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1.01.21 10:29
IT 삼국지와 한국

IT 삼국지로 인해서 최고의 혜택을 보는 기업을 하나만 꼽으라면 삼성이 될 것이다. 애플이 만드는 제품에 CPU나 플래시 메모리 같은 부품을 공급하는 삼성은 애플이 잘나가면 덩달아서 이익을 본다. 현재 애플은 삼성에게 최고의 고객이다. 2010년 상반기에만 2조 원이 넘는 부품을 삼성에서 구입했다. 2010년 1분기에는 9,000억 원어치를 구입하였는데, 2분기에는 1조 4,209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부품 구입도 그만큼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삼성은 또한 안드로이드폰 덕분에 사면초가에 빠졌던 스마트폰 분야에서 기사회생했다. 옴니아2의 경우 하드웨어보다 운영체제 문제가 컸는데 안드로이드의 수혈을 받으면서 이를 단번에 해결한 것이다. 그렇게 출시된 갤럭시S는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하며 발매 4개월여 만에 700만 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또한, 난공불락의 요새인 일본에서도 발매 첫주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다. 스마트폰 주변부에 머물렀던 삼성은 어느덧 스마트폰의 중심에 다가가고 있다.   

윈도우폰7은 삼성에게 또다른 기회였다. HTC가 최초의 안드로이폰과 구글폰을 제조함으로써 인지도를 급격히 향상시켰듯이 삼성은 윈도우폰7의 대표폰으로 명성을 쌓았다. 윈도우폰7이 등장하기 전에 레퍼런스 폰으로 윈도우폰7이 전 세계 언론에 공개되면서 삼성은 윈도우폰7에서 다른 회사보다 먼저 입지를 다지고 있다. 게다가 엔가젯(Engadget)에서 매긴 윈도우폰 점수에서도 옴니아7이 8점을 받으면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삼성전자가 승승장구하는 반면에 LG전자는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0년에는 수익이 90%나 곤두박칠치면서 CEO가 교체될 정도였다. LG가 스마트폰 시대에 부진한 것은 한마디로 줄을 잘못 섰기 때문이다  2009년 2월 LG는 윈도우 모바일 기반의 스마트폰 20종을 발매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윈도우 모바일에 올인했다. 하지만 LG가 내놓기로 한 윈도우 모바일 스마트폰이 대부분 출시가 취소되었고 발매된 스마트폰마저도 시장에서 별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2010년 1월 CES 2010에서 LG는 인텔에서 개발한 차세대 모바일 플랫폼인 무어스타운(Moorestown)과 리눅스 기반의 운영체제인 모블린(Moblin)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5월부터 LG의 무어스타운 기반의 스마트폰이 취소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이후 새로운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만약 LG가 윈도우 모바일이나 무어스타운 폰이 아니라 안드로이폰에 올인했다면 지금보다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LG는 2010년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원을 발매했지만 안드로이드의 버전이 구형이라서 외면을 받게 된다. 그 후에는 의욕적으로 또 다른 안드로이드폰인 옵티머스 Q를 내놓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이처럼 LG전자가 한 박자 늦게 안드로이드폰을 내놓은 것은 안드로이드폰보다는 다른 휴대폰에 더 신경 쓴 결과로 볼 수 있다.   

flickr - Stanković Vlada

손정의, HTC, 삼성, LG를 보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관계에 따라서 회사의 실적에도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잘 설정해야 한다. 한국은 다행히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필요한 존재이고, 현재 이들이 주도하는 PC와 스마트폰 경쟁에서 큰 혜택을 보고 있다. PC와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인 메모리,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에서 한국산이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예로 들면 아이폰 4에서 한국산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육박한다. 두뇌 역할을 하는 A4 칩은 삼성이 제조하고, 스티브 잡스가 그토록 극찬했던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LG가 만들고 있다. 배터리와 메모리는 삼성이 공급을 하고, 카메라는 LG 이노텍이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봤을 때, IT 삼국지는 분명 한국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얼마든지 토사구팽을 당할 수 있는 위치라는 데 있다.   

애플의 주요 부품이 지금은 한국에서 납품되고 있지만 언제든지 거래선이 바뀔 수 있다. 아이팟의 경우 하드디스크는 도시바, 배터리는 소니에서 공급받았지만, 아이폰 부품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한국 기업이 애플에 계속 부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새로운 복병으로 차이완 기업들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경쟁 기업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술을 가진 인텔 같은 기업을 제외하고는 가격경쟁력에 따라 그 기업의 성패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대만의 기술과 중국의 값싼 노동력 그리고 중국 내수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갈수록 막강해지는 자본력까지 고려하면 차이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애플은 현재 삼성으로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메모리를 공급받고 있다. 그런데 삼성이 스마트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애플이 삼성을 의식하는 여러 행보들을 보이고 있다. 애플은 삼성이 부품 분야에서 얻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완성품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삼성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될수록 애플은 점차 삼성 의존도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존재 역시 한국보다는 대만과 중국에게 유리하다. 휴대폰을 예로 들면 한국은 세계 2위의 삼성과 3위의 LG를 보유한 강국이었다. 휴대폰에 관련된 기술은 차이완보다는 한국이 앞서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정책 때문에 한국과 차이완의 기술 격차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규격까지 관여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강요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통제를 따르지 않으면 윈도우폰7을 아예 탑재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통제 정책은 대만 기업에게는 유리하지만, 한국 기업에는 불리하다.   

한국은 휴대폰 강국으로 여러 관련 기술들을 이미 확보하였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드웨어 규격에 관여하기 때문에 한국 기술은 버려지는 대신 대만은 스마트폰 업계에 무임승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 갤럭시S는 CPU로 허밍버드를 채택하였다(컴퓨터의 CPU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의 CPU 역시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 허밍버드는 애플의 아이폰4에 들어가는 A4칩과 거의 유사한 CPU로 A4와 허밍버드 모두 삼성이 생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삼성의 강점은 직접 부품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CPU, 메모리, 배터리, 디스플레이까지 모두 삼성이 직접 생산하는 덕분에 휴대폰 업계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윈도우폰7은 CPU로 퀄컴(Qualcomm)의 스냅드래곤(Snapdragon)을 채택했다. 윈도우폰7을 만드는 회사들이 동일한 CPU를 쓰게 되면 차이완 기업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과거보다 손쉽게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술규격을 외부에 공개함으로써 PC 분야에서 기술을 평준화시켰다. 만약 스마트폰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술규격을 공개하게 된다면 자체적인 기술력을 가진 한국은 제품에 차별화를 이루기 어려워지는 반면, 대만은 무임승차하듯이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하는 기술규격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제조사 간에 기술 평준화가 일어나면 결국에는 가격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면 스마트폰 업계는 현재 PC 업계처럼 차이완 기업들이 전성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애플의 성공을 본 델, HP, 에이서, 아수스 같은 PC 업체들도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 PC 전쟁의 승리자들은 보통 기업들이 아니다. 그야말로 가격경쟁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PC 제조업체들은 크게 노력할 일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PC 제조에 가장 중요한 기술은 몇몇 소수의 대표 업체들이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래픽카드는 NVIDIA와 ATI가, CPU와 메인보드는 인텔과 AMD가,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제품 생산에 적극 협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PC 제조업체들의 경쟁력은 가장 효율적으로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있다.   

