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2.04.30 12:25


사례 1. 부산에 사는 직장인 이영춘 씨. 갑자기 구글에서 ‘독감 예방접종 추천’이라는 메일을 받는다. 알고 보니 김 씨 인근에서 컴퓨터,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주 ‘감기’, ‘독감’, ‘발열’, ‘기침’, ‘병원’ 등을 검색했던 것이다. 김 씨는 추천받은 대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보니 이미 아내가 독감에 걸려있었다.

사례 2. 중요한 계약을 따내기 위해 유럽 4개 국가로 출장을 가는 윤상현 씨.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는 물론 영어도 제대로 못하지만 통역사 한 명 데려가지 않는다. 그가 가져가는 것은 단지 스마트폰. 실시간 통역앱을 실행하면 상대방의 말을 바로 통역해준다. 심지어 ‘스페인 바르셀로나 00호텔 옆에서 11월 15일 점심 예약’을 입력하면 적당한 레스토랑들을 찾아서 가격과 메뉴를 한국어로 보여준다. 선택하면 예약은 완료된다.

사례 3. 액세서리를 사러 이대 앞을 방문한 김가인 씨. 스마트폰의 한 앱을 실행하자 이전의 구매이력을 바탕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의 제품을 저렴하게 파는 가게들이 소개된다. 쇼핑을 하고 갑자기 파스타가 먹고 싶어졌다. 마찬가지로 반경 1km 안에서 친구들이 가장 많이 추천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방문한다.

사례 4. ‘서울 00동에 토네이도 발생’. 국가의 재난위기종합상황실에서 즉각 토네이도 발생 현장 반경 3km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낸다. 구호센터는 현장에 있는 CCTV, 위성사진,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수집해 구조대를 급파한다. 스마트폰에서 지도앱을 실행하면 토네이도의 이동경로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이 4가지 사례들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빅 데이터를 통해 머지않아 이뤄질 것들이다. 언제부터인가 빅 데이터라는 용어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각 분야의 전산화가 가속화되고 특히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디지털 데이터의 종류와 양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금 어려운 기술용어처럼 느껴지는 빅 데이터가 주목받는 이유는 미래를 내다보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쌓이는 데이터들을 어떻게 가공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비즈니스 세계뿐 아니라 정부와 공공부문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 이렇게 가능성과 잠재력이 크다고 하지만 정작 빅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잘 감이 오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국내 211명의 경영자에게 물어본 결과도 비슷했다. 10년 내 빅 데이터 활용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한 결과 97.2%의 경영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특히 ‘매우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의 76.8%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 데이터 관리의 장애 요인을 물었을 때 절반에 가까운 비율이 ‘데이터 분석 및 활용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을 꼽았다.

데이터 분석 기술에 대한 이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빅 데이터를 가지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이다. 그러기 위해선 독자들이 자신의 일과 삶에서 빅 데이터를 접목할 수 있는 ‘시각’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빅 데이터가 이미 활용되는 사례를 다양하게 담았고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공공기관 혁신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이 책은 일반인 혹은 IT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쉽게 썼다. 덤으로 IT 분야에 대한 상식을 넓힐 수 있는 내용들도 담았다. 이 책이 단순히 트렌드 이해를 넘어 보다 많은 상상과 창의를 촉발시키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이제는 빅 데이터 시대>.2012년 4월 출간.윤형중著.e비즈북스.


이제는 빅 데이터 시대

저자
윤형중 지음
출판사
e비즈북스 | 2012-05-0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이 책에서는 스마트폰과 SNS가 대중화되면서 폭증한 데이터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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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2.01.16 14:52
라쿠텐은 각국의 유력 기업과 제휴하여 사업을 진행하거나 기존의 업체를 인수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여러 나라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라쿠텐의 쇼핑몰 부문 첫 해외 진출지는 대만이었다. 2007년 11월 라쿠텐과 대만의 프레지던트 연쇄점은 51 : 49 비율로 자본 제휴를 맺고 대만 라쿠텐 이치바를 설립, 일본에서의 성공 모델을 기반으로 2008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하여 3년 후에는 입점 점포 수 3천개의 점포를 목표로 잡았다.
2008년 3월, 유럽의 중심지인 룩셈부르크에 라쿠텐 이치바의 비즈니스 모델을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데 필요한 거점으로 결정하고 라쿠텐 유럽S.ar.l을 설립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유럽에서의 전략 입안과 인사, 그리고 시스템 개발과 운영, 그리고 물류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검토해나갔다.

