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e비즈북스 2010.04.14 23:53

2009년 늦여름 어느 날
“표1(앞표지)에 이 컬러 사진, 뜬금없는데?”

“손노리의 게임 <화이트데이>입니다.”

“임팩트가 부족해.”

“의의가 있습니다.”

“파콤222와 촛불집회, 공병우 박사님 등과 나란히 실릴 정도로?”

“한국 패키지 게임 시장의 종말을 선언한 게임입니다.”


그 며칠 전
《대한민국 IT사 100》앞표지의 사진들 중에 <화이트데이>는 제가 ‘편집자’의 권한으로 표지 디자인하신 분께 요청한 것입니다. 사적인 욕심이 개입된 월권이었지요.

사장님께서는 확정된 표지를 확인하시며 예전에 채택된 시안과 다른 연유를 물으셨습니다.

위와 같은 제 답변이 의문을 해소하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사장님께서는 조금 생각하다가 넘어 가셨습니다.

9년 전 저는 <넷게이머즈>의 필자였고, 그때 제가 처음 작성한 기사는 <화이트데이> 리뷰였습니다.


2001년 초여름 합정동
“필자를 지원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제가 게임잡지에서 일한다는 헛소문이 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거짓말이 싫습니다.”

“게임을 좋아하시나요?”

“… 앞으로 좋아하겠습니다.”

성용 편집장님과 면접을 마친 후 <화이트데이>와 <기어즈> 데모 CD를 받았습니다. CD에는 ‘정태룡 기자님께’라고 적혀 있었고, 봉투에는 정태룡 기자님의 원고 콘티로 추정되는 매우 난해한 그림들, 예를 들어 ‘풍래의 프링글스’와 (아마도) 머리가 불타는 사람의 하이킥 등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뭉크의 <절규>와 같은 그림을 바라보자니 푸른 수염 남편의 인커밍 폴더를 엿본  건 아닐까 두려워졌습니다.


저는 그렇게 <게이머즈>의 자매지인 넷게이머즈에 글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게이머즈, 또는 가멜리네
외로운 영혼들이 오덕소덕 모여 세기말 구세주와 권왕을 기다리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게이머즈, 또는 가멜리네는 게임 정보지의 범위를 넘어 한국 서브컬처의 교과서 중에 하나였습니다.

게임라인은 게임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발매일을 잔득하니 기다리는 아날로그적인 재미를 주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을 지배한 정서 중 일부는 가멜리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기도...



저는 그런 게이머즈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싫어한다는 거짓말까지 늘어놓으며 필자가 되었지만 막상 게임CD를 받고 나니 난감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저는 게임의 컨텍스트는커녕 텍스트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게임 초보였습니다. 게임불감증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화이트데이>는 처음으로 접하는 어드벤처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4페이지짜리 꼭지 하나를 쓰기 위해 저는 꽤 오랫동안 번민했습니다. 뭐든지 처음은 각별하니까요.

제게 ‘연예인의 과거 사진’과 같은 존재인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너, 그거 아니. 으슥한 곳을 걸을 때면 가끔 뒤통수가 따끔할 때가 있잖아.
뒤를 돌아 봤자 소용없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거든.
그럴 때는 말야. 눈을 들어서 위를 쳐다 봐.
그럼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거야.”


화이트데이

<화이트데이>는 개발자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고등학교를 무단으로 침입하는 무리까지 할 정도로 열정과 꿈으로 뭉쳐진 게임입니다. 

자체 엔진도 개발하고 '국보'이신 황병기 교수님의 '미궁'을 사운드트랙으로 포함시키는 등 손노리가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예사롭지 않았던 일러스트에서부터 드러났었지요. 이런 손노리의 노력에 게임비평가들도 호의적인 평가로 화답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판매 실적은 처참했습니다.

이원술 사장님이 정품 구매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을 정도로요. 많은 이들이 실패의 원인을 불법 공유 때문으로 생각한 사장님의 생각에 동조했지요.

그러면서 <화이트데이>는 많이 플레이되었지만 적게 팔린 '저주받은 걸작'으로 서서히 각인되었고 국내 굴지의 게임회사는 패키지게임 시장의 현실에 절망하며 온라인으로 돌아섭니다.


2.0 그리고 공유
인터넷의 핵심 개념은 연대와 공유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연대가 이루어져 집단지성이 발현되었고 소수가 독점하여 권력화되었던 정보의 차별 없는 배포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공유란 개념은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예를 들어 어떤 분들께서 피아를 구분 지을 때마다 꺼내는 ‘빨갱이’라는 표현처럼 남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량소비자
불법 복제는 ‘불법’이란 이름 자체에 나와 있다시피 집단을 정의하고 유지하는 준거에서 이탈한 것이며,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행위입니다.

저작권과 개방성은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 보호를 넘어 시장의 근간을 형성하는 유통질서에 대한 문제이며, 창작자들의 생산물에 대한 합리적인 소비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시장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 됩니다.

거기서 사이버 공산주의나 쾌락의 평등주의를 정론으로 삼는 것은 논의를 벗어나는 물타기가 될 뿐이지요.

순환논증의 오류이지만, 정론은 그것이 어떤 도전도 불허하는 당위를 바탕으로 하는 정론이기 때문에 정론입니다. 생산자들은 피땀 흘려 제조한 상품을 통해 이윤 창출을 꾀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자존을 꾀합니다. 이러한 생상품을 대가를 치르지 않고 '사적인 것'으로 강탈하는 것은 환경 파괴이고 판매자에 대한 폭력입니다.

