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08.04.04 11:06

어릴 때부터 넘치던 끼와 감각, 톡톡

인터뷰를 위해 만난 립합의 운영자 김예진(25) 씨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망설임 없는 표정, 얼굴 가득 배어 있는 웃음기를 가진 발랄한 아가씨였다. 이런 사람들은 같이 있는 사람까지 밝아지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예전 성격은 이보다 더 활발했었다고 한다. 푼수(?)처럼 밝은 성격이었는데 ‘4억 소녀’ 방송 당시 상처를 받으면서 푹 가라앉았다가 지금은 거의 절반 정도 수면 위로 올라온 거란다. 원래는 현재의 모습에서 약 두 배는 업(UP)된 상태였다니 그야말로 에너지 넘치는 소녀가 그려졌다. 

외향적인 밝은 성격답게 그녀는 어려서부터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했던 것 같다. 키도 크고 몸매도 예뻐서 어떤 옷을 입어도 속칭 ‘옷발’이 났다. 그녀의 사업가적 기질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사 모은 안 입는 옷들을 친구들에게 팔았던 것이다. 그것도 원가로.

“그때 당시 우리 학교 애들이 옷 입는 센스가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말을 좀 잘해서 애들을 조금 꼬시면 사더라고요(웃음). 대부분 제가 중학교 때부터 동대문이나 이태원 등지를 돌아다니며 사 모은 옷들이었고 2년 정도 입었던 옷들이었는데도 원가를 받고 팔았어요. 한창 구제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구멍 나고 찢어진 티가 한 장에 오천 원 정도 했죠. 그리고 배지 같은 액세서리도 많았는데 그것도 팔았어요. 그런데 액세서리는 자잘하니까 세트로 묶어서 팔았죠. A세트, B세트 이렇게 해서.”

누구는 공부가 가장 쉬웠다지만 예진 씨는 이상하게 이런 일들이 쉬웠다. 친구들을 대상으로 재미 삼아 시작했지만 이때의 성공적인 경험은 그녀의 적성을 발견하게 했고 이것이 나중에 쇼핑몰 창업의 계기가 되는 선글라스 판매로 이어졌다.

“옷을 팔아서 번 돈으로 다시 다른 옷을 샀어요. 그 후에 명품에 관심이 생겨서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명품을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마침 옥션에서 선글라스 싸게 사는 걸 본 거죠. 그래서 한 오만 원 정도 더 웃돈을 붙여서 다음 카페에 올렸어요. 그리고 원하는 사람들을 옥션 판매자와 연결해 준 거죠. 정말 힘들지 않게 돈을 벌었어요. 당시 월 100만 원 정도 수입이 생겼으니까.”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심심하면 컴퓨터를 하던 예진 씨였기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의 장사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재미를 느끼면서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이런 예진 씨의 자질을 본격적인 사업으로 연결해 준 것은 담임 선생님이었다. 예진 씨가 인터넷으로 선글라스를 판매하는 것을 보고 소질 있다, 한번 해 보라고 격려해 주셨던 것. 예진 씨의 창업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이후에는 인터넷을 교과서 삼아 다른 쇼핑몰을 연구하면서 차근차근 창업의 절차를 밟아 나갔다. 하지만 당시는 국내 소호 쇼핑몰 창업에 관한 가이드북이 다양하지도 않았던 시기라 사업 관련 서류를 구비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게다가 고등학교 3학년인 2003년 12월에 쇼핑몰을 오픈했으니 학생이라는 신분이 걸림돌이 되었다. 학생은 사업자등록증을 낼 때도, 신용카드를 만들 때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교복을 입고 사입하러 가면 시장 상인들이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낭랑 18세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창업 준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초기 창업자금은 엄마에게 빌린 350만 원. 홈페이지 만드는 데에만 10만 원 들었고 나머지는 사입비로 들어갔다.

시장 상인들과 친해져라

처음 쇼핑몰을 시작하는 운영들이 거의 그렇듯 예진 씨 역시 도매 시장을 전혀 몰랐다. 동대문에 자주 다니긴 했지만 그녀가 간 곳은 밀리오레나 두타 같은 소매 쇼핑몰이었다. 그래도 남자친구가 동대문을 잘 아는 편이어서 그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남자친구랑 같이 도매 시장에 처음 갔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인터넷 의류 사이트에서 보던 옷들이 전부 있는 거예요. 그것도 반가격에. 초보인 티를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돈에 맞춰서 일단 두 장씩 구매했어요. 제가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명함을 팠었거든요. 물건 사고 명함 돌리고. 하지만 모든 상인들이 물건을 주는 것은 아니었어요. 정말 마음에 드는 게 있는데 물건 안 주는 곳은 음료수 사가지고 가서 온종일 이야기하면서 놀고, 그러면서 상인들과 친해졌어요. 처음에는 ‘얘, 뭐야’ 하는 반응을 보이던 상인들도 차츰 친해지니까 물건을 주더라고요.”

반년 정도가 지난 다음에는 상인들이 샘플도 주기 시작했다. 청평화 시장은 반년 정도 지난 후에 친구와 우연히 갔다가 물건이 싸서 거래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거의 청평화에서 물건을 한다. 낮에 사입을 할 수 있으니까 편하고 샘플도 잘 주는 편이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뛰어다니는 딸을 보고만 있을 어머니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예진 씨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 조금씩 도움을 주시던 어머니가 2005년 사업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동참하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주문 후 사입은 어머니가 담당한다. 샘플 받는 일이 정례화된 것은 어머니의 공이 크다. 아무것도 모르던 엄마를 한 달간 교육(?)했더니 그다음부터는 어머니 혼자 사입도 잘하시고 샘플도 잘 받아 내시더라는 것. 샘플을 안 주면 ‘안 주면 말아’ 하는 식으로 거래를 중지하면서 거래처의 리스트를 만들어 가셨다. 예진 씨의 표현대로라면 어머니가 다소 ‘들이대는 스타일’이라 상인들을 잘 다루셨던 것으로 보인다. 예진 씨 성격 일부는 어머니의 영향임이 분명하다.

현재 립합의 주 거래처는 지금 약 50군데 정도. 하지만 계속 회의를 하면서 거래처의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을 잊지 않는다. 물건 잘 안 주는 곳이나 질이 떨어지는 곳 등을 걸러 내는 것이다.

오랫동안 거래하다 보니 이제는 립합의 스타일에 맞춰 샘플을 해 주는 곳이 생기기도 한다. 상인들이 미리 샘플을 보여 주면서 색깔이나 디자인 등을 물어보는 것. 그때 예진 씨의 의견을 제시하면 조율할 수 있다. 또 립합의 스타일과 잘 맞는 거래처는 사장님이 ‘예진이빨로 해 줘야지’ 하시면서 알아서 립합의 스타일 대로 제작해 주기도 한다. 어느새 시장에도 립합 스타일이 인정받고 자리 잡은 것이다. 고등학생이라 무시당하던 18세 소녀가 24세의 사장으로 우뚝 선 모습이 절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현재 샘플 사입은 3개월 전부터 일하기 시작한 스타일리스트와 예진 씨가 맡고 있다. 립합을 시작할 당시에는 풀코디를 보여 주는 것이 이목을 끌 만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너나 없이 하고 있어 립합만의 특색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예진 씨의 이야기다. 그래도 시크하고 세련된 코디는 립합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예진 씨가 가지는 사입 노하우? 그녀는 일부러 트렌드를 분석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유행을 잘 모르지만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싫어한다.

“시장을 다니다 보면 느낌이 오는 옷이 있어요. 이걸 어떻게 코디하면 되겠다 하는 감이 오는 거죠. 코디를 생각하고 옷이 좋은지를 따지지 많이 팔릴지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오래 하다 보니까 이젠 되겠다 싶은 걸 보면 알아요. 본능적으로 되겠다 싶은 건 80%는 잘 나가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것 반, 대중적인 것 반

립합의 고객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가장 많고 20대 중후반까지 걸쳐 있다. 6년 전 십대였던 고객들은 예진 씨와 함께 나이를 먹었고 지금의 단골이 되었다.

“처음부터 그냥 내가 입고 싶은 옷을 팔았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지금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스타일도 제 스타일이고. 제가 성장하면서 사이트도 성장한 거죠.”

립합의 초기 상품은 트레이닝복이나 기본적인 티셔츠가 주였다. 그것이 당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그녀의 스타일이었던 것. 지금은 레이어드 스타일이 많고 구두, 가방, 액세서리까지 토털룩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패션쇼크의 이현웅 대표도 이야기했듯이 물건을 잘 파는 사람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취향을 알고 거기에 맞는 물건을 팔아야 한다. 이는 립합의 대표인 예진 씨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지극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만 팔아서는 장사가 안 돼요.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올렸는데 하나도 나가지 않은 적도 있어요. 콜렉션에서나 볼 법한 좀 특이한 스타일이긴 했는데……. 저는 옷이 많으니까 가끔 튀는 스타일을 사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물론 입지는 못하고 사서 집에 가져다 두고 혼자 만족하는 거죠. 그때도 그 옷이 너무 예뻐 보여서 올렸는데 역시나 하나도 나가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예쁘다 했지만 나중에는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요. 그래서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것 반, 대중적인 것 반 정도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대중에게 어필하여 팔리는 상품 사이에서 고민하는 예진 씨의 모습은 마치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영화감독이나 작곡가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나의 스타일을 고집하면 쇼핑몰이 망하고, 대중에 영합하다 보면 내 쇼핑몰의 스타일이 흔들린다. 어떻게 균형을 찾아야 할까?

현재 립합이 추구하는 컨셉은 ‘심플하면서 믹스매치가 가능한 스타일’. 파티를 좋아하는 예진 씨는 ‘특별한 날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을 제안하고 싶은 마음에 캐주얼을 약 70%, 드레시한 제품을 30% 정도로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립합의 대표 김예진 씨는 스타일 제안을 위한 트렌드 분석을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녀는 트렌드 분석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는다. 평상시 보는 케이블 TV의 스타일 채널이라든가 미용실에서 보는 잡지, 길 가다가 보는 사람들 속에서 트렌드를 발견하고 그것을 머리에 집어넣는 식이다. 사진을 찍어 두는 일도 절대 없다. 마치 눈이 렌즈가 되고 두뇌가 메모리 카드가 되는 것처럼 머릿속에 그냥 입력하는 것이다.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억이 된다니 스타일 감각에 있어서는 정말 타고나지 않았는가 싶다. 그리고 필요한 순간 기억이 머릿속에서 조합이 되어 그림을 그리듯이 스타일을 만들어낸단다.

