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0.11.04 14:31
2002년 겨울에 사람들은 질문형 광고 하나를 보게 된다. ‘핫이슈를 왜 뜨거운 감자라고 말할까?’ ‘산타는 왜 빨간 옷을 입을까?’와 같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 광고를 보면서 ‘맞아. 산타는 정말 왜 빨간 옷을 입는 거지?’라고 궁금증이 생겼고, 한 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 광고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광고에 등장한 서비스는 초히트 상품이 된다.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가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이다.

지식인은 그때까지 일부 마니아층에서만 인기가 있던 네이버를 포털 1위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 되었다. 지식인이 인기를 끌자 네이버는 봉태규라는 젊은 배우를 기용하여 ‘극장에서는 왼쪽 팔걸이가 내 것일까? 오른쪽 팔걸이가 내 것일까?’와 같은 질문형 광고를 계속 집행했고, 내공을 건 질문과 답변은 1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네이버는 지식인과 지식검색으로 국내 포털 1위를 달성한다

네이버의 ‘지식iN(지식검색)’은 서비스 시작 반년 뒤에 이용자가 40만 명을 돌파하고 2003년 5월에는 게시물 100만 개를, 다음 해에는 1000만 개를 돌파한다. 초기에는 학문적이거나 호기심 어린 질문이 많았지만 점차 질문의 종류는 다양해져서 ‘손오공과 슈퍼맨 중 누가 더 힘이 셀까요?’와 같은 황당한 질문이 등장하고, ‘숙제 좀 도와주세요.’를 거치더니 나중에는 ‘내일 데이트 하는데 어떤 옷을 입고 갈까요?’ ‘강남역 근처의 맛있는 중국집 좀 부탁해요’라는 개인 일상에 관한 소소한 것을 묻는 서비스로 변화한다.
‘네이버’는 초기에 올라오는 질문에 빠르고 정확하게 대답하기 위해 500명의 전문가를 준비했으며, 네티즌들의 질문과 답변에는 내공을 걸게 함으로써 내공 정도에 따라 하수나 평민, 초인, 신에 이르는 8단계 등급으로 나누었다.

지식인보다 앞서 시작한 디비딕은 인기 못 끌어
사실 지식인은 '디비딕'을 보고 따라 한 서비스였다. 2000년 10월에 인터넷한겨레가 지식검색 서비스인 '디비딕(dbdic, www.dbdic.com)' 를 시작했다. 디비딕은 계속 성장하며 2003년에 엠파스로 넘어갔으나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반면 2년 후인 2002년 10월에 네이버에서 시작한 지식iN 서비스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로 급성장하게 된다. 이에 자극받은 엠파스는 디비딕을 인수한 후에 새박사인 윤무부 교수를 앞세워 맞광고전에 나섰으나 결국 따라잡지 못했다.

지식검색 서비스를 먼저 제공한 곳은 디비딕이었지만 달콤한 과실은 먼저 치고 나가 광고전에서 이긴 네이버가 가져간 것이다. 심지어 엠파스가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를 베낀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꽤 있을 정도다. 디비딕을 만들었던 한겨레신문이나 이를 인수해 네이버와 경쟁했던 엠파스로서는 참으로 아쉬울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물론 네이버 지식인 이후에는 세이클럽, 프리챌, 네이트닷컴, 야후, 다음 등에서도 지식검색이나 유사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이미 치고나간 네이버 지식인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네이버 지식iN 에 밀려 고전하던 엠파스는 2005년 5월에 ‘열린 검색’ 서비스를 시작했다. 열린 검색은 검색 결과에 ‘네이버’ 지식인 게시판의 글을 비롯하여 경쟁 포털사이트의 게시물에 있는 것까지 검색하여 결과를 보여주는 서비스다. 열린 검색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네이버는 자사가 어렵게 쌓은 데이터베이스를 무단으로 가져가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반박했고, 엠파스는 네티즌이 쌓은 게시물인데 왜 이를 검색하지 못하고 독점하느냐고 네이버를 공격했다.

열린 검색은 네티즌 사이에서도 폐쇄적인 네이버 정책에 대한 논쟁거리를 제공하면서 양 포털의 기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2006년 6월 경 엠파스는 네이버의 지식iN 검색 결과를 ‘열린 검색’에서 제외시킴으로써 둘 사이의 갈등을 일차 해소시킨다. 그러나 ‘열린 검색’은 인터넷의 개방성과 기업의 자산보호에 관한 경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네이버 지식인은 국내에서 네티즌들에 의해 질문과 답변이 이루어지는 참여형 서비스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자료가 부족한 한국에 적지 않은 자료를 구축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답변에 대한 신뢰를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 없는 질문과 광고성 답변의 증가로 스팸성 게시물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문제에 봉착했다. 또한 검색으로 성공한 네이버가 정작 지식인 서비스의 검색을 막고 있다는 점도 풀어야할 숙제 중 하나다.

