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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09.12.30 15:54

인터넷 쇼핑몰 탐구생활

초보 쇼핑몰 운영자의 하루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득달같이 인터넷을 열어 뇌입원에서 선정한 선정적인 뉴스들을 둘러 봐요. 이런 시베리안 허스키. 고사영이 정동건하고 사귄대요. 저 언니는 아침마다 콘푸로스트 대신 방부제라도 말아먹는지 늙지도 않아요. 저는 왠지 모를 화를 삭이며 제가 운영 중인 패션쇼핑몰 '목작녀'에 접속해요. 목작녀는 목이 짧고 굵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목걸이 쇼핑몰이에요. 시장 극세분화를 추구하는 요즘 추세를 따라봤어요.

카운트를 보니 밤새 꽤 많은 동지들이 방문했어요. 목작녀는 키워드광고를 하지 않아도 방문해주는 수천 명의 고마운 방문객들이 있어요. 뇌입원 지식인에서 후배랑 듀엣으로 멀티 아이디 돌려가며 다중이짓했던 노가다홍보가 슬슬 빛을 발하나 봐요. 기분이 좋아진 저는 어제 프록시 아이피 찾는 게 지겹다고 호소하는 애의 등짝을 후려친 게 미안해서 살짝 웃어 줘요. 썩소로 답하네요. 뜯어먹을 것. 너는 오늘 죽었어요.

주문 상황을 체크하면서 후배한테 질문 게시판에 답글을 달라고 요청해요. 답글 달아달라고 했더니 이게 논문을 쓰고 앉아 있어요. 미련곰탱이가 따로 없어요.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자꾸 곰탱이짓하면 코카콜라 모델로 넘겨 버리겠다고 협박해요. 이건 절대로 아까 저한테 썩소를 지은 데 대한 보복이 아니예요.

2009 겨울 신상 애기인 야심작 '루저 넘버 5'의 상품사진을 보정하고 있는데 전화벨소리가 울려 와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전화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없는 애가 떨어질 것 같아요. 벨소리에 문제가 있나 내가 좋아하는 들짐승의 노래로 바꿔 봤지만 소용없었어요. 대신 들짐승이 미워졌어요. 오늘은 9시 땡치자마자 전화가 오네요. 조짐이 안 좋아요. 후배가 전화를 받지 않고 개기고 있어요. 빵꾸똥꾸의 표독한 눈빛으로 후배년을 째려 보자 마지못해 받아요. 그런데 처녀시대가 오덕 후리는 목소리로 "호빗의 자존심 목작녀입니다"라고 말한 후배가 울상을 지으며 저에게 S.O.S를 청해요.

따르릉 따르릉

드디어 올 것이 왔어요. 보스몹 클래스 진상고객이 오늘도 또 전화를 걸었어요. 내가 쟤 때문에 아침에 눈뜨면 기도를 하게 되요. 어쩔 수 없이 전화기를 넘겨 받아 가칭 '피묻은 손톱'을 상대해요. 그녀를 피묻은 손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받은 상품이 마음에 안 들면 손톱으로 긁어 망가뜨린 다음에 쇼핑몰 책임이라고 우기면서 환불을 요구하기 때문이에요. 참고로 그녀의 닉네임은 '눈사람겅쥬'에요.

오늘은 무슨 트집을 잡나 들어봤더니 상품사진에는 핑크색으로 보이는데 실제로는 살(9)색인 목걸이가 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어요. 나 귀 안먹었어요. 배틀크라이를 시전하는 내공을 보니 왕년에 콘서트장에서 풍선 좀 흔들어본 솜씨예요. 저는 연약한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남친한테도 해본 적 없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고객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라고 일단 말을 끊어요. 됐거든이래요. 야 이년아 니 컴퓨터가 삐꾸라서 그렇게 보인 게 왜 내 책임이야 라고 외치려다가 참아요. 인터넷 쇼핑몰은 물리적인 공간이 없기 때문에 전국 장사이고 입소문이 겁나게 빨라요. 눈사람겅쥬가 주요 게시판에 제 험담을 지르고 다니면 눈덩이 불어나듯이 대책이 없어져요. 고객은 왕이에요.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막무가내로 환불해 달래요. 충동구매한 결과가 왜 내 책임이에요. 5000원 장사해서 환송택배비 내가 덮어쓰고 환불까지 해주면 나는 후배하고 놀이터 흙먹고 살아야 해요. 진상고객 하나 엮인 손해 메꾸려면 같은 목걸이 열 개는 더 팔아야 해요. 이게 뭐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 들어줘요. 고객은 왕이에요. 그것도 끝판왕이에요. 폭풍 같은 전화가 끝나자 털썩 주저앉아요. 모든 걸 하얗게 불태웠어요. 곰탱이 후배년이 와서 내 등을 토닥여줘요.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져요.

내가게 게시판에 가서 하소연을 해요. 많은 운영자들이 공감하면서 다독거려줘요.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안 나와요. 절박한 심정에 강의도 쫓아다니고 전국구로 놀던 때 복대로나 활용하던 책까지도 뒤져봤지만 진상고객 상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는 없었어요. 진상고객 때문에 장사 접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예요. 오늘도 울면서 상품포장을 하며 하루를 보내요. 내일은 또 어떤 불량고객이 나를 괴롭힐까 걱정이 되어요.

이상 초보쇼핑몰 운영자의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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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구매자》 는 이와 같은 쇼핑몰 운영자들의 대고객 고충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저희 내부에서는 많은 격론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책이 반드시 중립적인 밸런스란 미덕을 가질 필요는 없음을 고려하더라도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원고에 제시된 불량고객 파해법이 많은 쇼핑몰의 대고객 매뉴얼에 두루 적용될 만큼의 보편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였고,
두 번째는 쇼핑몰 운영이라는 것은 결국 판매라는 행위를 통한 고객과의 소통인데, 어느 한 쪽에게만 트러블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저희가 인터뷰한 수많은 쇼핑몰들의 사례를 정리해 보면 전체 구매자 중 불량구매자 비율은 대략 0.3~1%였습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재앙이라고 할 만한 어이 없는 사이코도 만나기 마련이지만, 만남을 가진 백 명 중 하나가 사이코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상당수는 손뼉이 마주쳐서 나는 소리인 경우죠. 고객의 시선에서 탐구생활을 만든다면 또 다른 이야기들이 나올 테고요. 아니, 이미 많이 나왔죠.

짐은 관대하다

그러나 서비스 수혜자로서 갑과 을의 관계가 역전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객은 왕'이라는 격언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대는 망나니들이 많은 것 역시 사실이고,

그들의 칼부림에 쇼핑몰 운영자들이 무수히 쓰러져 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판매자의 고충을 널리 나누고, 나아가 해결책까지 제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고객의 시각에서 쓰여진 글들은 이미 많이 나왔으니까요.

불량구매자와 불량판매자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시간이 나면 이어서 자세히 써보겠습니다.

이번에 저희 《불량구매자》가 2009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기념으로 작년 이맘때쯤 나온 책을 새삼스레 꺼내서 뒤적거리다가 써봤습니다.

                                            우리는 구매자인 동시에 어딘가에서는 판매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