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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0.04.06 10:57

인터넷 유행어로 보는 2009년 중국

 '루저녀 사건'은 그것이 확산된 인터넷 소통 과정을 통해 우리 세대가 중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이다.
                                                                                              -《인터넷 트렌드북 2010》 중에서

시대는 코드를 결정하고 언어는 그 코드를 반영합니다.1 마케터들이 유행어를 통해 소비자들의 욕망을 들여다본다고 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겠지요. (또는 그 반대로 인터넷 유행어를 생산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거나.)

그래서 열 길 물 속보다 들여다보기 힘들다는 사람의 속말을 들을 수 있는 인터넷에서 소통되는 언어는 그것이 쓰이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인터넷 실명제를 추진하며 입을 틀어막으려는 정부2와 인터넷 사용자들 간의 충돌은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닙니다.

중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중국 정부는 인터넷 악플, 무분별한 성인 서비스, 범죄 등을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추진하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습니다.
언론이 통제된 중국에서 대안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인터넷마저 규제되는 것은 21세기 문자옥3에 다름아닐 테니까요.

이와 연계되어 중국 고위급 인사에게서 인터넷 신조어들과 유행어를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가 하면, 2010년 1월 20일 중국 깐수성 지방정부는 인터넷댓글 부대를 양성하겠노라고 당당하게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대륙의 호방함이려니 하지만서도, 따지고보면 한국도 별다를 것 없네요.(댓글알바를 공무원으로 대우해준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알바부대를 양성하는 한국보다는 나을 수도...)

어쨌든 중국인들이 한국 인터넷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네 한국인들은 중국 사정을 잘 모릅니다. 그나마 파악한 게 '까오리 빵즈4 = 울리사람 욕한다' 정도지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3억 8,000만의 중국 네티즌들5이 인터넷에서 사용한 유행어를 통해 중국인들의 속을 한번 몰래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샤넬은 죽어서 스타일을 남기고 잉여들은 죽어서 시대의 증거를 남긴다


찌아쥔펑
"찌아쥔펑! 엄마가 집에 와서 밥 먹으래."

2009년 7월 바이두 게시판에 올라온 12자가 2009년 중국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인터넷 트렌드북 2010》 에 따르자면 대만 국경절을 맞아 "대만아, 엄마가 집에 와서 밥 먹으래" 라는 식의 정치 구호가 만들어졌을 정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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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한 문장 하나가 왜 이렇게 화제가 되었는지는 중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우리는 이미 몇년 전에 이와 비슷한 일을 경험했지요.

바로 인터넷의 즉흥성과 전파성, 그리고 느슨한 연대감이 만들어낸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아햏햏이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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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孤獨)
이 유행어 역시 포털 게시판에서 유래되었는데 한 남자가 면을 먹는 인증 사진과 함께 "형이 먹는 건 면이 아니라 고독이야"라는 글을 올린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글은 삽시간에 조회수 300만을 넘으며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습니다.

"형이 읽는 건 책이 아니라 고독이야."
"형이 만나는 여친은 2D가 아니라 고독이야." (아, 슬프다)
"누나가 마시는 건 술이 아니라 고독이야"

이렇게 2009년 수많은 중국인들의 메신저 대화명이나 블로그, 미니홈피의 대문글로 패러디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로 치면 '정ㅋ벅ㅋ'6이나 '싱하횽' 쯤 되려나요.

용자는 국적을 가리지 않나 봅니다



피(被)
넵. 피동사할 때 그 '피'입니다. ~을 당했다, 라는 수동적인 입장을 드러내지요.

피는 다음과 같이 응용되었습니다.

베이추안친(被全勤)
로동 올인을 당하다, 즉 휴가도 제대로 못 누리고 죽어라 일하는 것을 뜻합니다. 1/3이 넘는 중국 네티즌들이 유급 휴가를 누려본 적이 없다고 하네요.

베이지샤(被自殺)
자살을 당하다. 정부의 압박에 절망하며 분신 자살한 사례를 풍자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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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부엉이 그림은 본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베이쥐(杯具)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유명 학자 이중톈(易中天) 선생께서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비극이다'라고 말씀하신 게 유래로 이를 네티즌들이 발음이 비슷한 ‘베이쥐’로 바꿔 사용하면서 유행했습니다.