2009년 9월, 라쿠텐은 태국의 인터넷 쇼핑몰 타라드닷컴과의 제휴를 발표하였다. 타라드닷컴은 점포 수가 16만 점포에 이르고, 상품 수는 160만 점, 회원 수는 2백만 명에 달하는 태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이다. 라쿠텐은 타 라드의 주식 67%를 3억 엔에 인수하여 자회사로 편입하였지만, 타라드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였다. 라쿠텐 이치바의 기능과 서비스도 점차 타라드에 도입해나갔다.


2010년 1월, 대만, 유럽, 태국에 이어 라쿠텐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중국 최대의 검색 서비스 업체인 바이두와 제휴를 맺었다. 양사는 라쿠텐이 가지고 있는 전자상거래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 바이두가 가지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의 영향력과 마케팅 능력을 조합하여 중국 최대의 인터넷 쇼핑몰을 구축하 기로 합의하고 라쿠텐 51%, 바이두 49% 비율로 출자한 합작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같은 해 6월, 라쿠텐은 바이두와 합작으로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 명칭을 중국명 라쿠텐楽酷天으로 정하고, 10월에 2000개 점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이트 운영을 시작했다. 입점료는 무료이지만, 최초 보증금이 필요하며 매출에 따른 수수료를 0.6~4.5% 받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인구 2억 3천만 명과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미래의 경제 대국이 될 가능성이 큰 나라 중 하나이다. 라쿠텐은 2010년 5월, 인도네시아에서 방송국과 신문, 라디오, 인터넷 사이트 등을 운영하고 있는 미디어기업글로벌 미디어과 51:49의 비율로 합작 회사를 설립했고 인도네시아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기로 제휴를 맺었다. 12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서비스명을 라쿠텐 벨란자 온라인Rakuten BELANJA ONLINE으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라쿠텐의 해외진출

아시아의 주요 국가를 대표하는 업체와 제휴 또는 인수로 거점을 확보한 라쿠텐이 다음으로 눈을 돌린 곳은 미국이다. 2010년 6월, 미국 자회사인 라쿠텐 USA를 통해서 미국의 바이닷컴을 인수했다. 바이닷컴은 1천개 이상의 기업이 상품을 판매하고 있고, 1400만 명의 회원을 갖춘 미국의 유명 쇼핑몰로 인수 가격은 2억 5천만 달러에 달하였다.

북미 시장의 유력 전자상거래 업체를 인수한 라쿠텐은 남미의 주요 국가인 브라질에서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운영하는 이케다Ikeda의 주식 75%를 2011년 6월에 인수하여 자회사로 편입하였다. 이케다는 1996년에 설립된 회사로 소매업자의 인터넷 쇼핑몰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는데 150개 회사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2011년의 매출액은 2억 달러 정도로 예상된다.



<라쿠텐 스토리>.2012년 1월 출간. 이왕재著.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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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2.01.10 11:37
라쿠텐의 성공요인
인터넷의 보급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던 대기업은 우후죽순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터넷 선진국인 미국에서 이미 많은 기업이 참여하고 있던 인터넷 쇼핑몰 사업조차도 일본의 대기업과 경제 연구소 등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문을 닫거나 이후 몇 년 적자를 보다가 결국 문을 닫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금력도 있고 정보력도 갖추었던 대기업과 경제연구소 등이 인터넷 쇼핑몰 사업에서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사업의 보조 수단으로서 인터넷 사업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인터넷 쇼핑몰에 올인하여 성공을 이루겠다는 적극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라쿠텐은 인터넷 쇼핑몰 전문 업체로서 입점 업체와 구매 고객 등 사용자와 함께 발전해나간다는 입장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에 고객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두 번째는 초기 가입비 없이 월 이용료 5만 엔(상품 수 25개까지, 100개까지는 10만 엔, 1000개까지는 25만 엔)이라는 당시의 시세로는 파격적인 가격 설정이었다. 처음 일본 전역을 돌며 영업하면서 운전자금 마련을 위해 매월 5만 엔씩 하는 이용료를 6개월 치 선불로 받는 전략을 강행한 것이다. 입점료가 수십만 엔에서 1백만 엔에 가까웠던 경쟁업체와 비교하면 월 5만 엔은 파격적인 가격 조건이었다.