전문 지식은 전문 사이트와 커뮤니티에서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가 지식에 대한 질문답변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직도 전문적인 정보는 전문 커뮤니티에서 얻는 것이 효과적이며, 궁금한 것도 전문 커뮤니티에서 묻고 답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일반인이 찾는 커뮤니티는 아니지만 기관에서 운영하는 정보 사이트도 있다. 2000년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진행한 학술논문DB구축사업을 토대로 문을 연 ‘학술연구정보서비스(www.riss4u.net)’는 약 14만 편의 논문을 시작으로 꾸준하게 각종 학술지 논문이 등록되고 있는 사이트로, 국내 유명 학위 논문 요약 정보나 초록, 원문까지 제공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이 1991년부터 제공해온 종합뉴스데이터베이스 ‘카인즈(www.kinds.or.kr)’에서는 과거 국내 언론기사를 모두 검색할 수 있다. 1991년 이후 자료는 주요 신문, 방송, 주간지, 인터넷신문 등의 기사를 텍스트로 검색할 수 있으며, 그 이전 자료는 PDF 등의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잠깐] 최초의 지식검색은 아나이스
그러나 한겨레 디비딕이 최초의 지식검색은 아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한국 최초의 지식 검색 서비스는 nKorea의 ‘아나이스’로 알려졌다. 때문에 한겨레에서 지식검색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아나이스 인수를 희망했는데, nKorea에서 인수를 거부하자 한겨레가 아나이스 서비스를 모방해 디비딕을 만든 것이다. 아나이스처럼 네티즌끼리 질문하고 답변하는 사이트로는 애스크 존이 있고, 전문가가 답변해주는 엔위즈, 엑스퍼트. 마이라스 등도 있었다. 해외 사이트로는 www.askme.com, www.abuzz.com, www.expertcentral.com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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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중태 (e비즈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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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0.10.27 16:29
삼보를 시작으로 한국의 PC산업 출발하다.
1980년 7월 2일. 이용태 씨를 비롯한 7명의 젊은이들이 자본금 1000만 원으로 삼보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그렇게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의 작은 사무실에서 국내 PC산업이 출발했다. 이후 삼보엔지니어링은 회사 설립 6개월 만인 81년 1월에 국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SE-8001을 발표하면서 컴퓨터 전문업체로 성장한다.

삼보는 1981년 11월에는 캐나다에 PC를 수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82년에는 8비트 애플 호환기종인 ‘트라이잼20(Trigem 20)'을 개발한다. 또한 일본 엡손과 제휴해 프린터를 공동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트라이젬20은 사실상 국내에 PC(IBM-PC가 아닌, 개인용 컴퓨터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PC)라는 제품을 개인에게 보급하는 첫 번째 상용제품이나 마찬가지다. 트라이젬20은 꽤 많은 수가 팔렸고, 이에 힘입은 삼보는 지면광고까지 실시한다.


삼보컴퓨터의 82년 제품인 트라이젬20. 사실상 PC보급의 견인차 역할을 한 제품이다

광고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트라이젬20은 본체 가격만 42만 9000원이었다. 여기에 저장장치, 프린터 등의 주변장치를 갖추면 그 금액은 몇 배로 뛴다. 본체 가격만 해도 당시 대학 1학기 등록금에 해당하는 금액이니 중산층이 구입하기는 쉽지 않았던 제품이다.

여기서 사진 설명을 잠깐 하자. 오른쪽 위를 보면 네모난 상자 두 개가 보인다. 이것은 5.25인치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다. 하지만 제품의 가격이 너무 비싸 실제로 5.25인치 플로피드라이브를 구입해 사용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80년대 애플 호환기종을 개인용으로 구입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테이프드라이브장치를 구입해 썼다.
왼쪽 아래의 흰 상자가 바로 테이프드라이브 장치다. 피아노건반처럼 생긴 단추 위에 오디오테이프가 들어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에 삼보 트라이젬 외에도 애플 호환기종을 사용했던 사람은 대부분 가격이 저렴한 테이프드라이브를 저장장치로 썼다. 따라서 64KB도 안 되는 작은 프로그램을 하나 실행시키려 해도 테이프가 다 감기는 몇십 분 동안 기다려야 했다.

프린터는 EPSON MX-80 F/T III 제품이다. 프린터 종이 좌우를 보면 구멍이 연속적으로 뚫려 있는데, 당시 프린터는 종이를 똑바로 위로 밀어내기 위해 좌우에 구멍이 뚫린 연속용지를 사용했다. 요즘 신용카드를 출력하는 용지처럼 좌우에 구멍이 나 있고 연속으로 이어진 용지를 당시 프린터에서 사용했던 것이다. 만약 구멍이 뚫려있지 않은 종이를 사용하면 올라가다가 기울어져 출력을 망치곤 했다. 또한 낱장공급장치가 없었기에 여러 쪽을 인쇄하려면 연속용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보급의 선두주자였던 청계천 상가들
1980년대 초반에 국내 PC는 주로 삼보컴퓨터 및 애플의 국내 총대리점인 ‘한국소프트웨어’와 ‘엘렉스 컴퓨터’에서 공급했는데 한국소프트웨어와 엘렉스는 나중에 삼보컴퓨터에 인수된다. 이들 3사 외에 업체로 희망전자, 홍익컴퓨터, 로얄컴퓨터, 에이스컴퓨터, 골든벨, 한국마이컴, 브레인컴퓨터, 석영전자 등이 조립PC를 판매하는 업체들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이 청계천 조립1세대로 국내에 수입되던 컴퓨터 및 조립PC를 학생들에게 공급해주던 역할을 했다.
당시 PC공급을 청계천의 작은 가게들에 의존했던 이유는 대기업이 끼어들기에는 시장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광고를 보면 1982년부터 1983년 말까지 삼보컴퓨터는 트라이젬 시리즈를 6000대 가량 판매했으며, 이 중 개인이 구입한 것이 1000대임을 알 수 있다. 전국적으로 1000명이라면 내가 사는 관악구에 불과 몇 명만이 이 컴퓨터를 소유한 셈이다.

