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비즈북스의다른책들/IT 슈퍼리치의 조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10.16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2. 2012.10.15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다
  3. 2012.10.12 IT 슈퍼리치를 키운 위대한 부모들
posted by e비즈북스 2012.10.16 09:19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비아냥과 무시 속에서


IT 슈퍼리치들의공 통점 중 하나는 회사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꾼 그들인데도 수많은 비웃음과 무시를 당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대학원생이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창업을 한 이유는 자신이 개발한 검색 서비스를 누구도 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인터넷 포털 업체인 익사이트, 야후, 인포시크, 알타비스타 관계자들을 찾아가 검색엔진을 판매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인포시크의 창업자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당장 꺼져”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찾아간 모든 회사로부터 거절당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만든 검색엔진으로 구글을 창업했던 것이다.

마이클 델 역시 중간 유통상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다이렉트 마케팅을 펼칠 때 다른 기업들로부터 곧 실패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마이클 델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매번 같은 소리를들어야만했다. 마이클 델은 영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22명의 기자 중 21명이 델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소비자들에게 직접 컴퓨터를 판매하는 델의 수익모델이 미국에서만 통하고 영국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10년 동안 델은 영국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실패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빌 게이츠가 미국 컴퓨터 업계에서 유명인사가 되기 시작한 것은 한 잡지에 <불법 복사는 도둑질>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는 무료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빌 게이츠는 미국 전역에 있는 컴퓨터광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만 했다. 그런 시국에서 소프트웨어로 돈을 벌겠다는 발상은 시대를 앞서가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빌 게이츠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IBM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대형 컴퓨터를 만드는 IBM은 데스크톱 컴퓨터의 가치를 과소평가했고 마이크로소프트 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신의 뜻대로 몰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손정의가 야후에 150억 엔을 투자했을 때는 ‘일본에서 온 마지막 거품남’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손정의는 추가로 300억 엔을 더 투자하게 되는데 나중에 이 금액의 가치는 360배를 뛰어넘게 된다. 닌텐도가 미국 시장에 패미컴을 발표할 때 이를 비웃는 사람도 많았고, 참가한 박람회에서는 주문을 받지도 못했다. 뉴욕에서 패미컴을 판매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또 어떤 업체에서 패미컴을 유통하려고하자 직원들이 회사의 오명이 될 것이라며 이를 뜯어말릴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패미컴이 미국에 발매되자 그해 크리스마스시즌에만 190만 대를 판매했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6100만 대가 넘도록 팔리게 된다.

앤디 그로브는 ‘인텔 인사이드’ 광고 마케팅을 통해서 코카콜라와 나이키에 비견되는 브랜드 파워를 구축하게 된다. 하지만 인텔 인사이드캠페인을시작할 당시만해도 언론에서는 돈을 하수구에 버리는 행위라면서 비난했다. 루 거스너가 처음 비즈니스 컨설팅 서비스를 시행할 때에도 반대하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오늘날 IBM은 글로벌 비즈니스 컨설팅 서비스 분야에서 최우수 기업으로 손꼽힌다.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이 컨설팅과 서비스 비즈니스 분야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을 창업하기 전 제프 베저스는 D.E. 쇼라는 회사에 다녔다.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라는 특명을 받은 그는 인터넷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온라인에서 책을 판매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지만 퇴짜를 맞았다. 아무도 그의 아이디어에 흥미를 갖지 않았고 그는 실망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하기 위해서 부사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던 안정된 직장인 D.E. 쇼를 그만 두고 아마존을 창업하게 된다.

