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2.10.16 09:19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비아냥과 무시 속에서


IT 슈퍼리치들의공 통점 중 하나는 회사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꾼 그들인데도 수많은 비웃음과 무시를 당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대학원생이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창업을 한 이유는 자신이 개발한 검색 서비스를 누구도 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인터넷 포털 업체인 익사이트, 야후, 인포시크, 알타비스타 관계자들을 찾아가 검색엔진을 판매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인포시크의 창업자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당장 꺼져”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찾아간 모든 회사로부터 거절당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만든 검색엔진으로 구글을 창업했던 것이다.

마이클 델 역시 중간 유통상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다이렉트 마케팅을 펼칠 때 다른 기업들로부터 곧 실패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마이클 델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매번 같은 소리를들어야만했다. 마이클 델은 영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22명의 기자 중 21명이 델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소비자들에게 직접 컴퓨터를 판매하는 델의 수익모델이 미국에서만 통하고 영국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10년 동안 델은 영국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실패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빌 게이츠가 미국 컴퓨터 업계에서 유명인사가 되기 시작한 것은 한 잡지에 <불법 복사는 도둑질>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는 무료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빌 게이츠는 미국 전역에 있는 컴퓨터광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만 했다. 그런 시국에서 소프트웨어로 돈을 벌겠다는 발상은 시대를 앞서가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빌 게이츠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IBM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대형 컴퓨터를 만드는 IBM은 데스크톱 컴퓨터의 가치를 과소평가했고 마이크로소프트 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신의 뜻대로 몰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손정의가 야후에 150억 엔을 투자했을 때는 ‘일본에서 온 마지막 거품남’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손정의는 추가로 300억 엔을 더 투자하게 되는데 나중에 이 금액의 가치는 360배를 뛰어넘게 된다. 닌텐도가 미국 시장에 패미컴을 발표할 때 이를 비웃는 사람도 많았고, 참가한 박람회에서는 주문을 받지도 못했다. 뉴욕에서 패미컴을 판매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또 어떤 업체에서 패미컴을 유통하려고하자 직원들이 회사의 오명이 될 것이라며 이를 뜯어말릴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패미컴이 미국에 발매되자 그해 크리스마스시즌에만 190만 대를 판매했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6100만 대가 넘도록 팔리게 된다.

앤디 그로브는 ‘인텔 인사이드’ 광고 마케팅을 통해서 코카콜라와 나이키에 비견되는 브랜드 파워를 구축하게 된다. 하지만 인텔 인사이드캠페인을시작할 당시만해도 언론에서는 돈을 하수구에 버리는 행위라면서 비난했다. 루 거스너가 처음 비즈니스 컨설팅 서비스를 시행할 때에도 반대하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오늘날 IBM은 글로벌 비즈니스 컨설팅 서비스 분야에서 최우수 기업으로 손꼽힌다.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이 컨설팅과 서비스 비즈니스 분야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을 창업하기 전 제프 베저스는 D.E. 쇼라는 회사에 다녔다.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라는 특명을 받은 그는 인터넷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온라인에서 책을 판매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지만 퇴짜를 맞았다. 아무도 그의 아이디어에 흥미를 갖지 않았고 그는 실망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하기 위해서 부사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던 안정된 직장인 D.E. 쇼를 그만 두고 아마존을 창업하게 된다.

애플 컴퓨터는 태생에서부터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애플 I 컴퓨터를 만든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가 이를 사업화하자고 하자 누가 자신의 제품을 구입하겠느냐며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애플 I은 컴퓨터광들의 모임인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자신의 제품을 HP에도 보고했지만 HP 역시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에 인력과 자금을 지원할 생각이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만약에 HP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의 발명품을 받아들였다면 오늘날의 애플은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공동 창업자 중에 한 명인 론 웨인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주식 10%를 넘기고 회사를 떠났다. 만약 그가 10%의 주식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2010년 말 기준으로 26억 달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투자를 받으려고할 때 역시 고난은 계속된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한 투자자였던 돈 밸런타인을 찾아가자 ‘이단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대중화시켜 컴퓨터를 재발명했다는 소리를 듣는 매킨토시를 처음 개발했을 때 역시, 애플 내부에서는 그렇게 환영받는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IT 역사상 가장 훌륭한 TV 광고로 손꼽히는 <1984> 역시 이사회로부터최악의 광고라며 방영이 취소되도록 압력을 받았다. 하지만 미리 구입한 광고 방영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송을 하게 된다. 매킨토시가 출시된 직후에는손이 세 개 필요한 컴퓨터라면서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매킨토시가 초기의 판매부진을 극복하는 데는 레이저 라이터의 역할이 컸다. 레이저 라이터를 통해서 전자출판이 창조되면서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이 매킨토시를 구입하기 시작했기때문이다. 하지만 레이저 라이터 역시 애플의 임원들과 직원들에게 비난을 받거나 무시를 받은 프로젝트였다. 아이맥을 개발할 때 스티브 잡스는 플로피디스크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제거했고, 맥북에서는 옵티컬 드라이브(CD-ROM 드라이브)를 없앴는데 이 때문에 그는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음악산업을 뿌리부터 바꾸었다는 아이팟iPod을 공개할 때 역시 사람들은 아이팟의 이름을 패러디하여 ‘멍청이가 우리 기기에 가격을 메겼다Idiots Price Our Devices’라든가 ’나는 다른 기기가 더 좋아I Prefer Other Device’라면서 비아냥거렸다. 특히 『와이어드』의 한 기자는 「아이팟을 부수자Smash the iPod」라는 제목의 컬럼을 써 스티브 잡스의 머리를 내려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애플 부활의 일등공신 아이팟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점 중에서 가장 돈을 잘 벌기로 유명한 애플 스토어 역시 처음 시장에 진출할 때는 『비즈니스위크』로부터 2년 안에 큰 고통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휴대폰의 역사를 새로 쓰는 아이폰 역시 『블룸버그』의 메튜린 기자와 존 드보락 같은 유명 컬럼니스트에게 비난을 들었고 다른 휴대폰 제조 업체들로부터 고전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들었다. 특히 스티브 발머는 애플이 아닌 다른 회사가 내놓았다면 아무런 흥미를 끌지 못했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아이패드가 공개될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글의 회장인 에릭 슈미츠는 큰 전화기와 태블릿 PC의 차이를 알려달라면서 비관적으로 반응했고 닌텐도의 CEO 이와타 사토루는 아이팟 터치가 더 커졌을 뿐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빌 게이츠 역시 펜과 키보드가 없어서 힘들 것이라고 했다. 언론이나 인터넷에서도 아이패드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얼마나 혹평이 쏟아졌는지 스티브 잡스는 우울과 충격 속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IT 슈퍼리치의 조건>중에서.김정남.e비즈북스.10월 출간








IT 슈퍼리치의 조건

저자
김정남 지음
출판사
e비즈북스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수년간 IT 칼럼을 써온 저자는 IT 슈퍼리치들의 특별한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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