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30 10:21
웜바이러스로 인터넷 대란 발생

1.25 인터넷 대란 발생

2003년 1월 25일 윈도 서버(MS SQL서버 2000)의 취약점을 활용한 슬래머 웜바이러스가 발생하여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 웜바이러스로 인해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ISP의 일부 DNS가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에서도 유선 인터넷은 물론이고 무선 인터넷과 행정전산망까지 모두 불통되는 사상 초유의 인터넷 재난이 발생해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2003년 2월 18일 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조사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는 전 세계 감염대수 7만 5000여 대의 11.8%에 해당하는 8800여 대가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시작은 미약했다. 2003년 1월 25일에 한국통신 혜화전화국의 DNS(Domain Name System)에 처리 가능한 용량 이상의 대량 데이터가 유입되면서 '1.25 인터넷침해사고'가 시작되었다. '1.25 인터넷침해사고(인터넷 대란)'는 고작 크기가 367 바이트에 불과한 'SQL슬래머' 라는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데이터베이스의 보안 취약점을 악용하여 네트워크에 흘러들어가는 데이터 전송량을 급증시킨 것이다. 그 결과 오후 2시부터 모든 인터넷접속이 9시간가량 마비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슬래머 웜바이러스 이후에도 2003년 8월 12일의 블래스터 웜(Blaster worm)을 시작으로, 18일의 웰치아 웜(Welchia worm), 그리고 엄청난 양의 스팸 메일을 보내고 있는 소빅.F 웜(Sobig.F worm)에 이르기까지 한 주 사이에 강력한 웜 세 종류가 한꺼번에 공격하는 일이 발생해 국내 전산 담당자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flickr - Joffley


사이버 대란에 대한 경각심 일깨운 사건

1.25 인터넷침해사고는 이미 사회적 생활의 상당부분을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한 순간에 인터넷이 마비되고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고 정부와 민간 기업에 경각심을 주었다.

이 사건 이후로, 정부는 인터넷침해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수립, 시행해왔다. 보안에 대한 취약성과 관리소홀 방지를 위한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또한 인터넷진흥원에 일부 인터넷 선발국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최상위도메인네임서버(Top Level Domain Server)를 유치하여 국내DNS의 효율적인 관리기반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와 더불어 정보의 안전한 유통을 위한 정보보호에 필요한 시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1998년부터 운영했던 한국정보보호진흥원(www.kisa.or.kr)의 업무를 보다 강화하여 신종 인터넷 정보침해사고방지에 노력을 기울였다. 

침해사고가 일어난 1년 뒤인 2004년 1월에는 국가사이버안전센터(www.ncsc.go.kr)가 설립되었다. 국가사이버안전센터는 사이버공격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국가전반의 정보보안업무를 담당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잠깐] 이은주 씨 자살 소식으로 인터넷 속도 저하 현상 발생

2005년 2월 22일에 영화배우 이은주 씨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한 동안 국내 인터넷 속도가 크게 느려지는 일이 발생했다. 특히 포털이나 뉴스사이트 쪽은 트래픽 문제로 화면이 느리게 뜨거나 아예 안 뜨는 곳이 생길 정도였다. 일부 사이트는 관리자 화면이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서버에 부담이 심했다. 인터넷구더기(인터넷웜)이나 바이러스, 통신선로의 문제 등이 아닌 순수하게 사용자 트래픽으로 인해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은주 씨 자살 소식으로 인한 국내 인터넷 속도 저하현상은 연예인에 대한 국내 네티즌의 관심이 매우 크다는 사실과 신문이 아닌 인터넷으로 뉴스를 얻는 인터넷 시대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대한민국IT사100파콤222에서미네르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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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중태 (e비즈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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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0.10.23 09:52



블로깅을 시작하던 첫해에 나는 공부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블로그라는 세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ProBlogger.net을 처음 방문하는 독자들은 흔히 내가 블로깅으로 억대 수입을 벌어들이게 된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블로깅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그 누구도 단기간에 프로블로거가 되기는 힘들다. 이런 이유 때문에 취미로 블로그를 시작했다가 프로블로거가 된 나의 블로깅 경험담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천천히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편안하게 시작해 보기로 하자.