애플 컴퓨터는 태생에서부터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애플 I 컴퓨터를 만든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가 이를 사업화하자고 하자 누가 자신의 제품을 구입하겠느냐며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애플 I은 컴퓨터광들의 모임인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자신의 제품을 HP에도 보고했지만 HP 역시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에 인력과 자금을 지원할 생각이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만약에 HP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의 발명품을 받아들였다면 오늘날의 애플은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공동 창업자 중에 한 명인 론 웨인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주식 10%를 넘기고 회사를 떠났다. 만약 그가 10%의 주식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2010년 말 기준으로 26억 달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투자를 받으려고할 때 역시 고난은 계속된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한 투자자였던 돈 밸런타인을 찾아가자 ‘이단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대중화시켜 컴퓨터를 재발명했다는 소리를 듣는 매킨토시를 처음 개발했을 때 역시, 애플 내부에서는 그렇게 환영받는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IT 역사상 가장 훌륭한 TV 광고로 손꼽히는 <1984> 역시 이사회로부터최악의 광고라며 방영이 취소되도록 압력을 받았다. 하지만 미리 구입한 광고 방영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송을 하게 된다. 매킨토시가 출시된 직후에는손이 세 개 필요한 컴퓨터라면서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매킨토시가 초기의 판매부진을 극복하는 데는 레이저 라이터의 역할이 컸다. 레이저 라이터를 통해서 전자출판이 창조되면서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이 매킨토시를 구입하기 시작했기때문이다. 하지만 레이저 라이터 역시 애플의 임원들과 직원들에게 비난을 받거나 무시를 받은 프로젝트였다. 아이맥을 개발할 때 스티브 잡스는 플로피디스크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제거했고, 맥북에서는 옵티컬 드라이브(CD-ROM 드라이브)를 없앴는데 이 때문에 그는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음악산업을 뿌리부터 바꾸었다는 아이팟iPod을 공개할 때 역시 사람들은 아이팟의 이름을 패러디하여 ‘멍청이가 우리 기기에 가격을 메겼다Idiots Price Our Devices’라든가 ’나는 다른 기기가 더 좋아I Prefer Other Device’라면서 비아냥거렸다. 특히 『와이어드』의 한 기자는 「아이팟을 부수자Smash the iPod」라는 제목의 컬럼을 써 스티브 잡스의 머리를 내려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애플 부활의 일등공신 아이팟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점 중에서 가장 돈을 잘 벌기로 유명한 애플 스토어 역시 처음 시장에 진출할 때는 『비즈니스위크』로부터 2년 안에 큰 고통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휴대폰의 역사를 새로 쓰는 아이폰 역시 『블룸버그』의 메튜린 기자와 존 드보락 같은 유명 컬럼니스트에게 비난을 들었고 다른 휴대폰 제조 업체들로부터 고전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들었다. 특히 스티브 발머는 애플이 아닌 다른 회사가 내놓았다면 아무런 흥미를 끌지 못했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아이패드가 공개될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글의 회장인 에릭 슈미츠는 큰 전화기와 태블릿 PC의 차이를 알려달라면서 비관적으로 반응했고 닌텐도의 CEO 이와타 사토루는 아이팟 터치가 더 커졌을 뿐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빌 게이츠 역시 펜과 키보드가 없어서 힘들 것이라고 했다. 언론이나 인터넷에서도 아이패드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얼마나 혹평이 쏟아졌는지 스티브 잡스는 우울과 충격 속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IT 슈퍼리치의 조건>중에서.김정남.e비즈북스.10월 출간








IT 슈퍼리치의 조건

저자
김정남 지음
출판사
e비즈북스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수년간 IT 칼럼을 써온 저자는 IT 슈퍼리치들의 특별한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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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2.10.15 10:54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다