“옛날부터 그랬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교복을 입으니까 토요일에만 사복을 입었거든요. 그러면 일주일 전부터 무슨 옷을 입을까 생각해요. 방에 가만히 누워서. 그리고 필요한 옷을 인터넷으로 사 두었다가 입는 거예요. 그때는 같이 다니는 친구들 옷까지 제가 코디했었어요. 물론 제가 사 주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입으라고 정해주고, 같이 옷을 맞춰서 입고 다녔죠.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예뻐야 하니까. 그때 그 친구들 모두 예쁘게 바꿔 놓았는데 지금은 연락이 안 되네요, 하하.”

온라인 의류 시장의 성장 초기에 성공한 많은 쇼핑몰 운영자들이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는 것은 이미 1편에서 주지한 바 있다. 이 동물적 감각은 립합의 4억 소녀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패션쇼핑몰의 젊은영웅들2 > 내용중 발췌. e비즈북스.
출처:다음카페 - 매출두배내쇼핑몰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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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08.04.03 15:23

박준서 사장의 창업 감각, 박하영 대표의 관리 능력

‘남성의류 쇼핑몰 대표는 남성’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걸까?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당황하였다. 핫붐의 박하영(30) 대표는 고운 얼굴선을 지닌 정돈된 인상의 여성 경영자였다.

“여자가 남성의류를 하는 게 이상할 것은 없어요. 보기 좋은 건 다 아니까요. 핫붐의 MD들도 모두 여자인 걸요. 여자 직원이 훨씬 많아요. 전체 직원의 2/3. 남자는 모델, 촬영, 배송 정도?”

사실 핫붐의 창업자는 박하영 대표가 아니다. 남동생인 박준서(27) 사장이 시작한 사업에 2006년 9월부터 관리와 경영을 위해 박하영 대표가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동생, 박준서 씨는 인터넷 창업의 귀재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

 “준서가 인터넷 쇼핑몰을 시작한 것은 핫붐이 처음이 아니에요. 인터넷 상에서 통신 판매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죠. 처음에는 공CD, 무선 마우스 같은 컴퓨터 소모품을 팔았었어요.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거든요. 동호회나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던 것이 자연스럽게 판매로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개인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려는 사람들한테 컴퓨터를 판매했었어요. 제품을 설명하고 상담하면서 1:1 접속이나 전화 통화, 쪽지 교환 등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주 고객이었죠. 6년쯤 전에는 자기가 직접 쇼핑몰을 만들어서 향수, 가방, 벨트 같은 잡화를 판매하더라구요. 그때도 전국 1,2위를 하고 한 달 매출이 몇천이 됐었어요. 그러다가 얘가 또 의류 쇼핑몰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반대했었죠. 화장품은 유행이 없어 재고도 없지만 의류는 트랜드를 따라가야 하잖아요. 재고 부담이 너무 크죠. 그런데 결국은 친구들하고 같이 하더라고요. 촌스러운 사이트 하나 만들어서.”

어려서부터 ‘얘는 커서 뭐가 될까?’하고 생각할 만큼 엉뚱한 남동생이었지만 사업에서의 감각은 남달랐다. 박준서 사장은 <핫붐>이전에도 남성의류 쇼핑몰을 창업한 적이 두 번 있으며, 두 번 다 성공했다. 하나는 고등학교 후배와 창업했다가 후배에게 넘겼고, 다른 하나는 초등학교 친구와 창업했다가 친구에게 주고 나왔다. 이 쇼핑몰들은 현재도 남성의류 상위에 랭크돼 있으며, <핫붐>과 1위 다툼을 하고 있다.

쇼핑몰 하나 성공시키는 게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인데, 공짜로 주고 나오다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박하영 대표 역시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동생은 이렇게 얘기해요. 쇼핑몰을 다른 사람에게 이양했다고 해서 전부를 준 것은 아니라구요. 경험과 노하우는 자기 자신에게 있으니까요. 동생 말로는 또 만들면 된다는 거예요.”

핫붐은 이처럼 쇼핑몰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박준서 사장의 작은 방에서 시작되었다. 시작은 모델 겸 코디의 역할을 하는 후배와 함께였다. 오픈을 준비하면서 사입은 후배와 함께 다니고, 사진 촬영이나 업데이트 등을 모두 그가 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박하영 대표는 동생으로부터 사무실을 구해야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유인즉슨 직원을 구해야 하는데 사무실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것. 그래서 창업 두 달 만에 사무실을 구하고 고객상담과 MD, 웹 편집, 배송 등을 맡을 직원을 뽑게 되었다. 아마도 첫 달 수익은 모두 사무실 임대와 직원 채용에 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핫붐이 초기부터 매출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창업 5개월 만에 ‘남성보세의류 5위권 진입, 매출 1억 원 돌파’라는 공식적인 보도와는 달리 실상은 창업 2개월 만에 매출 1억을 넘어섰다는 박준서 사장의 말은 이러한 짐작을 사실로 확인케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일단은 박준서 씨의 시장을 읽는 눈과 창업 타이밍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핫붐을 기획했을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박준서 사장은 자신이 속한 그룹의 남성의류에 주목했다. ‘내 눈에 익어’ 너무도 잘 아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의 여성의류 쇼핑몰 운영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중심으로 쇼핑몰을 구성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점은 이것을 어떻게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는 상품으로 만들었는가이다. 당시 온라인 시장에서는 남성의류를 이끌어가는 트렌드를 만드는 쇼핑몰도 없었고, 유저들의 관심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박준서 사장은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전자기기나 소모품, 생활용품 등은 제품이 주는 가치가 정해져 있고 기능적인 부분이 명확해서 매출을 위한 가격 경쟁이 이루어지지만 의류는 스타일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므로 더 많은 부가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핫붐의 창업 당시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체적인 코디와 스타일을 보여 주는 데 집중하도록 했고 그것은 단기간의 높은 매출을 올리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박준서 가장이 이전에 창업했던 남성의류 쇼핑몰 2곳은 지금의 핫붐 만큼 코디를 통한 스타일 제안이 많지 않았다. 핫붐은 아이템 전체를 100% 코디로 보여 주지만 이전의 쇼핑몰들은 다섯 개 중 하나 정도만 코디를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패션을 파는 패션 멀티 숍’이라는 컨셉은 이렇게 정해졌다. 결국 박준서 씨의 예상대로 ‘트랜드를 제안하는 핫붐’에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어려서부터 컴퓨터 동호회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컴퓨터 관련 제품을 판매했던 경험은 별다른 광고 없이도 판매를 가능하게 하는 노하우를 터득하게 했다. 준서 씨는 옷에 관심이 있는 타깃 고객층이 많이 활동하는 커뮤니티나 동호회, 지식검색 등을 중심으로 핫붐에 대한 정보를 유출하였다. 이때 단순 홍보성 내용이 아니라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핫붐을 노출한 것이 역효과가 나지 않는 홍보의 비법이다. 일종의 노가다 홍보인 셈인데 좀 더 기술적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한 것이다. ‘유저들이 움직이는 웹상의 경로에 핫붐을 노출’시키는 일은 처음에는 준서 씨가 이후 한 달 정도는 전담 여직원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회원 수 확보로 이어졌다.

웹 기반의 사업은 웹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는 G마켓의 CM들이 판매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바다. 초기 핫붐의 경이적인 매출 기록은 박준서 씨의 온라인상의 남성의류시장을 읽는 눈과 함께 유저들의 움직임에 대한 통찰력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대부분의 의류 쇼핑몰 창업자들이 ‘옷을 보는 감각’에서 가장 큰 성공 요인을 찾는 것과 구분된다.

전해들은 박준서 씨의 모습은 스타일 나는 남성의류 쇼핑몰과는 연결이 안 됐다. 키 180cm에 90kg의 거구. 트레이닝복 두 벌과 야상(군대용 야전 점퍼)으로 일 년을 버틴다는 그는 스타일리쉬한 운영자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자신을 꾸미지 않는다고 안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MD가 없었던 초기에는 직접 사입을 하고 코디를 했었다. 사이트 디자인도 그의 몫이었다. 박하영 대표가 보기에는 일을 추진할 때 집중하는 열정 역시 동생을 따를 자가 없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박준서 사장은 왜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친구에게나 누나에게 물려주고 경영에서는 손을 떼는 것일까?

박준서 사장은 지금도 또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들어서고 성공이 확실시되면 또 다른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게 된다는 것.

핫붐에는 박준서 사장을 대신해서 핫붐을 경영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박준서 대표는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서 매출을 높이기 위한 사업가적 감각과 유지를 위한 관리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았고, 그가 생각하기에 행정학을 전공하고 공직 생활의 경험이 있는 박하영 대표가 적합한 인재였다. 결국 박준서 사장은 누나인 박하영 대표에게 사업에 동참할 것을 제안하게 되었다.

업무 효율과 미래를 생각한 끊임없는 투자

핫붐이 오픈했을 때 박하영 대표는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매출 1억이 되기 전에는 쇼핑몰 사업에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생의 사업이 잘되고 있다니까 궁금해 졌다고 한다.

“공무원을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흥미가 생겼어요. 동생이 책을 몇 권 주문해 줘서 보게 됐는데 ‘인터넷 거상 되기’, 등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때 마침 제가 광주에 내려와야 할 일이 생겼어요. 당시 시아버님이 편찮으셔서 남편이 사업을 이어받아야 했거든요. 제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죠. 발령을 기다려서 가는 것과 사표를 내고 가는 것. 결국은 사표를 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전혀 망설여지지 않았어요.”
2006년 9월 그녀는 핫붐의 대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핫붐은 남성보세의류에서 1, 2위를 하던 시기였고 직원은 웹디자인팀, 상품기획팀, 물류배송 CS팀, 경영지원팀으로 스무 명 정도 됐었다. 거의가 창업 초기부터 일했던 직원들로 팀워크도 좋았다. 그해 여름에는 전 직원이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왔을 정도.

또 사무실은 5층 건물의 2,3층을 쓰고 있어서 전체 100평 정도의 규모였다. 2층에 상품기획팀과 디자인팀, 3층에 물류와 고객팀, 스튜디오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100평의 사무실도 넉넉한 공간이 아니었다. 여름에도 복잡하다 싶었는데 가을이 돼서 옷의 부피가 커지자 운신할 공간이 점점 부족해졌다. 테이블마다 소품이며 제품이 널려 있어서 직원들이 밥 먹을 공간이 부족하여 2교대로 밥을 먹을 정도였다.
9월부터 새로운 사무실을 물색하기 시작했지만 물류를 수용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가 지금의 사무실을 찾아낸 것. 대한통운 광주지사가 10월에 완공을 하는데 창고와 사무실을 같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곳이 지금 쓰는 사무실이다. 현재 물류 창고 400평, 사무실 130평으로 총 530평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으며, 직원은 총 45명이다. 원래는 800평의 창고에 높이 7m의 공간인데, 조만간 핫붐의 제품으로 이 공간을 다 채우자는 게 박 대표의 욕심이란다.