더군다나 타사는 월이용료에 더해서 주문 건수와 판매금액에 따라 수수료를 가산하는 종량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싸면서 복잡하기만 했기에 고객들에게는 무척 불편했다. 반면 라쿠텐은 저렴하면서 쉬운 가격 체계를 제공해주었기에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혼조를 중심으로 개발된 라쿠텐 이치바의 시스템 RMS는 그 어떤 인터넷 초보라도 간단한 설명을 듣거나 가이드북을 읽기만 해도 라쿠텐 이치바에 바로 인터넷 숍을 오픈하고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쉽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기존의 인터넷 쇼핑몰 중에도 입점 업체가 직접 사이트를 만들고 상품을 올리고 내릴 수 있도록 한 곳도 있지만, 일반 유저가 상품을 등록하기에는 사용 방법이 어려워 쇼핑몰 운영 회사가 입점 업체를 대신하여 사이트를 만들고 리뉴얼 작업도 대행하기도 하였다.

RMS

또 시중에는 인터넷 숍을 구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등이 팔리고 있었지만, 구축에 앞서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것들뿐이었다. 또한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마케팅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반인이 이용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라쿠텐 이치바의 시스템을 이용하면 쉽게 인터넷 숍을 개설하고 운영할 수 있다.

또한 라쿠텐 이치바라는 공간에 있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모여드는 고객에게 자사의 상품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라쿠텐 이치바의 경쟁력은 갈수록 높아졌다. 라쿠텐 이치바의 시스템 덕분에 인터넷 숍을 간단히 구축할 수 있는 장점 외에도 번잡한 업무를 IT로 간소화시켜 줌으로써 상품 조달과 기획, 홍보와 주문 관리 등 판매 전략에 집중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친절하면서 전문적인 서포트 체계이다. 초창기 영업 당시부터 고객을 위해 컴퓨터 사용방법부터 인터넷과 쇼핑몰 사용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온 라쿠텐은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으로 발전시켜 라쿠텐을 개설했다. 라쿠텐 대학을 통해 인터넷 상점의 성공 비결과 함께 동종 업체와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등 오늘날 일본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경쟁력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인터넷 쇼핑몰과 비교해 이용요금과 판매자 지원에 월등한 경쟁력을 갖춘 덕분에 라쿠텐의 이용 점포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7년 5월 오픈할 당시에는 13개에 지나지 않았던 점포 수가 1998년 1월에는 91개까지 늘어났다. 이후 1999년 1월에는 400개, 2000년 1월에는 2000개까지 증가하였다.

<라쿠텐 스토리>.2012년 1월 출간. 이왕재著.e비즈북스.


일본의 라쿠텐과 한국의 G마켓의 성공요인을 비교해 보면 흥미롭습니다. G마켓도 우수 판매자를 잡는데 성공해서 강자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라쿠텐 역시 판매자를 잡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강자로 떠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G마켓의 판매자 지원 솔루션인 GSM과 라쿠텐의 솔루션인 RMS에 대한 평가는 좀 다릅니다. 한국의 오픈마켓 판매자들은 GSM에 대해 평가가 안좋지만 일본 판매자들의  RMS에 대한 평가는 양호한 편입니다.

하지만 인터넷 기업 특유의 과감한 도전정신은 양국의 기업이 모두 동일한 것 같습니다. G마켓이 당시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 패션을 주력 상품으로 안착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G마켓이 가능했죠. <패션쇼핑몰의 젊은 영웅들2>에 소개된 G마켓 패션팀의 내용을 보면 라쿠텐의 성공요인과 유사한 내용이 많습니다. 옥션 경매와 다르게 빠르게 구매할 수 있는 고정가 즉식 구매방식을 채택했고, 수수료 할인이나 상품 등록수수료 무료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제도를 통해 시장의 질서를 바꾼게 주효했다고 평가를 내립니다.
posted by e비즈북스 2012.01.06 11:13
야후 재팬의 옥션과 쇼핑몰
야후 재팬은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최대의 포털사이트이다. 수치로만 봐도 일본 인터넷 유저의 90% 이상이 이용하고 있으며, 하루 페이지뷰는 23억/PV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검색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검색 제국 구글을 누르고 일본 검색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야후 재팬은 일본 인터넷 산업에서 커다란 플랫폼이자 인프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야후 재팬은 이러한 기반을 배경으로 속속 새로운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옥션과 쇼핑몰 분야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라쿠텐 이치바와 야후 옥션은 직접 부딪히기보다는 상호공존하면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야후 재팬이 쇼핑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라쿠텐과 야후 재팬은 생존을 위해서는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경쟁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야후 재팬의 2010년 결산 보고서를 보면 총매출은 전년대비 4.5% 증가한 2924억 엔을 기록하였고, 옥션과 쇼핑몰 부문이 포함된 컨슈머 사업은 0.4% 감소한 1049억 엔을 기록하였다. 대신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5.9%에 달하여 미디어 부문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특히 야후 쇼핑은 야후 포인트와 연계한 판촉 활동과 신규 회원 확보를 위한 캠페인 전개로 야후 프리미엄 회원은 전년 대비 9만 명이 늘어 768만 명까지 증가하여 지금까지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였다. 특히 스마트폰의 대두로 모바일 이용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모바일을 통한 매출도 크게 증가했다. 야후 옥션 역시 전년 대비 소규모 감소세를 보였지만, 모바일을 이용한 매출은 10% 증가하였다.