부모 뜻을 거역할 정도로 컴퓨터에 빠지다

마이클 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빠져 있었다.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일곱 살 때 구입한 계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그가 다닌 중학교에는 장거리에 있는 중앙 컴퓨터에 전화선을 연결해서 컴퓨터를 이용하게 만들어주는 텔레타이프 단말기가 있었다. 이를 이용하면서 델은 컴퓨터에 대한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가 처음 만난 개인용 컴퓨터는 한때 애플II 컴퓨터의 라이벌이었던 라디오섀크Radio Shack 기종이었다. 그는 라디오섀크 매장을 수시로 방문하여컴퓨터를 만지며 놀았다. 그렇게 컴퓨터 주위를 어슬렁거렸던 마이클 델은 컴퓨터를 갖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갖게 된다. 당시 열댓 살에 불과했던 그가 컴퓨터를 구입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부모님에게 컴퓨터를 사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매일같이 컴퓨터를 사달라고 조르자 결국 그의 부모는 마이클 델의 열다섯 번째 생일에 맞춰 컴퓨터를 선물해준다. 그가 구입한 컴퓨터는 애플II였는데 마이클 델은 집에컴퓨터가 도착하자마자 본체를 분해해서 부모님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마이클 델이 다른 IT 슈퍼리치와 다르게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대범한 시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던 마이클 델은 각종 부품을 구입해서 컴퓨터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일에 매진했다. 그래서 마이클 델의 방 안은 컴퓨터 부품들로 꽉 채워지게 된다. 우등생이었던 마이클 델은 학교 수업도 몰래 빼먹고 컴퓨터 전시회에 참여할 정도로 컴퓨터에 열성적이었다. 그는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정보들을 수집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의 틈새시장을 발견한다. 컴퓨터 매장 주인은 정작 컴퓨터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컴퓨터가 원가에 비해서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마이클 델은 자신이 훨씬 저렴한 가격에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마이클 델이 컴퓨터에 과하게 빠져 있자 부모님들의 걱정은 날로 커졌다. 마이클 델은 부모님들을 위해 형이 그랬던 것처럼 의사가 되기 위해 텍사스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부모님의 기대와 다르게 기숙사에서 컴퓨터를 조립해서 판매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조립해주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주변의 변호사나 의사들까지 컴퓨터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른다. 컴퓨터 조립에 몰두하던 마이클 델은 학교 수업을 자주 빼먹었고 학점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부모가 불시에 마이클 델을 방문하게 된다. 그의 부모가 공항에서 전화를 했지만 숨기기에는 너무 많은 컴퓨터 장비와 부품들을 도저히 숨기려야 숨길 수는 없었다. 컴퓨터 부품을 발견한 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학업에 전념하라고 꾸짖었다. 마이클 델은 부모님에게 IBM과 경쟁하고 싶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부모님의 뜻대로 학업에 충실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 컴퓨터가 없는 삶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부모님과 약속한 지 3주가 지나자 마이클 델은 컴퓨터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IBM을 능가하는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정한다.




아버지에게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준 마크 저커버그

컴퓨터에 대한 애정은 마크 저커버그에게서도느낄 수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6학년 때 처음 컴퓨터를 갖게 된 마크저커버그는 아버지로부터 컴퓨터를 배웠고 나중에는 아버지가 고용한 프로그래머에게 특별과외를 받았다. 그때 그를 가르친 뉴먼은 빠른 속도로 숙지하는 마크 저커버그에게 놀랐다고 한다.

마크 저커버그는열 세 살 때 치과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위해 주크넷을 만든다. 치과에 손님이 오면 접수원이 큰 소리로 손님이 온 것을 알렸는데 마크 저커버그는컴퓨터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그의 아버지가 손님이 왔다는 사실을 메시지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친구들과 함께 고대 로마가 배경인 컴퓨터 게임을 만들기도 했고 대학원에 가서 컴퓨터 수업을 듣는 열성을 보인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음악 듣는 사람의 청취 습관을 분석해서 음악을 추천해주는 프로그램인 ‘시냅스 플레이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가 이 프로그램을 공개하자 사람들의관심을 끌었는데 그중에는AOL과 마이크로소프트같은 기업들도 있었다. 100만 달러에 시냅스 플레이어를 구입하겠다는 회사가 있었지만 학교를 계속 다녀야 했던 마크 저커버그는 제안을 거절한다.

하버드 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진학한 마크 저커버그는잠은 거의 자지 않고 항상 컴퓨터 아니면 화이트보드 앞에 있었다. 저커버그는 인터넷 서비스에대한 아이디어들을 구상했는데 생각이 떠오르면 화이트보드에 정리하는 습관이 있었다. 인터넷에 대한 열망이 컸던 마크 저커버그는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도 주제는 거의 인터넷에 관한 이야기였다. 급기야 컴퓨터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던 기숙사 친구들은 마크 저커버그에게 영향을 받아 컴퓨터에 대한 지식을 쌓기 시작한다. 그때 마크 저커버그와 대화 수준을 맞추기 위해 컴퓨터에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사람은 크리스 휴즈와 더스틴 모스코비츠로 페이스북 창업에 동참하게 되는 친구들이다.