PC 업체 중 앞으로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대만 업체다. 대만 업체들은 축적해온 기술과 신용으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 구글의 넥서스원은 HTC에서 제조되었고, 애플의 아이폰은 폭스콘이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대만 업체 역시 대량 생산을 위한 설계와 관리를 맡을 뿐 실질적 생산은 중국에서 이루어진다. 즉, 본사는 대만에 있지만 공장은 중국에 있는 것이다. 신뢰가 가는 대만 업체에 용역을 주면, 대만이 중국에서 효율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황금 라인 체계가 이미 완성되어 있다. 델 컴퓨터도 대만에서 OEM으로 제품을 사오지만 실질적인 생산은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핵심 기술과 소프트웨어는 미국이 맡고 제조와 생산은 차이완이 맡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차이완에 제조와 생산을 모두 맡기는 PC 업체들이 휴대폰 업계까지 진출하는 상황은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반갑지 않은 일이다.

기존 휴대폰 강자들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어려움을 겪는 것은 스마트폰을 휴대폰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손안의 컴퓨터로 스마트폰에 접근했다. 현재 PC 분야에서의 게임의 법칙이 스마트폰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차이완 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한편 최대한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할 것이다. 이미 그런 식으로 PC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 차이완 업체와 가격경쟁을 벌인다면 PC 시장에서 그러했듯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스마트폰 분야에서 계속 부진하다면, 수십 년간 특수한 밀월 관계를 형성해온 PC 업체와 연합군을 구성해서 기존의 휴대폰 업계와 경쟁을 펼치도록 판을 새로 짤 수도 있다고 본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역시 차이완에게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 예전에는 감히 스마트폰을 만들 생각도 못한 업체들이 저가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데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록 지금은 구글이 하드웨어 업체에게 통제력을 발휘하지 않지만 미래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운영체제를 받아들인다는 건 기술 표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고 그렇게 되면 휴대폰에서 핵심적인 CPU나 그래픽 칩 역시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PC 시장처럼 원천 기술을 가진 회사는 많은 수익을 거두는 반면에 제조업체들은 단순 조립 업체로 전락하면서 가격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자사의 운영체제가 최대한 많이 보급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하드웨어 업체 간에 경쟁이 붙어서 가격이 내려가기를 바란다. 지금은 한국이 가격과 성능 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에게 필요한 존재지만 언제 토사구팽을 당할지 모른다. 일본 전자 기업의 몰락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고급 기술에 따라가지 못하다가 한국 기업에 일격을 당하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역시 차이완에 의해서 현재의 일본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상세보기


신고
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31 09:44
스티브 잡스의 재림

1985년 9월 16일,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지 9년 만에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는 애플2 컴퓨터의 성공으로 억만장자가 된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의욕적으로 만든 매킨토시의 판매가 당초 목표였던 200만 대에 턱없이 부족한 25만 대에 그치자 스티브 잡스의 입지가 급속히 축소되었다. 그런 와중에 당시 CEO였던 존 스컬리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펩시콜라 사장으로 일하던 존 스컬리를 직접 만나서 평생 설탕물이나 팔 거냐면서 애플로 데려온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처음에만 해도 둘은 찰떡 궁합이었다. 존 스컬리 역시 스티브 잡스의 스승을 자처하면서 나중에 CEO 자리를 물려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 운영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서 치열한 정치 싸움이 벌어졌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개발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운영으로 사내에 많은 적들을 만들었다. 그런 데다 매킨토시의 실패로 스티브 잡스는 더 이상 회사에서 버티기 힘들었다. 결국 애플의 회장직을 내놓은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NeXT)라는 컴퓨터 회사를 창업했다. 그러나 넥스트마저도 실적이 별로 좋지 못했고,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기 시작했다.   

한편 애플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다. 비록 스티브 잡스는 떠났지만 그의 선견지명으로 인해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획기적인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매킨토시에 레이저 프린터를 결합한 사무용 솔루션을 기획했다. 당시만 해도 모니터상의 글과 그래픽을 종이로 인쇄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Adobe)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을 사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250만 달러를 어도비에 투자하는 한편 관련 기술을 라이선스받기로 했다. 또한 일본을 직접 방문해서 매킨토시에 맞는 최적의 프린터를 찾아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티브 잡스가 있을 때는 이러한 노력이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나간 이후 얼마지 지나지 않아 매킨토시의 기능을 극대화한 페이지메이커(PageMaker)나 포토샵(Photoshop) 같은 킬러 소프트웨어가 등장했다. 페이지메이커와 포토샵의 등장 이후 매킨토시가 출판업계와 그래픽 디자이너 같은 전문가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서 애플 역시 기사회생하는 듯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애플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매킨토시가 큰 인기를 끌긴 했지만 스티브 잡스 퇴출 이후 개발력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새로운 히트작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이었다.   

flickr - Photo Giddy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반면 매킨토시는 정체 상태에 빠져 버렸다.애플은 윈도우95의 등장으로 매킨토시만의 장점도 빼앗기고,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MS 오피스마저 출시되지 않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스티브 잡스를 몰아냈던 존 스컬리가 실적 부진으로 애플에서 쫓겨나고, 그의 후임이었던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 또한 윈도우95라는 유탄을 맞고서는 회사를 그만둔 상황이었다.   

그 후 애플은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의 CEO인 길 아멜리오(Gil Amelio)를 영입했다. 그는 카메라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인 CCD를 발명한 엔지니어이자 무너져가는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부활시켜 능력을 인정받은 경영자였다.

평소 애플의 팬이었던 길 아멜리오는 의욕적이었다. 그는 회사의 여러 문제점들을 금방 파악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몇 년째 아무런 성과가 없는 운영체제 개발이었다. 매킨토시가 빛나는 것은 뛰어난 운영체제 덕분이었는데 운영체제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니 회사의 명성과 경쟁력도 하루하루 떨어져갔다. 그렇지만 애플 내부에서는 운영체제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었다.   

