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0.12.31 09:44
스티브 잡스의 재림

1985년 9월 16일,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지 9년 만에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는 애플2 컴퓨터의 성공으로 억만장자가 된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의욕적으로 만든 매킨토시의 판매가 당초 목표였던 200만 대에 턱없이 부족한 25만 대에 그치자 스티브 잡스의 입지가 급속히 축소되었다. 그런 와중에 당시 CEO였던 존 스컬리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펩시콜라 사장으로 일하던 존 스컬리를 직접 만나서 평생 설탕물이나 팔 거냐면서 애플로 데려온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처음에만 해도 둘은 찰떡 궁합이었다. 존 스컬리 역시 스티브 잡스의 스승을 자처하면서 나중에 CEO 자리를 물려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 운영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서 치열한 정치 싸움이 벌어졌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개발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운영으로 사내에 많은 적들을 만들었다. 그런 데다 매킨토시의 실패로 스티브 잡스는 더 이상 회사에서 버티기 힘들었다. 결국 애플의 회장직을 내놓은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NeXT)라는 컴퓨터 회사를 창업했다. 그러나 넥스트마저도 실적이 별로 좋지 못했고,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기 시작했다.   

한편 애플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다. 비록 스티브 잡스는 떠났지만 그의 선견지명으로 인해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획기적인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매킨토시에 레이저 프린터를 결합한 사무용 솔루션을 기획했다. 당시만 해도 모니터상의 글과 그래픽을 종이로 인쇄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Adobe)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을 사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250만 달러를 어도비에 투자하는 한편 관련 기술을 라이선스받기로 했다. 또한 일본을 직접 방문해서 매킨토시에 맞는 최적의 프린터를 찾아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티브 잡스가 있을 때는 이러한 노력이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나간 이후 얼마지 지나지 않아 매킨토시의 기능을 극대화한 페이지메이커(PageMaker)나 포토샵(Photoshop) 같은 킬러 소프트웨어가 등장했다. 페이지메이커와 포토샵의 등장 이후 매킨토시가 출판업계와 그래픽 디자이너 같은 전문가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서 애플 역시 기사회생하는 듯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애플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매킨토시가 큰 인기를 끌긴 했지만 스티브 잡스 퇴출 이후 개발력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새로운 히트작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이었다.   

flickr - Photo Giddy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반면 매킨토시는 정체 상태에 빠져 버렸다.애플은 윈도우95의 등장으로 매킨토시만의 장점도 빼앗기고,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MS 오피스마저 출시되지 않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스티브 잡스를 몰아냈던 존 스컬리가 실적 부진으로 애플에서 쫓겨나고, 그의 후임이었던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 또한 윈도우95라는 유탄을 맞고서는 회사를 그만둔 상황이었다.   

그 후 애플은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의 CEO인 길 아멜리오(Gil Amelio)를 영입했다. 그는 카메라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인 CCD를 발명한 엔지니어이자 무너져가는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부활시켜 능력을 인정받은 경영자였다.

평소 애플의 팬이었던 길 아멜리오는 의욕적이었다. 그는 회사의 여러 문제점들을 금방 파악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몇 년째 아무런 성과가 없는 운영체제 개발이었다. 매킨토시가 빛나는 것은 뛰어난 운영체제 덕분이었는데 운영체제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니 회사의 명성과 경쟁력도 하루하루 떨어져갔다. 그렇지만 애플 내부에서는 운영체제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었다.   

결국 길 아멜리오는 고육지책으로 외부에서 운영체제를 구입해오기로 했다. 회사의 자존심을 버리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그만큼 사내의 개발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마침 빌 게이츠가 애플의 이런 사정을 알고는 직접 길 아멜리오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사의 운영체제인 윈도우NT를 매킨토시에 맞게 수정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길 아멜리오는 빌 게이츠가 매킨토시의 인터페이스에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 게이츠가 윈도우NT를 제공해주는 대신 매킨토시의 핵심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길 아멜리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안을 거절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솔라리스(Solaris)도 알아보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이런 와중에 애플 출신의 장루이 가세(Jean-Louis Gassee)가 만든 BeOS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다.   

장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를 회사에서 쫓아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인물이다. 그의 제보 덕분에 중국으로 출장가려던 존 스컬리가 회사로 돌아와서 스티브 잡스의 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다. 장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그만둔 후에 매킨토시 사업부를 맡았다. 하지만 그는 영업맨 출신으로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몇 가지 실책을 거듭하다가 결국 존 스컬리와 함께 회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회사를 그만둔 장루이 가세는 새로운 형태의 운영체제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컴퓨터를 개발하는 비Be라는 회사를 차렸는데, 비 사의 직원 대부분이 애플에서 일했던 개발자들이었던 만큼 운영체제도 자연스럽게 매킨토시와 궁합이 맞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길 아멜리오는 장루이 가세가 만들고 있던 BeOS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때만 해도 BeOS는 애플의 매킨토시에 사용될 가장 유력한 운영체제였다.   

하지만 애플이 새로운 운영체제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한 넥스트 직원들의 활약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넥스트 직원들은 스티브 잡스 몰래 당시 넥스트가 만들고 있던 운영체제를 애플에 보여주었는데, 애플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나중에야 이 소식을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자신에게 중대한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면에 나서서 직접 애플과 협상을 시도했다. 협상력 하면 스티브 잡스 역시 뛰어난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애플과 장루이 가세 사이에 끼어든 스티브 잡스는 화려한 언변을 뽐내며 CEO인 길 아멜리오의 마음을 빼앗았다. 결국 길 아멜리오는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를 4억 달러가 넘는 거액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스티브 잡스는 11년 만에 애플의 고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당시 애플의 사정은 그야말로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길 아멜리오가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매킨토시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10%에서 3%로 추락했고, 회사는 실리콘 밸리 역사상 최악의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이었다. 주식 역시 기업 10년 역사상 최저가로 떨어졌고, 결국 길 아멜리오는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애플 역사상 최악의 위기에서 이사회는 자신들의 구세주로 스티브 잡스를 선택했다.

IT삼국지애플구글MS의천하삼분지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전략 > IT경영
지은이 김정남 (e비즈북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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