야후 재팬의 옥션 사업은 1999년 9월 28일부터 시작되었다. 다른 어떤 사업자보다 빨리 시작한 야후 옥션은 이후 이용자 수를 급격하게 늘리며 다른 경쟁사를 크게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야후 옥션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 었던 이베이 재팬은 야후 옥션보다 조금 늦은 1999년 10월에 일본 법인을 설립하지만, 일본 현지화가 늦었고 낙찰 수수료 제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야후 옥션과 비교되면서 결국 2002년 3월 일본 시장에서 철수하였다.

야후 재팬의 옥션

시간이 흘러 2009년 4월 글로벌 이베이가 일본 시장에 재진출하였다. 근래에는 이후 자회사인 전자결제시스템 페이팔Paypal도 본격적으로 도입되었고, 한국에서 인수한 지마켓Gmarket의 창업자와 제휴하여 지마켓으로 일본 시장 재공략을 꾀하고 있다.
옥션 서비스 초기에는 회원가입만 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기 사건이 자주 발생하여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이후 본인 확인 기능이 추가되고 유료로 이용하는 프리미엄 회원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주소 확인 제도 등이 도입되면서 사기 문제를 점차 해결할 수 있었다. 2008년 12월에는 옥션에 출품된 상품 수가 2천만 건을 넘어섰으며, 다른옥션 서비스와 비교해볼 때 옥션 성사율이 36%로 높게 나타났다.

옥션 분야에서는 야후 재팬이 라쿠텐을 한참 앞서 나가고 있지만, 쇼핑몰 분야에서는 야후 재팬이 라쿠텐을 쫓고 있는 처지이다. 2009년 12월을 기준으로 라쿠텐 이치바 입점점포는 3만 1543개소로 야후 재팬 쇼핑 입점 수 1만 7299개와 야후 재팬의 옥션 입점 수 1만 6842개를 크게 앞섰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중국 시장을 두고 야후 재팬은 모회사인 소프트뱅크가 투자하고 있는 알리바바 그룹의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타오바오TAOBAO와 제휴하여 양국의 유저가 상호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라쿠텐은 중국 최대의 검색회사 바이두Baidu와 제휴하여 중국에서의 라쿠텐 이치바를 구축해서 이에 대항하고 있다.

출중한 능력을 가진 미키타니를 필두로 사내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면서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는 라쿠텐, 그에 반해 일본 국내 시장에만 안주한 채 모회사인 소프트뱅크 주도의 해외 기업과의 연계만을 꾀하는 야후 재팬은 이미 시작부터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일본 국내 시장은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라쿠텐과 야후 재팬의 전자상거래 부문의 대결은 점차 격차가 벌어지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라쿠텐 스토리>.2012년1월 출간예정. 이왕재著.e비즈북스.
posted by e비즈북스 2012.01.05 11:44
주식상장과 인터넷 버블 붕괴가 가져온 기회
1999년 6월에 엠디엠에서 라쿠텐으로 회사명을 바꾼 라쿠텐은 2000년 4월 자스닥에 상장했다. 1997년 2월 창업 이후 3년 만에 자스닥 상장에 성공했지만 조금만 늦었다면 상장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상장 후 인터넷 버블 붕괴로 한때는 6천억 엔까지 올랐던 주가가 10분의 1까지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인터넷 버블의 마지막 승차권을 얻은 행운이 따랐다고도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495억 엔의 자금을 확보하게 되었다.