한번은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해서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인터넷 서비스를만들었다. 한때 한국에서 유행했던 <이상형 월드컵>처럼 하버드 대학교 학생들의 사진을 보고 누가 매력 있는 사람인지 선택하는 서비스였다. 일종의 투표 개념이 들어갔기 때문에 누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서비스였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이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위해 학교의 웹사이트를 해킹해 사진 자료를 구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마크 저커버그는 학교 징계위원회부터 보호관찰 처분 및 여학생 단체에 대한 사과를 명령받는다. 그러나 마크 저커버그는 징계를 받아도 전혀 의기소침하지 않고 그 해에만 12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중 하나가 페이스매시로부터 영감을 얻어 발전시킨 페이스북이었다. 사실 거대한 비전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큰 사업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거나 돈을 벌 목적으로 페이스북을 만든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학교 친구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친교를 맺을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발상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다.

사실 IT 업계의 성공에는 페이스북처럼 거창한 사업목표와 사업계획보다는 단지 재미로 시작해서 의외의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에서 5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 중인 안드로이드는 리눅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컴퓨터 서버 운영체제로도 각광받는 리눅스는 1991년 헬싱키 대학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리누스 토발즈Linus Benedict Torvalds가 재미로 만든 것이었다.

야후 역시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생이었던 제리 양이 재미로 만든 것이다. 1993년 같은 연구실을 쓰면서 친해진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는 마침 불어닥친 인터넷 열풍에 푹 빠져 있었다. 데이비드 파일로는 자주 접속하는인터넷 사이트가무려 200군데가 넘었다. 그래서 친구인 제리 양과 함께 인터넷 사이트를 주제별로 모아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이들이 구축한 사이트는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야후로 이름을 바꿔 1990년대 후반 인터넷 열풍의 주역이 된다. 두 사람은 단지 재미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인터넷 경제의 선봉이 된 것이다.

IT 슈퍼리치들은 돈보다는 컴퓨터와 사랑에 빠졌을 뿐이다. 즉 자신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했던 일들이 사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IT 슈퍼리치의 조건>중에서.김정남.e비즈북스.10월 출간





IT 슈퍼리치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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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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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비즈북스 | 2012-10-22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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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12.10.12 10:39


IT 슈퍼리치를 키운

위대한 부모들



오늘날 자수성가한 많은 IT 슈퍼리치를 보면 그들 스스로 뛰어나고 훌륭해서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IT 슈퍼리치들의 성공 신화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헌신적인 사랑과 남다른 교육열로 자녀를 키운 훌륭한 부모가 자리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위인전이나 평전이 그러하듯 IT 슈퍼리치를 만들어낸 부모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레이크사이드 학교에 재학 중인 시절부터 단짝친구 사이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동료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할 때 폴 앨런은 회사의 지분을 60 : 40으로 해야 한다는 빌 게이츠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폴 앨런은 오래 전부터 친구로 지내오고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해왔으니 50 : 50이라고 생각했지만 빌 게이츠는 자신이 일을 더 많이 했다면서 60 : 40을 고집한 것이다. 결국 폴 앨런은 빌 게이츠의 요구대로 합의한다.

1977년 빌 게이츠는 다시 지분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개발의 더 많은 부분에 기여했고 하버드 대학교까지 그만두고 일에 매진했기때문에 64%를 자신이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도 빌 게이츠는 60 : 40이었던 지분 구조를 64 : 36으로 나누자는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창업의 일등공신은 폴 앨런이었고프로그램 개발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절친한 친구와 싸우고 싶지 않았던 폴 앨런은 빌 게이츠의 요구조건을 들어준다. 1977년 2월 3일 당시 맺어진 그들의 계약 내용을 보면 빌 게이츠가 얼마나 철저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계약 내용 중에는 전업 학생이 되면 비즈니스 관련 업무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이는 하버드 대학교로 복학할 수도 있는 빌 게이츠 자신을 위한 항목이었다. 그리고 12조에는 빌 게이츠가 폴 앨런과의 파트너 관계를 해지할 수도 있다는 내용도 넣었다.

