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해라는 벽을 세움으로써 어제와 다름 없는 내일을 순결한 '처음'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스타트선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요.
흥, 이런 걸 가리켜서 중국의 대문호는 정신승리라고 했지요.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한 살을 더 먹게 되었다니, 소년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호회 게시판에서 닉네임을 바꾸고 뉴비로 새롭게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달력이 바뀌었다고 백수가 취직하고 우즈베키스탄과 합병하는 신세상이 열릴 리가 없잖아요.
소년은 동생에게 투덜거렸습니다.
"미디어가 우리를 기만하고 있어. 어떻게 양력 1월 1일부터 호랑이해라는 거지? 역산법에 의하면 경인년은 입춘일인 2월 4일부터잖아. 경인년 백호띠에 맞춰 출산하겠다고 1월 1일 카운트다운 세셨던 어머님들, 모두 속으신 겁니다! 1월 1일에 태어난 아이가 경인년 백금박 입힌 콘푸로스트 먹은 호랑이의 정기를 받은 줄 아시죠? 실은 지긋지긋한 노동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소, 그것도 끝물이었다고요." (관련기사)
"호돌이 팔팔 피우던 시절부터 제기되었던 식상한 지적인데? 어쨌거나 난 올해가 금의 기운이 강하다기까 좋기만 하다."
"이 깐돌이 같은 지지배야. 너도 대한민국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그분처럼 21세기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중세를 걷는 미신쟁이였구나?"
"그게 아니라... 올해 쇠기운이 강하다니까 이제 오빠도 철 좀 들까 싶어서..."
"..."
그렇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요. 0과 1처럼 세상은 거짓과 진실의 조화로 구성되었다고 외쳐 봐야 매트릭스 철학 에세이 읽고 호들갑 떠는 대딩 신입생 취급만 받지요.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지만, 사실 제야의 종소리도 12시 정각에 울려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안보 문제라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빼앗기고 도쿄의 기준시를 따르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소년은 입춘도 지나고 음력설도 지난 이상 백호랑이의 해가 밝았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와 타협함으로써 어른에 한 발 더 다가갔음에 뿌듯해 했습니다.
"오빠, 근데 올해가 왜 백호랑이해야?"
"2010년 경인년에서 경(庚)은 금(金) 기운이고 금은 오행 원리상 백색을 가리키거든. 인(寅), 즉 호랑이와 날붙이는 그 강한 이미지 때문에 무(武)라는 기호 안에 수렴되고. 그래서 인년 인월(정월) 첫 인일 인시에 단련한 사인검(四寅劍)이 벽사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잖아. 사주명리학에서 백호살은 호식팔자라고 해서 지금의 야동만큼이나 무서운 호환과 맞닥뜨리는 등의 피를 보는 변을 뜻해. 현대적으로는 송사에 얽혀 법원을 들락거리거나 자동차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국가적으로도 경인년에는 1890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거든. 그런데도 백호랑이 해가 좋다고 하는 까닭은 겨레의 의식 기저에 흐르는 백호의 상서로운 이미지 때문이야. 또 법원을 들락거린다는 게 판검사를 뜻할 수도 있는 거고, 피를 본다는 것도 범띠 최다니엘처럼 수술을 많이 집도해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니까.”
"이야, 오빠 꼭 비호 같아. 학교 다녔을 때 혼자서 도시락 좀 먹었겠는데?"
"호랑이는 혼자 생활하는 습성이 있지. 그래서 동물원 맹수들의 명당자리는 무리생활을 하면서 뭉칠 줄 아는 사자들의 몫이라는 보고도 있었고. 호랑이는 번식기를 제외하면 짝을 이루는 법이 없이 고독을 즐기는, 한 마디로 엣찌 있는 짐승이야. 뭐, 그렇다고.”