라쿠텐은 인터넷 버블 붕괴로 시장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인터넷 기업을 인수하여 한 단계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할 수 있는 찬스를 얻게 되었다.반대로 라쿠텐이 제때 상장을 하지 못하고 인터넷 버블이 무너졌다면 라쿠텐 역시 다른 인터넷 기업에 인수되는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기에 자스닥 상장에 성공한 라이브도어Livedoor도 라쿠텐과 함께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하며 미디어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으며 한때는 야후 재팬을 위협하는 존재로까지 번영하였다. 하지만, 이후 라이브도어 분식회계 사건으로 역사의 주역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끝내는 한국의 NHN 자회사인 NHN 재팬에 인수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라쿠텐은 현재의 라쿠텐 경제권을 구성하는 핵심 인터넷 기업들을 차례로 인수하게 된다. 창업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라쿠텐이 이처럼 수많은 기업을 큰 문제 없이 인수하여 그룹사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미키타니 대표를 필두로 하여 M&A 전문가들의 역량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니혼코교 은행에서 기업 간 합병, 인수를 전문적으로 다루었던 미키타니 대표를 중심으로 탁월한 M&A 전문가들의 실력으로 추진한 결과였다.

인수합병
라쿠텐은 상장되기 직전, 라쿠텐에 합류한 니혼코교 은행 출신의 M&A 전문가와 일본 M&A 분야의 일인자로 통하는 변호사 구사노 고이치草野耕一가 사외이사로 활동한다. 이들과 미키타니 대표를 중심으로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과 인터넷버블 붕괴로 체력이 약해진 인터넷 기업들이 매물 시장에 대거 나온 당시의 환경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인수를 통한 라쿠텐 경제권 형성에 몰두하게 된다.

미키타니는 인수합병을 기업 확대의 도구이며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라고 여겼다. 또한 무분별한 확장이 아니라 인수 대상의 선정 기준으로 라쿠텐 그룹의 서비스 질이 높아질 수 있는지를 먼저 살폈다. 또한 라쿠텐 이치바의 고객 정보와 통합하여 나타나는 시너지 효과를 중시하였다.


라쿠텐 경제권


<라쿠텐 스토리>.2012년1월 출간예정. 이왕재著.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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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2.01.04 11:11
라쿠텐의 창업

M&A를 담당하는 어드바이저라는 출세가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나온 미키타니는 1996년 2월 자본금 1천만 엔의 컨설팅 회사 크림존Crimson을 설립했다. 미키타니는 니혼코쿄 은행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고객들의 제휴관계 일을 맡아 하면서 1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렀을때 컨설팅 업무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창업 멤버라고 할 수 있는 혼조 신노스케本城慎之介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당시의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3가지 아이템을 추리게 되는데 지방 특산품인 맥주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천연 산모 빵 사업,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 등이 최종 후보로 남게 되었다. 당시 유행했던 지방 특산 맥주 레스토랑 프랜차이즈가 가장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윈도우95가 판매되고 인터넷 선진국 미국에서는 아마존과 이베이 등 인터넷 상점과 옥션 등이 각광받는 것에 주목하였다. 결국 미래를 생각하면 앞으로 인터넷이 가장 유망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두 사람은 새로운 사업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하기로 결심한다.

미키타니와 혼조 두 사람이 인터넷 쇼핑몰로 결정한 데에는 두 사람의 인터넷 경험이 큰 작용을 하였다. 미키타니가 니혼코쿄 은행을 퇴사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점은 니혼코쿄 은행에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정보가 회사를 그만두면 쉽게 얻을 수 없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정보 접근성에 대한 불안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퇴사 후에도 인터넷과 메일을 통해서 바다 건너편의 최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인터넷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

더군다나 혼조는 일찍이 인터넷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케이오 대학에서 일본의 어떤 젊은이들보다도 빠르고 충분히 인터넷을 만끽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다만 당시는 인터넷 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인터넷 쇼핑몰사업에 뛰어든 대부분의 대기업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상황이었다. 미키타니와 혼조가 인터넷 쇼핑몰을 준비하자 주변 사람들은 모두 반기를 들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실패한 기업의 사례를 분석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구상에 들어갔다. 이윽고 1997년2월,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위해 라쿠텐의 전신인 엠디엠을 설립하게 된다. 엠디엠 설립 후 인터넷 쇼핑몰의 이름을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장군의 라쿠이치 라쿠자楽市楽座 에서 딴 라쿠텐 이치바楽天市場로 결정하고 5월 오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운영자:라쿠이치 라쿠자: 봉건 영주의 보호 속에 점포 독점권을 유지하던 특권적 동업자 단체인 이치자(市座)의 특권을 폐지해 시장을 자유롭게 한 조치. 전국통일의 물적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됨)


RMS의 개발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는 누구나 쉽게 인터넷상에 상점을 열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시스템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미키타니는 대학 시절 간단한 프로그램 경험이 전부였던 혼조에게 달랑 몇 권의 시스템 관련 책을 사다 주고 시스템 개발을 지시하게 된다. 이후 혼조는 시스템 전문가로부터 일주일간의 집중 교육만 받고 라쿠텐 이치바의 개발을 진행하게 된다.비전문가였던 혼조는 프로그램 개발자 시점이 아닌 이용자 시점에서 개발하였다.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라쿠텐 이치바 시스템 RMSRakuten Merchant Server를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RMS 덕분에 라쿠텐 이치바에서는 인터넷 페이지 작성 시 필수인 HTML 언어를 몰라도 웹상에서 간단하게 인터넷 숍을 만들 수 있다. 이후 시스템개발에 마스다 가즈요시増田和가 충원되어 미키타니를 포함한 3명의 지혜가 모여 라쿠텐 이치바의 기본 모습이 갖추어지게 된다.