그런데 쇼핑몰 운영 초기 지나친 사업 확장이나 투자는 위기를 가져오기 마련이 아니던가? 조심스러운 의문이 생겼다.

“물론 임대료가 몇 배로 들어요. 냉•난방비도 만만치 않죠. 전기료만도 한 달에 백만 원이 넘거든요.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은 높아졌어요. 예전에는 엘리베이터로 박스를 몇 번씩 오르내리며 날랐는데 이제는 차에서 내리면 바로 창고거든요. 물류 창고에는 컨베이어도 있어요. 그때 상황에서는 할 만해서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만큼 투자를 했기 때문에 앞으로 가능성이 더 큽니다.”

박 대표가 처음 왔을 때 핫붐의 표면적인 매출은 5억 정도의 규모였다. 그러나 회사의 운영과 유지는 되고 있었지만 운영자가 가질 수 있는 수익은 없었다. 오히려 택배비 등이 밀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핫붐은 작년 겨울까지 투자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핫붐은 또 다른 투자를 하고 있다. 현재 상품페이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리뉴얼 작업과 효율적인 재고관리 등을 위해 물류•재고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것. 박 대표는 대부분의 쇼핑몰이 기존의 물류 시스템을 가지고 마지못해 짜 맞추듯이 쓰는 실정에서 자신들의 쇼핑몰에 적합한 물류•재고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6개월 계획으로 시작된 프로그램 개발은 10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이제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기존의 물류•재고 시스템은 수동적으로 재고를 확인하는 수준이지만, 이 물류•재고 시스템을 사용하면 관리자 모드와 연동하여 거래처에 대한 주문과 배송, 검수로 인한 반품, 재고관리까지 자동으로 실시간 체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분석의 정확도는 100%로 개발이 완료되면 인력의 소모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 대표는 이러한 끊임없는 투자가 과연 지금 해야 했을 일인가에 대한 질문에 자신 있는 답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투자가 머지않아 핫붐에게 기회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만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미 저지른 일 후회해 봤자 소용없으니 이것을 어떻게 잘 이용할까를 생각한다는 말이다. 사무실에 대한 이전과 투자 등은 사실 직원들에게 쾌적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이 보통 직장에 다닐 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깨끗하고 쾌적한 사무실을 원하지 않나요? 저도 직장 다닐 때 그런 근무 환경이 꿈이었거든요. 이사하고 나서 책상이랑 컴퓨터를 모두 바꿨어요. 에어컨도 중앙 냉•난방의 시스템 에어컨으로 바꾸고. 직원들에게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혹자는 불필요한 지출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일지라도 박 대표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핫붐의 경쟁력이 되어 더욱 큰 성장을 가려오리라는 생각한다.

그리고 박하영 대표가 자신 있게 이러한 투자를 할 수 있는 근저에는 ‘남성 패션쇼핑몰 시장의 눈부신 성장’이 있다.

“남성의류 시장의 가능성은 여성의류 시장에 비해 아주 커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시장을 고른 것 같아요.”

인터넷 쇼핑몰 임대업체 ‘카페24’의 자료를 보면, 2007년 1분기 남성의류 쇼핑몰의 거래액은 240억 원으로 그 전해 같은 기간의 50억 원이었던 것에 비해 5배 가까이 늘어났다. 또 다른 인터넷 쇼핑몰 임대업체인 ‘메이크샵’에서도 2007년 1분기 남성 패션쇼핑몰 매출신장률이 129.1%로 여성 패션 쇼핑몰 신장률 77.1%보다 훨씬 높았다.

남성 고객의 증가하는 것은 오픈 마켓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마켓은 2007년 1분기 패션 부문에서 남성고객의 증가율이 2006년 1분기와 대비할 때 56%로, 여성고객 증가율인 33%를 크게 앞질렀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추세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남성들이 멋을 내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메트로섹슈얼, 꽃미남 열풍 등. 외모도 하나의 경쟁력이 된 현실에서 이제는 남성들도 외모 가꾸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이전보다 패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하지만 귀찮은 것은 싫어하는 남성들에게 앉은 자리에서 주문-결제-배송이 이루어지는 인터넷 쇼핑몰은 궁합이 딱 맞는 조합이다. 남성 고객들은 반품도 ‘귀찮아서’ 잘 안 하기 때문에 남성을 상대로 하는 쇼핑몰이 운영은 더 편하다고 한다.

남성 패션쇼핑몰의 미래가 이처럼 밝기에 박하영 대표도 핫붐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패션쇼핑몰의 젊은영웅들2 > 내용중 발췌. 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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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08.03.31 12:07

마켓 패션부문은, 2004년 수백에 불과하던 일일 매출이 2005년 억 단위를 넘어설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G마켓 전체 거래규모도 패션분야와 함께 비약적인 성장을 했음은 물론이다. 2005년 G마켓의 총거래액은 2004년의 500배에 달했다고 하니 비약이라는 말도 무색할 지경이다. 그렇다면 G마켓이 이처럼 갑작스런 성장을 이룬 배경은 무엇일까?

혹자들은 그 요인을 이효리 스타샵에서 찾기도 한다. 2005년, 사실 그때까지 옥션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졌던 G마켓이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이효리 스타샵의 공은 지대하다 할 수 있다. 게다가 브랜드가 없는 시장의 제품들이 스타마케팅으로 인해 그 위상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자금력이 부족한 시장의 중소상인들에게 빅스타를 활용한 판매촉진 기회를 제공한 것이기도 했다. 그 이후 스타샵 서비스는 업계의 벤치마킹 대상 1순위로 떠오를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G마켓의 성장을 오직 이효리 스타샵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소문난 음식점이라고 다 맛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효리의 스타샵으로 인해 유인된 고객을 G마켓의 시스템과 서비스로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지금의 위치에 G마켓이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2005년 비약적인 성장을 하기 이전에 G마켓은 판매자와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시스템과 서비스 등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

G마켓-패션을 선택하다.

G마켓은 인터파크의 사내 벤처로 시작한 회사다. 당시의 이름은 구스닥이었으며, 인터파크처럼 종합쇼핑몰 형태였고, 차별화 전략으로 경매 기능을 넣었다.

지금의 G마켓은 매출액만 2조(2007년)이지만, 그런 G마켓도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자본금 18억으로 구스닥을 시작했는데, 경영상 어려움을 겪으면서 2억만 남게 된 것이다.

회사를 포기할 것인가, 밀고 나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와중에 구스닥은 지금의 G마켓과 같은 모습을 띄게 됐다. 종합 쇼핑몰 모델에서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 모델로 변경, 옥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기존의 종합 쇼핑몰이 중요하게 여겼던 가전, 컴퓨터 영역을 버리고 의류, 패션잡화 쪽 카테고리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2003년 가을에 입사해 G마켓 패션팀을 이끌었던 패션사업실 박기웅 실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초창기에 정말 힘들었어요. 지마켓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세계적인 기업이 될 것이라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매출도 안 일어나고 월급도 주기 힘든 상황이었거요. 직원들은 지쳐갔죠.

그래서 사장님이 목표를 단순화, 세분화하면서 단기 목표를 잡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의류상품을 몇천 건 팔아보자는 식으로요. 하루, 주, 월로 눈에 보이는 목표를 잡기 시작하면서 성과가 나타났어요. 하우투를 구체화시키는 거죠.

크레딧이나 성과급 등 여러 가지 제도도 점차 정립되기 시작했어요.”

현재 남성의류와 주얼리, 잡화를 담당하는 패션 1그룹과 여성의류와 아동의류를 담당하는 패션 2그룹, 스타사업 등의 전략사업을 구성하는 전략사업 그룹, 이렇게 세 개의 그룹으로 운영되는 G마켓 패션사업실은 2003년, 오픈마켓 출범 당시 하나의 패션팀으로 시작했다.

그때는 옷을 누가 인터넷으로 사냐는 인식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G마켓은 인터넷을 쉽게 받아들이는 10대, 20대를 주타깃으로 삼았다. 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트렌디한 아이템들을 저렴하게 제공해서 인터넷 쇼핑에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당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저가 의류를 찾는 수요가 상당히 있었고, 중저가에 포지션한 G마켓의 의류들이 그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G마켓은 어떻게 저렴한 가격대의 의류 아이템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중소상인’들에게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온라인 의류시장은 종합쇼핑몰에 상품의 우수성이나 트렌드와는 상관없이 브랜드 제품이 입점되어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었고 중소상인들의 판매루트는 전무했다.

“2003년 당시 오프라인 의류사업이 침체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대문 시장 등의 중소상인들이나 벤더들은 다른 판매 루트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죠. 그때 G마켓에서 채널을 열어준 거라고 봅니다. 판매자들에게는 등록비가 무료였다는 점도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요인이 됐구요.”

다른 오픈마켓과는 달리 등록비가 없고 수수료가 적었던 G마켓은 판매자들이 충분히 모험을 감행할 만한 매력적인 블루오션이 되었다. 사실 그때까지는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옷을 사서 입는 일은 낯선 일이었고, 판매자들에게는 온라인시장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미지의 땅이었던 것이다. 이때 G마켓은 판매들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기꺼이 동반자가 되었고 미지의 땅으로 함께 나아갔다. 