불합격 통지서 받고 집에서 쫓겨나 불량고딩 담배 심부름해준 다음 얻은 담배 한개피 물고 서러워 우는 OTL 상황에서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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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오카오(裸考)

가산점 없이 치르는 대입시험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구직시험에까지 쓰임의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여기나 거기나 취직이 많이 힘드네요.



뚜안베이(斷背)
게이를 가리키는 은어. <브로큰백마운틴斷背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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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여신님과 오 마이 캡틴을 지나 지금은 오 마이 숄더의 시대



70km
절강성 항저우에서 과속운전으로 사람을 죽인 사건을 경찰이 은폐조작하며 당시 속도를 70km로 발표하자 언론과 네티즌들이 이를 끈질기게 추적한 사건에서 생긴 유행어입니다.

비슷한 말로 떡... 그만 하겠습니다. 우리 존재 파이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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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스크린샷은 본문과 무관합니다. 출처는 똑소리나는 신문 뉴스웨이




후이세지넹(灰色技能)
회색기능. 신입사원들이 요구받는, 즉 술 잘 마시고 노래 잘 부르는 등 회식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능력을 말합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말이 있지요. 오피스 아이돌. 참... 뭐하자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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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그림은 본문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노예(~奴)
말 그대로 노예, 시장경제에 노출되며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중국인들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방노(房奴): 주택 할부금에 허덕이는 처지. 달팽이집을 가리키는 또다른 유행어 워쥐(蝸居)와 함께 쓰입니다.

화이트칼라(白奴): 직장에 얽매인 처지. 실례는 여기를 참고하세요. 흑흑.

농노(壟奴): ‘독점기업(壟斷行業)이 장악한 중국 시장에서의 소비자의 처지. 



지훈주(急婚族)
급혼족. 취업난으로 인해 취직 대신 취집을 택한 여성을 뜻합니다.

재테크 중 으뜸은 혼테크라는 말도 있지요...



토우차이(偸菜)
채소를 훔친다, 라는 뜻으로 <개심농장(開心農場)>이라는 채소 재배 온라인 게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재배 게임에서의 채소 절도이니 일종의 PK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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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툰의 걸작 <이끼>에 등장할 법한 갱생공동체 이름 같은 <개심농장>


 

중국 인터넷 유행어들을 살펴 보니 낯설지 않지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중국 인터넷 시장은 우리가 몇 년 전에 겪은 시행착오들을 반복하는 중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그네들의 근미래를 가늠하기가 쉽지요.

이 글이 중국 시장을 조사하시려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
정치인들이 곧잘 얘기하는 "민심이 곧 천심"이라면 그 하늘이 인터넷인 것이지요. 중국 정치인들이 이를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인터넷 트렌드북 2010》
《중국 인터넷 쇼핑몰 리포트》




주석 아닌 주석
1 이택광 교수님께서 마빡이를 두고 근대적 노동에 대한 조롱이라고 평한 것을 과잉이라고 여겼었습니다만, 근래 서사가 해체된 '병맛'이 첨단의 중심에선 것을 보니 제 생각이 짧았지 싶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꿀벅지'는 남성의 객체화나 44사이즈 열풍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고 '셔틀'은 승자독식체제에 순응한 젊은이들의 상징일 수 있지요.

역시 게임계 인사들은 시대를 앞서 가네요.



그리고 최근의 '대학자퇴' 담론은 뭐랄까, 그것이 화제가 된 자체가 대학생들이 '보편'적인 상식, 또는 편견에 얼마나 얽매여 있는지를 드러냄과 동시에 젊은 사람이라고 꼭 열린 시각을 가진 순결한 정신이어야 하나, 라는 반감 사이에서 갈팡질팡, 내 글도 오락가락...

2 한국 정부의 본인확인제 명령을 거부한 유튜브에 청와대는 대통령 연설 서비스 채널을 개설합니다. 그런데 정부 정책을 거부한 사이트에서 정부의 정책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모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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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인터넷 트렌드북 2010》


3 명청 시대 관리나 학자의 글 중에 황제를 비난하는 내용 등이 있다는 이유로 처벌하던 법률입니다. 비슷한 예로 한국의... 그만 두겠습니다.