결국 길 아멜리오는 고육지책으로 외부에서 운영체제를 구입해오기로 했다. 회사의 자존심을 버리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그만큼 사내의 개발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마침 빌 게이츠가 애플의 이런 사정을 알고는 직접 길 아멜리오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사의 운영체제인 윈도우NT를 매킨토시에 맞게 수정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길 아멜리오는 빌 게이츠가 매킨토시의 인터페이스에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 게이츠가 윈도우NT를 제공해주는 대신 매킨토시의 핵심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길 아멜리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안을 거절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솔라리스(Solaris)도 알아보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이런 와중에 애플 출신의 장루이 가세(Jean-Louis Gassee)가 만든 BeOS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다.   

장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를 회사에서 쫓아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인물이다. 그의 제보 덕분에 중국으로 출장가려던 존 스컬리가 회사로 돌아와서 스티브 잡스의 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다. 장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그만둔 후에 매킨토시 사업부를 맡았다. 하지만 그는 영업맨 출신으로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몇 가지 실책을 거듭하다가 결국 존 스컬리와 함께 회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회사를 그만둔 장루이 가세는 새로운 형태의 운영체제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컴퓨터를 개발하는 비Be라는 회사를 차렸는데, 비 사의 직원 대부분이 애플에서 일했던 개발자들이었던 만큼 운영체제도 자연스럽게 매킨토시와 궁합이 맞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길 아멜리오는 장루이 가세가 만들고 있던 BeOS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때만 해도 BeOS는 애플의 매킨토시에 사용될 가장 유력한 운영체제였다.   

하지만 애플이 새로운 운영체제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한 넥스트 직원들의 활약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넥스트 직원들은 스티브 잡스 몰래 당시 넥스트가 만들고 있던 운영체제를 애플에 보여주었는데, 애플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나중에야 이 소식을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자신에게 중대한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면에 나서서 직접 애플과 협상을 시도했다. 협상력 하면 스티브 잡스 역시 뛰어난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애플과 장루이 가세 사이에 끼어든 스티브 잡스는 화려한 언변을 뽐내며 CEO인 길 아멜리오의 마음을 빼앗았다. 결국 길 아멜리오는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를 4억 달러가 넘는 거액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스티브 잡스는 11년 만에 애플의 고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당시 애플의 사정은 그야말로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길 아멜리오가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매킨토시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10%에서 3%로 추락했고, 회사는 실리콘 밸리 역사상 최악의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이었다. 주식 역시 기업 10년 역사상 최저가로 떨어졌고, 결국 길 아멜리오는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애플 역사상 최악의 위기에서 이사회는 자신들의 구세주로 스티브 잡스를 선택했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상세보기


신고
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29 10:04
아이팟과 아이튠즈 성공의 비결은?

애플이 아이팟을 개발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인터페이스다.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원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불필요한 기능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사용자가 복잡함을 느끼지 않도록 철저하게 배려했다. 아이팟에 들어간 버튼은 개발자 스스로 반드시 필요한 기능인지 수없이 반문한 끝에 넣은 것이다. 더 이상 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버튼의 수를 줄여나갔다. 그래서 아이팟에는 특이하게도 전원 버튼이 없다. 스티브 잡스는 메뉴 버튼도 빼고 싶어 했지만, 개발자들의 설득으로 겨우 넣은 것이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이 만들어 온 시제품으로 원하는 곡을 세 번 이내의 버튼 조작으로 찾지 못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첫째도 편리성, 둘째도 편리성이었다.

아이팟의 또 다른 자랑은 역시 아이튠즈와의 통합이다. 그것이야말로 아이팟이 다른 MP3 플레이어와 완전히 차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이튠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친숙하게 아이팟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에 통일감을 주었다. 그리고 아이팟을 컴퓨터에 연결하면 바로 아이튠즈로 음악을 옮길 수 있고, 각종 음악 파일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스케줄 자체는 빡빡했지만 아이팟 개발은 순풍에 돛 단 듯 술술 풀려 나갔다. 비록 아이팟의 개발자는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전체 애플 직원으로부터 도움을 얻었기 때문에 수천 명이 참여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분위기 덕분에 신선한 아이디어도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제품의 최종 완성을 앞두고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아이팟의 이용자들이 장시간 이동하는 동안에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8시간 정도의 배터리 시간을 제공하려고 했는데  3~4시간 정도만 음악을 재생하면 배터리가 모두 닳아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32MB의 메모리를 추가하고 나서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프로젝트가 여러 난관에 부딪히자 자신감을 잃은 포털플레이어의 개발자 벤 나우스는 제품이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조너선 아이브가 이끄는 애플의 디자인 팀도 아이팟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밖에 들고 다니는 제품인 만큼 컴퓨터보다도 디자인이 중요했다. 더구나 자신들의 능력을 다시 한 번 대내외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애플은 아름다운 디자인을 위해 더블 샷이라는 과감한 공법을 도입했다. 더블 샷은 하나의 제품에 여러 색을 동시에 합치는 기술을 일컫는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팟 크기에 이 기술을 적용하기 힘들다는 데 있었다. 결국 애플은 크기가 작은 제품에 더블 샷을 사용할 줄 아는 업체와 접촉해서 아이팟에도 더블 샷을 적용하도록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이질감이없는 아름다운 색상의 아이팟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아이팟이 탄생했다. 막판에 비록 개발자들을 당혹시키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스티브 잡스가 정한 스케줄은 지킬 수 있었다.   

flickr - fabbriciuse

2001년 10월 23일, 아이팟은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주머니에서 아이팟을 꺼내 프리젠테이션의 대가답게 아이팟이 얼마나 대단한 제품인지를 소개하였다.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정말 멋졌다. 그러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시장에는 수많은 MP3 플레이어가 있었고, 339달러라는 가격이 너무나 비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팟iPOD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멍청이가 값을 매긴 제품Idiots Price Our Device’, ‘나는 디스크가 더 좋아I Prefer Owning Discs’, ‘나는 다른 기기가 좋아I Prefer Other Devices’처럼 비아냥 섞인 글들이 인터넷을 뒤덮었다. 실제로 아이팟의 2001년 판매량은 고작 12만 5천대에 불과했다.   

