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0.05.28 10:54
 

flickr-carloscapote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심리학자가 자신의 극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은 체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삶의 의미가 뚜렷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우슈비츠에서도 삶의 의미가 있는 사람은 살아남았고 의미를 잃은 사람은 오래 못버티고 죽었다고 합니다. 니체를 인용한 "살아가는 이유가 확실한 사람은 어떤 어려운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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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 Search for Meaning


창업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칙이 통용된다 할 수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회사를 창업해서 생존 기반을 마련하고 마침내 성공에 이르는 과정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존재 의미(요새는 비전이라고 하지요)가 뚜렷한 기업이 더 탁월한 업무 수행력을 보인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삶의 의미가 있는 사람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듯이, 기업도 비전이 있어야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는데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이윤을 넘어선 가치를 추구하는 비전 기업은 오래 가고, 단지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오래 못간다는 내용으로 대박을 낸 책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입니다.

국내에 기업비전 선포 유행을 불러온 책


80년대 경영학 책을 보면 기업의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만, 21세기 들어와서는 기업도 개인처럼 체면을 생각하고 명목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빅터 프랭클에 따르면 인간은 의미를 찾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만든 법적 인격체로서의 기업도 점차 의미를 찾는 존재가 되어가는 듯합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사기꾼이 자기집 가훈이 정직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기업들도 실제로는 이윤의 극대화가 목적인데도 겉으로는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같이 그럴듯한 구호가 자기 회사의 비전이라고 표방하고 있을 뿐이죠. 삼성이 90년대 후반에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기업광고를 냈다가 국민적(?) 반발을 불러일으킨 다음에 '또하나의 가족'이라는 슬로건으로 바꿨지만 이 말을 순진하게 믿는 삼성 직원은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대기업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기업 비전이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말이 있듯이 개개인은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해당사자들의 집단적 이익을 보장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자본의 법칙을 거슬러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것이 장기적 이익에 부합한다 하더라도 요새 주식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주주는 많지 않기 때문에 단기적 목표 수익을 내지 못하는 CEO는 생존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Good to Great>에 나왔던 비전 기업들도 21세기 들어와서 많이 망가졌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요.

하지만 대기업과 달리 개인 사업에서는 일의 의미와 인생의 의미를 연결시킬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출판처럼 창의성이 바탕이 되는 일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업종에서보다는 일 자체가 주는 만족이 있기 때문에 일에서 의미를 찾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출판에서도 대박과 베스트셀러를 노리며 돈에 목매는 곳들이 꽤 있습니다만, 일에서 의미를 추구할 수 있다면 큰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으며, 어지간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변을 봐도 꽤 어려운 출판사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는 걸 보면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빅터 프랭클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