4 카오리 빵즈(高麗棒子)는 고려 지팡이, 의역하자면 한국놈 앞잡이라는 뜻입니다.

5 1999년, 세기말 중국에는 구세주와 권왕 '유리 집에서 살아남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열두 명의 참가자들이 받은 미션은 간단했습니다.

컴퓨터와 침대만 있는 유리집에서 72시간 동안 사는 것이었습니다. 집밖으로 나갈 수도, 외부로부터 지원도 받을 수 없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용허(永和) 두유 같은 먹거리는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참 쉽죠?

그러나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전자화폐와 인터넷에 낯설어 하며 매우 힘든 72시간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1년이 흐른 지금, 유리집에 갇혀 인터넷으로 72시간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중국인의 수는 3억 8,000만을 넘어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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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중국 인터넷 쇼핑몰 리포트》



만약 중국과 인터넷 전쟁을 벌이면 2ch때와는 반대로 디씨인사이드 쯤은 단번에 점령당해 짜요! 짜요! 같은 말들로 도배될지도 모른다는 거죠.

6 닉네임 '당근매니아'는 디시인사이드에 '놀이공원 순례기'를 올리며 제목을 '유유히 홀로 나아가 에버랜드를 정ㅋ벅ㅋ한 게 자랑'으로 적었고, 놀이기구를 하나씩 탈 때마다 '정ㅋ벅ㅋ'이라고 적힌 수첩을 꺼내 들어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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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ㅋ벅ㅋ할 것인가, 정ㅋ벅ㅋ당할 것인가



이에 대한 반론으로 프로게이머 박지수의 별명인 정벅자와 우왕ㅋ굳ㅋ이 합쳐진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박지수 기원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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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토 저리가라할 4월의 싱그러운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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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gnman 2010.04.06 17:35 신고  Addr  Edit/Del  Reply

    역시 중국은 뭘하든 그 수가 압도적입니다.
    3억 8천만의 네티즌이라... 몸 사려야겠는걸요. ㅋ

  2. Whitewnd 2010.04.07 03:06 신고  Addr  Edit/Del  Reply

    헐....
    전 이거 읽으면서 계속 .."나도 중문관데 왜 난 이런걸 모를까 ㅠ"
    하고 있었다는.... ㅎㅎ

    "신입사원들이 요구받는, 즉 술 잘 마시고 노래 잘 부르는 등 회식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거 저두 공감합니다.. 진짜 말도 안되는 문화예요...

    그리고 전공시간에 다양한 경로로 중국에 대해 공부하는데
    중국의 문화적 저력은 한국과 비교도 안되는 수준이더라구요....

    지금 한국 젊은이들이 영어공부하고 뉴욕커를 로망으로 삼으며
    미국 식민지인을 자처하고 있는데

    조만간 다시 중국을 형님나라로 섬기는 시대가 찾아올듯 합니다...;;;;;
    문사철. 문화적 뿌리를 소흘히 하는 나라는 정복당할 수밖에 없으니깐...

    그냥... 글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_+

  3. 대구사랑 2010.04.07 11:22 신고  Addr  Edit/Del  Reply

    최근 유행어와 실시간 검색어로 많은 블로거분들이
    글을 발행하시는듯...
    근래 많이 바쁘시져?

    • e비즈북스 2010.04.07 14:38 신고  Addr  Edit/Del

      마침 《인터넷 트렌드북 2010》를 편집하다가 재밌는 내용이 있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조사해 봤습니다.

      중국은 우리가 몇년 전에 겪었던 일들을 그대로 밟아가더라고요. :)

      근래 좀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도 방치 상태로 두고 다른 분들 블로그도 많이 찾아뵙지 못했어요.

      지금은 다시여유가 좀 생겼으니까 다시 월급도적질을 할까 합니다. X-)

  4. cosmopolitan815 2010.04.15 00:31 신고  Addr  Edit/Del  Reply

    재밌는 글이군요..ㅋ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