그렇게 고전하던 아이팟이 인기를 끌게 된 데는 우연이 한몫했다. 애플 디자인 팀은 아이팟의 본체 색깔과 맞추어서 이어폰을 하얀색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검정색 이어폰 일색이었기 때문에 하얀색 이어폰이 사람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얀색 이어폰은 다른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과 구별되었고, 그만큼 더 특별해 보였다. 길거리에 하얀색 이어폰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아이팟도 홍보가 되었다. 어느덧 하얀색 이어폰은 아이팟의 상징이 되었다. 아이팟이 주머니에 있어도 하얀색 이어폰만으로도 그 사람이 아이팟 사용자임을 알 수 있었다. 하얀색 이어폰을 쓰는 사람들끼리는 같은 애플 제품을 쓴다는 유대감을 느낄 정도였다. 하얀색 이어폰의 위력을 알게 된 애플은 사람을 검은색 실루엣으로 처리하여 흰색 이어폰을 강조한 광고를 만들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컬트 브랜드 아이팟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아이팟이 진정한 대중화의 길을 걷는 것은 아이팟이 윈도우를 지원하면서부터다. 이전만 해도 아이팟은 맥 마니아들의 전유물에 불과했다. 아이팟으로 음악을 옮기기 위해서는 매킨토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그동안 모든 제품을 매킨토시 중심으로 생각했다. 애플의 모든 기기를 매킨토시에서만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팟을 계기로 애플은 스스로 벽을 깨고 달라졌다. 애플은 2003년 4월 윈도우를 사용하는 PC에서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팟 3세대를 공개했는데, 출시 직후부터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였다. 3세대가 나오기 직전 2003년 1분기 판매량은 7만 8천 대였던 데 비해서 아이팟 3세대가 출시된 분기 이후에는 30만 대가 넘게 판매되었다. 2003년 4분기에는 40만 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어느덧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고 지금까지 2억 7천 대가 판매될 정도로 시장을 독주하고 있다.   

아이팟이 음악 산업을 재발명했다는 극찬을 들으며 음악을 듣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 덕분이었다. 인터넷으로 음악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서비스인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야말로 아이팟 성공의 일등 공신이며 왜 애플이 강력한 집단인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여타의 MP3 플레이어 업체는 기기를 파는데 급급했지만 애플은 새롭게 음악을 듣는 경험을 팔고자 했다. 그래서 애플은 아이팟을 만드는 데만 공들인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쉽고 편리하게 음악을 구입하고 들을 수 있도록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 서비스를 준비했다.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서비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5대 메이저 음반사는 IT 업계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IT 업체와 협력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따라서 5대 메이저 음반사를 한 곳에 모아서 음악 서비스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5대 메이저 음반사들을 끈질기게 설득하였고, 세계 최초로 5대 메이저 음반사가 참여하는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시작하였다. 20만 곡의 음악을 한곳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되자 많은 소비자들이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 서비스에 열광하였다.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는 일주일 만에 백만 곡을 판매했고 15개월 뒤에는 1억 곡을 판매했다. 온라인 음악 다운로드 시장에서 70% 내외의 시장점유율을 기록 중인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는 7년 만에 100억 곡의 음원을 판매하면서 음악 산업의 혁명을 이끌어냈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상세보기


신고
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27 10:04
새로운 광고 플랫폼으로 부상한 스마트폰

구글이라는 회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검색과 광고, 두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구글이 검색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광고로 수익을 얻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구글은 검색이 가지는 영향력을 극대화함으로써 더욱 큰 광고 수익을 노릴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는 것이다. 전 세계 뉴스를 통합하여 서비스하는 구글 뉴스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다. 구글 뉴스 사용자를 늘림으로써 구글 검색 횟수 늘리고 그로 인한 광고 수익을 노린 것이다.   

구글에 대한 비난은 대부분 그들의 광고 시스템과 관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구글에게는 개인 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한다는 비난이 항상 따라다닌다. 구글이 개인 정보에 집착하는 것은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각 개인에 맞는 광고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개인의 취향을 파악하여, 그 사람에게 맞는 광고를 보여주면, 그만큼 광고 효과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구글은 놀(Knol)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놀은 전문가가 참여한 일종의 인터넷 백과사전인데, 구글이 놀을 처음 발표했을 때 언론에서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구글이 직접 컨텐츠를 생산하게 될 경우 아무래도 검색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지 않겠냐는 의심의 목소리였다. 그동안 평판을 중시했던 구글은 왜 놀을 내놓아서 비난을 자초했을까?   

그것 역시 광고 때문이다. 위키피디아는 구글에서 검색하면 거의 항상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터넷 백과사전이다. 그러나 문제는 위키피디아가 광고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구글에게는 광고를 게재할 수 있는 인터넷 백과사전이 필요한 것이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제작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구글에서 검색을 무료로 제공하듯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도 무료로 제공하지만 결국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안드로이드폰 대부분에는 구글 검색엔진이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어 키워드 광고로 수익을 낼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의 광고는 기존의 PC 광고와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4월 8일, 아이폰 OS 4.0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스티브 잡스는 모바일 기기에 검색 광고가 설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보면 검색은 잘 사용하지 않게 된다. 검색어를 입력하는 것도 힘들고, 검색된 결과를 보는 것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간파했던 스티브 잡스는 앞으로 사람들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정보를 얻게 될 것이라면서 아이애드(iAd)라는 새로운 개념의 광고 플랫폼을 들고 나왔다. 그는 감성이 부족한 기존의 웹 광고와 달리 아이애드에 감성과 인터랙티브를 접목했다고 강조했다.   

flickr - 아우크소(Auxo.co.kr)

아이애드는 배너처럼 화려한 그래픽 기반이지만, 클릭하면 광고주의 웹페이지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앱 내부에서 인터랙티브한 광고가 작동된다. 인터넷의 배너 광고의 경우 클릭하면 새로운 브라우저 창이 뜨기 때문에 클릭하지 않는 사용자들이 많지만, 아이애드는 앱 내부에서 작동되기 때문에 배너와는 다르다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주장이다. 아이애드는 개발자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애플이 광고의 호스팅을 제공하는 대신 수익의 40%를 가져가고 나머지 60%는 개발자에게 돌아간다.

스티브 잡스는 지금까지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가 8천 5백만 대 팔렸고, 사용자들이 하루 평균 30분 동안 앱을 실행하기 때문에 3분에 한 번만 광고를 보여줘도 10억 번의 광고 기회가 생긴다면서 아이애드의 성공을 자신했다. 그의 장담대로 출발은 좋았다. 스티브 잡스는  2010년 6월에 열린 WWDC(Apple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에서 아이애드의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닛산, 시티은행 같은 거대 기업들로부터 6천만 달러 규모의 광고를 수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아이애드에 대해서는 긍정론과 회의론이 엇갈리고 있다. 아디다스와 샤넬이 불과 두 달 만에 광고를 포기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한편, 애플이 2010년 안에 모바일 광고 시장에서 21%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 소식도 들려온다(시장조사 전문 기관 IDC 조사).

