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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 삼국지와 한국
    e비즈북스의다른책들/IT 삼국지 2011. 1. 21. 10:29
    IT 삼국지와 한국

    IT 삼국지로 인해서 최고의 혜택을 보는 기업을 하나만 꼽으라면 삼성이 될 것이다. 애플이 만드는 제품에 CPU나 플래시 메모리 같은 부품을 공급하는 삼성은 애플이 잘나가면 덩달아서 이익을 본다. 현재 애플은 삼성에게 최고의 고객이다. 2010년 상반기에만 2조 원이 넘는 부품을 삼성에서 구입했다. 2010년 1분기에는 9,000억 원어치를 구입하였는데, 2분기에는 1조 4,209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부품 구입도 그만큼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삼성은 또한 안드로이드폰 덕분에 사면초가에 빠졌던 스마트폰 분야에서 기사회생했다. 옴니아2의 경우 하드웨어보다 운영체제 문제가 컸는데 안드로이드의 수혈을 받으면서 이를 단번에 해결한 것이다. 그렇게 출시된 갤럭시S는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하며 발매 4개월여 만에 700만 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또한, 난공불락의 요새인 일본에서도 발매 첫주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다. 스마트폰 주변부에 머물렀던 삼성은 어느덧 스마트폰의 중심에 다가가고 있다.   

    윈도우폰7은 삼성에게 또다른 기회였다. HTC가 최초의 안드로이폰과 구글폰을 제조함으로써 인지도를 급격히 향상시켰듯이 삼성은 윈도우폰7의 대표폰으로 명성을 쌓았다. 윈도우폰7이 등장하기 전에 레퍼런스 폰으로 윈도우폰7이 전 세계 언론에 공개되면서 삼성은 윈도우폰7에서 다른 회사보다 먼저 입지를 다지고 있다. 게다가 엔가젯(Engadget)에서 매긴 윈도우폰 점수에서도 옴니아7이 8점을 받으면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삼성전자가 승승장구하는 반면에 LG전자는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0년에는 수익이 90%나 곤두박칠치면서 CEO가 교체될 정도였다. LG가 스마트폰 시대에 부진한 것은 한마디로 줄을 잘못 섰기 때문이다  2009년 2월 LG는 윈도우 모바일 기반의 스마트폰 20종을 발매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윈도우 모바일에 올인했다. 하지만 LG가 내놓기로 한 윈도우 모바일 스마트폰이 대부분 출시가 취소되었고 발매된 스마트폰마저도 시장에서 별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2010년 1월 CES 2010에서 LG는 인텔에서 개발한 차세대 모바일 플랫폼인 무어스타운(Moorestown)과 리눅스 기반의 운영체제인 모블린(Moblin)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5월부터 LG의 무어스타운 기반의 스마트폰이 취소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이후 새로운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만약 LG가 윈도우 모바일이나 무어스타운 폰이 아니라 안드로이폰에 올인했다면 지금보다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LG는 2010년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원을 발매했지만 안드로이드의 버전이 구형이라서 외면을 받게 된다. 그 후에는 의욕적으로 또 다른 안드로이드폰인 옵티머스 Q를 내놓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이처럼 LG전자가 한 박자 늦게 안드로이드폰을 내놓은 것은 안드로이드폰보다는 다른 휴대폰에 더 신경 쓴 결과로 볼 수 있다.   

    flickr - Stanković Vlada

    손정의, HTC, 삼성, LG를 보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관계에 따라서 회사의 실적에도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잘 설정해야 한다. 한국은 다행히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필요한 존재이고, 현재 이들이 주도하는 PC와 스마트폰 경쟁에서 큰 혜택을 보고 있다. PC와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인 메모리,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에서 한국산이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예로 들면 아이폰 4에서 한국산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육박한다. 두뇌 역할을 하는 A4 칩은 삼성이 제조하고, 스티브 잡스가 그토록 극찬했던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LG가 만들고 있다. 배터리와 메모리는 삼성이 공급을 하고, 카메라는 LG 이노텍이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봤을 때, IT 삼국지는 분명 한국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얼마든지 토사구팽을 당할 수 있는 위치라는 데 있다.   

    애플의 주요 부품이 지금은 한국에서 납품되고 있지만 언제든지 거래선이 바뀔 수 있다. 아이팟의 경우 하드디스크는 도시바, 배터리는 소니에서 공급받았지만, 아이폰 부품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한국 기업이 애플에 계속 부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새로운 복병으로 차이완 기업들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경쟁 기업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술을 가진 인텔 같은 기업을 제외하고는 가격경쟁력에 따라 그 기업의 성패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대만의 기술과 중국의 값싼 노동력 그리고 중국 내수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갈수록 막강해지는 자본력까지 고려하면 차이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애플은 현재 삼성으로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메모리를 공급받고 있다. 그런데 삼성이 스마트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애플이 삼성을 의식하는 여러 행보들을 보이고 있다. 애플은 삼성이 부품 분야에서 얻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완성품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삼성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될수록 애플은 점차 삼성 의존도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존재 역시 한국보다는 대만과 중국에게 유리하다. 휴대폰을 예로 들면 한국은 세계 2위의 삼성과 3위의 LG를 보유한 강국이었다. 휴대폰에 관련된 기술은 차이완보다는 한국이 앞서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정책 때문에 한국과 차이완의 기술 격차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규격까지 관여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강요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통제를 따르지 않으면 윈도우폰7을 아예 탑재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통제 정책은 대만 기업에게는 유리하지만, 한국 기업에는 불리하다.   

