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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부에서는 준비라 부르고, 외부에서는 침묵이라 읽는다
    e비즈북스의다른책들/온라인 위기관리 2011. 6. 22. 12:05

    어제 저녁 무렵부터 소셜미디어상에서 A사에 관련한 악성 루머가 떠오르고 있다. 제품 기술에 관한 이야기인데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담당하는 조 대리는 이와 관련해 전사적으로 관련 부서들에게 이메일로 모니터링 결과와 예측되는 내용들을 정리해 공유했다. 이윽고 홍보실, 마케팅팀, 법무실, 생산팀, 기술팀, 영업팀 등의 실무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다들 이 루머가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궁금해 했다. 조 대리는 최초 유포자들로 추정되는 몇 명의 기술 전문 블로거들을 지목했다. 그들 중에는 몇 년 전 A사를 퇴사한 기술 연구원도 들어있었다. 기술팀에서 의견을 이야기한다. “사실 지금 도는 이야기들이 맞는 이야기에요.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약간 부풀려진 내용들이 있어서 그게 문제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법무실에서 사내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담당자가 이야기한다. “만약 이 OOO블로거가 회사에 재직 당시 취득한 정보로 이런 포스팅을 했다면 기업비밀 누설 등으로 소송을 걸 수는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들 생각하세요?” 홍보실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이런 루머가 다 떠돌아 다니고 있는데 소송을 해보았자 그 시간이 지나가면 루머도 사라지게 되겠지요.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요. 홍보실에서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해 좀 정리해주세요. 너무 기술적이라서 홍보실도 감이 안 오네요.”

    관련 부서 담당자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한다. 시간이 없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는데도 미팅 시간은 길어지고 결과가 정리되지를 않는다. 일단 사장에게는 정리된 의견을 가지고 올라가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 결론이 정해지지 않는 거다.

    조 대리 휴대폰으로 대행사들이 자꾸 전화와 문자를 해 온다. ‘루머가 계속 커지고 있어요. 관련 전문가들은 물론, 소비자 단체와 소셜미디어 언론 쪽에서도 계속 멘션들을 하고 있어요. 빠른 조치가 필요합니다” 조 대리는 회의에 참석한 여러 담당자들에게 소셜미디어가 일단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달라 채근을 했다.

    홍보실에서는 “일단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건 어때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 쐐기를 박으면 조금 잦아 들지 않을까요?”한다. 생산과 기술 담당자는 “근데 그게 사실이거든. 그래서 딜레마인 거지…” 영업 담당자는 “그래도 계속 이렇게 기다릴 수는 없죠. 이제 대리점 쪽에서도 자꾸 문의가 오기 시작하는데요. 일단 진화 작업은 나서야 해요”한다. 소셜미디어 조 대리는 “무엇이라도 좋으니 빨리 합의점을 찾아서 제게 알려주세요. 저희는 일단 준비하고 있겠습니다.”하고 사무실로 뛰어 내려왔다.

    ‘누가 빨리 개입할 줄 몰라서 개입 안 하는 건가? 개입을 하더라도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준비가 돼야지 무조건 개입해서야 되겠어?’ 조 대리는 한숨을 쉬면서 소셜미디어 모니터링 결과들을 업데이트한다. 상황이 상당히 심각하다. 지금 개입을 해도 이미 늦었다는 느낌이 든다.

    마케팅팀장이 전화를 걸어와서 일단 공식 입장을 내자고 한다. 조 대리가 어떤 공식 입장을 내야 하냐 물어 보니 팀장은 일단 상황을 알아보고 빠른 시간 내에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하라 한다. 조 대리는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으면 벌써 어제 저녁 늦게라도 했었어야지 다음 날 오후가 되는 지금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면 효과가 없다는 의견을 이야기했다. 팀장은 다시 논의해보고 연락 주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조 대리는 ‘준비도 안 되니 개입하고 싶어도 개입을 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일단 모든 준비를 끝내고 개입 시기를 조정하는 시스템적 접근은 언제쯤 가능할까? 의사결정과 준비 프로세스가 이렇게 길어서 어떻게 제대로 된 개입을 해 실행을 하나…”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 때도 준비 없이 시간이 간다.

     flicker = h.koppdelaney

    준비하고 개입할 타이밍을 재는 것은 상당히 전략적인 대응 방식이다. 하지만, 개입의 시간을 따지기 전 제대로 된 준비조차 힘들다면 분명 문제다. 위기 시 기업이 한번의 외부 개입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고 오랜 결정의 시간들이 소요되는 법이다.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이란 이 준비의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험된 체계다. 기업 위기관리 시스템이 부실하거나 부재한 기업들은 항상 개입의 타이밍을 놓친다. 더 큰 문제는 준비된 상태에서 타이밍을 재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준비가 되지 않아 타이밍을 허망하게 흘려 보내는 경우가 문제다.

    일단 위기가 지나가면 위기관리를 담당했던 실무자들은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가?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략에 근거’해 ‘적절한 타이밍’에 ‘준비된 개입’에 성공했는가? 아니면 ‘준비된 상태’에서 ‘적절한 타이밍’을 찾으면서 ‘전략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 두 가지 사례라면 이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음을 나타내준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준비된 개입에 실패하는 경우들이 더 많다. 개입을 위한 준비에 이미 실패한 경우들이다. 개입을 해야 한다는 전략이 섰음에도 타이밍만 바라볼 뿐 준비를 완벽하게 하지 않거나 못한다는 건 문제다. 위기 발생 시 CEO가 “일단 조금 더 두고 보자!”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모든 대응 준비를 한 채) 만반의 경우에 대비하면서 개입을 준비해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CEO의 그런 이야기를 “일단 시간을 보내면서 향후 추이를 보기만 하자!”라 해석해서는 안 된다.

    전략적으로 타이밍을 찾으면서 개입하지 않는 경우와 그냥 타이밍을 흘려 보내는 것은 분명 다르다. 첫째, 전략적으로 완벽하게 준비되었는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둘째, 준비된 상태에서 타이밍을 찾았는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셋째, 개입을 하건 하지 않았건 그것이 준비된 그대로였는가 하는 것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답변이 모두 예스라면 그 시스템은 위기관리를 위해 이상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입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전략적 옵션이지만, 준비는 전략적 기본이다. 준비 여부는 시스템의 품질을 나타내는 지표다.

    준비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이 하나 있다. 준비하면서 허둥대다 타이밍을 놓쳐 버리면 이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많은 이해관계자들은 해당 기업이 일부러 ‘침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타이밍을 흘려 보내는 것은 회사가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부정적 이야기들을 무시하고,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셈이다. 소셜미디어상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 회사는 왜 침묵하는가?’하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소셜 퍼블릭들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만약 전략적으로 준비된 채 적절한 개입의 타이밍이 스스로 사라져 버린 경우에는 소셜 퍼블릭들이 해당 논란을 무시했다거나, 아랑곳 하지 않았다는 느낌까지는 가지지 않는다. 많은 소셜 퍼블릭들이 위기가 지나간 후에 ‘만약 개입했었으면 그 회사가 더 불리했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상당히 결과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런 소셜 퍼블릭들의 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논란을 창조하는 사람들이고, 논란을 성정시키고, 논란을 나중에 소멸시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위기관리를 잘했다 또는 전략적으로 했다 하는 평가를 내리는 경우는 정말 위기관리가 성공적이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한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이 오기 전에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그 스피드가 곧 시스템의 품질이다. 항상 기억하자.

                                                                                       
     <온라인 위기관리>출간예정.정용민.송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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