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도서정가제 시행 전날 소형 출판사 직원이 본 책가격의 거품
    e비즈북스이야기 2014. 11. 20. 23:05

    도서정가제로 인해 독자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제가 출판사에 들어온 이래로 지금처럼 핫한 이슈가 된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인터넷 서점들은 도서정가제 시행 전날에 몰려드는 사람들때문에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습니다. 철학과 출신인 저희 대표님께서 <순수이성비판>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며 놀라셨습니다--. 원래 책을 안사시는 독자(?) 부터 책을 많이 구입하시는 분까지 자신들이 책을 비싸게 사게 되었다고 악법을 규탄합니다. 과연 책값은 거품일까요? 소형출판사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과연 책의 가격이 비싼가에 대해서 나름대로 고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출판사의 책 가격을 책정할때 크게 두가지를 고려합니다. 제조원가와 경쟁자.

    먼저 제조 원가.

    책의 인세와 편집자 인건비, 디자인비 ,인쇄비, 종이비 등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조원가라는 것이 매출 예상액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일종의 규모의 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이 찍으면 제조원가가 내려가고 적게 찍으면 제조원가가 올라갑니다. 따라서 많이 찍으면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팔리지 않을 책을 많이 찍었다가는 제조비와 관리비 손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초판 1쇄를 기준으로 책값을 산정하는데 불행히도 이 초판 부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출판사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5천부를 찍었던 책도 있었는데 지금은 평균 1200부 정도를 찍는 것같습니다. 어떨때는 손실이 뻔한데도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해서 찍습니다. 목록에 이 책을 보유하고 있으면 뽀대가 난다나요? 그때는 700부도 찍습니다. 어쨌든 1200부를 찍으면 손익분기점이 나올까요? 아마 간신히 맞출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소형출판사나 해당되는 것이고 대형출판사는 인건비가 비싸서 수지를 맞출수 없습니다.


    간단히 계산해보죠. 책을 만드는데 저자, 표지 디자이너 ,본문디자이너 ,편집자가 개입됩니다. 1200만원의 매출을 일으키는데 4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에 인쇄비와 종이비가 제작을 위해 투입되고, 경영자와 영업자 급여, 임대료, 창고보관료 등 판관비가 들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가격을 고려하는데 여기에는 책의 반품 훼손비용은 넣지도 않았습니다. 출판계에서 반품은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도 말이죠.

    더 큰 문제는 초판도 소진 못하는 책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대로 손실입니다. 며칠전 우리 대표님께서 "올해 나온 책 가운데 2쇄 찍은게 있냐?"고 한탄하셨습니다. 올해 우리 출판사의 성적이 그만큼 안좋습니다. 작년에 나온 책들로 버티고 있는거죠. 책의 수명으로 볼때 내년에 히트작이 나오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어쨌든 여기서 중소형 서점들이 많아지면 독자에게 유리하다는 주장의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서점들이 많으면 물량이 소화가 되기때문에 초판 발행부수가 늘어난다.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게 되면 책의 제작비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다. 즉 손익분기점이 낮아지기 때문에 출판사로서는 다양한 책으로 모험할 여지가 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크다.


    하지만 저는 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형 서점도 공간이 부족해서 양서들을 비치하지 못하는데 중소형 서점이 그럴수 있을까요? 마케터들이 교보문고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이 곳의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들이 전국의 모든 서점들에게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중소서점들이 더 판매가 보장되는 안전한 책 위주로 비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저 주장은 수요가 많을때 해당하는 이야기고 지금처럼 수요가 없을 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출판계는 그래서 요즘에는 도서관에서 구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도서관은 돈이 없습니다. 이번에 도서정가제로 도서구입비가 상승할텐데 그래서 더 수요가 줄어들것 같습니다--.


    두번째 경쟁자.

    이미 팔리고 있는 책들을 기준으로 가격을 결정합니다. 어찌보면 이게 가장 중요한 결정요소인데 거품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출판계는 시장 경제가 매우 훌륭하게 작동되거든요. 출판업의 특징은 진출입이 자유롭습니다. 폭리가 있다면 경쟁자가 빈틈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 출판사가 한창 출간을 준비중에 먼저 다른 출판사에게 시장 선점을 놓친 책이 있었습니다. 가격을 보니 꼭 필요한 사람만 사라는 식으로 가격을 비싸게 책정했더군요. 시장 선점 기회를 놓쳐서 비상을 걸고 저자, 편집자를 닥달해서 책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출간한 책은 시장반응이 괜찮았고 어느 날 일시품절이 떴습니다.