아직 광고 시장에서 애플의 성공과 실패를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애플이 구글의 본진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는 구글이 아이폰에 대항해서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것에 서운함을 표시하며 자신들은 검색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애플의 광고 시장 진출은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것과 유사한 파급 효과가 있다. 구글은 수익의 97%를 광고에서 있기 때문에 광고 시장에서 밀리면 구글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애플이 광고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전부터 신경전은 있었다. 원래 애플은 최근 급성장중인 모바일 광고 회사 애드몹(AdMob)을 6억 달러에 인수하려고 했다. 그런데 협상이 마무리될 때 즈음 구글이 나타나 7억 5천만 달러에 애드몹을 낚아챘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애드몹이 애플에 인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거액을 제시한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구글에 애드몹을 빼앗긴 애플은 2010년 1월, 콰트로 와이어리스(Quattro Wireless)를 2억 7,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동맹이 깨진 이후 애플과 구글은 자존심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 구글은 애플의 본진인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애플은 구글의 핵심 수입원인 광고 시장에 침투했다. 이 전쟁은 두 회사의 운명을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구글과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있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PC 광고 분야에서 구글과 경쟁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60억 달러라는 거액에 광고 대행사 에이퀀티브(AQNT)를 인수했다. 그리고 페이스북과 소셜 뉴스 사이트인 딕(Digg)의 광고권을 따내며 광고 회사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이에 비해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아직 별다른 활약은 없다. 터치와 아이콘을 결합한 광고 플랫폼을 소개하기는 했지만, 아직 윈도우폰7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상황이라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광고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활약하는 모습은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상세보기


신고
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23 09:44
‘끝판왕’ 마이크소프트와의 대결

IT 기업은 하나의 분야에서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절대로 안심할 수 없다. 성공의 열매가 크고 달콤할수록 그것을 노리는 강력한 경쟁자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상대는 역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닐까 싶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비록 무엇인가를 새롭게 창조하거나 혁신하는 데에는 약점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에서는 역시 최강자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레드오션의 최강자라고 불리며, 우스갯소리로 ‘끝판왕’이라고 부르는 사람까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장에서 1위가 차지할 파이가 크다고 판단하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진출한다. 구글이 검색 광고를 통해서 진공청소기처럼 돈을 빨아들일 때에도 이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었다. 구글에 자극받은 마이크로소프트는 검색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인 스티브 발머는 주주들 앞에서 구글을 추월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구글과의 경쟁은 쉽지 않았다. 이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일까 싶을 정도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구글의 시장을 전혀 뺐지 못했다. 지금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1위를 타도하겠다면서 공격적으로 투자한 분야에서 이렇게 성과가 나오지 않은 적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동안 자신들이 소유한 영역은 확고히 다지면서 남의 땅을 빼앗는 데 천재적 능력을 발휘해왔는데 구글과의 싸움은 완전히 그 양상이 달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등은커녕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영토마저도 속절없이 빼앗기고 말았다.   

2005년 2월 1일,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포털사이트 MSN을 통해서 정식으로 검색 시장에 진출했다. 이미 MSN이라는 강력한 포털이 있었기 때문에 자체 검색엔진이 결합되면 충분히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컴스코어에 의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직접 검색엔진을 만들기 전 외주 형태로 검색 서비스를 시행할 때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16.3%였다. 당시 검색 시장에서 구글은 34.7%였고, 야후는 31.9%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수년간 준비해서 내놓았다는 검색엔진의 점유율은 1년 4개월여 만에 12.9%로 추락하고 만다. 반면 그 기간 동안 구글의 점유율은 10%에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하며, 무려 44.1%에 육박했다.   

flickr - michperu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토를 빼앗기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이때부터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야후를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02년 35달러였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이 22달러로 추락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스티브 발머는 5년 안에 구글을 따라잡을 수 있다며 큰소리쳤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그 해 9월 11일, 기존의 검색엔진 MSN 서치(MSN Search)를 보완해 윈도우 라이브 서치라는 새로운 검색 기술을 선보였지만 별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2007년 1월, 구글의 검색 점유율이 47.5%에 이른 것에 반에 MSN은 10.6%로 또다시 퇴보했다. 결국 자체 검색엔진을 서비스한 지 2년 만에 검색 사업 부사장 크리스토퍼 페인(Christopher Payne)이 회사를 사임하기에 이른다.   

그래도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만만해했다. 당시 검색 사업을 책임지던 스티브 버코위츠(Steve Berkowitz)는 더 혁신적인 검색 기술로 2008년에는 구글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윈도우 라이브 서치 엔진을 라이브 서치 엔진으로 개명하며 또다시 전의를 불살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2월에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타도 구글을 외치면서 새로운 것을 계속 내놓아도 점유율이 추락할 뿐이었다. 그러자 구글이 넷스케이프처럼 망할 수 있다는 여론이 사라지고,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 위기론이 대두할 정도였다. IT 황제의 절대적인 위엄은 사라지고, 구글에 의해서 위협을 받는 형국이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자적 힘으로 구글을 상대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2008년 2월 1일, 마이크로소프트는 야후를 446달러에 인수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창립 31년 만에 처음으로 채권을 발행하면서까지 야후를 인수하겠다는 선언은 구글을 타도하겠다는 비장한 각오였지만 그때까지 지켰던 자신들의 원칙을 깨는 것과도 같았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동안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적수를 만났음을 뜻하였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상세보기


신고
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22 09:13
구글은 어떻게 야후를 제압했나?

기술을 홀대하던 야후의 창업자들은 구글이 자사에 위협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야후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직접 인터넷 사이트를 분류했다. 야후의 창업자들은 어떠한 기술 검색도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면서 대규모의 편집자들을 뽑아서 각 항목별로 인터넷 사이트들을 분류하는 일을 시켰다. 그와 달리 구글은 수작업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기술에 의존했다. 구글이 야후보다 검색엔진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사용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었지만, 야후는 검색엔진의 속도와 성능보다 이용자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 더 중요하고 생각했다.   