이때 미지의 땅에서 이들 의류 상인들을 맞이한 것은 바로 여성구매층이었다. 전자상거래 초기 전체 구매의 20%에도 미치지 못했던 여성구매층이 서서히 증가하면서, G마켓이 패션사업을 강화할 무렵에는 5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였던 것이다. 여성들이 찾는 패션과 잡화가 강세인 G마켓은 발 빠른 대응으로 여성고객을 붙잡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G마켓의 구매층은 젊은 여성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당시 오픈마켓에는 옥션이 있기는 했지만 옥션은 경매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경매방식이 여성고객들에게는 어필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여성들은 입찰하고 낙찰 받기까지 기다리는 절차가 번거롭게 느껴진다는 거죠. 이에 반해서 G마켓은 고정된 가격으로 즉시구매하거나 공동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어서 여성고객들에게 더 소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수현 패션2그룹장의 말처럼 당시 오픈마켓의 경매방식에 불편을 느끼고 있던 여성고객들은 편리한 G마켓의 시스템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경매방식의 불편함은 판매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판매자들은 충분히 한 달 이상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인데도 일주일마다 등록을 해야 하고 등록할 때마다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상품이 노출이 되고 팔리기 시작할 즈음에 다시 등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이에 반해 G마켓의 시스템은 리뉴얼만 해주면 얼마든지 3주, 4주 이어갈 수 있었고 등록수수료도 당시 옥션보다는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2005년 초, 옥션의 TV 광고를 아직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광고 내용은 남자들이웃통을 벗고 나와서 삽으로 죽어라 땅을 파는 것이었다. “파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은 내려갑니다.”라는 것이 옥션 광고의 카피였다.
이 광고는 소비자들에게는 매력적인 광고였을지 모른다. 가격이 자꾸 떨어진다니까. 하지만판매자가 이 광고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광고는 당시에 판매자들 사이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어떤 판매자들은 지인들에게 “너 옥션에서 땅 파고 있다며?”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옥션은 스스로 광고에서 밝힌 바와 같이 판매자들의 경쟁을 유도했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가격은 낮아졌지만, 판매자들의 부담은 가중되었다. 옥션이 수수료를 인상하고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추가했던 것이다. 다른 판매자들은 부가서비스를 사용하는데, 혼자서만 부가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격은 점점 내려가 소비자들도 만족스럽고, 옥션도 만족스러웠지만 판매자들은 점점 사업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러한 시점에 G마켓이 혜성같이 등장한 것이 G마켓이었다. 상품 등록 수수료가 무료인데다가, 즉시 구매 시스템. 판매자에게 유리했던 G마켓에 판매자들이 몰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존 오픈마켓 시스템의 불편함과 여성구매고객의 성장, 오프라인 중소상인과 벤더들의 요구 등이 맞물려 2003년 G마켓 패션사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다.

‘열린 장터’, 오픈마켓의 시스템을 표준화하다

오프라인의 장터를 인터넷에 재현
패션사업의 방향을 정한 다음에는 판매자들을 수급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지금은 G마켓으로 판매자들이 찾아오는 상황이지만 그 당시에는 오히려 매일같이 패션팀에서 우수한 상품을 보유한 주요 판매자를 찾아 시장을 헤매야 했다. 새로운 판로를 모색하던 판매자들은 새로운 유통채널을 제공하고 판매규모를 대형화 해주는 G마켓에 호의적이었다.

“서로가 윈-윈하는 제안을 하는데 부정적일 수가 없죠. 상담을 마치고 저녁에는 소주 한 잔을 하면서 판매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그때가 ‘인터넷으로 누가 옷을 사겠느냐’ 하는 인식이 많았던 시절이라지만 판매자들은 이미 온라인 판매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어 있었어요. 문제는 오히려 온라인몰과 마켓에 있었던 거죠. 그때 대부분의 종합쇼핑몰들은 상품의 우수성이나 트렌드는 생각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브랜드 상품들을 입점시키는 구조였고, 시장의 상품들은 사이트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고 인정하지 않았어요. 유일한 오픈마켓이었던 옥션도 다르지 않았고요.”

박기웅 실장은 당시 G마켓의 새로운 시도가 오픈마켓 시스템을 표준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열린 장터’를지향하는 오픈마켓에서는 모든 판매자와 구매자의 진입이 자유롭고, 누구나 좌판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오픈마켓은 경매 방식이 주가 되어 이러한 기능을 부분적으로만 수행했던 것이다. 결국 G마켓 패션부문에 중소상인의 상품이 판매되면서 오프라인의 열린 장터를 온라인에 재현할 수 있었다.

<패션쇼핑몰의 젊은영웅들2 > 내용중 발췌. 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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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08.03.2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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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옷은 입소문이 잘 안 난다. 하지만 충성도는 높다.

“미시의류는 여성의류와는 달리 주 타깃이 30대 초반, 전체 고객층은 20대 후반에서 40대입니다. 이 연령대에 해당하는 인구를 150만 명으로 본다면 실제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인구를 50%만 잡아도 75만이죠.
그중에 저희 회원은 7만 명이에요. 방문자 수 대비 회원가입률도 낮은 편이죠. 하지만, 회원수가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고객이 제품에 신뢰를 가지고 꾸준히 구매한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초코맘에 대한 이미지나 신뢰가 중요합니다.”

가입 회원의 수가 아니라 고객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객의 신뢰는 재구매로 연결되기 때문에 마케팅비용을 절감하게 효과가 있음은 주지하는 바다. 현재 초코맘 고객들의 재구매율은 40%에 달한다.

“엄마옷은 의외로 입소문이 잘 안 납니다. 저희 고객 중의 70~80% 정도가 직장맘들인데요, 그중에서도 학교 선생님이 많습니다. 전에 한 고객이 전화를 했어요. ‘내가 이 옷을 샀는데, 도서관 선생님이 똑 같은 옷을 샀다. 일주일 정도 지켜보니 그 선생님이 초코맘에서 옷을 사 입는 것 같다. 이 가디건을 사려고 하는데 그 선생님이 샀는지 좀 알아봐달라.’는 거였어요. 직장에서 입을 옷이니까 비싸 보이고 싶은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가격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거죠. 어린 친구들은 옷을 똑같이 입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나이 있는 고객들은 남들이 입는 옷을 같이 입기 싫어합니다. 그게 30대 고객들의 특징인 것 같아요. 그래서 회원수 성장이 더디죠. 그 대신 충성도가 높아요. 전체 메일을 보내면 매출 등에서 바로 반응이 옵니다. 답메일도 오고. 그래서 선점의 메리트가 크고, 신규업체의 진입이 힘들죠.”

엄마옷이 입소문이 안 난다는 이야기는 의외였다. 아줌마들의 입소문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지니는지 익히 들어온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어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특히 초코맘의 주고객이 직장맘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 대신 신중한 선택을 하는 엄마들이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미 업계 1위의 목표를 달성한 초코맘이 고객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고지식할 정도다.

“2007년 봄에 청바지를 팔았는데 2주 정도 팔다 보니까 클레임이 하나 둘 들어오는 거예요. 세탁기에 몇 번 돌리니 바지가 찢어진다고. 워싱이 잘못 돼서 찢어진 거였어요. 1천 장 정도 판매된 상태였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판매를 중단하고 전부 리콜해 줬어요. 가격대비 좋은 옷을 팔겠다는 게 우리의 전략인데 옷이 찢어진다는 것은 큰 타격인 거죠. 일주일 동안 고객팀이 1인당 30통씩 나눠서 일일이 전화했습니다. 3천만 원 이상의 손해였지만 고객과의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판매된 제품 모두가 불량은 아니었지만 손민진 대표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제품을 돌려받지는 않고 적립금으로 모두 환불해 줬다. 고객 중에는 자신이 산 청바지는 괜찮다며 리콜을 받지 않겠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한 명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급처에 50%의 책임을 물었으나 공급처에서는 직접 반품 들어온 제품만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나머지 손해는 고스란히 초코맘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예외 없이 강행한 리콜은 고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초코맘은 게시판을 잠가두지 않는다. 회원 가입도 강제조항이 아니다. 초코맘 사이트를 이용하는데 굳이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 초코맘의 구매고객은 회원수를 넘어서리라는 예측이 나온다. 다른 쇼핑몰의 회원수가 10만을 넘어선다고 해도 부럽지 않은 것은 이러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회원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의 고정고객을 확보한다는 의미이니만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초코맘의 회원가입수 올해 목표는 10만 명. 홍보를 위해 매출의 10~15%를 광고비로 지출하고 있다. 처음에는 게시판을 이용한 노가다 홍보를 주로 했으나 규모가 커지면서 광고분석을 통해 효과적인 광고 위주로 효율적인 광고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단, 비수기에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회원수가 10만 명이 되면 광고비를 줄이고 내부회원을 위한 이벤트로 전환할 예정이다.   

조직과 시스템이 중요하다

손민진 대표는 초코맘이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비결로 ‘회사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해내고 있는 직원’들에게서 그 비결을 찾는다.
처음 초코맘을 오픈했을 때는 손민진 대표와 더불어 4살난 딸이 유일한 직원(모델)이었다. 이후 직원 채용은 초코맘의 싸이클을 따라 이루어졌다. 초코맘의 직원 채용은 6개월의 매출 주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즉, 상반기 성수기를 대비해 직원을 뽑고, 하반기에 또 뽑고 하는 식이었던 것.
2006년 3월 직원이 12명이 되자 손대표는 팀을 분리해 조직체계를 갖추었다.
“경영학 조직이론에 보면 3명이 넘어가면 리더가 있어야 하고, 7명이 넘어가면 팀 분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 전에는 팀은 있었지만 팀장이 없었고, 실장이 있었죠. 모든 것을 제가 핸들링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2006년 3월에 직원이 12명이 되면서 직원 중에 팀장을 뽑고 팀제를 구성했죠. 지금은 팀제가 정착이 되어 제가 없어도 모든 일이 진행됩니다.”
현재 초코맘은 인사나 관리를 담당하는 총무팀과 고객상담을 책임지는 고객만족팀, 사입과촬영, 업데이트를 담당하는 상품기획팀, 검품과 재고 등을 담당하는 상품관리팀, 포장파트로 나뉘어져 총 3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사무실은 창고와 스튜디오를 포함해 250평 정도. 업체 규모에 비해 인력과 사무실이 비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좀 여유 있게 가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당장의 매출을 생각한다면 지출을 줄이려고 하겠지만, 저는 당장 수입을 많이 내는 것보다 꾸준히 오래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무실 규모나 직원의 복리 후생 면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직원들을 편하게 해주는 게 장기적으로는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손대표는 직원들을 내부고객이라고 생각한다. 내부고객에게 소홀히 하면 회사는 발전할 수없다는 것이다. 많은 쇼핑몰들이 가족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가족 위주의 동업을 하라는 쇼핑몰 성공 지침도 있지만 손대표는 가족 중심의 운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정적이다.

“호스팅 업체에 상위 쇼핑몰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업체들을 보면 팀장급은 대개가 가족 또는 친척이더군요. 직원이 30명이면 가족이 보통 5명이에요. 물론 가족들끼리 하면 좋은 점도 있겠죠. 하지만 가족과 함께 하면 가족 이외의 다른 직원들은 항상 이방인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당연히 나갈 생각만 하게 되겠죠. 작은 회사의 직원들이 대부분 주인의식을 갖지 못하는데, 주인의식은 가지라고 한다고 가져지는 게 아니에요. 또 가족끼리 쇼핑몰을 하는 이유가 노하우를 배워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이해할 수가 없어요. 같이 일하던 직원이 독립해서 사업체를 차리더라도 초코맘에서 일했던 기간이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미시의류 1위 업체에서 일했는데 아는 게 별로 없다면 우리가 같이 일했던 가족으로서 그게 더 속상하지 않을까요?”

