 사업가로 방향을 전환했던 그는 자신이 얻은 첫 번째 교훈을 이렇게 전한다. “내가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신념은, 진정 돈을 크게 벌고 싶은 사람이라면 돈을 가볍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머릿속 가득 오직 돈만 생각한다면, 절대로 돈을 벌 수 없습니다.”

1994년 말에 우연히 미국에 가게 되었을 때, 마윈은 처음으로 ‘인터넷’을 접하게 되었다. 컴퓨터에 관해서는 일자무식이었던 마윈은 친구들의 도움과 소개로 조금씩 인터넷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당시 인터넷에는 중국에 관한 자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마윈은 중국 자료를 다루는 영어 번역 사이트를 개설해 보았다. 신기하게도 3시간 후, 네 통의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주위의 반응에 비교적 민감했던 마윈은 인터넷이 앞으로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예측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중국 국내 기업들의 홍보 자료를 인터넷에 올려 전세계로 퍼뜨리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그는 항저우의 능력 있는 청년 교사로 그의 학교 교장은 외사처(대외홍보, 대외접대 등 모든 대외적인 업무를 학교의 대표로 수행하는 부서) 대외협력실 실장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꿈이 있었기에 학교 내의 안정적인 지위와 그 이상의 혜택을 모두 내려놓고 의연히 자리를 떠났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인터넷은 매우 생소하고 낯선 존재였다.

사실 이 때는 전세계적으로도 인터넷이 처음으로 보급되던 시기로, 양쯔위엔(제리 양)이 야후를 창립한 지 1년도 채 안 되었을 때였고, 또한 북경의 중국과학원 교수 첸화린이 최초로 인터넷을 사용해 미국으로 이메일을 보낸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을 때였다. 이러한 실정 속에, 인터넷 개통이 언제 가능할 지도 모르는 항저우에서 마윈은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인터넷으로 회사를 창업할 계획을 그려놓았다.

1995년 4월, 마윈과 그의 부인은 또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2만 위안을 모아 전문적으로 기업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주는 ‘중궈황예中國黃頁’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3개월 후 항저우 근처에 있는 상하이에서 정식으로 인터넷을 개통하게 되자 마윈의 업무량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각 기업들이 뒤늦게 자신들의 사이트를 개설하느라 급급하게 되자 마윈은 그만의 선견지명으로 더욱더 큰 이윤을 남기게 되었다. 중영 대조(중문으로 되어있는 내용을 영어로 번역) 2000자, 컬러 사진 한 장이 담긴 사이트 하나를 개설하는 데에 2만 위안이 시작 가격이었으니 말이다. 3년이 채 되지 않아 마윈은 5000만 위안의 이윤을 남기게 되었으며 중국 국내에서 점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97년 대외경제무역부의 요청에 따라, 마윈은 자신의 창업 동반자들을 이끌고 지휘하여 대외경제무역부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인터넷 중국상품교역시장, 인터넷 중국기술 수출교역회, 중국상인모임, 인터넷 광교회, 등 일련의 국가대표급 홈페이지들을 만들었다. 이러한 경험은 마윈에게는 아주 진귀한 것이었다.

1999년 초, 미래를 보다 멀리 바라본 마윈은 항저우로 다시 돌아와서는 2차 창업을 진행했다. 그는 전자상거래 영역에 개입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세계에서 만들어진 각각의 전자상거래 홈페이지는 기본적으로 전세계 상위 15%에 속하는 대기업의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그러나 마윈은 중소기업이 발달한 도시인 저지앙에서 자라나 가장 낮은 계층의 시장에서부터 맞붙어 싸우며 올라왔기에 중소기업의 어려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의연히 결정을 내렸다.
“고래를 포기하고 새우를 잡겠다. 즉 상위 15%의 대기업을 포기하고 오직 85%의 중소기업의 사업을 돕겠다.”

또한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만약 기업을 사람처럼 부자 기업과 가난한 기업으로 나눈다면 인터넷은 가난한 기업들의 세계이다. 대기업은 자신들만의 전문적인 홍보업체를 통해 거액의 광고비를 들이지만, 작은 기업들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인터넷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가난한 기업들의 혁명을 주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마윈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이렇게 무대를 제공해주어 전세계 중소기업의 수출입 정보를 더욱 많이 얻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소기업은 백사장의 한 알의 모래로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모래알이 하나하나가 모여 단단한 돌이 되는 것처럼, 인터넷을 통해 하나로 뭉친 돌은 그 힘이 매우 강력하여 큰 돌과 견줄 수 있다. 인터넷 경제의 특색이 바로 작은 것으로 큰 것과 싸우고 빠른 것으로 느린 것과 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1999년 9월 마윈의 아리바바 홈페이지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아리바바를 만든 취지는 중소기업을 미래에 다가올 부의 문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인터넷이 막 뜨겁게 퍼지고 있던 시기였지만 투자자들이나 일반 대중들이나 모두 관심을 포털사이트에 쏟고 있을 때였다. 마윈은 이 시기에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개설해 국내의 대세를 거스른 행동을 취했다. 아리바바는 전세계 인터넷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르고 독특한 체계를 갖추었으며 국제 매체들은 야후, 아마존, 이베이 이후의 네 번째 인터넷 형식이라고 칭하였다. 아리바바가 채택한 독특한 방식은 바로 B2B 방식이었다. 오늘날의 미국에서도 이러한 성공 사례는 찾기 힘들다.

전자상거래의 영역에서 마윈은 자신의 독특한 시각과 선견지명을 나타냈다. 창업하던 해에 아리바바의 회원은 고작 8~9만 명밖에 안되었다. 그러나 2000년에는 50만에 달했고, 2001년 인터넷계의 혹한기라고 불리는 때에도 100만 명의 회원을 만드는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전세계 최초로 회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선 홈페이지가 되었다. 2년 뒤 2003년에는 회원의 수가 350만에 달했고, 2004년에는 6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하였다.

1999년 아리바바가 개설된 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마윈은 계속해서 타오바오, 즈푸바오, 아리마마, 아리소프트웨어, 커우베이 등의 사이트를 만들었으며 중국 야후를 인수하기도 하였다. 아주 작은 기업으로 시작한 아리바바는 점점 성장하여 이렇게 커지게 되었다. 현재 아리바바 그룹은 이미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이 되었다. 아리바바는 중국인들에게 ‘아리바바 제국’이라 불리며 마윈은 그 제국의 제왕이라 불린다. 마윈은 일전에 한 기업을 최선을 다해 경영하여 일곱 개의 계열사를 운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아리바바는 이미 일곱 개의 계열사를 세웠다. 마윈은 아리바바가 앞으로 더 이상 계열사를 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인터넷 쇼핑몰 리포트>. e비즈북스.진건국




니하오만 알아도 중국으로 가라

저자
김현주, 김정수 지음
출판사
e비즈북스 | 2015-07-0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중국 시장, 인터넷이 정답이다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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