야후는 엄밀히 말하면 검색으로 시작한 회사였지만 놀라울 만큼 검색엔진에 관심이 없었다. 야후의 전략은 최대한 자사의 사이트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능한 오랫동안 야후에서 머무르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용자들을 다른 웹페이지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는 검색엔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야후와 달리 구글의 최고 목표는 사용자들이 구글에 최소한으로 머무르고 가능한 빨리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구글에 접속한 사용자의 체류 시간이 짧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구글이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제공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구글에게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포털을 지향했던 야후는 절대로 구글처럼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야후는 검색 기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검색보다 포털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탓에 야후는 구글의 검색엔진을 얻을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잃었다. 구글의 창업자들이 검색엔진을 팔기 위해서 야후를 찾아갔을 때, 야후가 그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심지어 데이비드 파일로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창업을 권하기까지 했다. 야후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구글의 창업을 재촉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flick - smemon87


결국 야후는 2000년 6월, 과거에 그들이 거절했던 구글의 검색엔진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계약은 IBM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성장시켰던 것만큼이나 구글에 큰 기회를 제공하였다. 구글은 야후에 검색엔진을 제공하면서 수익도 챙기고 대외적으로 회사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었다. 야후는 그야말로 자신을 잡아먹을 호랑이 새끼를 스스로 키운 꼴이 되었다.   

야후가 검색의 가치를 무시하였던 중요한 이유는 배너 광고라는 수익 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야후는 대기업들의 브랜드 광고를 배너 형태로 제공했기 때문에 방문자가 사이트에 가능한 오래 머무르며 배너 광고를 보는 편이 유리했다. 그래서 포털 사이트로서 검색 기능보다 방문자들의 체류 시간에 신경을 썼던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거품이 한창일 때, 야후는 배너 광고 하나에 백만 달러를 넘게 받을 정도로 광고주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야후의 수익 모델은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고전하기 시작했다. 야후의 고객 대부분이 인터넷 업체였던 것이다. 당시는 인터넷 열풍으로 인해 수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별다른 수익 없이도 주식 상장만으로 큰돈을 벌던 시대였다. 인터넷 회사들은 광고를 통해 사이트 인지도를 높이고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한 전쟁을 벌였는데, 바로 그때 방문자 수를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 야후의 배너 광고였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그렇게 광고주를 잃게 된 야후는 직격탄을 맞았다. 한때 100달러에 이르던 주식이 2001년에는 10달러 이하로 추락했고 실적 역시 급속히 악화되었다. 결국 2001년 5월, 팀 쿠글Tim Koogle은 야후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상황이 이렇긴 했지만 야후에게도 분명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야후는 기술 기업이 아니라 미디어 기업으로서의 자리를 더욱 확고히 하고자 했다. 팀 쿠글만 해도 모토로라와 인터멕과 같은 IT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었지만, 야후의 새로운 CEO가 된 테리 시멜Terry Semel은 영화사인 워너 브라더스 출신으로 IT 업계에는 문외한이었다. 헐리우드 출신의 테리 시멜은 야후를 디즈니랜드처럼 디지털 테마파크로 만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처음에는 야후의 선택이 옳은 것처럼 보였다. 테리 시멜 이후 실적이 급상승하며 부활 찬가가 들리는 듯했다. 2002년 2분기에 2,14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7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그리고 2002년 3분기에는 매출 2억 4,880만 달러(전해 대비 50% 상승)에 2,89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2003년 3분기에도 매출 3억 5,680달러에 6,53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6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구글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야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상세보기


신고
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20 10:34
스마트폰 천하 삼분지계를 이루다

전 세계  IT 업계를 이끌어가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은 각각 고유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며 성장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 구글은 검색엔진, 그리고 애플은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왕좌를 차지하면서 승승장구하였다. 하지만 애플이 아이폰으로 대성공을 거둔 이후 스마트폰이라는 하나의 거대 시장을 놓고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양상은 놀라울 정도로 삼국지와 닮아 있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수도였던 장안을 차지하여 급격하게 세를 늘렸듯이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운영체제 시장을 독점함으로써 최고의 IT 기업으로 군림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막기 위해서 구글의 CEO인 에릭 슈미트는 애플의 이사를 겸직하면서 사실상 애플과 동맹을 맺었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모바일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도 동맹이었던 구글이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각종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하였고, 에릭 슈미트는 아이폰을 극찬하면서 둘의 돈독한 사이를 과시했다. 구글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은 애플의 아이폰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모바일 간의 경쟁은 유비와 손권이 연합하여 조조에게강력한 타격을 입혔던 적벽대전과 유사하다.

하지만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가지고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면서 둘 사이에는 균열이 생겼고 지금은 적이 되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폰 책임자 앤디 루빈(Andy Rubin) 부사장은 애플을 북한에 빗대어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었고, 스티브 잡스는 구글의 ‘사악해지지 말라’라는 모토가 멍청하다면서 비아냥거렸다.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파트너라는 극찬을 들을 정도로 가까웠던 두 회사를 적수로 만든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라는 괴물이다.   

적벽대전 이후 드디어 조조의 위, 손권의 오, 유비의 촉으로 이루어진 천하 삼분지계가 완성된다. 스마트폰을 필두로 한 IT 세계 역시 이와 같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로 설명된다. 천하 삼분지계는 애초에 제갈공명이 내놓은 비책이었다. 유비의 촉은 너무나 약해서 혼자서 위나라와  1:1로 싸울 수 없지만 오나라가 존재함으로써 서로가 견제와 협력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위나라가 비록 가장 강력하지만 섣불리 촉을 공격했다가는 오나라에게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오나라를 공격하면 촉이 도움을 주기 때문에 함부로 전면전을 펼칠 수가 없다. 오나라와 촉나라 사이에도 위나라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전쟁을 할 수 없고 서로 견제하면서 때로는 상황에 따라서 협력할 수밖에 없다. 1:1로 싸운다면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혈투를 벌이겠지만, 천하 삼분지계가 되면 오히려 서로 견제와 협력을 이루면서 오히려 공존공생하는 사이가 된다는 교훈이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현재 상황이 바로 천하 삼분지계를 이룬 위, 촉, 오와 동일한 상황이다.   
  
