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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는 어떻게 성공했는가e비즈북스의다른책들/1_대한민국IT史100 2011. 7. 1. 11:45
싸이월드가 문을 열다.
1999년 9월 1일에 커뮤니티 서비스 싸이월드(www.cyworld.com)가 오픈했다. 지금은 한국 최고의 커뮤니티 사이트로 성장하면서 각종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싸이월드지만 한 동안은 작은 사이트에 불과했다. 싸이월드가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인 ‘미니홈피’를 선보인 것은 2001년 9월 17일. 미니홈피는 기존의 커뮤니티를 획기적으로 바꾼 개념이다. 가장 큰 변화는 카페에 모여 집단으로 활동하며 남들이 올린 자료를 보던 커뮤니티가 개인 위주의 1인 커뮤니티, 자신의 공간에서 보여주는 1인 매체 문화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프리챌의 유료화 파동 이후 급성장한 뒤에 SK커뮤티케이션즈에 합병되면서 그 힘이 더욱 커졌다. 이제는 싸이월드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미니홈피를 선보인 지 만 3년 만인 2004년 9월에는 싸이월드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서비스 시작도 9월, 미니홈피 시작도 9월, 1000만 돌파도 9월이니, 9월은 싸이월드와 인연이 깊은 달이라 할 수 있다.
프리챌 지고 싸이월드 뜨다
싸이월드가 미니홈피 1위를 하기 전에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커뮤니티 사이트는 다음 카페와 프리챌(www.freechal.com), 세이클럽 등이었다. 다음 카페는 동아리 성격을 지닌 반면 세이클럽은 싸이월드와 거의 모양이 같은 미니홈피를 서비스했다. 특히 프리챌은 충성도 및 아바타 등의 다양한 아이템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던 중이라서 향후 기대되는 커뮤니티였다. 그러나 프리챌은 2002년 11월 14일에 유료화를 밝히고 이를 기점으로 몰락하고 만다. 사실 프리챌 유료화의 문제는 유료화 자체가 아니라 접근방법의 문제였다. 프리챌이 기존의 서비스를 그대로 무료로 유지하면서 신규 기능을 내세우고 새로 나온 기능만 유료로 제공했어도 유료화는 충분했던 상황이었다. 그만큼 프리챌의 사용자 충성도가 높았고, 유료화에 대한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이미 프리챌은 커뮤니티 사이트로는 드물게 월 13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프리챌은 유료화를 발표하면서 유료화되지 않는 커뮤니티의 자료는 모두 삭제하겠다고 말한다. 이 발표가 프리챌 유료화에 대한 반발을 불렀다. 커뮤니티라는 것은 수 년 동안 동아리 지기의 땀과 동아리 회원의 협력으로 일군 결과물이다. 또한 이런 결과물 덕분에 커뮤니티 사이트가 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돈을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자료를 삭제하겠다는 프리챌의 고압적인 자세는 회원들의 극렬한 반발을 불렀고, 안티프리챌 사이트를 등장시켰으며 많은 커뮤니티가 떨어져나가는 계기를 제공했다.
프리챌 유료화 반발 운동은 생각보다 거셌고 상대적으로 싸이월드가 가장 큰 덕을 봤다. 싸이월드의 클럽 개설 수가 2000개 이상 증가한 것이다. 싸이월드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던 세이클럽, 카페24 등도 덕을 봤다. 결국 프리챌 유료화는 시장 1위인 프리챌에게는 몰락의 시작이 된 반면 싸이월드에게는 시장 장악의 전기가 된다.
[잠깐] 아이러브스쿨의 부상과 몰락
인터넷 거품 때 가장 유명한 커뮤니티 서비스 중 하나는 동창생 찾기 서비스인 아이러브스쿨(www.iloveschool.co.kr)이다. 1999년에 설립된 아이러브스쿨은 한동안 국내 인터넷 서비스에서 최고의 화제였다. 친구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10년 만에 아무개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술자리의 기본 안주였을 정도였다. 신문에는 연일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만난 동창들이 불륜관계로 발전한다는 기사가 넘쳤다. 그만큼 아이러브스쿨은 화제의 사이트였다.
아이러브스쿨은 개방성만 추가해 인맥교류 사이트로 전환했다면 최근 성장한 미국의 페이스북처럼 멋진 SNS 서비스로 발전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그러나 동창생에서 머문 것이 패인이 되었다. 일관된 정책을 펴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2000년에 야후로부터 700억 원의 인수 제의를 받을 정도로 잘 나갔을 때 팔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 되었다. 결국 2001년에는 119억 원을 출자한 서울이동통신에 인수되지만, 2001년 한 해 동안에만 3차례나 경영권이 바뀔 정도였으니 서비스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아이러브스쿨은 창업자인 김영삼 사장과 정현철 금양 사장, 서울이통의 박차웅 사장, 새로 부임한 김상민 사장, 현명호 사장 등이 얽히고설키는 경영권 싸움에 휩싸이면서 몰락을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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