발로 뛰는 영업
라쿠텐 이치바의 시스템이 갖추어지고 있는 가운데, 다음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영업이었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고 지방의 작은 상점에까지 인터넷 쇼핑몰이 일반화된 요즘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컴퓨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도 적었고, 인터넷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 상인에게 라쿠텐 이치바를 알리고 이해시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적은 인원으로 시스템 개발, 영업을 따로 나누어 진행하기보다는 미키타니, 혼조, 그리고 영업 담당 직원까지 전 사원이 일본 전국을 나누어 직접 방문을 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의 기본적인 사용방법부터 앞으로 전개될 인터넷 세상, 그리고 라쿠텐 이치바의 서비스 설명까지 차근차근 이해시키고 가르치는 적극적인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특히 1997년 당시의 일본은 버블 붕괴와 함께 계속되는 경기 불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 막 첫걸음마를 시작한 라쿠텐을 믿고 선뜻 6개월 치인 30만 엔(월 이용료 5만 엔)을 선금으로 지급하는 고객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라쿠텐의 젊은 영업사원이 컴퓨터의 기본적인 사용법부터 인터넷 사용법 그리고 라쿠텐 이치바를 통한 상품 판매 방법까지 하나하나 적극적으로 지도하면서 점차 판매가 이루어지고 가입 점포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라쿠텐의 영업은 예약 없이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방문 영업도 하지만, 무조건적인 영업보다는 라쿠텐이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 언론에 소개된 신상품을 내놓은 업체를 공략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취하였다. 또한,업체 리스트를 두 가지로 나누어 금방 계약할 수 있는 숏리스트와 시간이 걸릴 것 같은 곳은 롱리스트로 정리하여 관리하였으며, 영업을 통해 가설, 검증과 실증을 통해 영업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작업도 병행하여 영업의 효율을 높였다.

<라쿠텐 스토리>.2012년1월 출간예정. 이왕재著.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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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1.12.30 10:54
일본 인터넷의 영원한 1위 기업 야후 재팬과 2위 기업 라쿠텐의 균형이 2009년을 기점으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일본 포털사이트 점유율 1위로 검색 시장 50% 이상을 장악, 전자상거래(e커머스) 분야는 야후 옥션의 높은 매출과 이익을 내면서 크게 앞서나가던 야후 재팬이었다. 그러나 일본 최대의 쇼핑몰 라쿠텐 이치바를 시작으로 라쿠텐 트레블, 라쿠텐 은행, 라쿠텐 증권, 라쿠텐 카드 등 라쿠텐 경제권을 구축, 안정적인 매출과 이익을 내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라쿠텐이 매출 면에서 드디어 오랜 라이벌 야후 재팬을 앞서가게 된 것이다.


전세가 처음으로 역전된 시점인 2009년에는 전체 매출에서 184억 엔(라쿠텐 2982억 엔:야후 재팬 2798억 엔)의 차이가 났지만 2010년에는 537억 엔(라쿠텐 3461억 엔:야후 재팬 2924억 엔)으로 벌어졌다. 해외 진출에 소극적인 야후 재팬과 적극적으로 글로벌화를 추진하는 라쿠텐을 비교해볼 때 그 사이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라쿠텐은 일본 최고의 전자상거래 업체로 일본 국내 시장에서 탄탄한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해외 주요 국가의 전자상거래 업체를 차례로 인수하며 이제는 세계 1위의 전자상거래 업체가 되겠다는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의 인터넷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나간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2010년 일본 전체의 BtoC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2009년의 6조 6960억 엔과 비교해볼 때 16.3% 증가한 7조 7880억 엔을 기록한 가운데, 라쿠텐(라쿠텐 이치바와 라쿠텐 북스)의 유통액은 2009년 8003억 엔과 비교해서 15.2% 증가한 9438억 엔을 기록하였다. 유통액만 보면 일본 최대의 백화점인 소고&세이부의 유통액에 육박하는 규모이다.