    '이 책이 개정판을 낼까? 가격은 그대로 가져갈까?'

    일시품절이 풀렸고, 그 책은 여전히 비쌌고, 저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제 우리 출판사가 준비 중인 책의 가격을 결정할 상황.

    '5000원 싸게 콜!'

    그 출판사는 아마 재고를 소진하는데 고전할 것입니다. 즉 책시장은 독점에 의한 폭리란 장기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가격거품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의문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반값이하에 파는 책은 무엇인가? "


    크게 두가지 입니다. 눈물의 땡처리 혹은 다른 책의 실패에 대한 보상입니다.


    신간은 법정에 들어선 죄인과도 같다. 법정에 들어선 피고인은 적어도 유죄 판단이 되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도 있지만, 신간은 그 무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죄인 취급을 받는다. 신간은 대부분이 실패하기 때문이며, 출판사는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반면 소비자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 출판사의 <스타트업 펀딩>에 나오는 문장을 약간 바꿔봤습니다. 물론 출판사가 신간을 출간할때 저렇게 기대하진 않습니다. 될 책과 안될 책은 어느 정도 구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은 손익분기점 이하이고 20%의 책들이 출판사를 먹여 살립니다. 즉 80%의 땡처리해야할 책과 20%의 성공한 책의 균형가격이 책의 정가입니다. 실제로 성공해서 반값 할인해도 될 책은 5%도 안됩니다. 우리 출판사는 성공해서 반값 할인할 책이 없더라구요. 100종이 넘게 출간했는데도 말이죠. 대신 실패해서 땡처리할 책들은 많았습니다ㅠㅠ. 제가 이 글을 쓰려고 우리 출판사의 책들을 조사했다더니 상위 20%의 책 매출액이 66%를 차지하고 있더군요. 좋게 해석하면 책들이 쏠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나쁘게 해석하면 빅셀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후자의 성격이 강합니다. 앞에서 우리 대표님이 한탄하셨잖아요. 책들이 전체적으로 안팔리면 쏠리지 않습니다ㅠㅠ


    어쨌든 어떤 출판 마케팅 강의에서 들었던 말로 출판사의 현실은 마무리하겠습니다.

    '장사가 잘 되더라도 성과급으로 1년치 연봉을 주지마라. 직원들 퇴사한다.'


    1년 연봉이 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직원들 충성도가 낮아서 그렇습니다-- 출판계의 중년 남자들은 독립해야 합니다. 한 가정을 꾸리는데 급여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출판사는 그렇다 치고 저자들은 어떨까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쓸 시간에 본업에 충실하면 돈을 더 버실 겁니다. 하지만 책의 출간으로 인해 얻을 시너지 효과가 분명히 있습니다. 프로필에 '저자'라는 타이틀이 걸렸을때의 이익과 자기만족감은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저에게 낚인 저자분들(?)은 고통스런 창작의 과정을 겪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가이드만 하고 나머지는 편집자에게 넘깁니다. 종종 책을 날로 쓴다고 비판을 하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자분들도 과감하게 결단을 한 것입니다. 초판에서 인세를 받아봤자 200만원도 못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책쓰는데 두달이면 빨리 쓰는편에 속합니다. 두달 동안 일했는데 200만원도 못 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도 해당 분야 전문가입니다.


    그러면 이제 서점이 남았군요. 출판 시장 왜곡의 본원 취급을 받는 인터넷서점을 비롯한 대형서점의 영업이익률은 한자리 숫자(1%대)이고 그것도 극악합니다. 적어도 장부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이 이익률은 출판사들이 지불하는 광고비와 같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서점은 광고하는 출판사들을 환영합니다. 인터넷 MD들은 실적이 쪼이면 출판사 영업 담당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올해는 저에게도 제안이 들어오더군요.  


    어쨌든 출판사,저자,서점. 이 가운데서 거품요인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개별적인 책가운데 일부 폭리를 취하는 책(대부분 예상보다 잘 팔려서 생깁니다--)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책 시장에서 거품은 없습니다. 정말 거품이라는 것에 취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스타트업 펀딩

    저자
    더멋 버커리 지음
    출판사
    e비즈북스 | 2013-07-1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수수께끼 같은 벤처캐피털의 투자 전략에 대한 완벽한 해부 최선의...
    가격비교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