삼보컴퓨터의 트라이젬20 성공에 자극 받은 여러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애플 호환기종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삼보컴퓨터의 성공에 자극 받아 다른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 등의 국내 대기업도 속속 PC시장에 진출했다.
삼보는 국내 PC시장을 석권한 데 이어 해외시장에서도 수출물량을 늘려나갔다. 일본과 미국에서 선보인 저가 PC 이머신즈와 소텍 제품은 한때 판매율 1~2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저가정책은 결국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했다. 삼보컴퓨터는 25년 만인 2005년 5월 18일에 법정관리를 발표하면서 국내 컴퓨터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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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중태 (e비즈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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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0.10.25 11:41


인터넷쇼핑몰, 인터파크의 등장으로 시작

1996년 6월에 데이콤은 국내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를 시작한다. 같은 해 롯데닷컴, 1997년의 신세계, e현대(www.hmall.com), 한솔CS클럽,삼성몰이 문을 열었고, 1998년에는 온라인서점인 예스24와 인터넷 경매 사이트인 옥션이 문을 열었다.

초기에는 오프라인에서 유통망을 가지거나 매장을 가진 기업들이 인터넷 쇼핑몰에 진출했다. 이미 유통망과 창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추가로 판매가 이루어지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직 인터넷으로만 쇼핑을 하겠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인터넷도 보급되지 않았으며 초고속통신망도 등장하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파크는 오프라인 매장이 없는 인터넷 전용 쇼핑몰로 첫발을 내딛었다. 오프라인 매장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물건 유통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고객에게 배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택배가 발달하지 않은 상황이라 빠른 배달을 위해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주문 들어온 물건을 들고 고객집으로 방문해 직접 전달해야 했다. 인터파크나 롯데닷컴은 그렇게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눈으로 보지도 손으로 만져보지도 않고 물건을 산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물건을 보지 않아도 되는 규격이 정해진 공산품 위주로 쇼핑몰이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류와 같은 제품은 입어볼 수 없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터넷 쇼핑몰이 생활화된 지금은 의류잡화가 인터넷 쇼핑몰 시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물건 종류가 다양해졌다. 이제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하지 못하는 물건은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국내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

PC통신의 온라인 쇼핑몰 경험이 있었기에 인터파크 탄생 가능

1994년의 천리안 온라인 쇼핑몰 광고와 인터파크 시작 전인 1996년 2월의 천리안매직콜 홈쇼핑 카타로그
인터넷에서는 인터파크가 1호 쇼핑몰로 기록되었지만 사실 온라인 쇼핑몰은 PC통신 시절부터 계속 존재했다. 간단하게는 도서주문에서 스타킹, 가방, 장난감까지 다양한 제품을 판매했다. 인터파크가 데이콤에서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리안에서부터 꾸준하게 축적된 온라인쇼핑몰의 경험 덕분이다. 천리안은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하게 온라인쇼핑몰 사업을 벌였다. 1994년 8월 1일에는 신세계 백화점이 국내 백화점 최초로 천리안을 통해 쇼핑몰 서비스를 시작했다. 온라인입금 외에 외환비자카드로 신용카드 결제도 가능했다. 천리안 소식지에 온라인쇼핑몰 광고를 계속 실었으며, 1996년에는 ‘천리안 매직콜 홈쇼핑’이라는 별도의 부록책을 발간할 정도로 쇼핑몰에 관심을 보였다. 결국 이렇게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파크라는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PC통신의 온라인쇼핑


단 돈 몇만 원이면 온라인에 인터넷 상점을 가질 수 있는 시대
인터넷의 모든 분야가 그랬던 것처럼 초기에는 쇼핑몰을 만드는 일이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신청만 하면 쇼핑몰을 만들거나 입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옥션이나 G마켓에 입점해 물건을 파는 점주도 많아졌고, 메이크샵이나 카페24와 같은 EC호스팅 업체를 통해 쇼핑몰사이트를 대여 받아 쇼핑몰을 운영하는 점주들도 많아졌다. 또한 각종 결제시스템의 발전과 택배의 발전은 수많은 소호업체를 탄생시킨 주역이 되었다.

컴퓨터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현재 무료로 독립적인 쇼핑몰 개설이 가능하며 재고까지 포함할 경우 200만 원 정도 수준이면 의류 쇼핑몰 운영이 가능하다. 현재 인터넷 쇼핑몰 창업은 동대문에서 1만 원 짜리 100벌 이상을 재고로 구한 다음에 월 몇만 원 수준의 쇼핑몰 임대료를 내면서 운영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수억 원이 들어가는 오프라인 상점의 보증금이나 말썽 많은 권리금 문제없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에 가게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잠깐] 인터파크를 만든 업체는 이네트
국내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인 인터파크는 ‘이네트(enet)’라는 벤처회사가 구축했다. 이네트는 'Commerce 21'이라는 전자상거래 솔루션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업체로 국내 인터넷 쇼핑몰 소프트웨어 시장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네트의 성공으로 쇼핑몰 솔루션 시장이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메이크샵 카페24와 같은 대형 업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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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중태 (e비즈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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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0.10.23 09:52



블로깅을 시작하던 첫해에 나는 공부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블로그라는 세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ProBlogger.net을 처음 방문하는 독자들은 흔히 내가 블로깅으로 억대 수입을 벌어들이게 된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블로깅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그 누구도 단기간에 프로블로거가 되기는 힘들다. 이런 이유 때문에 취미로 블로그를 시작했다가 프로블로거가 된 나의 블로깅 경험담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천천히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편안하게 시작해 보기로 하자.