<라쿠텐 스토리>.2012년1월 출간예정. 이왕재著.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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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1.12.26 17:20
인터넷에 대한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사용자들은 별도의 응용프로그램 대신 웹을 통해 다양한 일과 서비스를 즐기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메일이 있으며 동영상이나 RSS를 통한 글 읽기 등 컴퓨터 사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비스들이 웹브라우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파이어폭스는 해당 웹사이트를 마치 개별 응용프로그램처럼 만들어주는 기능을 제공한다. G메일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사용빈도가 높은 웹사이트를 앱 탭으로 만들어놓으면 파이어폭스에서 한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➊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에 접속한다. 예로 구글의 Gmail에 접속해보았다.



➋ 해당 페이지의 탭을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한 후 ‘앱 탭 지정’을 선택한다.



➌ 이제 현재 탭이 작은 아이콘으로 축소되며 파이어폭스 상단에 항상 고정된다. 파이어폭스를 사용 중에 이 아이콘을 클릭하면 별개의 응용프로그램처럼 사용할 수 있다.


여러 사이트를 앱 탭으로 활용한 모습


<파이어폭스 스토리 & 가이드북>.안재욱.e비즈북스
posted by e비즈북스 2011.12.23 11:03
파이어폭스는 후발주자로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다른 점이라면 점유율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질라 재단의 CEO 존 릴리John Lilly는 2008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익스플로러처럼 90%까지 점유율이 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3할 정도의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이에 또 다른 관계자는 모질라의 목표는 파이어폭스에 지속적인 발전을 가하는 것이며 이는 시장에서 독점적인 제품이 탄생하지 못하게 하고 경쟁을 통해 사용자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파이어폭스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잠에서 깨워 7 버전을 만들게 했고 애플이 새로운 사파리 3을 출시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설명했듯이 모질라와 파이어폭스의 목표가 돈이 아니라 인터넷 전체의 발전과 사용자의 이익에 있기 때문이다. 비영리 재단이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과 행동이다. 돈이 목적인 대기업들의 싸움판에서 파이어폭스가 중재자로서 건전한 경쟁구도를 조성하여 독점을 제한하고 발전에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다. 파이어폭스가 날이 갈수록 개발 기간이 짧아지고 성능이 개선되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파이어폭스의 등장 이후 경쟁에 불이 붙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애플 같은 거인들이 지속적으로 나은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넷스케이프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첫 번째 경쟁, 파이어폭스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두 번째 경쟁, 그리고 이제 그다음 세 번째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시장에서 큰 점유율을 얻는 것보다 파이어폭스에게 더 큰 명예를 부여한다. 단순히 시장 점유율 숫자로 평가할 수 없는 대단한 업적이다.

flickr - dekuwa


“모질라 재단의 가장 위대한 제품은 인터넷 익스플로러 7이다”라는 말에서 단순한 농담 그 이상의 의미와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파이어폭스의 발전은 멈추지 않는다. 모질라 재단은 4 버전 이후부터 6주마다 최신 버전을 출시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약 3년의 개발 기간이 소요된 파이어폭스 3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계획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파이어폭스의 반격으로 데스크톱 웹브라우저 시장에 격변이 찾아왔다면 그들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당연히 차세대 PC 시장으로 평가받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시장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촉발된 돌풍이 사용자들의 폭발적인 수요를 이끌어냈고 현재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IT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취급된다. 컴퓨터 시장이 구글의 크롬 OS(클라우드 컴퓨팅) 정도의 시도를 제외하면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사람들의 관심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집중되어 있다. 건전한 경쟁을 통한 발전으로 증가되는 사용자의 이익이 철학인 모질라 재단이라면 당연히 이 분야를 소홀히 여길 수 없을 것이다.

