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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1 지하철을 읽다
posted by e비즈북스 2010.02.21 20:44

바닥으로 내려가 어둠을 횡단한다는 점에서 독서는 지하철을 타는 것과 닮았다.
지하철에 탑승하면 마주한 타인의 얼굴이나 또는 그 너머의 창문에 비치는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도 그렇다.
무례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심연에 침잠하지 않는 이상 부지런히 눈을 움직여야 한다. 관찰하면서 동시에 관찰당하는 점도, 느긋하게 발버둥치며 검은 수면 위아래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독서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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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미트트레인>(심야의 식육열차)의 한 장면



누가 어떤 책을 읽는지 관음하는 것에 대한 변명은 이런 것이다.

좁은 지하철의 한정된 관찰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지하철을 통해 읽는다.
기록에서 성경과 수험서는 제외한다.

일시: 2010년 2월 16일 - 2월 19일
경로: 지하철 2호선 강변 - 사당
범위: 지하철 반량


2월 16일 화요일
탑승 시간 : 오전 7시 30분
연휴 이후 첫 출근 시간이어서 그런지 이른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제법 많다. 상당수의 승객들이 이어폰을 꼽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다. 내 옆에 선 회색 정장의 중년 남성은 경영학 분야로 추정되는 영문서를 읽고 있다.

지성의 공간에서 원서를 권유하는 까닭이, 번역이라는 반역의 필터에 방해받지 말고 원서가 지시하는 개념과 직접 소통하라는 배려만은 아닐 것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많은 번역서들을 둘러 싼 도시전설들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이한 번역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총체적인 수준의 문제이며, 돈은 계속 잃지만 따는 사람은 없다는 고스톱판처럼 모두가 피해자이고 동시에 가해자이다.

탑승 시간 : 오후 8시경
지하철 2호선도 이 시간대에는 비교적 한산하다. 운이 좋으면 앉아서 갈 수도 있다. 나와 등을 맞댄 어떤 20대 중후반 가량의 여성이 온다 리쿠(도미노)의 소설을 읽고 있다. 주변을 둘러 보니 역시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책을 읽고 있다. 북커버로 가리고 있어 제목은 확인하지 못했다.

지하철 벽에《삼성을 생각한다》 광고가 등장했다.

2월 17일 수요일
탑승시간 : 오전 7시 50분

오전 7시 30분과 오후 8시는 고작 30분 차이지만 승객의 행태가 다르다. 지금 시간에서는 탑승한 상당수가 누군가 당장 목을 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숨막히는 공간 안에서도 용케 무가지를 읽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첫 출근 때 다짐한 것 중에 하나가 무가지 대신 다른 것을 읽자는 것이었다. 월급을 받고 나서 시집을 샀다. 그리고 퇴근길 지하철에서 꺼내 들었다.

컨설턴트의 고객 개념
칸트의 물 자체
물 자체라는 말 차제
라벤더 향기

십오 초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시간 동안 몇 번이고 쳇바퀴를 돌았다. 만원 지하철에서 시집을 읽는 건 슬프다.

지금은 《국어의 풍경들》을 들고 있다. 아주 오래 전 편집자를 꿈꿀 때 위로받으며 또박또박 읽었던 책이다. 다시 펼친 책장은 넘어가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읽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있다는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싶을 뿐이다.


2월 18일 목요일

탑승시간 : 오후 9시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 시간대 때문일까. 앞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긴 생머리의 여성이 《개념어총서》를 읽고 있다. 제목을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표지의 글자는 초록색이었다. 눈썹이 인상적이어서, 그리고 책이 인상적이어서 한 번 더 보았다. 앞의 감색 바지를 입은 중년 남성은 《왕을 참하라》를 읽고 있다. 만약 저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광고를 만든다면 저 분을 모델로 기용했으면 한다. 회색 모자를 푹 눌러 쓴 여성은 문가에 기대 서서 무협지나 팬터지 물로 추정되는 소설을 읽고 있다. 밤무대 의상처럼 반짝이는 점퍼를 입은 20대 남성은 《타워》를 읽고 있다. 저도 봤던 겁니다. 우리 <E.T>에서처럼 손가락 키스 한 번 할까요.

가끔 지하철에서 내가 편집한 책을 읽고 있는 사람과 마주치는 두려운 상상을 한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고 하지만, 책을 읽는 것만이 서울메트로인의 바람직한 자세는 아닐 것이다 . 게임을 하고, 성경을 펼쳐 종교행사를 하고, 영화나 드라마를 챙겨 보고, 문자를 보내는 행위 모두 소중하다.

책은 신화가 아니다. 책의 목을 조르지 말았으면.


2월 19일 금요일

새삼스럽고 반복하는 말이지만, 종종 대한민국에서 무례한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모여 단합대회를 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옆구리를 찍히고 등을 떠밀릴 때마다 내 귀의 도청장치가 떨어지고 내 심장은 크레이지 택시가 되며 나의 발은 허경영 공중부양을 한다. 예의없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분포하지만(여기는 자유와 평등의 대한민국이다) 가끔은 특정 연령층에 대한 공포심마저 생긴다. 누가 어떤 책을 읽는지 알 게 뭐람.

작년 여름 즈음 《일본전산 이야기》를 읽는 직장인들과 《1Q84》는 몇 번 봤었지만, 베스트셀러들을 지하철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 많은 책들은 누가 사 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