현재 사자와 호랑이 간의 대결은 이들이 합사한 동물원 사파리에서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투쟁기록을 다룬 공중파 방송이나 스포츠신문 연재물 등을 살펴 보면 사자와 호랑이들이 사파리에 처음 함께 방사되었을 때에는 독립생활과 단독전투에 능했던 호랑이들이 사파리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자들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습성대로 무리를 이루자 상황이 반전됩니다. 사파리의 패권을 놓고 우두머리격인 숫호랑이 한 마리와 숫사자 다수 간의 대결이 벌어졌는데 뒤늦게 싸움에 끼어든 숫호랑이들 역시 사자가 아닌 우두머리 호랑이를 공격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볕 잘 드는 사파리 명당 자리는 거의 숫사자 차지라고 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숫사자가 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우두머리 숫호랑이가 슬쩍 끼어들면 사자들이 못 본 척 묵인하는 것입니다. 가끔 숫호랑이가 숫사자들 전부를 몰아내고 차지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삼일을 못 넘기고 쫓겨났다고 합니다.
단, 호랑이 중에서도 백호는 무리를 지을 줄 안다고 합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도태되기 쉬운 인자이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껴 뭉치는 것일까요.
"이런 동영상은 어디서 찾아보는 거냐. 저열한 인간의 호기심 때문에 사자와 호랑이는 영문도 모른 채 잡혀 와 저렇게 피를 흘리면서 싸우는구나. 인간들은 정말 잔인해."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소년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한마 유지로를 빼고 최강의 맹수는 무엇일까, 이 화두는 미제 원쑤가 달나라에 성조기 꽂으며 달토끼가 없음을 알려 뭇소년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긴 이후, 과학이라는 이름의 신화가 융단폭격한 폐허 속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로망이었습니다.
그외 남은 남자의 로망들
★ 굽네치킨을 주문하고 소녀시대 브로마이드를 기다릴 때 ★ 직장에서 생각이 없는 블로그에 접속할 때 ★ 바르샤 vs. 레알 마드리드 ★ 노래방에서 혼자 쉬즈곤을 부를 때 ★ 고자되기 vs. 십억 사이에서 갈등할 때 등등
호랑이와 사자는 각각의 서식 지역에서 공존하는 인간들에게 맹수의 상징으로 인식되며 그 범위는 겹치지 않습니다. 자연적으로는 만날 일이 거의 없지요.
호랑이는 8개 아종으로 나뉘어 북으로는 시베리아 남동부, 남으로는 인도네시아까지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짝짓기 기간 외에는 단독생활을 합니다. 새끼는 어미의 보호를 받다가 생후 2년 정도 되면 독립을 하며, 독립한 후에는 자신의 영역권에 들어선 호랑이는 어미라고 할지라도 송곳니를 드러내는 공격성을 보입니다. 물을 좋아해 수영으로 수십 킬로미터를 헤임쳐 가기도 하고요. 한 마리당 세력권은 작게는 10㎢부터 많게는 1만500㎢에 이른다고 하네요.
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지대에서 분포되어 있으며 15마리 정도로 이루어진 무리 생활을 합니다. 이들의 세력권은 20∼400㎢ 정도이며 사냥은 주로 암컷이 하고, 수컷은 외적으로부터 무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새끼가 성장하면 암컷은 무리에 남지만 수컷은 무리를 떠나 새로운 가문을 일으키거나 아비로부터 반란을 일으켜야 합니다.
환경의 차이 때문인지 호랑이는 영하 30도의 추위에서도 활동할 수 있으며 사자는 봄버 자켓 같은 갈기를 두르고도 더위에 무척 강하다고 합니다. 단거리 달리기는 시속 64km인 사자가 45km로 달리는 호랑이보다 빠르지만 오래달리기나 높이&넓이뛰기는 호랑이가 앞선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원에서 마주치면 사자가 유리하고 산림에서 마주치면 호랑이가 유리할 것이라고들 하지요. 또 뒷다리의 힘이 강하고 지구력이 있는 호랑이가 더 강하다는 의견도 있고 거대한 머리와 상체를 지닌 숫사자가 싸움에 보다 더 적합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비슷한 체격이라는 전제 하에 몸의 길이는 호랑이가 더 길지만 어깨 높이는 사자가 더 높다고도 하다는 출처 불명의 자료를 근거로 한 인터넷 현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통일이 안 되고 있었습니다.