초코맘은 1년에 4회 정기적으로 워크숍을 한다. 워크숍의 주된 이슈는 바로 각 팀 간의 노하우 공유다. 경영자의 노하우도 공유해서 직원들이 독립했을 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손대표의 사고 때문인지 초코맘은 이직률이 낮다. 일차적으로 회사는 직원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개인적인 목표를 가지고 나갔다면 그건 응원해줘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노하우를 배워서 나가는 것을 염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환경과 비전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면 월차나 인센티브, 해외연수의 기회 부여 등과 같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초코맘에서는 쇼핑몰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아이디어를 내거나 근무 태도가 우수한 직원들에게 해외연수의 기회를 주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오타 이벤트’, ‘반품 무료배송’ 등의 아이디어는 모두 직원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전에는 고객이 제품이 마음에 안 들어서 교환하고자 할 때 제품과 함께 교환을 원하는 내용과 5천 원을 보내야 했어요. 그럼  반품 파트에서 반품봉투를 뜯어서 5천 원과 반품내용을 확인하고 교환 조건을 확인해서 다시 제품을 배송하기 위한 서류를 작성해야 해요. 그리고 고객만족팀에서 올라와서 상품을 챙겨서 교환처리를 합니다. 그것을 상품관리팀이 다시 배송하고. 만약 하루 배송건이 500건이라면 그 10%인 50건이 반품인데 이것을 처리하려면 직원 두 명이 함께 서너 시간을 일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2007년 가을부터 반품무료배송을 시작하면서 이러한 업무로드를 줄였어요. 교환을 원할 때 적립금을 고객에게 넣어주면 고객이 다시 주문하는 형태죠. 그 대신 배송비는 저희가 지불합니다. 저희가 지불하는 배송비용이 인건비와 비슷하게 소요되지만 직원들은 시간을 그 만큼 줄일 수 있는 거죠. 상품관리팀에서는 450건을 배송하는 거나 500건을 배송하는 건 큰 차이가 없거든요.”

반품 무료배송 덕분에 직원들은 주문서를 작성하고 제품을 교환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고 고객에게는 배송비를 무료로 할 수 있는 혜택을 줄 수 있었다. 직원과 고객이 함께 만족하는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이트의 오타를 찾는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오타이벤트’는 고객이 자주 방문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방문 횟수와 구매율의 증가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패션쇼핑몰의 젊은영웅들2 > 내용중 발췌. 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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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08.03.24 10:05

개성 만점 세 남자의 언밸런스 하모니, 맨마켓

연예인 쇼핑몰의 가장 큰 강점은 사실 홍보에 있다. 쇼핑몰의 존재를 알리려고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소문이 나게 되어 있다는 것. 이것은 쇼핑몰 홍보에 심혈을 기울이는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도 부러운 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많은 연예인들이 너나없이 쇼핑몰 창업에 ‘첨벙’ 발을 담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예인이 하는 쇼핑몰이라고 무조건 성공하느냐? 그것 역시 아니라는 결론이다. 연예인이라는 강점은 홍보에 있어서 영향력을 행사할 뿐 나머지 조건에서는 일반인들의 쇼핑몰과 동등하다. 어떻게 컨셉을 잡느냐, 스타일링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 상품페이지의 구성은 고객의 접근하기 쉽게 되어 있는가, 고객관리를 잘 하는가 등이 바로 또 다른 성패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2007년 4월 오픈한 맨마켓은 패션모델로 출발한 탤런트 김승현이 오랜 시간의 공백을 깨고 사업가로서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었다. 하지만 맨마켓의 창업자는 김승현 한 사람이 아니다. 맨마켓은 서로 다른 세 사람, 나영규(27), 황규용(28), 김승현(27)의 의기투합으로 탄생한 쇼핑몰이다. 인터뷰는 맏형인 황규용 씨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김승현 씨는 그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다가 필요한 부분에서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말하곤 했다. 나영규 씨는 여기저기 옷가지가 널려 있는 어수선한 사무실에서 작업 중이었다.

세 남자 ‘옷’으로 만나다.

“나영규 씨와 저는 먼저 www.09r.co.kr이라는 여성의류 쇼핑몰을 창업해서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남성의류 쇼핑몰을 만들고 싶어서 기획을 하다가 당시에는 남성의류는 연예인 쇼핑몰이 없다는 점에 착안을 했던 거죠. 승현이하고는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승현이를 영입해서 2007년 4월, 세 남자의 이야기라는 모티브로 맨마켓을 오픈했어요.”

황규용 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옷에 미쳐 있었다’라고 자신을 표현한다. 틈만 나면 명동이나 동대문을 기웃거렸고, 다른 친구들은 모르는 시장의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었다니 그가 얼마나 시장 바닥을 헤집고 다녔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금은 디자이너로 유명한 최범석 디자이너의 매장 ‘cheese’에 가게 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옷으로 가득 찬 매장을 갖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의 나이 19세였다.

결국 황규용 씨는 최범석 디자이너의 의류 매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후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을 사람들에게 입히는 일이 좋았다. 견문을 넓히기 위한 미국행도 옷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2년여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2005년에 입국했을 때 이미 그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었던 온라인 시장은 그에겐 옷에 대한 열정을 불사를 또 하나의 세상이었던 셈이다.

황규용 씨가 처음 나영규 씨를 알게 된 것 역시 최범석 디자이너를 통해서였다. 나영규 씨 역시 옷이 좋아 의류 시장을 맴돌았고, 최범석 디자이너의 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황규용 씨는 이미 매장일은 그만둔 상태였지만, ‘그냥 놀러갔다가’ 나영규 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영규 씨는 여기저기 재주가 많다. 의류 매장에서 일하던 그는 인테리어 일을 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포토그래퍼로 일하게 되었다. 현재 맨마켓에서 사진을 맡고 있지만, 쇼핑몰을 운영하면서도 인테리어 의뢰가 들어오면 가끔 일탈을 즐기고 있다. 맨마켓 오프라인 매장의 인테리어 역시 그의 솜씨다.
김승현 씨는 탤런트로 얼굴이 알려졌지만, 모델 경력이 더 화려하다. 1997년 ‘레츠’라는 국내의 하이틴 잡지 표지 모델로 선발된 이래, 10년 동안 유명 잡지 모델, 패션쇼 모델로 활동해 왔다.

김승현 씨는 나영규 씨 친구의 친구 관계로 이들을 만났다. 김승현 씨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나영규 씨와 황규용 씨가 운영하던 09R이라는 여성의류 쇼핑몰이 서대문에 있었는데 승현 씨의 학교 역시 인근에 있어서 자주 왕래하면서 친분을 쌓게 되었다. 처음 동업을 제의받았을 때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에겐 경험이 필요했다.

활발하고 유머러스한 영규 씨와, 자기 생각이 분명한 승현 씨, 진지한 성격의 규용 씨는 서로 다른 성격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지만 ‘옷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뭉쳐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저희는 세 명의 스타일이 다 달라요. 나영규 씨는 좀 화려한 스타일을 좋아하고 저는 빈티지스럽거나 트렌디한 것, 승현이는 내추럴하고 깔끔한 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세 사람의 스타일이 뭉쳤다는 의미에서 언밸런스 스타일을 컨셉으로 생각했어요. 세 남자의 이야기가 사이트에 있는 거죠.”

안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한데 어우러지는 세 사람은 맨마켓에서도 서로 다른 세 가지 스타일을 모두 보여줄 생각이다. 동업 관계로 쇼핑몰의 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세 사람은 자기가 자신 있는 부분을 맡아 움직이기로 했다. 김승현 씨는 모델, 황규용 씨는 스타일리스트, 나영규 씨는 포토그래퍼라는 포지션이다. 

코디 스타일 먼저 아이템은 나중에

맨마켓은 두 달 정도의 창업 준비 기간을 거쳐 사이트를 오픈했다. 이미 09R이라는 여성의류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쇼핑몰의 운영이나 사입의 노하우 등에 대해서는 이미 숙달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준비할 것은 사이트 디자인과 컨셉이었다. 컨셉은 이미 ‘세 남자의 언밸런스 스타일’로 결정되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사이트 디자인이었고 그들이 선택한 쇼핑몰 제작 및 호스팅 업체는 카페24였다.

“카페24가 다른 곳보다 디자인이 광범위했어요. M사는 대문 크기부터 사용할 수 있는 사진 크기가 제한되어 있는데 여기는 사이즈 제한이 없고, 오버랩 소스를 쓸 수 있었어요. 저희가 원하는 디자인이 여기서만 가능했죠.”

맨마켓 사이트의 초기 화면은 상품사진이 아닌 이미지 사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상품의 카테고리 역시 숨겨져 있다. 나와 있는 카테고리는 후기와 공지review, 패션 화보magazine, 오프매장에 들른 연예인들의 사진이 있는 mm people과 같은 커뮤니티에 관련된 것들이다. 반짝이는 ‘GO’ 버튼을 눌러야만 쇼핑몰로서의 기능들과 상품페이지가 나타나는 구성은 얼핏 리본타이와 같은 듯하지만 이곳에서는 굳이 회원 인증을 받지 않아도 출입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깜박이는 ‘GO’에 마우스를 갖다대니 나타나는 글자는 곧 ‘STYLE’로 변한다. 연결하면 ‘GO STYLE’, 세심하게 신경 쓴 것이 느껴진다. 클릭 후 나타나는 것은 김승현 씨를 모델로 한 STYLE의 메인 사진들이다. 모노톤의 사진들은 마치 영화의 스틸 같다.

“스타일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먼저 볼 수 있는 게 야외에서 촬영한 이미지 사진이에요. 스토리가 있는 이미지 사진. 그 사진들을 끝까지 계속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맨 아래에 코디 아이템들이 나오죠. 벨트, 재킷, 바지, 티의 아이템들이 따로따로.

아이템을 클릭하면 승현이가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과 어깨너비, 가슴둘레, 기장 같은 사이즈와 제품 특성을 설명하는 다섯 줄 정도의 상세 설명이 나와요. 처음부터 상품을 노출하지 않는 거죠. 예전에는 처음 사이트 들어온 분들이 옷을 보기가 어렵다고 했었어요. 이미지만 계속 길게 되다가 맨 마지막에 각각의 아이템들이 펼쳐지니까, 뭘 클릭하고 구매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그래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죠. 그래서 지금은 처음부터 좌측에 티, 재킷, 슈즈와 같은 상품 카테고리를 따라다니게 했어요. 이미지 사진을 보다가도 각 아이템이 궁금하면 들어가서 찾아볼 수 있게. 이제는 스타일을 보고 싶은 사람은 스타일 먼저, 개별 아이템을 보고 싶은 사람은 개별 아이템을 먼저 볼 수 있습니다. 타 사이트보다 스타일이 하나 더 있다고 보면 되겠죠.”

