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제발 창업계획서를 씁시다
    카테고리 없음 2009. 4. 5. 00:17

    어제 세 명을 만났다.
    한 사람은 4년차 출판사 사장. 집에서 빌린 돈, 마이너스 통장 3500, 신용보증 5000만원 다 날리고 직원 내보내고 사무실 빼고 서울 집은 팔고 지방에서 혼자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 4년 동안 세무사가 보내준 재무제표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재고관리도 한번도 안했다고 한다. 중간에 대박이 한 번 나서 번역서를 수십권 계약했는데 실탄이 다 떨어져서 책을 못 낼 지경에 이른 상황.

    다른 한 친구는 학원 사업을 하다가 접었다고 책상 다 뺀다고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한다. 내가 알기로 1년 만에 3억 이상 날렸다. 나에게도 처음에는 창업과 관련한 조언을 구해서 능력은 안되지만 내가 나름대로 터득한 '쉽게 망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는데 결국은 내 말과는 정반대의 전략을 취하고는 무리하고 성급하게 창업을 하였다. (얘기를 듣자니 5억짜리 사업이라는데 창업계획서도 없이 덤벼들기에 내가 엑셀로 두 시간 정도 투자해서 매출비용 시뮬레이션을 해서 손익분기점 분석을 해주었더니 그런 것도 다 해야 하냐고 하기에 마음이 답답했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나에게 투자를 하거나 돈을 빌려달라고 했었는데 도저히 그런 방식으로 운영해서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아 도와줄 수 없었다.

    또 한분은 다른 사업을 하시면서 책 한권을 내고 싶으신데 다른 출판사에 부탁하기가 번거롭고 귀찮아서 아예 출판사를 하나 내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어차피 법인이 있겠다, 책 한종 1천부 정도 찍는데 기껏해야 몇 백만원이면 되니까 대박나면 좋고 날려도 얼마 안되니 하나 차리고 싶어서 자문을 구하시겠다는 것이었다. 그 분에게는 출판은 책이 아니라 사업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책 한권을 써서 천권을 찍어내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보, 영풍, 서울 같은 오프라인 서점이나 Yes24, 인터파크, 알라딘 같은 인터넷 서점이나 북센, 송인, 출협 같은 도매상과 거래 계약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존에 하던 개인 사업을 엄청 희생하던가 (본인이 출판을 모르니) 사람을 하나 뽑던가 해야 하고, 주문을 받아 배송을 하려면 월 40만원씩 주고 창고 및 배본처를 구해야 하고, 매일 1권씩 들어오는 주문을 전화나 FAX로 배송처리를 해줘야 하고, 책 한권 내면 도매상 같은 곳은 재주문이 들어오거나 추가 신간이 안나오면 수금을 안해주고, 주더라도 3개월 어음에다가, 인터넷 서점은 책 열 권을 내기 전에는 직거래를 터주지도 않는데다가 신생출판사한테는 출고율을 55%까지 후려치며 노예계약을 강요하는 상황인데 왜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시냐고, 그냥 원고를 조건에 맞는 출판사에 넘기시고 저자가 되셔서 10% 인세를 받는 게 훨씬 낫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미련을 못 버리는 눈치였다.

    요새 자영업 몰락의 곡소리가 신문지상과 방송에 연일 대서특필되고 1인 창조기업이니 잡셰어링이니, 청년인턴이니 뭐니 정부의 다급한 졸속 대응이 난리가 아닌데 내 주변의 지인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소리가 피부에 와닿는다. 자영업 몰락에는 구조적 요인이 있지만, 바로 내가 그 몰락하는 자영업자에 대열에 포함되는 것은 개인적 요인 때문이라고 본다.

    개인적 요인 가운데 상당 부분은 학벌이나 경력과는 무관하며 계획성과 관련되어 있다. (위 3명 중 2명은 소위 SKY 출신이고 다른 한 명도 가방끈이 굉장히 긴 양반이다.) 계획성이란 건 별거 아니고 초기에 현실성 있는 사업계획을 세운 다음 매월 들어오고 나가는 것들을 더하기 빼기만 잘하면 되는 것들이다. 미분적분이 아니라 사칙연산만 잘했어도 누가 봐도 안 될 사업에 뛰어들지 않거나 누가 봐도 안 될 전략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새로이 창업을 하시는 분들은 다음의 글을 꼭 읽고 실천하시기 바란다. 쇼핑몰 창업자를 대상으로 쓴 글이지만 소자본 창업자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내용이다.

    "창업준비생 가운데에는 사업계획서를 단순한 형식적 절차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굳이 글로 쓰지 않아도 감으로 자신이 알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좀더 충실하게 보완하라고 충고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계획서 만들 시간에 한 푼이라도 자금을 더 모으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보는 것이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고.

    이런 사람들은 실패하는 쇼핑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계획이 좋을수록 사업 성공의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사업계획서를 제대로 못쓰는 사람들을 보면 사업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의 사업계획서는 1%의 객관적 데이터와 99%의 주관적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명확하지 않은 계획을 가지고 아무리 많은 자금을 모아봐야 나중에 더 큰 빚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사업계획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창업준비생들이 내세우는 또다른 논리는 현실이 계획한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계획한대로 안될 바에야 사업계획서 작성에 그렇게 공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업계획서가 일회성 완료형 문건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업계획서는 일회성 완료형 문건이 되어서는 안되며 반복성 진행형 문건이 되어야 한다.

    계획이 아무리 치밀하다 하더라도 현실의 변화를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따라서 현실이 계획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현실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사업계획서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업계획서가 더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계획서가 글로 작성되어 있지 않으면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 사후에 명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말로는 실패의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오류 시정의 방법을 통해 경영 능력을 향상시킬 기회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계획서가 없는 경영은 감에 의한 경영이다. 감에 의한 경영은 적어도 수년 간의 현장 경험이 있고 게임의 법칙이 머리가 아니라 근육 속에 각인된 베테랑 운영자들에게나 가능한 얘기지 초보자인 당신에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 당신에게는 글로써 명확히 표현된 창업계획서가 필요하며 그래야만 앞으로 오류 시정의 방법을 통해 현실 감각을 높여가면서 보다 능숙한 경영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동대문3B 김성은의 나의 쇼핑몰 스토리> 중에서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