시작은 미미했다

 
2002년 11월, 내 최초의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글쓰기(Publish)’ 버튼을 클릭했을 때 나는  ‘블로깅’이라는 것이 사소한 재밋거리 이상은 아니라고 봤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주된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한다는 생각과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겪은 세 가지 직업
 
당시 내 본업은 교회 강사였으며 일주일에 3일간 일했다. 일종의 아르바이트였는데(정식 목사가 아니라 네 사람이 함께 일하는 팀의 일원이었다) 내가 맡은 분야는 젊은 친구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나는 바네사와 약혼한 상태였고 결혼 자금 마련을 위해 열심히 저축하는 한편, 자동차 할부금과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다(교회 강사 급료는 별로 많지 않았고 다른 아르바이트는 정말 쥐꼬리만 한 수입이었다).

두 번째 직업은 온라인 백화점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이것이 블로그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창고 경비였으며 대부분 쓸고, 청소하고, 박스를 옮기고, 짐 꾸러미를 정리하는 시시하고 지루한 일이 주된 업무였다. 그래도 집세를 내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 직업은 일용직 노동자였다. 직업소개소에서 소개를 받아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정신이 멍해지는 생산 라인 일부터 서커스 관련 이벤트 업무까지 온갖 잡다한 일들을 했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10년 동안 공부를 해 왔다. 처음 블로그를 접했을 당시의 내 인생은 대충 이와 같았다.

취미형 블로거
 
내가 만든 첫 블로그에서 ‘글쓰기’ 버튼을 클릭한 순간 땅이 흔들리고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와 갑자기 프로블로거가 되었다고 말했으면 좋겠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첫 12개월 동안은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변화가 있었다면 대학에서 새 과제를 맡았고 교회 강사를 그만두고 개척 교회를 시작하는 팀을 이끌면서 좀 더 바빠졌다는 것뿐이었다. 이 무렵의 블로깅은 취미 수준이었고 개척 교회라는 주제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수단이었다. 당시 만든 ‘거실(LivingRoom)’이라는 블로그(www.livingroom.org.au/blog)는 그해 개척 교회 모임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 바람에 호스팅 비용과 ISP 비용(전화 회선을 이용한 모뎀이었다)만 올라갔다.

1년쯤 지나고 우연히 디지털 사진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는 그냥 사진을 올리는 블로그였는데 아무도 내 사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카메라에 대해 쓴 리뷰 때문에 꽤 많은 트래픽이 발생했다. 이를 통해 호스팅 비용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애드센스 광고와 아마존 제휴(Amazon Affiliate) 프로그램을 달았다. 하루 수천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안정된 블로그여서 그랬는지 애드센스를 통해 잡비를 충당할 정도의 수익이 발생했다.

안정된 트래픽이 있었다고 하지만 초기 수익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첫 달인 2003년 10월 수익은 하루 평균 1.4달러였는데 그나마도 독자들이 호기심에서 많이 클릭했기 때문이었다. 11월에는 하루 3달러로 올라갔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걸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고, 한 달에 몇 달러씩만 더 번다면 새 컴퓨터를 사는 데 필요한 돈도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때까지 나는 6년 된 PC와 다이얼 모뎀으로 블로그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목적은 블로그를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도록 새롭게 디자인하는 데 필요한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12월에는 하루에 6달러 수익을 거두었고 이듬해 1월에 9달러, 2월에 10달러, 3월에 15달러로 올라섰다. 이때부터 이런 성장률이 좀 더 장기간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하루 2달러, 3달러씩 추가되는 게 아니라 매월 30~40퍼센트, 심지어 50퍼센트까지 성장하는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본 것이다. 즉,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프로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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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대런 로우즈 (e비즈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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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0.01.18 08:53

 IT 해외 취업의 대부분은 일본 취업이다

싸이 일본 진출. 이제 아스카 싸이를 스토킹하는 일만 남았다능.


한국의 IT 인력 중 적지 않은 수가 해외로 취업한다. 그중 가장 많은 수가 취업하는 곳은 일본이다. 아스카와 사골게리온의 고향이자 문화가 비슷하면서 언어도 쉽게 배울 수 있고, 급여가 높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기타 아시아권은 급여가 낮아서 해외 취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외에 미국과 캐나다, 호주 취업도 있지만 영어 실력과 해박한 전공 실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급 수준의 IT 종사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영어권 나라는 취업도 쉽지 않지만 알아서 취업할 것이므로 일본 취업에 대해서만 좀 더 설명하도록 하겠다.


일본은 이미 취업해 활동하는 사람도 많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취업해 떠나고 있다. 해외 취업을 통해 얻으려는 효과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① 국내에 돌아왔을 때 희소성 있는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② 국내에 없는 기술을 배우거나 고급 기술을 배워 전문인으로 자리 잡는다.

③ 급여가 많은 해외에서 일을 함으로써 돈을 모은다.


일단 ①의 효과는 해외 취업을 마치고 돌아올 경우 자동적으로 얻을 수 있다. 어느 정도 외국어 실력을 인정받으며 특수한 근무 경력을 인정받는다.