시작은 미미했다

 
2002년 11월, 내 최초의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글쓰기(Publish)’ 버튼을 클릭했을 때 나는  ‘블로깅’이라는 것이 사소한 재밋거리 이상은 아니라고 봤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주된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한다는 생각과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겪은 세 가지 직업
 
당시 내 본업은 교회 강사였으며 일주일에 3일간 일했다. 일종의 아르바이트였는데(정식 목사가 아니라 네 사람이 함께 일하는 팀의 일원이었다) 내가 맡은 분야는 젊은 친구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나는 바네사와 약혼한 상태였고 결혼 자금 마련을 위해 열심히 저축하는 한편, 자동차 할부금과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다(교회 강사 급료는 별로 많지 않았고 다른 아르바이트는 정말 쥐꼬리만 한 수입이었다).

두 번째 직업은 온라인 백화점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이것이 블로그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창고 경비였으며 대부분 쓸고, 청소하고, 박스를 옮기고, 짐 꾸러미를 정리하는 시시하고 지루한 일이 주된 업무였다. 그래도 집세를 내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 직업은 일용직 노동자였다. 직업소개소에서 소개를 받아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정신이 멍해지는 생산 라인 일부터 서커스 관련 이벤트 업무까지 온갖 잡다한 일들을 했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10년 동안 공부를 해 왔다. 처음 블로그를 접했을 당시의 내 인생은 대충 이와 같았다.

취미형 블로거
 
내가 만든 첫 블로그에서 ‘글쓰기’ 버튼을 클릭한 순간 땅이 흔들리고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와 갑자기 프로블로거가 되었다고 말했으면 좋겠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첫 12개월 동안은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변화가 있었다면 대학에서 새 과제를 맡았고 교회 강사를 그만두고 개척 교회를 시작하는 팀을 이끌면서 좀 더 바빠졌다는 것뿐이었다. 이 무렵의 블로깅은 취미 수준이었고 개척 교회라는 주제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수단이었다. 당시 만든 ‘거실(LivingRoom)’이라는 블로그(www.livingroom.org.au/blog)는 그해 개척 교회 모임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 바람에 호스팅 비용과 ISP 비용(전화 회선을 이용한 모뎀이었다)만 올라갔다.

1년쯤 지나고 우연히 디지털 사진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는 그냥 사진을 올리는 블로그였는데 아무도 내 사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카메라에 대해 쓴 리뷰 때문에 꽤 많은 트래픽이 발생했다. 이를 통해 호스팅 비용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애드센스 광고와 아마존 제휴(Amazon Affiliate) 프로그램을 달았다. 하루 수천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안정된 블로그여서 그랬는지 애드센스를 통해 잡비를 충당할 정도의 수익이 발생했다.

안정된 트래픽이 있었다고 하지만 초기 수익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첫 달인 2003년 10월 수익은 하루 평균 1.4달러였는데 그나마도 독자들이 호기심에서 많이 클릭했기 때문이었다. 11월에는 하루 3달러로 올라갔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걸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고, 한 달에 몇 달러씩만 더 번다면 새 컴퓨터를 사는 데 필요한 돈도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때까지 나는 6년 된 PC와 다이얼 모뎀으로 블로그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목적은 블로그를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도록 새롭게 디자인하는 데 필요한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12월에는 하루에 6달러 수익을 거두었고 이듬해 1월에 9달러, 2월에 10달러, 3월에 15달러로 올라섰다. 이때부터 이런 성장률이 좀 더 장기간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하루 2달러, 3달러씩 추가되는 게 아니라 매월 30~40퍼센트, 심지어 50퍼센트까지 성장하는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본 것이다. 즉,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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