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1.09.08 10:07

이야기 공무원, 양주시 농업에 이야기옷을 입히다

2009년  11월  26~27일 경기도 화성 라비돌리조트에서 농업 비즈니스코칭기법 연수가 있었다. 시군농업기술센터 과장 17명, 담당자 21명, 농업기술원 4명이 참석한 프로그램에 강사로 초청을 받아  ‘농촌이야기 마케팅’이라는 콘셉트로 이야기농업을 강의했다. 우리 농업에 스토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영상자료와 현장사례를 중심으로 한 강의였다. 양주에서는 정순희 과장과 팀장 한 명이 함께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인연은 시작되었다.

생산, 가공, 유통에 이야기옷을 입혀라!“그렇지! 바로 저거야! 무릎을 탁 쳤어요! 필(feel)이 꽂혔고, 뭔가 될 것 같았어요.” 어떤 사람과의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 한토막이다. 살아가면서 즐거워하는 일 중의 하나는 다른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삶과 일에 적용하여 결과가 좋아서 생각과 뜻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감응하는 것으로 갈무리된 것이니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나에게 그런 충만한 기쁨을 준 사람이 있다.

경기도 양주 농업기술센터의 정순희 농업진흥과장

1954년생으로 공직생활만  38년째다. 포천과 양주에서 번갈아 근무하다  1990년부터 양주 농업인들과 애환을 함께 나누고 있다. 2005년 양주시 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장으로 승진한 정 과장은 경기도 최초 생활지도직 여성 출신으로 사무관에 올랐다.  IT와 사이버농업과 스토리는 일맥상통한다. 농촌지도사업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고민하던 그녀는 이야기농업의 가능성을 깨닫고 이듬해부터 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그녀의 이야기 공무원으로서의 활동 보폭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양주시청 업무개선 사례 보고회
2010년  1월, 양주시청 회의실에서  38명의 양주시 관내 과장들이 모여 업무개선 사례 보고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정순희 과장은  “양주의 명품으로 떠오른 딸기묘를 그동안 외지에서 구입해서 썼지만, 이제부터는 양주에서 키우자”라는 콘셉트로 보고를 했다. 딸기묘는 하나에  250원 하는데 양주시 관내에서 해마다 1백만 주가 필요하다. 돈으로 치면 어마어마한 액수다. 여느 이른 아침회의 때와 같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보통 PPT로 작성하여 화면을 넘겨가면서 보고를 한다. 거의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정 과장은 첫 페이지에 제목을 펼쳐보이고는, 두 번째 페이지는 딸기육묘 개선사항을 요약했다. 이어서는 3분 28초짜리 이야기가 가득한 동영상으로 보고하였다. PPT 자료 단 2장과 UCC 하나로 보고를 한 것이다. 처음 벌어지는 상황전개에 회의장은 순간 웅성거렸지만, 밝고 명랑한 팝송이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장면마다 알아듣기 쉬운 자막이 깔리면서 웅성대던 분위기는 점차 잔잔한 감동으로 바뀌었다.

보고회가 끝난 후 참석자들로부터  “역시 농업기술센터 과장은 다르네”라는 시샘 반, 격려 반의 호평을 받았다. 색다른 발상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친 것이다. 늘 근엄하고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미팅의 분위기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양주시 사이버농업인 연구회 창립
2010년 3월 24일, 양주시 사이버농업인연구회가 창립총회를 하고 공식 출범했다. 이야기농업과  IT기술 접목의 필요성을 절감한 정 과장의 판단으로 양주시 농업인들은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다.연구회는 지식정보화 사회를 맞이하여 나날이 발전되고 있는 정보통신기기와 인터넷을 이용한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한다. 영농기술과 경영유통정보 등 제반 농업정보의 교환 및 농산물 전자상거래를 통하여 회원의 생산성 향상과 수익증대를 꾀하며, 사이버커뮤니티 활성화를 목표로 20명의 양주 농민들이 모여 왕성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전자상거래과정 전문교육, 원격재택화상교육, 선진농업인   현장체험,  SNS마케팅 세미나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양주 백씨가문 내림술 스토리
양주시 남면 매곡리에 중요민속문화재 제128호 백수현 가옥이 있다. 조선시대 마지막 국모였던 명성황후 민비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은신처로 고옥(古屋))을 옮겨 지은 집인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시해 당한 아픔이 배어 있는 집이다.

그 시대 정3품으로 지내던 백수현 선생의 증조부 백낙규 선생 때부터 내려오던 백씨가문의 내림술의 이야기다. 백수현 선생의 어머니는 수라간 나인으로 일했고, 그곳에서 배우고 익힌 솜씨를 집에서 재연, 그 기술이 접목되어 현재까지 내림술로 내려오고 있다. 백씨가문의 내림술은 기존의 전통 가양주와는 달리 밀누룩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벼누룩을 띄운 후 법제하여 밀누룩:벼누룩=1: 1의 비율로 혼합하여 술을 제조한다. 기존 전통 가양주보다 색깔이 맑고 향이 좋으며 도수가 높다.

백씨가문 내림술 시음회(출처:의양신문)

어느 날 이곳에 살고 있는 80대의 백수현 씨가 정 과장을 찾아왔다.  “곧 나는 죽을 몸, 그리되면 이 내용이 사라질지 모르니 모든 것을 정 과장님에게 위탁하고 싶어요. 제조방법, 상표, 특허, 체험 등 모든 것을 헤아려 구현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정 과장은  ‘백씨가문 내림술’ 빚는 방법을 재현했고, 이야기로 만들었다. 가문 대대로 집에 내려오는 맛난 술, 명성황후의 못다 이룬 꿈, 아픔이 녹아 있고 우리곡물로 맛있는 술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콘티를 짰다. 그리고 도시민 가양주집에서 빚는 술 체험 프로그램으로 정착을 시켰다. 이 일련의 이야기들은 시? 군 사업결과 발표회에서 동영상과 함께 시장에게 보고되었고 양주시장은 우수사례로 선정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야기 공무원
농업직 공무원으로 지난 겨울의 구제역 파동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모진 시간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신 사건이다. 그 과정을 일선 현장에서 온몸으로 겪으면서 느낀 소회를 글로 써서 MBC 라디오 양희은의 여성시대에 보냈더니 채택되어 방송을 탔다. 아무나 글 보낸다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아니다. 글은 글을 쓰는 사람 마음의 거울이라고 했다. 마음이 절절하면 글도 절절하고, 마음이 따뜻하면 글도 따뜻해진다.

2010년을 돌이켜보면서 정순희 과장은 활기차 보인다. 이제는 확신을 가지고 농민들에게 이야기농업을 강조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라! 네 책임이다”,  “당신의 힘이다. 찾아오게 하라” 입버릇처럼, 주문처럼 달고 다닌다. 생산만이 농업이라며 Story로 감성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그녀는 양주 관내 농업인들과 여전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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