②의 효과는 개인의 근무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IT의 경우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앞선 분야도 있지만 뒤지는 분야도 있다. 특히 프로그래머와 같은 평범한 직종에서 근무했을 경우에는 국내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실력이 향상된다고 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개발자나 엔지니어, 프로그래머로 취업하는데 실제 업무 내용은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③의 효과는 반대인 경우가 많다. 일본의 IT 종사자 급여는 기대만큼 높지 않다. 물가와 해외체류비 등을 모두 감안하면 비슷한 셈이 되거나 오히려 한국에서 돈 모으기가 쉽다고 할 수 있다.

연봉 비교. 참으로 야메떼하다능


요즘 인기 있는 지식 정보를 비롯한 인터넷 정보를 검색해 보면 일본 직장인의 월급에 대해 엉뚱한 수치를 제시한 글이 답변으로 채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인의 월급이 100만 엔이라는 글을 비롯하여 50만 엔 이상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라 할 수 있다.

일본 취업사이트를 둘러보면 연봉 500만~1,000만 엔을 제시하는 구인광고를 볼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사기를 당하거나 기타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많다.

지나친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구인광고는 의심하라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일본의 급여 수준이 초임 20만 엔, 평균 30만~40만 엔 정도로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 IT 취업자의 연봉별 분포. 출처는 한국정보통신인력개발센터


따라서 평범한 능력을 가지고도 일본에만 가면 500만~1,000만 엔의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일본의 IT 기업은 현재 말과 문화가 통하는 자국민에게도 한 달에 20만~30만 엔 수준의 급여를 주면서 아르바이트로 프로그래머를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말도 안 통하는 평범한 실력의 한국인 프로그래머를 월 50만 엔 이상씩 주며 고용할 이유가 없다. 만약 이렇게 고액 연봉을 준다며 한국인 인력을 모집하는 기업이 있다면 비정상적인 상황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일본으로 IT 취업하는 경로
현재 국내에서 일본으로 취업해 떠나는 경우는 크게 네 가지 경로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산업인력공단이나 무역협회 등의 국가기관 또는 유명 단체를 통해 알선 받아 취업

② 일본에 근무하는 지인의 소개로 취업을 요청 받는 경우

③ 취업 알선 기관을 통하거나 취업사이트를 통해 지원하는 방법

④ 자신이 직접 일본 기업에 지원해 취업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아무래도 해당 기업에 대한 신뢰를 좀 더 확보할 수 있지만 세 번째는 과대 허위 알선에 주의해야 한다.


IT 업계 구직자의 경우 어떻게 세 번째와 네 번째 경로를 이용해 일본 기업에 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 경로가 많이 사용된다.

첫 번째는 국내의 취업사이트나 대행사를 통해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하는 경우다. 특히 해외 취업사이트나 일본 취업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사이트를 이용해 일본의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허위 과장 광고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일본 평균 연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연봉을 주겠다는 광고를 낸 기업은 꼼꼼하게 실체를 확인해 봐야 한다.


두 번째 경로는 자신이 직접 일본 기업 사이트에 접속해 구인란을 읽어 보고 지원서를 보내는 경우다. 의외로 이렇게 직접 일본 기업에 이력서를 보내는 사람이 드문 편인데 이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견실한 기업을 알아보고 구인광고를 낸 업체에 취업을 알아보는 경우이기 때문에 취업만 된다면 안정적인 조건에서 일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의 IT 기업도 한국처럼 자사 홈페이지에 구인란을 개설해 인력을 상시채용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 취업하고자 한다면 직접 해당 기업 사이트에 지원서를 제출해 보는 것이 안전하다.


물론 일본에 취업하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해당 기업이 채용 의사를 밝히더라도 비자 취득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집을 구하는 과정까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서류가 많은 나라다. 외국인이 방을 얻기도 매우 어렵거니와 방 하나를 계약하더라도 15장이나 되는 서류가 필요한 곳이다. 물가도 비싸고 문화도 다르다. 때문에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주의해야 할 것도 많다.


거듭 말하지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허위 과장 광고다. 특히 취업기관을 통하거나 취업 사이트를 통해 취업을 알아볼 때는 해당 기업에 대한 철저한 확인조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런 데가 있으면 누가 세스타나 혼다이 가겠다고 몸부림치겠습니까



 근무 시간이 짧은 대신 임금이 높지 않다

그렇다면 일본의 근무 환경은 어떨까? 노동기준법 개정과 주5일 근무제, 공휴일이 주말과 겹칠 경우 대체 휴일제를 실시하는 방안 등으로 인해 일본 노동자의 근무 시간은 계속 줄어들었다.

일본 정부 역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 시간 단축에 힘썼다. 일본 정부는 연평균 1,800시간 근무를 목표로 정책을 펴왔는데, 그 결과 현재 대부분의 회사는 주 40시간 근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너무 안이한 사진일까요...


그러나 법과 문서로 정한 근무 시간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눈치를 보면서 휴가 일정이나 퇴근 시간을 살피는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신입사원을 위한 7대 철칙’의 내용을 봐도 이런 일본의 직장 문화를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의 복지제도를 믿지 말라’는 것도 철칙으로 있는데, 육아휴직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충실하게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는 직장생활이 어려워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명문화된 법보다 회사 정서에 맞춰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직장 문화와 정서가 실질적으로 직장생활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로 남녀 차별을 들 수 있다. 일본은 1986년에 이미 남녀고용기회평등법이 발효되어 시행됐지만 10년이 지난 후에도 여성의 평균 월급은 남성의 64%에 불과했다.