이는 황규용 씨가 낸 아이디어대로 디자인한 것이었다. 각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바로 볼 수 없어서 처음에는 장사가 잘 안 되겠지만 고객들도 이러한 상품페이지에 익숙해지면 구매율 역시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나영규 씨와 김승현 씨는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구매전환율을 높이려면 스타일 페이지에서 각 아이템을 더 잘 찾을 수 있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동업자들의 의견이 대립한 최초의 사건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 5개월, 8개월, 10개월이 됐을 때 우리의 포맷이 더 친숙해지면 구매율도 올라갈 것이라는 말에 두 동생은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스타일 화면에서도 각 상품 카테고리를 볼 수 있게 했다. 역시 시간이 지나자 구매율도 올라갔다.

창업자금은 사무실 임대료 2000만 원까지 합쳐서 4500만 원 정도 들어갔다. 사이트 디자인에 200만 원, 컴퓨터 주변기기에 500만원, 나머지는 모두 사입비로 들어갔다. 그 후 첫 달 매출이 2000만 원, 둘째 달은 2500만 원이었다.

하루에 한 가지 스타일만

스타일은 하루에 한 가지가 완성되어 업데이트 된다. 그러면 대략 여섯 개 정도의 아이템이 매일 올려지는 것이다.

“하루에 한 가지 스타일만 업데이트하는 이유는 맨마켓의 스타일은 라이프 스토리이기 때문이에요. 보통의 남자들의 일상을 날마다 다르게 보여 주자는 거죠. 그리고 한 번에 많이 올리면 앞에 올린 옷들이 안 팔리거든요. 신상은 하루에 하나씩 올려요. 이젠 고객들이 알아서 매일 스타일을 보러 와요. ‘어, 오늘은 별로네. 다음에 와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일부 게으른 운영자들은 업데이트를 ‘귀찮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기도 한다. 하지만 고객들의 마음이 떠나는 것은 한 순간. ‘어, 오늘도 어제랑 똑같네?’가 몇 번만 반복되면, 고객들은 그 사이트에 흥미를 잃고 다른 사이트를 찾게 된다.

그렇다고, 업데이트를 너무 자주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황규용 씨가 ‘한 번에 많이 올리면 앞에 올린 옷들이 안 팔린다’라고 했듯이 자칫 잘못하다가는 내 쇼핑몰의 상품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수가 있다. 경영학 용어로는 ‘자기 잠식 효과(cannibalization effect)’라고 한다.

맨마켓은 자기 잠식과 정체됨 사이에서의 절묘한 균형을 찾았고, 그것이 ‘하루에 한 가지의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고객들은 모노톤의 상품페이지에서 매일 어떤 남자의 하루를 보고 그 하루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얻어간다. 촬영 컨셉은 미리 짠다기보다 촬영을 나가면서 이야기한다.

“그냥 승현이하고 옷을 입고 무조건 나가요. 일부러 꾸미고 연출하지는 않습니다. 평상시 자주 가던 곳에 가요. 연예인은 어떤 식으로 생활할지 궁금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 궁금한 모습을 그냥 보여 주는 거죠.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차를 마시다가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사진을 찍었어요.”

고객들은 옷도 보지만 촬영한 장소가 어디인지도 궁금해 했다. Q&A에 장소에 대한 질문이 많이 올라오는 편이다. 전에는 황학동 시장에서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고객들의 문의가 빗발쳤었다. 그래서 요즈음은 촬영 장소에 대한 고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무리 편하게 일하는 스타일이라지만 매번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서 가끔은 즉흥적인 촬영 콘티를 짜기도 한다. 사이트가 볼거리와 재미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에서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일은 쉬워요. 그런데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야외 촬영을 많이 나가는데요, 그때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 보자, 그랬어요. 그래서 모텔에서 촬영을 하기로 했죠. 호텔은 비싸니까. 최저비용으로 고퀄리티가 저희의 모토거든요. 그런데 모텔은 또 촬영을 잘 허락해주질 않아요. 여자 모델과 같이 갔는데, 일단 촬영을 할 남자 한 명은 먼저 들어가 있고, 나중에 저희가 연인처럼 들어가서 몰래 촬영을 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걸렸어요. 한 방에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상황이었죠.”

이렇게 힘든 상황의 촬영이 간혹 있다. 하지만 승현 씨나 규용 씨, 영규 씨 모두 그럴 때마다 더욱 힘을 내자고 다짐한다. 그래도 승현 씨가 모델 출신이라 어떤 포즈가 사진이 잘 나오는 각인지, 어떤 사진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하는 편이다. 이렇게 찍은 메인 사진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미지만 전달한다. 최근의 상품페이지의 추세가 상세 설명 없이 테마에 따른 이미지 사진만 보여주는 것이라면 맨마켓의 스타일 사진은 이러한 추세에 부합하는 상품페이지라고 할 수 있겠다.

<패션쇼핑몰의 젊은영웅들2 > 내용중 발췌. 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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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08.03.06 13:48

‘나나와 하치’는 리본타이 운영자들의 별칭이다. 이미 인터넷 상에서 ‘리본타이 나나’와 ‘리본타이 하치’는 ‘얼굴 예쁘고 스타일 좋은 운영자’로 유명하다. 일종의 팬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 중에는 스타일리시한 리본타이의 상품컷을 자신의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올리고 리본타이의 스타일을 칭송하는 이들도 많다.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고객들 스스로 홍보요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온라인 의류쇼핑몰 시장이 완성된 2006년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1년도 안 된 시점에 일절의 광고 없이 여성보세의류 1위를 차지한 것은 리본타이만의 독특한 컨셉과 창업 법칙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 예외의 창업 법칙 속으로 고고!


친구끼리 동업하면 우정도 버리고 사업도 망한다?

스물다섯 살 아가씨들의 소녀감성은 어떤 것일까? 인터뷰를 위해 만난 리본타이의 두 운영자는 퍽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하얀 피부에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매력적인 분홍 입술, 광주 사투리 억양이 스며있는 표준어를 약간의 혀 짧은 말로 구사하는 김다운(하치, 25) 양과, 큰 눈에 도도하고 예쁘장한 얼굴 모습과는 달리 다소 순박한 톤으로 느릿느릿 말을 하는 김주희(나나, 26) 양은 리본타이의 스타일처럼 안 어울릴 듯하지만 너무도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한 세트 같았다. 다운 양은 아담한 키에 보이쉬한 느낌이고, 주희씨는 키가 크고 여성적이라는 점도 대조적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두 사람은 벌써 10년 지기다. 10년이면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세월. 그 세월 동안 그들은 정말 한 세트처럼 ‘딱’ 붙어 다녔다. “광주에서 유명했어요. 멋 내는 것 좋아하고 맨날 둘이 붙어 다닌다고. ‘아, 걔들 있잖아. 어느 학교에 다니는 두 명’하고 이야기할 정도로.” 게다가 이 두 사람은 현재 같은 집에 살고 있다. 하루 24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친한 친구도 같이 살면 멀어진다는데, 두 사람은 어떨까? “그런 질문 많이 들어요. 서로 싸우지 않느냐고. 네, 저희는 같이 살지만 한 번도 싸운 적이없어요. 서로 욕심이 별로 없어 그런가 봐요. 내가 더 가져가네, 니가 더 가져가네 하지도 않아요. 얼마 전에 사이트를 공동명의로 하려고 사업자등록을 법인으로 다시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다달이 300만 원씩 법인에서 월급 받아요. 부모님도 서로 잘 아시고 일로도 싸운 적 없어요. 오히려 저희는 둘이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다른 사람이 사진 찍어주면 티가 날 정도예요. 서로 찍어줬을 때가 제일 예쁘게 나오거든요. 어떻게 찍어야 예쁘게 나올지 아는 거죠. 그리고 밤에 시장 다닐 때도 둘이 같이 다니기 때문에 맘이 든든해요. 새벽에 집에 들어갈 때도요.”


<패션쇼핑몰의 젊은 영웅들> 1편에 소개한 쇼핑몰 성공의 법칙 중에 이런 게 있었다. ‘가족 동업의 법칙’. 쇼핑몰이라는 업종이 3D 노가다 업종이다 보니 지인끼리 동업을 하는 것은 다툼과 절교로 이어지기 쉽다는 말이었다. 따라서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끼리 동업을 하라는 것. 여기에는 지금의 동업자가 후일의 경쟁자가 되는 것을 미리 방지하려는 의도도 포함된다. 그런데 리본타이의 김다운, 김주희 두 공동대표는 그런 걱정들을 저 멀리 던져버리게 만든다.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사입과 코디, 촬영, 업데이트, 직원관리, 다시 사입의 연속된 일과를 마치고 새벽 세 시에 퇴근하는 매일이 힘든 하루하루이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어깨를 겯고 걸어나갈 수 있는 10년 지기 친구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혹자는 매출이 커지면 달라질 거라지만 이 역시 리본타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매출이 커질수록 두 사람은 ‘함께 하기 때문에 잘 된다’는 생각으로 더욱 관계가 좋아졌다. 하지만 주희 씨와 다운 씨 역시 친구 간의 동업의 위험성을 모르지는 않았다. “다 저희 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른 사이트를 서핑해 보면 처음에는 분명히 운영자가 둘이었는데 나중에는 어느새 한 사람이 사라져 버리더라고요. 그러니까 저희는 동업에 성공했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도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친구 간의 동업은 리본타이만의 예외적인 성공법칙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돈만 빼고는 다 준비된 ‘쇼핑몰 경력자’였다

“처음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같이 일했었어요. 광주에서 꽤 크고 특이한 매장이었는데, 그곳에서 한 일 년 일한 것이 꽤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었는데 거기서 사입을 배웠거든요. 지방에서 서울 동대문으로 사입을 하러 왔었죠. 그리고 매장에서 판매도 하고 디스플레이도 하고.” 이상하게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 꼭 백화점 의류매장이나 옷가게에서 하게 됐다고 한다. 그들의 말대로 ‘밑바닥부터’ 의류 시장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일하면서 동대문의 거래처를 확보하고 사입의 노하우를 알게 된 것은 이후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선배 부부가 창업한 온라인 쇼핑몰에 스카우트된 것도 지방에서 이들만큼 사입 시스템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B쇼핑몰을 선배 부부가 자금을 대고 우리가 운영했었어요. 물건 사입부터 촬영, 모델, 업데이트, 고객상담, 배송까지 저희 둘이 거의 전담했죠. 리본타이에서 처음 우리 둘이서 했던 일을 근 1년 넘게 했어요. 직원 없이 선배하고 셋이서. 그때 몸이 많이 망가졌어요. 그런데 페이에 대한 의견이 안 맞아서 그만둔 거죠. 2006년 7월에.”