이 같은 천하 삼분지계의 형세는 단순히 휴대폰 하나 더 파는 경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스마트폰에 연동되는 다양한 서비스를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서비스는 앱스토어, 안드로이드 마켓, 윈도우 마켓플레이스(Window Marketplace)처럼 앱을 사고파는 온라인 장터가 될 것이다. 온라인 장터는 생태계와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주제에 대해서는 뒤에 6장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여기서는 스마트폰 전쟁에 임하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승리를 위하여 클라우드 컴퓨팅, 소셜 네트워크, 광고, 게임에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상세보기


신고
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17 09:54
아이팟에서 아이폰으로

이와 같이 애플은 아이팟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신화가 된 아이폰 개발에 착수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애플이 휴대폰 시장 진출을 심각하게 고려한 것은 MP3 기능을 가진 휴대폰이 증가하면서부터다. 아이팟은 애플의 핵심 사업인데 만약 MP3 기능이 추가된 휴대폰이 보급되면 회사의 재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애플은 휴대폰 산업에 직접 진출하지 않고 모토로라와 합작하여 로커(ROKR)라는 MP3폰을 만들었다. 로커는 아이튠즈를 이용해 음악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아이튠즈 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로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디자인도 형편없었고, 소비자들이 사용하기에 불편했을 뿐만 아니라 노래도 100곡 정도밖에 저장할 수 없었다. 또한 휴대폰으로 직접 음악을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PC로 다운로드해서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직접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이미 애플은 뉴턴이라는 PDA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정리한 상품이 뉴턴일 정도로 처절한 실패를 안겨준 제품이었다. 그럼에도 애플이 또다시 손안의 컴퓨터 시장에 진출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데스크톱 운영체제인 맥 OS X를 조금만 수정하면 작은 휴대용 기기에서도 충분히 구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애플은 2000년대 초반부터 태블릿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다. 손으로 각종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을 연구하던 중 이 기술을 휴대폰처럼 좀 더 작은 화면에 적용하면 훨씬 멋진 제품이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멀티터치 기반의 인터페이스를 도입하면 기존 스마트폰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였던 불편한 조작 체계를 단번에 뒤엎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 발매 전 가졌던 인터뷰에서 아이폰이 1984년 매킨토시 등장 이후 가장 혁명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flickr - TechShowNetwork


애플은 새로운 사업 분야에 진출할 때 스스로 확실한 통제권을 가지려고 한다. 애플은 누군가에게 지배받을 생각이 없는 자존심 강한 회사이다. 따라서 이동통신사의 통제를 받으면서 아이폰을 팔 생각이 없었다.   

휴대폰 산업은 이동통신사가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곳이었다. 이동통신사와 휴대폰 업체의 관계는 봉건시대의 영주와 농노에 비견될 만했다. 이동통신사는 휴대폰의 기능과 사양을 결정할 뿐 아니라 가격과 판매 방식에도 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동통신사가 어떤 휴대폰을 밀어주느냐에 따라서 판매량이 결정되는 만큼 휴대폰 제조사들은 이동통신사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통신사가 원하는 것은 고객들을 일정 기간 약정으로 묶어둘 수 있는 제품일 뿐 특출나게 뛰어난 품질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휴대폰 사업은 최첨단의 이미지와 다르게 다른 IT 분야에 비해서 제품 발전 속도가 더딘 분야였다.

스티브 잡스는 휴대폰을 개발하는 데 아무런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았다. 콘텐츠도 이동통신사를 거지치 않고 직접 판매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그의 태도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던 만큼 버라이즌(Verizon)에서는 애플과 함께 일하는 것을 단번에 거절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직접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할 생각도 하였지만, 다행히 미국의 또 다른 이동통신사인 AT&T에서 애플의 휴대폰에 관심을 보였다. AT&T는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애플의 아이폰 같은 매력적인 단말기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AT&T는 그동안 회사가 누리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애플과 제휴하기로 결정했다.   

애플과 AT&T의 제휴가 결정되었지만 두 회사간의 문화 차이로 인해서 공동 작업은 쉽지 않았다. AT&T가 격식을 차리는 회사였던 데 비해 애플은 청바지를 입는 자유분방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AT&T는 애플 직원들에게 자사의 임원이 참가하는 회의에는 꼭 양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애플 직원들은 양복 자체가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상세보기


신고
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16 10:24
아이팟 탄생 비화

아이팟의 탄생에 얽힌 우여곡절은 사연이 길다. 먼저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기업가적 면모에 큰 변화가 있었다. 전과 달리 소프트웨어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나 구글의 창업자들에 비해서 하드웨어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넥스트와 픽사를 거치면서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뒤집혔다. 넥스트와 픽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개발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사업이 잘 안 되자 넥스트는 기존의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소프트웨어 전문업체로 거듭났고, 픽사 역시 하드웨어 사업부를 매각하고 3D 에니메이션 회사로 전환했다. 스티브 잡스는 1994년 인터뷰에서 컴퓨터는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두 배 뛰어난 제품은 만들기도 힘들고, 운이 좋아서 1.3배나 1.5배 정도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 있지만 그래 봐야 6개월이면 따라잡히고 만다고 한탄하였다. 그러면서 소프트웨어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애플이 몰락한 것은 운영체제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위기에 빠진 애플을 구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운영체제를 들고서 다시 애플에 돌아왔다.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애플의 요직에 앉혔다. 그렇게 넥스트에서 데려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천여 명의 인력이 모여서 개발한 것이 바로 맥 OS X이다. 당시 맥 OS X은 애플의 운명을 결정 짓는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운영체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응용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했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처음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처럼 외부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찾아다니면서 맥 OS X용으로 소프트웨어를 발매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와는 굴욕적인 계약을 감수하면서까지 MS 오피스의 공급을 약속받았지만, 다른 회사에서는 호응이 없었다. 매킨토시의 시장점유율이 한 자릿수에 그쳤기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매킨토시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자신의 도움으로 성공을 거둔 어도비의 외면이었다. 어도비가 자신의 요청을 거절하자 스티브 잡스는 직접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애플에서 사진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인 아이포토iPhoto나 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아이무비iMovie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게 된 배경에는 이런 사건들이 있었다.   

flickr - Oliver Lavery


이때 스티브 잡스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다. 세상이 CD에서 DVD 시대로 넘어간 것으로 생각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에 DVD-ROM을 기본 장착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MP3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CD에 있는 음악을 컴퓨터로 변환해서 MP3 파일을 만들거나 그 반대로 MP3 파일을 CD로 저장해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컴퓨터 회사들은 CD에서 음악을 추출해서 MP3로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였고, CD 라이터를 장착하여 MP3 파일을 CD로 복사하기 쉽게 만들었다. 하지만 애플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MP3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도 않았고 매킨토시에는 DVD-ROM을 장착했기 때문에 CD에 음악을 저장할 수도 없었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스티브 잡스는 매우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졌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에 CD 라이터를 추가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MP3 파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개발자들에게 크리스마스까지 음악 소프트웨어를 완성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 기간 안에 애플 내부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애플은 매킨토시에서 인기가 많았던 사운드잼 MPSoundJam MP 의 제작사인 캐시디 & 그린Cassady & Greene과 공동으로 음악 소프트웨어 아이튠즈iTunes를 개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4개월간의 개발 끝에 2001년 1월 맥월드 엑스포에서 아이튠즈를 발표한다. 처음 등장한 아이튠즈는 사운드잼 MP보다도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무료였기 때문에 꽤 인기가 좋았다.   

