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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 백범광장에서 망국의 부자를 생각
    자유공간 2015. 3. 17. 00:02

    남산 백범광장은 저에게 친숙한 곳입니다. 초등학교를 근처에서 나왔거든요. 당시에는 야외음악당이라고 불렸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달팽이 집과 거북이가 있었는데 달팽이집은 무서워서 안올라가고 거북이를 타고 놀았습니다.

    어쨌든 도서관에 갔다가 시력이 나빠진게 느껴져서 탁트인 곳을 찾다보니 이 곳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남산타워 부근은 올라가기도 힘들고(^^)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한가하게 사색하기가 힘듭니다. 이곳은 비록 건물들이 많이 있지만 공간이 넓고 무엇보다도 한적해서 좋습니다. 서울에서 일요일 낮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공원을 찾기가 쉽지 않죠.



    어쨌든 공원을 걷다가 보니 처음 눈에 띈 동상은 백범 김구 선생님. 설명이 필요없는 독립운동가.



    그리고 그옆에 동상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손병희 선생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예전에 어렴풋하게 동상이 있었던 기억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까이 가서보니 이시영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의 호가 성재(省齋)였는데 젊은 커플이 왔다가 한자가 약해서 '성'자를 못 읽었습니다.




    이시영 선생은 국사 책에 나온 독립운동가입니다. 신흥무관학교(신흥강습소)를 형 이회영과 함께 세웠는데 여기에 자금을 댔습니다...라고 국사책에 나왔습니다. 그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집안이 대단한 집안이었습니다. 이시영 선생의 가문은 조선에서 손꼽히는 갑부 가문이었는데 독립운동에 형제들이 모두 투신하고 전재산을(쉽게 비유해서 나라가 망하자마자 명동땅을 650억에 급매로 처분하고) 독립운동 자금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만주에서 굶고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문.
    사실 이 가문이 돈이 많았던 이유는 형제 중 하나가 조선 최대 갑부 이유원의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 재산을 상속받았는데 독립운동자금으로 쓴 거죠. 이유원의 재산 형성과정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으리라 판단됩니다. 어떤 책에서 보니 평판 좋은 대지주였다고 하는데 땅이 너무 많아서 소작인에게 소작료를 적게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부정적으로 보냐하면 이 집안이 이렇게 땅과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쥐고 있어야 합니다. 조선이 망한 이유는 기득권 세력이 변화를 거부했기 때문이죠. 그 책에서는 이유원을 경화거족이라고 지칭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서울 양반가문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서울 양반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서 권력을 잡는거죠. 이시영 선생만 해도 조선 최후의 영의정이자 친일파인 김홍집의 사위였고 이유원도 영의정 출신입니다.

     

    어쨌든 돈을 어떻게 모았던 간에 나라가 망하자 이 가문의 형제들은 돈만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6형제중 이시영 선생만이 해방된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조선을 책임진 가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비슷한 케이스로 철학자로 유명한 비트겐슈타인 가문을 예로 들수 있겠네요. 비트겐슈타인 가문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최대 갑부 가문으로 유럽 3대부자였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1차대전으로 몰락하고 마는데 이 집안 역시 전쟁자금에 많은 돈을 기부했고, 가문의 아들 3명 역시 모두 나가서 싸워서 1명은 전사, 1명은 오른팔을 잃는 부상,1명은 포로(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가 됩니다. 패전국 의 운명--.  세 명중 두 명은 참전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전쟁터에 있지 않는 것을 수치로 여겨서 모두 참전합니다. 오른팔을 잃어버린 사람도 다시 전선에 나가겠다고 할 정도니.

    이 집안이 1차대전때 전재산을 쏟아붓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후 2차대전 직전 히틀러한테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는 대가로 대부분 강탈당합니다. 히틀러가 전쟁 준비중이라 바쁜 와중에도 친히 유대인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싸인을 했다는군요.


    이제보니 이시영 선생가문이나 비트겐슈타인 가문이나 시기가 비슷하군요. 근현대사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격동의 시대였던 것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 가문

    저자
    알렉산더 워 지음
    출판사
    필로소픽 | 2014-12-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유럽 역사상 가장 독특한 재벌 가문의 이야기비트겐슈타인 가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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