태블릿 PC를 스마트폰의 확장으로 여긴다면 현재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는 것은 애플과 구글이다. 각각 iOS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시장을 쥐고 있으며 후발주자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폰과 윈도우 8로 공격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 이들 시장의 특성상 웹브라우저보다 앱의 중요도가 월등하지만 선의의 경쟁을 이끌기 위해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모바일용 파이어폭스를 출시했다. 데스크톱 시장에서의 역할을 스마트폰에서도 이어가는 것이다.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애플은 그 특유의 폐쇄적 환경 덕에 iOS용 파이어폭스를 내놓지 못하게 하고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모질라 재단이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모바일 시장에서는 웹브라우저의 위상이 데스크톱의 위상과 같지 않다. 따라서 자신들의 철학에 따라 더 큰 목적을 이루려면 운영체제 안의 웹브라우저가 아닌 운영체제 그 자체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현재 시장의 초점도 모바일 안의 경쟁이 아니라 모바일 간의 경쟁, 즉 iOS와 안드로이드, 그리고 윈도우 간의 경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모질라 재단의 다음 목표는 운영체제인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실제로 모질라 재단은 2011년 7월 발표를 통해 운영체제 개발에 나섰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모질라 재단의 발표에 따르면, 구글이 만드는 클라우드 OS와 비슷하게 넷북과 같은 노트북용 웹 OS,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서 구동시키는 모바일 OS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시장의 흐름에 따른 당연한 행동이다. 이들의 목표가 이루어져 OS가 세상에 공개되면 애플의 iOS,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함께 사용자 이익을 위한 중재자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데스크톱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유산으로 새로운 반격에 나서길 기대한다.

<파이어폭스 스토리 & 가이드북>.안재욱.e비즈북스

posted by e비즈북스 2011.12.20 12:09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의 시초인 월드와이드웹은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팀 버너스리가 1989년경 개발한 것이다. 이후 인터넷은 지속적으로 발전했고 웹을 이용하기 위한 도구인 웹브라우저 역시 함께 발전하였다. 다양한 초기 브라우저들이 나타나는 와중 각종 프로그램과 통신 규약을 개발, 연구하던 NCSA에 의해 모자이크라는 웹브라우저가 1993년에 출시된다. 이 모자이크의 개발을 주도했던 창립자들이 만든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가 바로 인터넷의 부흥을 이끈 1세대 웹브라우저이다. 넷스케이프는 별다른 경쟁 없이 시장을 독점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웹브라우저가 된다.



이렇게 넷스케이프가 큰 성공을 거두는 와중에 스파이글래스라는 다른 기업에서도 모자이크의 소스를 사용한 웹브라우저를 제작하고 있었고 이 웹브라우저는 결국 마이크로 소프트에게 넘어간다. 1995년 8월에 공개된 1 버전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윈도우 95에 포함된다. 이후 계속된 발전을 거치며 1996년 8월에 공개된 3 버전은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최신 HTML 기술을 지원하고 액티브X와 자바Java 환경을 갖춘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넷스케이프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부각된다. 이후 1997년 11월 공개된 4 버전은 윈도우 98에 내장되어 출시되어 윈도우 98 운영체제의 전 세계적인 인기를 등에 엎고 넷스케이프와의 1차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한다. 넷스케이프는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인터넷 익스플로러에게 빼앗기지만 지속적으로 개발을 이어갔다. 그러나 2002년 이후로는 사용자층을 거의 잃어버리고 개발이 중단되어버렸다.


넷스케이프 72 : 마이크로소프트 18
치열했던 마이크로소프트와 넷스케이프의 경쟁에 얽힌 재미있는 비화가 있다. 넷스케이프를 몰락시킨 인터넷 익스플로러 4가 출시되던 시기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 본사의 앞마당에 거대한 철재 익스플로러 모형을 설치해놓았다. 자신들의 부흥을 선언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를 본 넷스케이프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고, 앞마당의 괴악한 철재 모형을 넘어뜨린 후 자신들을 상징하던 인형을 올려놓았다. 또 그 구조물 위에 당시 시장 점유율을 나타내는 “넷스케이프 72 : 마이크로소프트 18”이라는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4가 나온 이후로도 넷스케이프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6이 나올 때까지 경쟁을 이어왔지만, 결국 몰락하였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시장의 9할을 점유할 정도로 거대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성공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선물이었으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이미 시장에서 경쟁은 끝났고 더 상대해야 할 경쟁자가 없었던 것이다. ‘끼워 팔기’에 대단한 비판을 받던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자가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개발을 중단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치열하게 기능을 개선하고 성능을 향상시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독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우리나라도 윈도우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6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다양한 인터넷 콘텐츠와 서비스가 사용자의 증가와 요구에 따라 증가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기업과 정부는 신중하지 못한 자세로 기형적인 웹 풍토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금융이나 교육 등 국가에 핵심적인 서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가 지켜야 하는 신호등과 같이 웹사이트를 제작할 때에도 엄연한 표준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윈도우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에만 맞게 콘텐츠와 서비스를 생산한 것이다. 게다가 경각심 없이 액티브X 기술을 무분별하게 사용했고, 그 결과 국내 사용자들의 보안에 대한 인식을 무디게 하고 수준을 떨어뜨렸다.
<파이어폭스 스토리 & 가이드북>.안재욱.e비즈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