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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09 09:17
디지털 컴퓨터 1호 ‘세종1호’

산업발전이 아니라 대통령의 도청을 막기 위해 개발된 컴퓨터

최초의 컴퓨터는 이만영 박사의 전자계산기 1호에서 3호지만 아날로그 제품이었고, 상업화나 양산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실제 상업적으로 사용된 컴퓨터 1호는 ‘세종1호’다. ‘세종1호’는 미국 데이터제너럴(DG)의 미니컴퓨터 ‘노바01’을 개량해서 만든 한국 최초의 국산 디지털컴퓨터다.

‘세종1호’ 개발 프로젝트는 청와대에 의해 ‘메모 콜(Memo Call)’이라는 암호로 시작됐다. 개발 이유는 산업발전이 아닌 정치 목적 때문이다. 1972년 4월에 청와대는 ‘청와대의 주요 기관 사이의 전화통화에 대해 외국 정보기관의 도청 가능성을 차단하면서도 언제라도 상위권 통화자가 통신을 제어 가능한 핫라인용 사설전자교환기(PABX)를 1973년 3월까지 개발 가능한가.’를 KIST에 의뢰한다. 7.4남북공동상황을 전후로 한 중요한 정치적 상황에서 통신비밀이 보장되는 핫라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KIST측은 2개월여 동안의 연구조사 끝에 청와대가 요구한 교환기(PABX)가 미국과 소련 등에서도 극히 일부 고급기관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특수 교환기라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당시 유행하던 ‘노바01’이나 ‘PDP11’ 등의 미니컴퓨터를 PABX 시스템제어용으로 사용하면 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KIST측은 ‘노바팀’이라는 비밀 개발팀을 구성한 다음에 청와대 쪽과 ‘메모콜’ 개발 프로젝트를 1972년 6월부터 시작했다. 메모콜을 위해서는 교환기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컴퓨터시스템을 개발해야 했다. 제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했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요한 성능 좋은 컴퓨터도 필요했다. 개발에 필요한 컴퓨터로는 ‘PDP 8/E’가 적당했는데, 주문에서 인도까지 몇 달이 걸리는 것이 문제였다. 개발시한은 1973년 3월이었고 청와대는 전면에 나서 지원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 DG가 생산한 ‘노바01’을 3대 주문해서 연구실에 설치되었다. 그리고 어셈블리어로 통신제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교환기를 위해 만들어야 했던 국산1호 컴퓨터 ‘세종1호’

문제는 노바팀이 개발한 제어용 소프트웨어가 ‘노바01’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노바팀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구현하려면 시분할 처리가 필요한데, 노바01은 시분할 처리 기능을 지원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시분할 방식을 리얼타임으로 제어하는 새로운 컴퓨터가 필요해졌고 ‘세종1호’ 개발이 시도되었다. 컴퓨터를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니었지만 컴퓨터 개발이라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세종1호는 노바01의 성능을 그대로 분석해 만들어진 호환제품이다. 다만 노바01과 다른 독자적 설계에 1KB D램을 사용하는 등 성능을 크게 개선한 독자개발 제품이었다.

노바팀은 결국 1973년 3월까지 세종1호를 이용한 PABX 시스템인 ‘K1T-CCSS’를 개발하지만 청와대는 약속과 달리 계약을 파기시켰고, KIST는 기왕 개발한 세종1호를 상용화한다. GTE사가 ‘KIST 500’과 ‘세종1호’를 대량생산하기 위해 1977년 2월 삼성그룹과 삼성GTE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삼성GTE사는 이후 삼성반도체통신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국산 컴퓨터 및 TDX-1 개발의 밑거름이 된 교환기 기술을 축적하게 된다.

오리콤570 조립 성공을 소개한 1977년 기사


세종1호에 이어 동양전산기술이 1976년부터 ‘오리콤540’을, 1977년부터 ‘오리콤570’을 조립해 출시한다. 이어서 금성전기가 1976년 11월부터 1977년 7월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수체제어연구실과 공동으로 국내최초 마이크로컴퓨터 ‘GSCOM80A’와 최초의 국산 잉크제트프린터 ‘GS JET1200’ 개발에 성공한 다음 1977년 7월 6일, 서울역 럭키빌딩 종합전시장에서 GSCOM80A 마이크로컴퓨터와 GS JET1200 잉크제트프린터, GSM 2000도트매트릭스 프린터를 발표한다. 1978년 3월부터는 한글 모아쓰기가 가능한 CRT단말기를 삼성전자가 개발한다.


[잠깐] 돈 안 준 청와대와 세종1호의 존재 공개

어렵게 ‘세종1호’를 약속 기일 안에 완성시켰으나 청와대는 신뢰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KIST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 문제는 약속한 개발비용 6000만 원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신 이 제품을 상품화할 수 있다는 허가만을 준다. 결국 KIST측은 미국 GTE사와 상용화 프로젝트를 계약 맺고 1975년 초에 ‘KIST 500’을 발표한다. ‘세종1호’의 존재가 일반에 알려진 이유는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IT사100파콤222에서미네르바까지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중태 (e비즈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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