아이튠즈는 단순한 음악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아이튠즈가 보여주는 비전은 현재의 애플을 지탱하는 중요한 전략을 담고 있다. 아이팟 탄생의 핵심이 되는 디지털 허브가 바로 그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여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소비자들이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PDA 등 각종 전자기기를 컴퓨터에 연결하여 데이터를 관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컴퓨터가 전자기기들의 허브의 역할을 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착안하여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허브 전략을 수립했다.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등을 매킨토시에 쉽게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각종 소프트웨어를 지원했다. 그러면서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제품 중에 유독 휴대용 MP3 플레이어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MP3 플레이어에서 가능성을 본 스티브 잡스는 사내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지시했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상세보기


신고
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15 09:57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공통점

구글의 성공 전략과 사업 모델 그리고 현재 처한 상황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와 판박이다. 먼저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으로 확장해나갔듯 구글 역시 검색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결합했다. 또한 야후와 AOL이라는 인터넷 거인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어서 최대한 이용하였고 나중에는 그 거인마저도 물리쳐버렸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IBM과 애플이라는 두 거인을 적절히 이용하였고 나중에는 그 거인을 쓰러뜨리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스탯카운터(StatCounter)에 의하면 2010년 11월 구글은 검색 시장에서 90% 내외의 시장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하나의 시장에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한 만큼 이들에게는 반독점법이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는 점도 똑같다. 뿐만 아니라 성장 전략에서도 인수합병을 적극 활용하는 점도 똑같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35년간 대략 190여 개 회사를 인수하였는데 구글은 역사가 12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90여 개나 되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은 최고의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비슷한 행태를 보여준 것은 바로 스티브 잡스에 대한 배신이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응용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매킨토시가 완성되기도 전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적극 협력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를 위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한편 독자적으로 윈도우를 만들어서 스티브 잡스를 분노케 했다. 그런데 이런 역사가 구글에게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본래 구글과 애플은 반 마이크로소프트 동맹으로 단단히 맺어진 형제 같은 사이였다. 앨 고어(Al Gore) 전 부통령이나 인튜잇(Intuit) CEO인 빌 캠벨을 비롯한 구글의 이사진 가운데 절반이 애플의 이사를 겸직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2006년부터는 에릭 슈미트가 애플의 이사직을 맡으면서 두 회사의 밀월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특히 아이폰이 발표될 때쯤엔 그 관계가 절정에 이르렀다. 매킨토시를 위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어준 것처럼 구글 역시 애플과 공동으로 각종 앱을 개발했다.   

flickr - Daniel F. Pigatto


2007년 1월 9일 맥월드에서 열린 아이폰 발표회에는 구글의 에릭 슈미트가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에릭 슈미트는 두 회사의 긴밀함을 강조하면서 애플과 구글이 합병하면 ‘APPLEGOO’라고 부르면 어떻겠냐고 농담을 하였다. 이때  관객들은 환호하고 카메라에 클로즈업된 스티브 잡스의 얼굴 전체에 환한 미소가 번지는데 과거 빌 게이츠가 매킨토시를 극찬할 때의 관객과 스티브 잡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또한 에릭 슈미트는 실제로 합병을 하지 않았어도 하나의 회사처럼 일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에릭 슈미트는 아이폰의 성공을 확신하며 스티브 잡스에게 축하를 건냈다. 이 또한 과거에 빌 게이츠가 매킨토시가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고 추켜세웠던 것과 유사했다. 이처럼 2007년 에릭 슈미트가 보여준 모습은 1983년 애플 이벤트에서 빌 게이츠의 모습과 완벽하게 오버랩된다. 그리고 이후의 행보 역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아이폰이 발표될 당시의 좋은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구글이 아이폰을 참고해서 안드로이드라는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만들어 애플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당했을 때보다 구글에게 더 큰 배신감을 느낀 듯 보였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스티브 잡스는 구글이 애플을 죽이려 한다면서 직원들에게 분발을 촉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구글의 래리 페이지는 스티브 잡스가  역사를 마음대로 쓰고 있다면서 역공을 펼쳤다. 구글은 아이폰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2008년 2월 공개된 안드로이드폰은 아이폰과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처음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안드로이폰은 블랙베리처럼 자판을 탑재하고 있었다. 당시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의 차이는 문자 기반의 운영체제인 도스와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 윈도우의 차이만큼이나 컸다.

이후 안드로이드폰은 급격하게 아이폰과 유사한 형태로 변해갔다. 실제로 2010 구글  I/O(개발자 회의)에서 빅 군도트라(Vic Gundotra) 구글 부사장은 안드로이드폰을 만든 이유가 애플이 주도하는 미래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큰소리친 적이 있다. 이는 애플의 통제 정책에 대한 반대자로서 구글의 열린 생각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지만, 사실상 안드로이드폰이 애플의 아이폰에 영향받았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아이패드에 영향을 받아서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 컴퓨터를 만들고 있는 현실을 보면 구글도 마이크로소프트만큼이나 애플에게서 영감을 얻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flickr - Joi


안드로이드 사업 전략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유사하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매킨토시가 윈도우 때문에 위기에 처했던 것처럼 아이폰이 안드로이드에 의해서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예측을 많이 내놓았다. 현재 스마트폰 운영체제 분야에서 구글이 애플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마저 넘어선 상황이니 어찌 보면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더 빠른 기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창업한 지 이제 1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검색엔진을 통해서 인터넷 제왕에 올랐고,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에서 구글과의 싸움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반독점법에 의해서 칼날이 무뎌진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력과 구글을 무시했던 빌 게이츠의 자만도 한몫했지만 결국 구글이라는 조직 자체가 그만큼 강해졌기 때문이다.   

안티 마이크로소프트로 똘똘 뭉친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잘 알기에 마이크로소프트보다도 정확하고 빠르게 전략을 수행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검색엔진 하나로도 벅차할 때 구글은 구글 맵스, 구글 어스, 유투브처럼 인기 서비스를 연달아 내놓으면서 인터넷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더불어 마이크로소프트의 고유 영토였던 운영체제, 오피스, 웹브라우저 시장에 진출하면서 빠르게 전선을 확대해나갔다. 거기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정확하게 겨눈 ‘사악해지지 말라’라는 사훈으로 마치 정의의 사도와도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수많은 기업 팬까지 거느릴 수 있었다. 세상 그 어떤 회사보다도 마이크로소프트와 닮아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완전 다른 이미지를 구축한 구글인 만큼, 레드오션의 최강자로 불리는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천적을 만났다고 할 수 있겠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상세보기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