급여보다 더 심각한 부분은 근무 형태에 관한 문제다. 여성 공무원 중에서 겨우 1% 미만이 관리직에 종사할 정도로 여성에 대한 대우가 낮다. 이는 전통적으로 여자를 남자의 보조로 여기는 인식이 일본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본의 직장 문화는 최근 10년 사이 많이 개선되었다. 이제는 휴가도 많이 사용하고 주말 여가도 많이 즐긴다. 직장 내에서 여성의 위치나 급여도 점차 개선되고 있고, 사회 다변화에 따라 프리랜서 고용과 계약직, 아르바이트, 외국인 고용이 크게 늘었다.

그렇지만 경기 활황으로 인한 고용 증가가 아닌 경기 불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프리랜서와 외국인 고용은 자국인의 고용 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정규직 근무자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급여 수준도 하락하고 있다.


일본의 대졸자 초임이 한국 돈으로는 월 200만~250만 원 정도지만 교통비, 공과금, 월세 등의 일본 물가가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한국보다 실질 급여가 낮은 셈이다.


직종별 급여를 보면 SE나 프로그래머는 다른 직종보다 급여가 높거나 대우가 좋다. 물론 연구 직종이나 컨설턴트 같은 직종은 개발자나 프로그래머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지만 이런 직종 종사자는 많지 않다.

반면 디자이너는 프로그래머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낮은 급여를 받는다. 이는 만화왕국 일본의 특성상 만화를 잘 그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각종 동인지를 통해 배출된 아마추어 만화가들과 디자이너가 넘치고 있어 디자이너를 구하기는 쉬운 편이다.

국내영화화된 서양골통 양과자점 작가분도 동인지 출신이죠. 나쁜 아지매, 서태웅은 농구하는 애입니다!


반면 SE나 프로그래머는 많은 공부가 필요한 IT 전문가로 공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급여가 높다. 이런 이유로 일본의 IT 기업 중 상당수가 한국에 엔지니어나 개발자, 프로그래머 구인광고를 내며, 일본으로 취업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프로그래머, 개발자 직종으로 취업한다. 따라서 일본으로의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디자인 계열보다는 엔지니어나 개발자, 프로그래머 계통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좋다.

TIP │일본 외에 중국, 태국, 러시아, 호주 등에 취업하려면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할까?

국내 기관으로는 공신력 있는 무역아카데미http://www.tradecampus.com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또한 자신이 진출하려는 국가를 정한 상태라면 해당 국가에 진출한 기업들의 홈페이지를 이용해 채용공고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해외 취업은 공신력 있는 사이트를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사관이나 문화원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대사관과 문화원 등에는 양국 거래 모두에 관련된 실무 정보가 많다. 해당 국가의 기업 또는 해당 국가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이 대사관이다.

그러나 이들 정보를 인터넷 사이트에 가공해 올릴 만한 인력은 없다. 인터넷 사이트 정보가 신통치 않아 보이는 까닭은 이때문이다.

해외 취업을 원한다면 인터넷보다는 발로 뛰는 것이 더 빠르다. 해외 취업을 원한다면 직접 해당 국가의 대사관과 문화원을 방문해 상담을 받아보기 바란다. 자주 방문해 직원들과 얼굴을 익혀두고 구직을 부탁해 두면, 대사관을 방문하는 자국 내 기업인과 연결해 주는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 본 포스트는 《IT 취업 그것이 궁금하다》의 본문 일부를 발췌하여 블로그 운영자 임의로 편집한 것입니다.

posted by e비즈북스 2010.01.11 19:18
사례1)
질문│전역을 1년6개월 남겨 놓은 해군 전산 부사관입니다. 전문대 전산과 졸업으로 2년 6개월의 개발 및 운영과 군대 포함 4년의 경력이 있습니다. 저도 군에서의 전산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답변│된다/안 된다로 잘라 말씀드리자면, 군에서의 경력은 취업에 도움이 됩니다. 군에서의 개발 프로젝트 참여와 시스템 유지보수 부분은 단순히 기술 습득 층위에서만 평가되지 않는, 타 구직자들과 차별화되는 뛰어난 장점입니다. 이 부분을 이력서에 최대한 상품화하여 잘 포장하기 바랍니다. 

IT기업의 분위기가 여느 기업과는 다르겠고, 또한 기업마다 문화가 각기 다양하겠지만 대체적으로 큰 기업일수록 관련 주특기 장교의 경력을 높게 쳐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병이 아닌 장교로 IT 관련 업무를 맡았었다면 -대기업에 입사한다는 전제 하에-외국어  부분만 보완해도 취업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물론 군에서 배운 예전의 툴은 요즘 민간 기업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고, 정보처리기사 등의 '국민자격증'은 취업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구직자들을 보면 지원서의 자격증란을 빽빽하게 채우는 데 역량과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취업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IT 기업은 철저하게 실무 위주입니다.

따라서 무조건 자격증을 여럿 따실 생각보다는 최신 유행 자격증 취득과 최신 언어 습득에 힘쓰기 바랍니다.

