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에서 노조 설립 시도를 하는데 또 방해 공작이 들어갔다는 소식입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병철 회장의 유지를 떠받드는 이건희 회장의 효심이 새삼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이건희 회장이 주장하는 게 혼자서 1만 명을 먹여 살릴 천재급 인재를 확보한다는 건데...제가 볼 때는 앞 뒤가 안맞는 얘기라고 봅니다.
이건희 회장이 바라는 천재라는 게 능력은 탁월하면서도 돈만 많이 받으면 어지간한 불만은 접고 들어가는 고분고분한 인재를 말하는 것 같은데, 진짜 천재라면 세상의 모든 속박을 못견뎌하는 괴짜들인데 남들 다 하는 노조도 못하게 하는 회사에 1만 명을 먹여 살릴 진짜 천재가 과연 들어가려고 할지, 또 들어가서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이건희 씨가 바라는 천재형 인간이 아마 애플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데, 스티브 잡스는 청년 시절 아타리에서 근무하다가 말고 갑자기 인도로 명상 여행을 떠날 정도로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는 성향에다가, 성격 자체가 남의 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들을 생각이 없는 독불 장군에 이건희 회장의 할아버지가 와도 눈 하나 깜짝 안할 반항적 인간이지요. 이건희 회장의 도량이라면 직원으로 받아들이기 곤란한 인재가 아닐까요? 그런 캐릭터의 인간이니까 애플 같은 조직 문화를 가진 회사를 만들고 아이폰 같은 혁신 제품이 나오는 것이지, 윗사람 눈치나 보는 고분고분한 수재형 인간들을 모아 놓는다고 1만 명을 먹여살릴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과연 나오겠냐 이 말씀입니다.
왕년에 러시아가 근대화할 때 농노 해방을 한 이유가 계몽군주가 인도주의적 깨달음을 얻어서 자비심에서 그런 게 아니라 서유럽과 경쟁할 수 있는 자본주의로 가려고 하니까 어리숙한 농노들 데리고는 자본주의 못하겠으니까 농노 해방시키고, 중간계급을 만들려니까 학생들 교육시키고 한 것이고, 교육을 받아 머리가 깨이다 보니까 귀족계급이 착취하는 게 보이고 그러다 보니까 혁명하겠다고 황제를 암살하려는 테러리스트도 나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농노 시절로 돌아가면 국가 경쟁력이 약해져서 서유럽에 잡아 먹히니까 혁명세력이 나오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대학 교육을 끌고 가야 했던 것이고...
이처럼 세상은 대립되는 요소들이 다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원하는 독창적인 천재일수록 이건희 회장이 원하는 고분고분한 인간형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독창적이면서 고분고분한 사람은 없는 것이죠. 반항적이지 않은 천재는 천재가 아니고 반항적이지 않으므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머리는 좋은데 윗사람 시키는 일만 고분고분하게 수행하는 그렇고 그런 인재들만 가지고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농노들 데리고는 서유럽과 근대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본 러시아 황제들만도 못한 판단력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