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 노트] 내 디자인 뭐가 잘못됐나요?

어느 날 개정판을 타진하는 문의 메일 1통을 받았습니다.

'개정판을 내려면 해당 출판사에 문의해야지? 왜?'

 

저자: 해당 출판사에서는 진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일단 완성된 책이라 개정판을 만든다고 해도 품이 들 일은 별로 없을 테고...

판매 상황은....서점 지수를 보면 별로 안팔렸는데? 개정판을 낸다고? 교재로 쓰이나? 

 

저자: 그렇습니다. 

기획자: 알겠습니다. 그럼 책을 한 번 살펴보고...

저자: PDF를 드리겠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내용을 보니....음? 독백이 많은 에세이 스타일이네. 괄호가 이렇게 많은데 편집자가 놔뒀다고?

 

기획자: 혹시 이 책을 맡았던 편집자가 별말 안하던가요?

저자: 예.

기획자: 혹시 원고 수정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으셨나요?

저자: 아니오.

 

편집자 스타일이 그런가?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내용 검토에 들어갑니다.

 

디자인의 컨셉 도출부터 완성까지 단계별 하나하나 과정을 따라하면서 개념을 설명해주는 식이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학생들과 초보 디자이너에게 좋겠어.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구체적이야. 책 표지 디자인 의뢰할 때도 써먹을 수 있겠는데?

 

다음은 리뷰 가운데서 진짜 리뷰를 찾아봅니다.

경력자도 읽어보니 도움이 된다고 하는군. 책의 내용이 괜찮다는 뜻인데.... 

 

고민에 빠졌습니다.

책 내용은 괜찮다.

판매량은 미지수.

개정판이지만 편집 / 디자인의 품은 많이 들어간다. 

 

결론은 당연히 냈겠죠? 사실 이 과정에서 진지한 내부 논의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다른 책의 기획에서는 논의가 이렇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지수가 많아서 그냥 넘어가는 사항들이 많습니다. 실물이 있고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에 토론이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어쨌든 결론을 내리고 저자인 석중휘 교수님께 조건을 걸었습니다. 개정판이지만 수정이 많이 들어가게 될 겁니다. 본문의 괄호는 대부분 해체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본문 텍스트에서 상당 부분이 변경되어야 합니다. 보완 요청이 들어가면 수정해주셔야 합니다.

 

조건에 합의한 후, 마침내 출간 계약을 맺었습니다.

책의 핵심 프레임은 구판과 같습니다. 개정판의 숙명이죠. 그러나 문체는 상당히 다릅니다. 우리 출판사는 실용서 기반이라서 정보 전달에 중점을 둡니다. 그런데 이 방식을 추구해서 수정하다보니 페이지 수가 좀 많이 줄었습니다.

문제는 가격.

책 제작비가 구판때보다 많이 올랐고, 저희가 들인 노력도 초판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기존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야겠는데...'

책의 가치가 페이지로 비교되는 현실이 아쉽긴 하지만 별 수 있나요? 독자들이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게 물리적인 양이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해서 또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인터넷에 많으니 찾아보시면 될 겁니다. 책에 대한 소개는 서지정보를 보시면 되구요^^

 

확실한 것 하나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책 표지를 갖고 출판사는 저자와 갈등 빚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논리적으로 밀리면 상당히 곤경에 처합니다. 디자인은  상대방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논리가 있어야 상대방이 그나마 수긍합니다. 즉 상대가 컨셉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컨셉에 맞춰서 디자인했다는 것은 납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느 정도 합의점이 도출됩니다. 제가 표지 의뢰시 이 책이 유용할 거라고 생각한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마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동안 저자들과의 갈등을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는 디자이너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뢰할때 우리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해야 원하는 디자인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디자인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보면 좋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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