사례2)
질문│군대에서 5년 동안 ROTC로 복무하고 대위로 전역한 29살의 구직자입니다. 대학에서는 정보통신을 전공했습니다. 군 경험을 살려서 기술영업 쪽을 지원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답변│IT와 거리를 둔 현 시점에서 질문자님께서 해야 할 일은 당장 일하는 것보다는 요즘 추세에 맞는 기본적인 기술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학원이나 IT 관련 기관에서 몇 달 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자체적으로 하드 트레이닝을 실시해야 합니다.

비전공자가 택한 것처럼 C++와 자바 등의 프로그램을 배워 프로그래머로 시작하는 길과 네트워크 관련 기술을 익혀 시스템 영업 쪽으로 나서는 길 중에서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정보통신을 전공하셨으니 네트워크 기술을 익혀 시스템 영업 쪽으로 취업문을 두드리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대졸 신입 사원의 평균 연령이 2009년 현재 28.7세이며, 곧 서른 살에 다다를 것이라고 합니다. 스물아홉의 나이라면 시스템 영업 쪽으로 신입 취업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또한 시스텝 영업 분야는 이직이 쉬운 편이며 대기업으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도 많습니다. 제 동창 역시 중소기업에서 출발하여 36의 나이에 삼성 SDS로 옮겨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시스템 영업이고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 친구 전공은 국어국문학이었고 30이 될 때까지 잡지 편집자였습니다. 서른 즈음에야 IT 쪽에 눈을 돌렸지만 현재는 시스템 영업 부서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IT 기업 그것이 궁금하다》김중태 저, e비즈북스 어떤 선택이 좋을까? 中에서
posted by e비즈북스 2009.03.14 10:06

어제 김중태 선생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기관별로 블로그 PR에 엄청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프로블로거>의 판매 동향을 한번 체크해 봤습니다.

아직까지 판매량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Yes24의 판매량을 기준으로 <프로블로거>를 구매하신 분들의 성별, 연령별, 지역별 통계를 살펴보니 대충 큰 그림이 그려지네요.

1. 성별로 보면 전체 구매자 가운데 남자가 75%, 여자가 25%로 남자분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2. 연령별로 보면, 20대가 29%, 30대가 49%, 40대가 20%, 50대가 2%이고, 10대와 60대 이상은 하나도 없습니다. 20-30대가 78%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30대의 비중이 거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3.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53%, 경기가 23%, 경상도가 14%, 기타 지역을 다 합해서 10%입니다.

4. 이밖에 교보문고에서의 판매를 보면 일반적으로는 광화문점에서의 매출이 가장 많이 나오는데 비해 <프로블로거>는 강남교보문고에서의 매출 비중이 무려 3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30대 남성분들 가운데 강남에 직장을 둔 분(아무래도 IT직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만)들이 <프로블로거>라는 주제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나요?

posted by e비즈북스 2009.01.08 22:44

공병호 저자가 블로그를 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한 글(공병호 박사가 블로그를 하지 않는 이유)을 봤는데, 며칠 전 <불량구매자>의 저자 진수지 님에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한국의 파워블로거 가운데는 전문가들이 없다!"는 것.

예를 들어, XX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요리전문 블로그 Top 30 가운데 전문 요리사는 1명이며 나머지는 가정 주부님들이라고...

무슨 얘기인가?

국내의 전문가들은 바빠서 블로그를 할 시간이 없고, 이미 잘 나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블로그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한다. 현재 파워블로거 대부분은 전문성 때문에 떴다기 보다는 부지런하게 펌질을 잘해서, 댓글 같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서, 혹은 마케팅을 잘해서 뜬 면이 강하다는 것.

막연히 파워블로거들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색다른 해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어떤 기자분도 비슷한 얘기를 한 바 있다. 외국에서는 전문가, 지식인, 저널리스트들이 블로그 글을 많이 올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전문가들의 참여가 저조하다고....전문가들이 뛰어들어야 주류 미디어에서 블로그 공간의 권위를 더 인정할 것이고, 또 주류 미디어들이 인정해 줘야 전문가들이 더 뛰어들려고 할 거라는 말씀...
 
하지만 전문가들이 뛰어든다고 해서 그들이 자동적으로 파워블로거거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현재의 파워 블로거들이 단지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고 있어서 그 빈 공간을 마케팅 능력 또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네티즌의 특성을 볼 때 인터넷은 전문가라는 권위가 잘 먹히지 않는 공간이다. 오히려 실전에 약한 제도권 전문가들이 계급장 떼고 달려드는 현업 네티즌들에게 개박살이 날 가능성이 크다. 소위 전문가들이 뛰어들지 않는 큰 이유는 실전 경험으로 무장한 아마추어에게 박살나는 것이 두렵거나 쪽팔려서가 아닐지.

posted by e비즈북스 2009.01.04 22:43
관련글
http://blog.ohmynews.com/dangun76/243266

이 조사의 맹점은 자발적 참여에다가 수익을 얻은 사람만을 통계로 잡았다는 점이군요.
수익을 못얻은 사람까지 37%를 포함하면 5%정도 나올것같군요.
프로블로거를 접속하는 사람들이 돈 버는데 관심이 높으므로 그렇게 버는 블로그의 비율은 훨씬 떨어질 것입니다.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작년보다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프로블로거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아질 것 같군요.
posted by e비즈북스 2009.01.02 20:27

2007년 4월 <구글 애드센스 완전정복>을 낸 다음 바로 <프로블로거>의 기획을 추진했다. 최초에 생각한 제목은 '프로블로거'가 아니라 '블로그로 먹고 사는 법'이었고 번역서가 아니라 국내서였다.