자료를 뒤적이다가 지친 소년은 여느 게으른 소년이 그렇듯 편하게 답을 얻고자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지성, 지식즐에게 물었습니다.
"잉여님들, 호랑이랑 사자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염."
답글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소년은 신이 났습니다.
"청와대 가서 쥐 잡는 놈이 이깁니다"
"하지만 그리즐리가 나온다면 어떨까요?"
"6학년 일짱인 내가 이긴다. 체격과 완력, 리치에서 불리하지만 초반러시를 회피동작으로 흘린 다음 원투로우 더치콤보로 기를 꺾고 바로 하단태클 들어가서 암바를 잡으면 승산이 있다."
"팬들에게도 가차 없는 싸대기를 날릴 줄 아는 나쁜 B형 남자 우리 오빠들이 이겨요!"
"나는 이름도 모르고 고향도 없다. 나는 여자라는 악마에게 영혼을 물어뜯기며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 온 예술교도다"
소년은 알바에게 점령당한 네이버에 절망했습니다. 정말 미래는 네이트의 시대인 걸까요.
기가 죽은 소년은 동생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당연히 호랑이가 이기지. 일단 인상부터가 다르잖아. 호랑이 마빡에 욕 써 있는 것 안 보여?"
'족'이라고 새겨져 있네요. 오지호가 그렇듯이 미남만이 마빡에 뭔가를 새길 수 있는 법입니다
"싸움을 인상 가지고 하냐? 사자는 평생이 투쟁의 연속이라니까 아무래도 맞짱 경험이 풍부하지 않을까."
"달리 생각하면 독립생활을 영위하는 호랑이가 보다 더 투쟁적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인간들의 스포츠에서도 체중으로 체급을 분류한 것은 덩치가 기량으로 넘을 수 없는 결정적인 승부 요소이기 때문이잖아. 아무르 호랑이는 250Kg~300Kg 정도의 체중으로 아프리카 사자들보다 100kg 정도 무겁거든." "하지만 방어력도 무시할 수 없잖아. 숫사자의 풍부한 갈기는 급소인 목덜미를 보호하는 털갑옷이니까. 풀셋 채운 전경하고 각목 하나 든 아저씨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는 그동안 광화문에서 이미 검증이 끝나지 않았냐?"
"원래 비슷한 힘들이 부딪치면 머리 좋은 놈이 이기는 법이잖아.호랑이가 머리가 좋다는 결과가 이렇게 나왔네."
"이게 무슨 모더니티한 주장이냐. 그럼 두개골 용적이 적은 여성은 남성보다 머리가 나쁘다는 거네? 요즘 시험 수석은 죄다 여성이 차지하더만." "글쎄, 디아블로3와 월드컵, 아시안게임 트라이앵글 때문에 남성들이 올해 시험 죽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으로 봐선 머리보단 다른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에서의 검투 기록에 따르면 호랑이와 사자를 붙이면 호랑이가 이겼다고 나와. 게다가 당시 사자는 사자 중에서 가장 크다는 바바리안 종(1930년대에 멸종)이었음에도 카스피 범이 7대 3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겼다고 하네."
"여기저기서 떠돌아다니는 유명한 얘기지만 출처가 불분명한 카더라 통신이잖아. 그리고 로마 사료를 뒤져 보면 검투사들은 사자와 대결하는 것이 더 용맹한 행위로 여겼다더구나. 그런 것 말고 내가 최근의 기록을 보여줄게. 2008년 12월, 호랑이가 사자에게 물려 죽은 사건이 일어났어."
"그건 아니지. 일단 호랑이는 암컷이고 사자는 수컷이잖아. 그리고 호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고 그라운드 역시 사자 우리였으니 많이 불리한 거지. 나야말로 정확한 출처를 보여줄게. 20년 경력의 에버랜드 정상조 사육사님께서는 일대일 대결에선 호랑이가 이긴다고 하시네."