대학교에서 주희 씨는 의상을 전공하고 다운 씨는 사진을 전공한 데다가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쇼핑몰에서 일하는 것은 그야말로 예정된 운명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일을 하면서 그에 합당한 보수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그들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선배의 쇼핑몰을 그만둔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뭘 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시 두 사람은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무엇이든 빨리 결정해서 해야 할 판이었다. 결국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쇼핑몰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없으니 어쩌랴. 무엇보다도 창업자금을 모으는 일이 먼저였다.


“일단 쇼핑몰을 하기로 했는데 돈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싸이월드에서 몰래 옷을 팔았어요. 규정 위반이라서 대 놓고는 못하고 쪽지로 팔았죠.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100만 원을 모았어요. 그 돈이 저희 창업자금이 된 거죠. 사이트 디자인은 아는 분이 공짜로 해주셨고 서버 임대하는 데 50만 원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다달이 3만 원을 내고 임대몰로 시작했죠. 나머지는 사입비. 지금은 독립몰인데 저희 사이트에 방문 고객이 많이 와서 서버를 두 개나 이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2006년 9월에 오픈을 했다. 이미 오프라인 매장과 쇼핑몰 운영의 경험으로 사입처를 통해 제품을 공급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50만 원으로 충분한 상품 구색을 갖춘다는 것은 무리였다. 과연 얼마나 많은 아이템을 준비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두 사람은 신중한 것도 좋지만 오히려 너무 시간을 끌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쇼핑몰 창업 책에서는 아이템 수 50개 밑으로는 세부 카테고리가 안 나오니까 쇼핑몰을 오픈하지 말라고 한다. 메인 페이지 밑으로 카테고리가 4개 이상은 갖춰지고 각 카테고리 별로 상품이 10여 개 이상은 있어야 사이트가 썰렁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열된 상품이 50개 밑이면, 준비가 안된 쇼핑몰처럼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본타이를 보니 정말 이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가 보다.


“오픈할 때 세부 카테고리를 모두 채우지 못했어요. 그걸 채우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거든요. 메인에 16개 올린 것이 전부였죠. 사람들은 물건이 몇 개 없고 칸이 채워지지 않으면 쇼핑몰이 안 된다고 하는데 저희는 자신이 있었어요. 옷 하나를 올리더라도 그게 좋으면 또 올 것이라는 자신감.” 리본타이는 전문가들이 권하는 쇼핑몰 노하우를 모두 뒤엎는 사례를 남기고 있었다. 하지 말라는 동업에 상품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채 오픈하는 것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기 좋게 예상을 깨고 1년 만에 여성보세의류 업계 1위에 올라선 것이다.


부모님들께서는 처음에는 창업을 반대하셨다. 돈도 없이 뭘 할 수 있느냐고, 힘들하고. 하지만 이제는 성공한 딸들의 모습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신다. 컴맹이던 주희 씨의 어머님은 딸의 모습을 보시려고 인터넷을 배웠다 한다. 이제는 직접 사이트를 체크하시면서 모니터를 해주실 정도다. 사진이 이상하다, 이 옷은 이쁘니 한번 보내봐라 등등. 이제는 반대하시던 부모님마저 든든한 지원군이 된 것이다.



<패션쇼핑몰의 젊은영웅들2 > 내용중 발췌. 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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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08.02.14 10:41

이 책에서 소개되는 스타일스토리, 립합, 핫붐 등의 남녀 보세의류 상위권 업체들과 초코맘, 패션쇼크 등의 전문 쇼핑몰들은 업력이 4∼5년 이상으로 쇼핑몰 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오래된 곳들이 대부분이다.

리본타이의 경우 오픈한 지는 1년이 조금 넘지만 창업 전 온·오프 쇼핑몰 경력까지 합치면 3년 이상의 경력을 갖추고 있다. 맨마켓의 경우도 창업한 지는 불과 1년밖에 안 됐지만, 이들은 연예인 겸 모델,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등 패션 분야 프로페셔널들로서 상대적으로 블루오션이었던 남성의류에서 성공한 케이스다. 2005년 이후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닌 4억 소녀 김예진은 많은 사람들이 반짝 스타로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어느새 40억 CEO로 한층 성숙한 여인이 되어 나타났다. 이제는 누구도 그녀를 마케팅 기획이 만들어낸 단발성 히트작으로 폄하하지 않는다.

이처럼 춘추 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패션쇼핑몰 운영자들은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100억을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규모 면에서 상당히 외형을 키웠고, 무엇보다 여러 해의 비즈니스 사이클을 겪으면서 이들의 사업적 내공은 더욱 깊어졌다.

새로 쇼핑몰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창업자금의 문제를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창업 교육 기관이나 광고 대행사에서도 이제는 쇼핑몰 성공이 어느 정도 돈의 함수,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으로 바뀌었다고 하고 있다. 물론 시작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돈이라는 진입장벽 문제가 힘들 수 있겠지만 사실 자금력보다 더 무서운 장벽은 기성 쇼핑몰과 신생 쇼핑몰 간의 업력의 차이에서 오는 사업적 실력의 격차다.

그 험한 쇼핑몰 바닥에서 3년 이상 뒹굴면서 현장에서 단련된, 머리가 아니라 근육이 기억하는 진리들을 뼛속 깊이 새겨 두고 있으며 탄탄한 거래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베테랑 운영자와 이제 막 창업 책 몇 권 읽고 포토샵과 사입 강의를 몇 번 듣고 여기저기서 그러모은 몇백만 원 들고 뛰어드는 신입과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바둑으로 치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다. 아마추어가 프로를 못 이기는 까닭은 프로가 돈을 많이 벌어놨기 때문이 아니라 바둑 실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 유독 쇼핑몰 사업에서는 실력은 고려하지 않고 돈과 운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스타일난다를 못 이기는 것은 스타일난다만큼의 자금력이 안 되기 때문에 광고도 맘대로 지르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쇼핑몰 사업도 바둑처럼 실력 차이에 의해서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나는 것이다. 지금 만일 선두급 쇼핑몰의 월평균 운영자금인 10억 원이 신생 쇼핑몰 창업자 손에 있다고 하면 과연 따라잡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기성 쇼핑몰 운영자들은 신생 창업자들이 앞으로 겪게 될 모든 시행착오들을 이미 다 겪어낸 베테랑들이다. 반면 신생 쇼핑몰 운영자들은 초등학교 1학년 과제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단계를 피해갈 수는 없다.

신생 쇼핑몰 운영자 손에 돈이 있다면 당장 쇼핑몰을 구축하는 문제에서부터 사고를 칠 가능성이 크다. 만일 내가 돈이 없다면 당연히 마음을 비우고 카페24나 메이크샵 같은 임대형 솔루션으로 쇼핑몰을 만들겠지만 수중에 돈이 있다면 멋지고 차별화된 쇼핑몰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으로 덜컥 독립형 솔루션으로 계약을 할 것이다. 하지만 웹도 잘 모를뿐더러 내 쇼핑몰의 업무 프로세스도 형성되어 있지 않으므로 순전히 머릿속으로 생각한 업무 프로세스에 맞추어 다른 쇼핑몰에서 벤치마킹한 온갖 세부 기능들을 포함해 쇼핑몰을 개발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이용이 불편하거나 내 쇼핑몰의 업무 체계와는 전혀 맞지 않아 쓸모없는 기능이었다는 것이 판명될 것이고 정작 필요한 기능들은 빼먹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시스템은 오류가 나고 디자인은 마음에 안 들어 결국 서너 번은 뒤집어엎고 뜯어고칠 것이다. 솔루션 업체는 돈을 받아 챙긴 다음에는 왠지 말도 안 듣고 연락도 잘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몇 개월이라는 시간과 몇백에서 몇천이라는 돈을 날리게 될 것이다. 이때가 돼서야 그냥 편하게 임대형이나 쓸 걸 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상은 허구로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2007년 차별화된 상품사진으로 주목받았던 윙스몰이 실제 쇼핑몰을 구축하면서 1년 넘게 시행착오를 거친 과정을 약간 각색한 얘기다. 이처럼 신생 쇼핑몰들은 윙스몰들이 이미 졸업한 문제들을 붙들고 초등학교 1학년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패션쇼핑몰의 젊은영웅들2>내용중 발췌. 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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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08.02.13 16:09


쇼핑몰 고객을 잡으려는 동대문 도매상들

초창기 쇼핑몰의 얘기 중에는 사입과 관련한 어려움에 대한 호소가 많았다. 기존의 오프라인 고객을 지키려는 도매상들에게 온라인 쇼핑몰은 찬밥이었다. 하지만 동대문3B 김성은 대표가 도매상에게 얻어맞고 경비원들에게 끌려나갔다는 얘기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었고, 2004년 핑키걸의 김소희 대표가 창업 초기 도매상한테 물건을 못 받아서 남편과 함께 사흘 동안이나 삼고초려를 했다는 얘기도 이제는 아련한 옛추억이 되었다.

쇼핑몰이 도매상과 첫 거래를 틀 때 절대로 쇼핑몰이라고 얘기하지 말고 오프라인 매장이 있는 것처럼 ‘무슨 동에서 왔어요’라고 얘기하라고 조언했던, <쇼핑몰 사입의 기술>의 저자 장용준 씨는 개정판을 내면서 책의 내용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제는 처음부터 쇼핑몰이라고 당당히 얘기해도 된다는 것. 그러면 샘플도 얻을 수 있고 도매상 쪽에서 오히려 잘 팔아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불과 2∼3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변방에서 미약하게 일어나 고생고생하며 커온 인터넷 패션쇼핑몰이 어느새 당당히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 비주류 찬밥 신세에서 벗어나 주류 유통망의 하나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데이터를 보면 확실히 드러난다. 패션쇼핑몰 전문지인 <패션브릿지>에 따르면 온라인 패션 시장 규모는 2006년 2조 4000억 원에서 2007년 3조 6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40%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2006년 국내 패션 시장 규모는 전년대비 2.3% 증가한 20조 9900억 원으로 전년의 7% 증가에 비해 성장률이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6년에 온라인 패션쇼핑몰은 전체 패션 시장의 11.4%를 차지했지만, 2007년에는 1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부문에서 온라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5% 수준이라는 것과 비교할 때 패션 분야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대형 인터넷 쇼핑몰에서 패션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높아졌다. 인터파크의 경우 2006년 15%에서 2007년 20%로 상승했으며, 디앤샵, 롯데닷컴, 신세계몰의 경우 전년도 25%에서 올해는 30%를 넘어섰다. 네이버 지식쇼핑 거래액 1조 원 가운데 패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26%였다.