먼저 <구글 애드센스>의 저자인 주성치(우성섭)님에게 집필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주성치님은 재밌는 기획이긴 하지만 블로그로 먹고 산다는 게 해외에서나 통하는 얘기고 국내 현실을 봤을 때 프로블로거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책이 잘 안 팔릴 것 같다는 답변이었다.

사실 <구글 애드센스>도 그리 많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었던 터라 잠시 기획을 묵혀 두다가 가을쯤 해서 IT쪽 파워블로거로 유명한 떡이떡이님께 연락을 드렸다. 당시 세계일보 기자였던 떡이떡이님이 출판사에 방문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요지는 우리나라에는 프로블로거가 불가능하다, 시골의사나 김동진 기자 등 유명한 블로거들이 블로그로 수익을 얻는 구조가 아니고 블로그 외적인 활동으로 수입을 얻고 있으며, 떡이떡이님도 회사를 옮기게 돼서 앞으로 1년 간은 책쓰기가 힘들다는 얘기였다. 떡이떡이님은 프로블로거를 강연이나 기타 수입을 빼고 '오직 블로그 글쓰기로만' 수익을 내서 먹고 사는 블로거로 굉장히 엄격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뒤로 한국경제의 최진순 기자님에게 연락을 했는데 최기자님은 실용서가 아니라 블로그 저널리즘쪽 전문서를 내고 싶어 하셔서 우리쪽 기획과는 맞지 않았다. 최기자님이 명승은씨를 소개해 주셔서 접촉했는데 이미 다른 책을 쓰고 계셔서 섭외되지 못했다(나중에 한빛미디어에서 <미디어 2.0>으로 나왔다).

그래서 기획안을 보류하고 있었는데, 2008년 4월쯤 우리 편집자가 아마존에서 대런 로우즈의 <ProBlogger>가 예약 판매되고 있다고 보고를 하여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들은 얘기가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이라 굳이 에이전시에게 문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편집자가 아무래도 감이 좋다고 5천부는 팔 수 있을 거라고 계속해서 바람을 넣었다. 못이기는 척하고 에이전시를 통해 판권을 확인한 다음 PDF상태로 원고를 검토해 봤는데 의외로 내용이 쓸만했다.

해외사례 중심이긴 하지만 국내 실정에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어 바로 오퍼를 넣고, 번역은 평소 미드 광팬이었던 주성치님에게 의뢰했다. 주성치님은 마침 올블로그에 입사해서 근무 중이라 마케팅적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이 있었다. 주성치님은 처음엔 번역서는 한국적 상황과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번역을 고사했으나 직접 원고를 읽어본 다음에 마음을 바꿔 번역하기로 했다.

Wiley 출판사 측과 선인세를 가지고 밀고 당기다가 6월쯤 구두로 계약을 하고는 바로 번역에 들어갔다. 그런데 Wiley 쪽 담당자가 휴가라는 둥 바쁘다는 둥 하면서 정식 계약서가 안와서 계약이 지체되었다. 결국 번역이 다 끝나갈 무렵인 9월쯤 해서 계약서가 왔는데 구두 계약 당시 900원대에 있던 환율이 슬금슬금 오르더니 무려(?) 1200원대까지 올라 있었다. 너무 열받아서 돈을 입금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환율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10월이 되니 달러당 1300원을 넘어 1500원대로 올라갔고 미네르바의 충격대예언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이제는 열불이 터지는 것을 넘어 공포가 엄습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11월말 편집이 다 끝날 때가 돼서 잠시 환율이 1300원대로 내려왔을 때 바로 송금해버렸다.

<프로블로거>를 낸 이유...
편집자가 감으로 5천부를 운운했지만 사실 블로그 최고의 수익 모델을 다룬 <구글 애드센스 완전정복>도 많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 있는 <프로블로거> 역시 많이 팔겠다는 생각으로 낸 책은 아니다(2000부에 손익을 맞췄는데 환율이 올라가면서 차질이 발생했다). IT쪽에서 잘 알려진 김중태 원장님과도 얘기해 봤는데 <프로블로거>의 판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셨다. 간단히 말해서 내용은 좋지만 읽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는 것이다.

하지만 40대 중반에 명퇴나 구조조정이 보편화된 국내 직장 현실을 볼 때, 조직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경제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인터넷 자영업 모델이 나와줘야 한다는 것이 우리 출판사의 판단이었다. 이태백과 사오정과 대자본의 과점에 따른 자영업 몰락의 필연적 과정에서 정부의 시혜에 기대지 않고 각자도생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프로블로거 모델의 가능성을 적극 탐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대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대 미디어에 맞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개인 미디어들이 많이 나와 줘야 하는데 그 관건이 되는 것이 개인 미디어들의 경제적 자립 문제라고 보았다.

<프로블로거>가 우리나라의 자생모델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고, 대한민국의 절대시장 규모가 작다는 고정관념(?)도 있다. 아마 한국에서 프로블로거에 도전하여 성공할 확률은 벤처를 창업하는 것보다 성공확률이 더 낮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를 돌파하여 통쾌하게 성공모델을 창출해 내는 분들이 하나 둘씩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프로블로거 - 10점
대런 로우즈.크리스 개럿 지음, 우성섭 옮김/e비즈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