호랑이와 사자 간의 대결을 다룬 근래의 외국 기록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1865년 영국 버밍햄의 동물원에서는 암컷 호랑이와 수컷 사자가 싸웠는데 호랑이가 사자를 순식간에 물어 죽였다고 합니다.
○ 194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서커스단에서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이 일어나 호랑이가 죽었다고 합니다.
○ 1949년 , 호주 Perth 동물원에서는 네로라는 숫사자가 팀이라는 숫호랑이를 3초만에 물어 죽였다고 합니다. 두 종을 가로 막은 우리의 칸막이가 열리면서 호기심 많은 팀은 사자 우리로 마실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하네요.
○ 1951년, 미국 디트로이트의 한 서커스단에서 호랑이와 사자 간의 대결이 벌어졌는데 사자가 이겼다고 합니다. ○ 1951년, 인도의 마드라스 동물원에서 우리 대청소 중에 호랑이와 사자 간의 시비가 붙어서 호랑이가 죽었다고 합니다.
○ 1957년, 러시아에서는 호랑이와 사자 간의 싸움을 분석하려는 이색적인 시도가 있었는데 호랑이가 쉽게 이겼다고 합니다.
(창의력 대장인 양키 꼬맹이의 꿈나무 소설일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랜드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앞발 하나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사자에 비해 뒷다리의 탄력을 이용해 치고 빠질 줄 아는 호랑이가 싸움에서 훨씬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물론 한 차례의 공방 후에 서로 밀착되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일어난 경우는 아니지만 맹수들의 싸움은 대부분 그 정도에서 기선제압 당해 한쪽이 물러나는 경우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또한 1960년대 미국에서 호랑이와 사자 간의 대결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에 일생을 바친 한 기인의 증언에 따르면 숫사자의 갈기는 훌륭한 방어수단이 되기에 호랑이가 결정적인 순간에서도 감히 정면에서 목을 물지는 못했지만 호랑이는 레슬링의 그래플링 기술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으로 사자의 후방을 캐치하는 데 성공, 대부분의 경우 호랑이가 백마운트 포지션을 점령하면서 동물원 사람들이 뜯어말리는 것으로 끝났다고 합니다.(아놔, 이게 무슨 <흐르는 별 실버>스러운 전개인가요.)
한편 서커스 외길 인생 40년 경력의 유명한 맹수 조련가 클레디 베티는 이렇게 말합니다."숫호랑이가 숫사자를 이기는 예도 없진 않지만 매우 드물다. 오히려 나는 호랑이가 확실히 유리한 경우에도 싸움에서는 진 것을 기억한다. 사자는 호랑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덧붙여 그는 일반적으로 사자가 환경적응력이 호랑이보다 더 뛰어났으며 맹수 간의 만남이나 돌발상황에서 숫사자가 숫호랑이보다 더 냉정했다고 합니다.
"잡지 기사를 보니까 영화 <글라디에이터>의 호랑이 싸움 장면은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이었다고 하는데? 호랑이가 생각 만큼 호전적인 짐승은 아니었다고 하더라. 그것도 모르면서 지금 이 논쟁에 뛰어든 것은 아니지?^^"
"호랑이가 무슨 베르세르크라도 되나요. 아무렴 조선된장이 범을 응원해야지 어디서 사자 타령을 하면서 된장질인가요.^^"
이렇게 새해 첫 날부터 남매의 혈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그 말은 우리 사자님을 무시하는 거 같은데?"
"시베리아 호랑이가 덩치가 크니까 john만한 놈은 무시해도 된다능.^^ 베르그만의 법칙은 위대하다능. 싸움도 추운 나라에서 온 슬라브 민족들이 잘하는 거 모르냐능? 기초적인 상식도 모르는 것을 보니 초등학교에서 뭘 배웠을지 눈에 훤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뿐이냐능?"
"글쎄요. 너야말로 정말 무뇌하시군요. 그런 논리라면 무에타이는 태국에서 나왔고 오키나와 공수도 더운 지방인 류구에서 발전한 거지."
"사람하고 짐승하고 같나염? 이 바보야."
