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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의 인터넷 개통일을 전길남 박사님도 모르셨네요
    e비즈북스의다른책들/1_대한민국IT史100 2012. 5. 30. 13:39

    <대한민국 IT사 100>에 이 장면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어서 당연히 전길남 박사님도 아시는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걸까요?

    http://media.daum.net/digital/newsview?newsid=20120530110924054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 전자기술연구소(KIET, 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수십 명의 눈길 속에 키가 하나씩 눌러지고 마침내 화면이 뜨자 연구원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사이의 인터넷이 개통된 것이다.
    1982년 3월 2일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의 중형 컴퓨터와 당시 구미에 있었던 전자기술연구소의 중형컴퓨터를 1200bps 전용선으로 연결했다. 이 전산망을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이라 불렀고 이것이 한국 전산망의 시작이자 한국 인터넷의 시초다. SDN이 한국 인터넷의 시초인 이유는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는 TCP/IP 및 FTP, Telnet 등의 응용 프로토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5월 15일, 마침내 서울과 구미 사이가 관통되면서 대한민국은 인터넷 원조인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인터넷 나라가 되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도 아닌 한국이 세계 두 번째 인터넷 국가가 된 것은 전길남 박사 덕분이다.


    <대한민국 IT史 100>에서 발췌


    참관인이 여러명 있었으니 누군가는 기억할 것 같은데 교차 검증을 해봐야 할 것같습니다. 5월15일이면 스승의 날이니 기억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대한민국 IT사 100>의 저자이신 김중태 원장님께서도 한국의 IT 기록들이 부정확한 것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이런 역사적인 날도 이렇습니다. 이 책에서도 날짜같은 것이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관계자분들께서는 그런 부분이 있으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책 내용을 계속 인용해보죠.

    폐쇄적인 미국 인터넷을 세계인의 인터넷으로 바꾼 SDN
    1983년에는 전길남 박사가 카이스트로 자리를 옮기면서 카이스트도 1983년 1월부터 SDN에 합류했다. 1983년 11월에는 SDN의 관리를 위해 카이스트에 네트워크 운영센터를 설치했다. 1987년에는 20여 개의 기관이 SDN에 연결되었는데, 규모가 커지면서 카이스트에 설치되었던 네트워크 운영센터는 1987년 8월에 KAIST 외에도 한양대, ETRI, 데이콤 등 4개 기관으로 확대․설치되었다. 규모에 걸맞게 SDN을 통한 정보교류도 점점 활발해지면서 한국의 정보교류망 역할을 했다.


    1983년 8월에는 네덜란드의 MCVAX, 10월에는 미국 HP연구소에 연결되면서 미국과도 연결되었다. 그러나 미국 연결이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당시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의 보물창고였기 때문에 라우터 하나도 구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라우터는 흔한 장비지만 당시에는 미국과 동맹국을 맺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부 국가인 영국, 캐나다 정도에만 제공되었고, 공산권과 인접한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북한과 적대국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미국 정부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라우터 판매를 불허했다. 연구비가 없기 때문에 라우터 장비를 만들 수도 없었고, 결국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라우터 기능을 구현해 SDN을 미국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한국의 SDN은 폐쇄적인 미국의 인터넷 정책을 세계인의 인터넷으로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도 제공했다. 1986년 SDN 연구원은 X.25프로토콜을 통해 전용선 없이도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래서 미국 NIC에 IP주소 할당을 신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NATO 가입국만 사용할 수 있었기에 그 외 국가의 인터넷 IP주소 할당은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을 운영하던 미국 과학재단은 인터넷을 세계에 개방하여 운영하기로 정책을 바꾸었다. 아쉬운 것은 정작 개방 정책의 혜택을 먼저 누린 곳은 한국이 아닌 독일, 일본, 호주 등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비용을 이유로 1990년에야 직접 연결할 수 있었다. 1년 비용이 20만 달러(당시 2억 원)인데 그때까지도 인터넷의 필요성 자체를 이해 못한 한국 정부는 이를 지원하지 않았다. 결국 인터넷 기술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한 한국통신이 이 비용을 부담했다.

    1990년 4월에는 카이스트에서 인공위성을 통해 하와이 대학과 56Kbps 전용선으로 연결했는데, 이를 위해 하나(HANA) 기구를 설립하고 하와이와 연결된 망을 ‘HANA망’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국내 인터넷망은 SDN으로 부르고, 해외 인터넷에 연결된 망은 하나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 인터넷이 세계와 연결된 것이다.


    참고로 한국 인터넷 개설 역사의 연표입니다.


    [연표] 한국의 인터넷 개설 역사

    1982년: 3월 2일에 SDN 망 연결

    1982년: 5월 15일에 텔넷 로그인 성공

    1983년: 1월에 ‘KAIST’가 SDN에 연결됨

    1983년: 8월에 네덜란드와 연결

    1983년: 10월에 미국 HP연구소와 연결

    1983년: 11월에 SDN의 관리를 위해 ‘KAIST’에 네트워크 운영센터를 설치

    1990년: 4월에 하와이와 연결되며 하나망 구축



    대한민국 IT사 100

    저자
    김중태 지음
    출판사
    e비즈북스 | 2009-10-2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한국은 어떻게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개통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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