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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아, 오버 더 호라이즌
    자유공간 2010. 2. 26. 23:44





    0. 스포츠
    어떤 종목이 정한 법칙에 따라 펼친 자신의 육체 능력과 기량을 수치로 환산하여 승패를 나누는 것을 우리는 스포츠라고 합니다.


    1. 김연아
    오늘 김연아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월드컵도 남의 일처럼 여기고 대한민국 구호를 촌스럽다고 여기는 척 하면서도 몰래몰래 다 봤던 것처럼 오후 1시 20분, 회사 사무실에서 볼륨을 줄이고 김연아 선수의 차례를 기다립니다.

    김연아 선수가 20년동안 기다려 온 스텝을 밟고, 웃고, 뛰어오르고, 회전하고, 호흡을 세고 간격을 잽니다.

    피겨 한 번 본 적도 없으면서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바뀔 때마다 입술이 타고, 어렸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설의 고향>을 봤을 때처럼 등에서 서늘한 전기가 올라옵니다.


    2. 피겨 스케이팅

    피겨 스케이팅은 스포츠입니다. 발레를 감상할 때 기도하는 심정으로 잔혹한 신이 지배하는 짧은 시간을 감내하지는 않으니까요. 경기가 끝나고 손의 땀을 닦으며 새삼, 김연아가 한국의 국기를 왼쪽 가슴에 새긴 스포츠 선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음악이 끝난 후, 그가 환호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피겨 스케이팅은 스포츠입니다.


    3. 스포츠 그 너머
    그러나 김연아의 몸짓에 어떤 잣대를 들이대 점수를 매기고 수준을 가늠한다는 것은 무의미했습니다.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은 스포츠가 아니었고 김연아는 경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4. 다시 김연아

    투박한 초기 MMA라는 원석을  정교한 컷팅이 살아 있는 격투스포츠로 다듬은 선수들을 우리는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오버 더 호라이즌'을 보여 준 이에게는 어떤 수식을 붙여야 할까요.

    마치 콴의 경지에 도달한 콴처럼 그냥 '김연아'라고만 불러야겠죠.

    20세기 말에 태어나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그리고 김연아의 전성기를 직접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너무 달콤한가요. 하지만 내일 아침 보아도, 몇 년 후에 보아도 얼굴 화끈거릴 것 같진 않습니다.
    대단한 걸 대단하다고 하는 게 호들갑은 아니잖아요.





    덧1
    20년의 기다림 끝에 눈물을 흘리는 기분은 어떨까요. 2002년 이탈리아전 골든골 당시 안정환 선수의 심정과 비슷할까요. 그냥 이대로 여기서 죽어도 좋다는 느낌일까요. 스스로를 아직 많이 자랄 여지가 있다고 믿는 미래진행형의 인간이기에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덧2
    2010 동계올림픽 피겨는 전설임을 선언한 김연아의 시간 이후 피겨 스케이팅을 해야 했던 마오 선수를 위로하는 것은, 아마도 그를 무시하는 오만이겠지요.

    덧3
    이래놓고 이제 피겨 스케이팅은 보지 않겠지요. 아마도.

    덧4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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