"지큼 은근슬쩍 욕항고야? 내가 무적의 왕자 라이온 주제가 함 불러 볼까? '날쌔고 용감한 타이거, 화살처럼 빠른 치타, 꾀돌이 쟈칼과 힘센 팬더, 우리는 모두가 어린이 친구, 무적의 왕자 라이언의 부하다!' 이 말을 무시하는 건 공중파 방송의 공신력을 부정하는 거다."
"아놔, 지금 공신력 카드 뺀 거임? 코갤에서 마주치면 아이피 바로 깔 내공 가지고 오빠니까 어떻게 키보드 디미는데 아오. 사자가 이기면 88올림픽 마스코트는 사돌이가 되어야지. 2009 한국시리즈 우승도 타이거즈거등? 호랑이가 얼마나 세면 담배 막 피워도 전혀 싸우는 데 지장이 없어."
"콘푸로스트 도핑이나 빠는 주제에. 범과 밤이 비슷한 발음인 건 과연 우연일까? 단군신화에서 범이 시험을 통과 못하는 것과 전혀 연관이 없을까?"
"그게 무신 환빠시런 말씀인가요. 오빠가 아무리 떠들어도 한국인한테는 호랑이다. 태호 롱테일도 호랑이고 호랭총각도 호랑인데 사자가 주인공인 우리 만화는? 없잖어. 날쌔고 용감한 타이거를 부하로 둔 라이언 왕자는 전형적인 양키 만화지, 이 카라멜 마끼아또에 까브로나라를 튀겨 먹을 사대주의자야."
"뭐라고? 나의 라이언님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어. 국수주의자 따위에게 사자님이 모욕당한 게 분해서 난 손이 다 떨리고 눈물이 막 나고 그러는구나."
인간이 사자와 호랑이 간의 대결을 조장한 다음 그 결과를 기록한 사료들을 살펴 보면 재밌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간들은 맹수의 이종격투 전에 이미 결론을 내린 듯한 혐의가 있다는 점입니다.
고대 로마를 제외한 서양 쪽, 특히 근대 유럽 쪽의 사료를 살펴 보면 사자의 승리로 끝나는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간혹 호랑이가 이기는 경우도 있지만 이때의 호랑이는 매우 굶주려 있었거나 야생에서 바로 잡아 와 신경이 곤두서 있고 보다 더 사나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비열한 승리를 거둔 것이죠. 사자는 의젓하고 관용을 아는 킹이고 호랑이는 흉폭하기만 한 침략자, 칸, 또는 술탄으로 비유됩니다.
한편 동남아시아나 중국, 북한 등의 자료를 보면 대부분 호랑이의 승리로 끝납니다. 이쪽의 관점을 보자면 사자는 대개 아둔한 맹수인데 반해 호랑이는 민활하고 근성이 있는 맹수입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인간은 각각의 문화권에서 최강의 맹수로 꼽히는 두 고양이과 맹수들의 대결에서 어떤 상징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 활동하는 최강의 맹수는 해당 지역에서 생활하는 인간 집단의 무력과 자부심의 상징으로 많이 쓰이죠. 그렇기 때문에 호랑이, 또는 사자는 단순히 그들과 함께 살아 온 인간들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골칫거리였다는 현실적인 인식을 초월해 한 집단의 아이돌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는 만날 일이 없는 그들을 굳이 붙여서 이미 마음 속으로 정한 승패를 확인하려고 하지요.
사자 vs 호랑이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대결을 상정한 인간의 문화적 정체성에 따라 달라진다.
"이게 무슨 흐리멍텅한 결론이야."
"동생아, 세상이치가 선명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는 게 아니야. 그렇게 너 아니면 나 식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인류를 제로섬 게임으로 이끄는 것이란다."
"호랑이 대 사자 라는 초딩스러운 주제로 시작했으면서 이 무슨 공익광고 같은 훈훈한 결말인가염."
"호랑이해 특집으로 한 번 써봤는데, 생각해 보니 새해 첫날부터 꼭 이렇게 싸움 붙여놔야겠냐는 후회도 들고... 이말년 같은 새해도 나쁘지 않잖아. 한 번만으로 끝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