    한국은 휴대폰 강국으로 여러 관련 기술들을 이미 확보하였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드웨어 규격에 관여하기 때문에 한국 기술은 버려지는 대신 대만은 스마트폰 업계에 무임승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 갤럭시S는 CPU로 허밍버드를 채택하였다(컴퓨터의 CPU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의 CPU 역시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 허밍버드는 애플의 아이폰4에 들어가는 A4칩과 거의 유사한 CPU로 A4와 허밍버드 모두 삼성이 생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삼성의 강점은 직접 부품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CPU, 메모리, 배터리, 디스플레이까지 모두 삼성이 직접 생산하는 덕분에 휴대폰 업계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윈도우폰7은 CPU로 퀄컴(Qualcomm)의 스냅드래곤(Snapdragon)을 채택했다. 윈도우폰7을 만드는 회사들이 동일한 CPU를 쓰게 되면 차이완 기업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과거보다 손쉽게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술규격을 외부에 공개함으로써 PC 분야에서 기술을 평준화시켰다. 만약 스마트폰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술규격을 공개하게 된다면 자체적인 기술력을 가진 한국은 제품에 차별화를 이루기 어려워지는 반면, 대만은 무임승차하듯이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하는 기술규격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제조사 간에 기술 평준화가 일어나면 결국에는 가격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면 스마트폰 업계는 현재 PC 업계처럼 차이완 기업들이 전성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애플의 성공을 본 델, HP, 에이서, 아수스 같은 PC 업체들도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 PC 전쟁의 승리자들은 보통 기업들이 아니다. 그야말로 가격경쟁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PC 제조업체들은 크게 노력할 일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PC 제조에 가장 중요한 기술은 몇몇 소수의 대표 업체들이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래픽카드는 NVIDIA와 ATI가, CPU와 메인보드는 인텔과 AMD가,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제품 생산에 적극 협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PC 제조업체들의 경쟁력은 가장 효율적으로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있다.   

    PC 업체 중 앞으로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대만 업체다. 대만 업체들은 축적해온 기술과 신용으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 구글의 넥서스원은 HTC에서 제조되었고, 애플의 아이폰은 폭스콘이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대만 업체 역시 대량 생산을 위한 설계와 관리를 맡을 뿐 실질적 생산은 중국에서 이루어진다. 즉, 본사는 대만에 있지만 공장은 중국에 있는 것이다. 신뢰가 가는 대만 업체에 용역을 주면, 대만이 중국에서 효율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황금 라인 체계가 이미 완성되어 있다. 델 컴퓨터도 대만에서 OEM으로 제품을 사오지만 실질적인 생산은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핵심 기술과 소프트웨어는 미국이 맡고 제조와 생산은 차이완이 맡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차이완에 제조와 생산을 모두 맡기는 PC 업체들이 휴대폰 업계까지 진출하는 상황은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반갑지 않은 일이다.

    기존 휴대폰 강자들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어려움을 겪는 것은 스마트폰을 휴대폰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손안의 컴퓨터로 스마트폰에 접근했다. 현재 PC 분야에서의 게임의 법칙이 스마트폰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차이완 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한편 최대한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할 것이다. 이미 그런 식으로 PC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 차이완 업체와 가격경쟁을 벌인다면 PC 시장에서 그러했듯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스마트폰 분야에서 계속 부진하다면, 수십 년간 특수한 밀월 관계를 형성해온 PC 업체와 연합군을 구성해서 기존의 휴대폰 업계와 경쟁을 펼치도록 판을 새로 짤 수도 있다고 본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역시 차이완에게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 예전에는 감히 스마트폰을 만들 생각도 못한 업체들이 저가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데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록 지금은 구글이 하드웨어 업체에게 통제력을 발휘하지 않지만 미래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운영체제를 받아들인다는 건 기술 표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고 그렇게 되면 휴대폰에서 핵심적인 CPU나 그래픽 칩 역시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PC 시장처럼 원천 기술을 가진 회사는 많은 수익을 거두는 반면에 제조업체들은 단순 조립 업체로 전락하면서 가격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자사의 운영체제가 최대한 많이 보급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하드웨어 업체 간에 경쟁이 붙어서 가격이 내려가기를 바란다. 지금은 한국이 가격과 성능 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에게 필요한 존재지만 언제 토사구팽을 당할지 모른다. 일본 전자 기업의 몰락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고급 기술에 따라가지 못하다가 한국 기업에 일격을 당하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역시 차이완에 의해서 현재의 일본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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