여전히 빌 게이츠와 친구 사이로 지내는 폴 앨런은 자신의 자서전인 『아이디어맨』에서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폴 앨런에 의하면 빌 게이츠가 64%를 요구한 이유는 만약 수입을 2 : 1로 나누게 되면 자신이 반발할 것을 알기에 빌 게이츠가 얻을 수 있는 최대 지분을 64%로 계산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거래에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대치를 얻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빌 게이츠인만큼 폴 앨런이 협상으로 그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빌 게이츠의 뜻대로 64 : 36으로 지분 구조가 바뀌는 계약에 서명을 한 앨런은 이것이 도서관 사서의 아들인 자신과 변호사의 아들인 빌 게이츠의 차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보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폴 앨런의 푸념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앨런의 생각을 탄식 섞인 농담으로 생각지 않고 오히려 공감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며 자녀의 성격이나 가치관까지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록히드 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린시절 스티브워즈니악은 과학이 곧 종교였던 엔지니어인 아버지로부터 과학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여섯 살 때 그의 아버지는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크리스털 라디오 세트를 사주었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가며 라디오를 조립할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스스로 전자장치를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짜릿함과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다양한 과학실험을 했고, 과학 경진대회에서 온갖 상을 휩쓸었다.

그의 인생에 아버지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버지가 구독하는 공학 저널이었다. 워즈니악이 컴퓨터를 접하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이 바로공학 저널이었던 것이다. 공학 저널에서 에니악ENIAC 컴퓨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고 컴퓨터의 세계로 빠진 그는 이를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아버지의 영향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방향을 빨리 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고, 후에 애플 II 컴퓨터를 통해 세계적인 컴퓨터 엔지니어가 될 수 있었다.

델 컴퓨터를 창업하여 159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 마이클 델 역시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밥상머리 교육으로 경제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 1965년 2월 마이클 델은 치과의사였던 아버지 알렉산더와 증권 중개인이었던 어머니 로레인 사이에서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유대인 집안답게 교육에 철저했다. 친척 중에는 유독 의사가 많았고 그의 형제들 역시 의사가 되었다. 사실 마이클 델도 의사가 되기 위해서 텍사스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아버지는 승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자녀들이 게임을 하다가 서로 격해지면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아이들을 혼냈지만 나중에는 각각 불러서 반드시 승리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증권 중개인답게 모든 관심사가 경제에 있었다. 그래서 가족이 식사를 할 때에는 연방은행의금리에서부터 기업의 주식 시세 그리고 인플레이션과 석유 위기 등 경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어린 시절부터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했던 그는 경제에 대한 남다른 관념을 갖게 되었다. 마이클 델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에게 사탕을 팔면서 뛰어난 사업가적 수완을 발휘했다. 당시의 담임교사는 이제 겨우 여덟 살이었던 델을 보면서 그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의 뛰어난 경제감각을 이야기할때 빠지지 않는 것은그가 열두 살에 펼친 우표 사업이다. 우표 수집이 취미였던 친구의 아버지 덕분에 마이클 델도 자연스럽게 우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오르는 우표의 특징을 알게 된 그는 어머니로부터 자주 들었던 상업적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우표는 경매를 통해서 거래가 이루어졌는데 중개인들의 수수료는 비쌌다. 그래서 그는 직접 우표를 구입하려는 사람과 판매하는 사람을 연결시켜주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들었다. 먼저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중국 음식점에서 잔심부름을 하여 돈을 모은 후 우표를 구입했다. 열두 살에 불과했던 그는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만약 우표를 팔고 싶을 때는 중개인을 이용하지 말고 자신에게그 일을 맡겨보라고 홍보했다고 한다. 자신이 확보한 우표를 판매하기 위해서 직접 제품 카탈로그를 만들었고 수집가들을 위한 잡지 『린스 스탬프 뉴스』에 광고를 냈다. 그는 우표 가격의 변동사항을 조사하여 가장 좋은 값에 우표를 판매하는 시기를 선택하여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자녀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교육법을 가지고 있던 훌륭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IT 슈퍼리치들이 단순히 부모를 잘 만나서 성공하게된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IT 슈퍼리치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들 부모의 양육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제 IT 슈퍼리치의 부모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IT 슈퍼리치의 조건>중에서.김정남.e비즈북스.10월 출간







IT 슈퍼리치의 조건

저자
김정남 지음
출판사
e비즈북스 | 2012-10-22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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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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