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0.02.10 23:52


0.

농담은 농도 짙은 진담의 준말입니다. 업무용과는 별도로 편집일지를 두 번 작성한다는 농담은, 사실 고백이었습니다.

1.
블로그는 내밀한 공간이자 소통을 목적으로 선언하는 광장의 일부입니다. 이곳에선 가난한 화가의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드러냄을 전제로 하는 혼자만의 그림처럼, 노출 욕구와 은닉의 기술이 교차되고 공적인 성격과 사적인 범위가 충돌하면서 균형을 맞춥니다.  

2.
블로그에 편집 후기를 쓰는 까닭은 이런 겁니다. 이를테면, 싸이월드의 허세셀카.txt 같은.

3.
출판에 관심이 있는 분도 '편집자'라고 하면 빨간펜을 들고 남의 소중한 글에 낙서나 하는 직업쯤으로 인식합니다. 인쇄소 분들과 혼동하시는 것은 약과지요.

4.
틀린 연상은 아닙니다. 단지, 앞에서 열거한 각각의 업무가 모두 '편집'이라는 행위 안에 속하는 편집의 일부일 뿐이지요.

5.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조금 더 풀어쓰자면 어떤 텍스트에 물성을 부여해 책이라는 형태로 가공하여 시장에 내놓는 사람입니다.

6.
《머니야머니야의 인터넷 돈벌기 특강》의 판을 넘기고, 출력기사님과 줄맞춤까지 확인한 다음 사무실을 나섭니다.

이끌리듯이 역까지 기어가 지하철을 탑니다. 그리고 마계도시 서울을 관통하는 인공적인 박동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새삼 환기하자면 《머니야머니야의 인터넷 돈벌기 특강》의 편집이 거의 끝났습니다. 이제 막 시작될 제작 업무와 밤중에 걸려 올지도 모를 사고 전화 모두 편집 업무에 수렴되지만, 어쨌든 저는 오랫만에 깊은 숨을 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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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자발적으로 타인의 어두움 안으로 침잠하는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과 당대를 직시하고 회의하는 고백에 대한 관찰이며 참여입니다.

8.
그리고 편집자는 최초의 독자이자 대중에게 유포하기 위해 수많은 갈림길에서 주저하는 판단자이고, 그 결과에 물성을 부여하는 가공자이며, 궁극적으로는 '책'에 대해 저자 이상의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9.
네, 책이 탄생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갈림길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판단해야 합니다.

10.
판단은 책임을 전제로 합니다. 

11.
그래서 저는, 두렵고 또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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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결이 있고, 격이 있으며 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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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야머니야님께 초고를 받고 소위 '느낌이 왔습니다'.
냉소적인 편집자를 자발적으로 끌어들이는 글은 드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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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재 가장 첨단이자 가장 밑바닥인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이렇게 '밥벌이'에 대한 치열한 모색과 들짐승의 움직임처럼 펄떡거리는 시도가 있는 줄은, 그제야 알았습니다.

15.
리니지 폐인이 아니라도, 극소수의 프로블로거가 아니라도, 피라미드 사기가 아니라도, 서글퍼서 차마 못 읽는 덧글을 올리는 게시판 알바가 아니라도 인터넷에서 돈 버는 방법은 있었습니다.

16.
재밌게 책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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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책의 결을 제대로 살렸을까요. 빛에 홀려서 저자의 의도를 왜곡하지는 않았을까요.  판관의 오만에 취해서 책이 간직한 다양한 함의들을, 행간 속에 감춰진 진의를 선명한 하나의 의미로 우겨 처넣진 않았을까요. 컷팅을 살린답시고 손을 잘못 대어 격을 떨어뜨리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진심으로 원고를 존중했을까요. 제가 바르게 판단했을까요. 바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18.
원고를 출력소에 넘기고 나면 불안함과 초조함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컴컴한 방 안에 누워 이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어둠에 질식할지도 모릅니다. 필경,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가 짧은 한탄과 함께 벌떡 일어날 것입니다. 민망하면서 진부하기까지 한 질문들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언제나 낯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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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책이 나왔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제목은 《머니야머니야의 인터넷 돈벌기 특강》입니다.

20.
책을 찬찬히 만집니다. 책등을 움켜쥐고 격하게 흔들어도 봅니다.

21.
종이들이 부딪치면서 새가 나는 것처럼 푸드득 소리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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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원 지하철에 올라섭니다.

23.
앞사람을 마주 보는 민망함을 면하고자 어깨를 움츠리고 서서 벽에 붙은 <시나공> 토익 광고를 몇 번이고 찬찬히 읽습니다. 

24.
만약에 지하철에서 제가 편집한 책을 읽는 분을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한 번 뵌 것도 같은데, 졸다가 꿈을 꾼 것이겠죠.

25.
책에 관계된 사람과의 만남은 독서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26.
그래서 《머니야머니야의 인터넷 돈벌기 특강》도 제목 선정부터 시작해서 편집 후기에 쓸 만한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많았는데, 그냥 묻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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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깊은 숨을 뱉습니다.

28.
책이 출간되기 위해서는 출판 전 과정에 걸친 무수히 많은 분들의 노고가 필요합니다.

고작 편집자이지만,
그 모든 분들께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합니다.  


※ 오타 발견: 36페이지에서 '9번 항상 신선한 블로그를 유지하자' 부분의 맨마지막 줄 中
'지캬야 → 지켜야'
 알려 주신 예문당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