엘르와 엠파스가 20~35세의 서울 여성을 대상으로 공동 조사한 설문 조사에서 패션 분야 주요 쇼핑 경로를 보면 그동안 1위를 차지했던 백화점은 27.6%로 크게 떨어진 반면, 인터넷은 36.6%라는 큰 수치로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2007년은 패션이 인터넷 쇼핑몰의 핵심 비즈니스로 확고한 자리를 잡은 해로 인터넷 쇼핑몰이 패션 유통의 주류로 당당히 올라섰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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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08.02.11 16:33

20대 여성들의 로망과 창업자 정신
 

인터넷 쇼핑몰은 특히 20대 여성의 로망이 되었다. 인터넷 쇼핑몰은 20대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다. 20대 가운데서도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여성들이 더 우위에 서는 직업이다. 이 때문에 많은 운영자들은 가족의 경제적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핑키걸은 아내가 성공하면서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참여하게 된 케이스고, 제이드는 누나가 성공하면서 남동생이 참여한 케이스다. 립합은 김예진 씨가 성공하면서 어머니가 돕는 케이스다. 거의 소녀 가장, 주부 가장의 역할을 한다 할 수 있다.


이들은 또한 또래들을 직원으로 채용하여 많은 신규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국가도 해결 못 하는 청년실업자 구제를 같은 또래의 청년들이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386들이 부동산과 재테크라는 머니게임에 빠져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사회적으로 훨씬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형 유통망들에 의해 몰락하고 있는 그들의 선배뻘, 아버지뻘 자영업자들과는 달리 이들 젊은 CEO들은 오픈마켓이나 대형 쇼핑몰에 맞서 차별화된 서비스로 대응하면서 중소 규모로 경쟁력 있게 생존하는 새로운 자영업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 감히 이들 20대를 88만원 세대라 부르며 연민의 눈으로 본단 말인가?


이들 인터넷 쇼핑몰 세대는 개척 정신이 뛰어나다. 겨울에 여름옷을 파는 쇼핑몰로 대박을 낸 몰리몰리www.molymoly.co.kr 박시현 대표(30)처럼 아이템을 찾으러 중국 시장을 오가다가 아예 중국에서 도매상을 오픈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21세기의 장보고로 쇼핑몰이라는 바다에서 주도권을 다투는 글로벌 유목민으로 활약 중이다. 예전의 장보고들과 다른 점은 이들이 20대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모험정신은 한국의 인터넷 비즈니스를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들에게 이태백이란 호칭은 언론이 만들어낸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다.


변방에서 일어나 중심부를 치는 젊은 영웅들의 이야기
 

인터넷 쇼핑몰이라 하면 집안에 돈도 없고 학교 다닐 때 공부도 못해서 대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취업할 수 없는 패배자들이 하는 직업이라는 편견이 있다. ‘능력 있으면 취직하고, 돈 있으면 차라리 체인점 내지, 누가 쇼핑몰을 하겠어?’ 이런 푸념들이 나올 정도로 개인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은 변방에서 미약하게 시작되었다. 초기 쇼핑몰들은 도매처에서 제 돈을 가지고도 물건을 사입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인터넷 쇼핑몰들은 거래선 취급도 안 했던 동대문 도매상들이 이제는 쇼핑몰 고객을 잡으려고 아우성이다. 2∼3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예전에는 인터넷 쇼핑몰이 오프라인의 패션 트렌드를 따라가는데 급급했다면 이제는 온라인의 트렌드가 오프라인을 선도하기까지 한다.

 돈이 될 듯하니 CJ가 엠플mple.com로 오픈마켓에 들어왔다가 1년 반도 못 돼 망해서 나간 곳이 인터넷 쇼핑몰이라는 시장이다. 이 책은 대기업들도 함부로 뛰어들지 못하는 시장에서 당당히 성공한 젊은이들의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4억 소녀를 얘기하며 반짝하고 말 한때의 인기일 뿐이며 대박의 환상만 심어준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4억 소녀는 반짝 스타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 소녀는 이제 40억 CEO의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이들은 변방에서 일어나 숱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마침내 패션 유통의 중심부에 당당히 진입한 젊은 영웅들이다. 김예진을 비롯한 이들 20대 인터넷 쇼핑몰 세대들이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또래 동료들에게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희망의 등불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 책의 작은 소망이다.


2006년 ≪패션쇼핑몰의 젊은 영웅들≫이 나온 지 어느덧 1년 반이 지났다. 그 사이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번 2편에서도 1편과 같이 랭키닷컴을 기준으로 패션 분야 상위에 랭크된 개인 쇼핑몰 10곳의 젊은 CEO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G마켓 패션그룹은 개인 쇼핑몰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패션이라는 아이템을 가장 거래 비중이 큰 아이템으로 만드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했기에 특별히 담게 되었다. 귀중한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해주신 쇼핑몰 대표 여러분들과 G마켓 패션그룹에 감사드린다. 아무쪼록 이 책이 패션쇼핑몰 창업을 꿈꾸고 있거나 운영하시는 독자 여러분들, 특히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20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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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비즈북스 2008.02.11 13:25

≪88만원 세대≫라고?
 

 요즘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화제다. 이 책은 대한민국 20대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용은 암담하다. 대한민국 20대는 이태백이다, 게임에 중독되어 책을 안 읽는다, 정치적으로 보수화되었고 고시와 영어에만 몰두할 뿐 성장이 지체된 마마보이다 등등.
 책의 저자는 지금의 20대가 처한 시대적 조건을 문제시 삼는다. 옛날에는 F학점을 받은 사람들도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대기업에 갈 수 있었고 큰 직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퍼상 같은 자영업을 운영할 수 있었으나, IMF 이후로 대기업 취업의 문은 닫히고 자영업 창업도 어려워졌다는 것. 이 때문에 20대의 경제적 독립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대형 할인매장과 프랜차이즈의 독점화로 인해 소규모 자영업 공간이 줄어들었고 20대가 그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결과 20대들이 편의점이나 주유소 알바, 조직폭력단이나 다단계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 분야를 쭉 지켜본 필자의 입장에서는 왜 대한민국 20대 이야기를 하면서 인터넷 쇼핑몰과 ‘4억 소녀’ 이야기는 빼놓았는지 의아하다. 실제로 대형 할인매장과 프랜차이즈 독점화로 인해 피해를 본 자영업자는 20대 신규 창업자들이 아니라 40∼50대의 기존 자영업자들이다. 20대들이 기본적으로 수천만 원 이상의 창업자금이 필요한 전통 자영업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이르다. 오히려 이들은 전통 자영업 분야에 눈을 돌리는 대신 진입장벽이 낮고 자신들이 강점을 가진 인터넷 쇼핑몰이라는 새로운 자영업 시장을 창조해내고 있다.


 20대 취업의 문이 닫히고 있다는 말은 맞지만 20대 자영업의 문이 닫히고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기득권인 386세대와 유신세대가 20대를 경제적 인질로 잡고 착취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예외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 취약한 30∼40대들을 제치고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으로 무장한 20대들이 생산과 소비 양쪽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자영업 시장은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20대들이 프로슈머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 매출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넘는 쇼핑몰의 주인장들은 83년생 혹은 85년생 밖에 안 되는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20∼30대 젊은이들이 40대 이상의 노땅들을 앞서는 ‘젊은이 우위의 법칙’이 통하고 있다. 심지어 이 동네에서는 35세 이상(즉 386과 유신세대)은 절대로 쇼핑몰 창업하지 말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맨체스터의 박지성이 빠르고 부지런한 몸놀림으로 공간을 창출해내듯 이들 20대들은 인터넷에서 스스로 창업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인터넷으로는 옷을 팔 수 없을 거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던 기성세대들을 물리치고 20대 CEO들과 20대 고객들은 패션쇼핑몰에서 20대들만을 위한 자기표현의 해방 공간을 창출해낸 것이다. 이들 20대들이 땀 흘려 일궈낸 인터넷 쇼핑몰 공간으로 뒤늦게 30∼40대와 실버 세대가 기웃거리는 형국이다.


 인터넷 쇼핑몰 세대가 몰려오고 있다
 

 필자들이 만난 쇼핑몰 운영자들은 대부분이 20대였고, 일부 30대들도 있지만 이들도 20대에 창업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 인터넷 쇼핑몰을 주도하고 있는 20대를 ‘4억 소녀 세대’ 혹은 ‘인터넷 쇼핑몰 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


 물론 20대 쇼핑몰 운영자 가운데도 ‘88만 원 이하’로 버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것은 자영업 일반에 해당하는 법칙이지 인터넷 쇼핑몰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이들 인터넷 쇼핑몰 세대는 ≪88만원 세대≫에서 묘사하는 패배적이고 수동적인 20대가 아니라 몸으로 부딪쳐 현실을 돌파해 나가는 적극적인 20대라는 점이 다르다.


 소위 SKY 대학 나오고도 갈 곳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이들 20대 쇼핑몰 운영자들은 무척이나 적극적이고 밝았다. 패배주의자들이 아니라 낙관주의자였다. 그렇다면 이들의 조건이 좋았는가?
전혀 아니다. 대부분 고졸이나 전문대, 혹은 취직이 쉽지 않다는 지방대 출신들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지 않았다. 당당히 창업에 도전하고 스스로 노력하여 자기 몫을 챙겨갔다. 똑똑한 서울대생이 7급 공무원 하겠다고 졸업도 미루고 대학원까지 가서 도서관에 틀어박혀 취업 준비하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대, 연고대 출신들이 안정적 직장을 찾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취업길이 막힌 고졸, 전문대졸, 지방대 출신 젊은이들이 인터넷 쇼핑몰에 뛰어들었다. 4억 소녀로 유명한 김예진 씨도 고졸이다. 여성보세의류 쇼핑몰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는 핑키걸의 김소희 사장도 전문대 출신이고, 리본타이의 두 대표도 지방대학을 나왔다. 우리가 만나 본 수십억에서 수백억 대의 상위권 패션 쇼핑몰 운영자 가운데는 SKY는커녕 서울 소재 대학 출신도 거의 없었다.
 이들은 88만 원 세대에서 희망 없는 사람들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학력 콤플렉스니 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옷을 좋아하며 옷으로 인생에 승부를 걸었다는 자기에 대한 자신감에 충만한 사람들이다. 헛똑똑이들의 소심한 마인드보다 이들의 마인드가 100배는 긍정적이다. 그리고 부동산이나 펀드 따위 재테크에 빠진 386세대보다 사회적으로 건강하고 국가적으로도 더 큰 이바지를 하고 있다.



출처: 다음카페 - 매출두배 내쇼핑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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