불법 공유가 보편화되어 누구나 당나귀 타고 푸른 들을 뛰어다녔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이 이를 덮을지언정, 최소한 그것을 누리면서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질 수 있는 한계선은 존재해야 합니다. 이런 게 당위에 기초한 정론일 겁니다.

우리는 불량생산자에게는 민감하면서 불량소비자에게는 대체적으로 관대합니다. 우리는 구매자인 동시에 어딘가에서는 판매자이기도 한데 말이지요. 그걸 자주 깜빡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2001년 여름 어느 날
그러나 <화이트데이>의 실패 원인이 과연 불법 공유 때문이었을까요.

당시 저의 기사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습니다.

"어드벤처에 대한 거부감에 가까운 국내 게임 유저들의 반응은 특정 장르의 편중에 기여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손노리는 자칫 실패로 끝날 수도 있는 프로젝트에 오랜 시간과 많은 자본을 투자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도박이었다. 부족함이 많은 체험판이었지만 그 모두를 애교로 눈감아 줄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재미가 있었다. (중략) 단순히 끔찍한 장면을 들이대며 공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의 심리를 쥐고 흔드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몇 차례에 걸친 발매 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략)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이런 게임은 밤에 불 끄고 혼자 하는 것'이라는 꼬드김에 넘어가 후유증에 시달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때 저는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였음에도 손노리의 도전을 몹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 봤습니다. ‘풍래의 프링글스’ 를 봤을 때처럼요.


2009년 초여름 어느 날
《대한민국 IT사 100》의 초고를 교정보던 중 다음과 같은 문장 앞에서 장고했습니다.

“멀티플레이를 위해 정품 CD키가 필요한 스타크래프트는 450만 장이 팔렸지만 싱글플레이용인 <화이트데이>는 초기 3000장 판매에 패치파일 다운로드는 15만 건이라는 황당한 기록을 남긴다.”

<화이트데이>는 ‘비운의 게임’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국내의 게이머즈들은 <화이트데이>를 떠올릴 때마다 일종의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낍니다. 그 안타까움은 종종 비극을 더욱 극적으로 장식하기 위한 과장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손노리 홈페이지에 개발자께서 하신 "판매량은 1만 장 정도인데 패치 다운로드는 10만 건에 달한다" 라는 한탄은, 한국 패키지 게임 시장의 몰락에 대한 비극적이면서 선명한 상징이 되기 때문에 때로는 살이 붙고 때론 뼈가 발라져 퍼졌습니다.

그래서 공신력을 인정받는 매체들조차 <화이트데이>의 판매량과 패치파일 다운로드 기록을 제각각으로 발표합니다. 정품 판매는 만 장에서 2000장까지 오락가락하고 내려받기는 그 폭이 더욱 커집니다.

이렇게, 모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가 그렇듯이 <화이트데이> 역시 한국 게이머들에게 원죄를 부여한 기표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IT사 100》을 편집하며 앞에 나온 문장을 두고 장고한 까닭은 이 때문입니다.


발매 지연 외에도...
<화이트데이>의 실패를 두고두고 담아두던 어느 날 문득,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포가튼사가>가 10만 장이 넘게 팔린 사실을 떠올리며 <화이트데이> 문제의 핵심이 불법 공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은 독서와 마찬가지로 소비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합니다. 이 점에서 MP3나 영화 파일과는 다르지요. 능동적인 참여이기는 하지만 야동과도 다릅니다!) 인문서를 무료로 배포한다고 해서 얼씨구나 읽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니까요.

게임 역시 마찬가지로 게임의 재미는 장르의 컨텍스트와 룰을 학습한 후에야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게임은 바이트 낭비일 뿐이지요. 더욱이 게임은 취향을 심하게 타기도 하고요.

손노리가 실패한 게임, <강철제국>과 <다크사이드 스토리> 등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몇 가지 장르만 팔렸습니다.


어쩌면 예정된 실패

호러 어드벤처는 비주류 장르였고, 불법 복제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고 하더라도 파이의 양은 너무 작았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갑툭튀한 것 같지만 그 성공의 이면에는 전길남 박사에 의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통된 인터넷, IMF로 인한 삶의 패러다임 자체의 전환, <C&C> 등의 개척자 역할을 한 게임들 등 다양한 상황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베이스가 있기에 가능했지요.

그에 반해 <화이트데이>라는 호러 어드벤처 게임은 채 형성되지 못한 시장에서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명작'이었습니다.


만약에

와레즈가 없었다면 더 많이 팔렸을 것입니다.  
또한 앞에서 호들갑스럽게 떠든 것처럼 피해자의 오류가 곧 가해자의 정당화로 결과하지도 않고요.
무엇보다 패키지 게임의 종말 원인 중 하나가 불법 공유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그러나 <화이트데이>의 실패 원인은 우리들의 미성숙함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블랙데이에 화이트데이를 돌아보다
고민 끝에 저는《대한민국 IT사 100》에

“멀티플레이를 위해 정품 CD키가 필요한 스타크래프트는 450만 장이 팔렸지만 싱글플레이용인 <화이트데이>는 초기 3000장 판매에 패치파일 다운로드는 15만 건이라는 황당한 기록을 남긴다.”라는 날원고 문장을 그대로 살렸고,


표지에 작은 <화이트데이> 그림이 삽입된 책은 서점에 깔렸습니다.
그렇게 제 작은 역사와 기록이 김중태 선생님의 책에 무단 삽입되었습니다.


어느새
이렇게 얘기는 하지만, 역시 아쉽습니다.

<화이트데이>가 킬러이기를, 개척자이기를 저는 간절히 바랐습니다.
손노리가 호러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한국에 '도입'하는 데 성공하기를 기원했습니다.
고작 리뷰 기사를 작성했을 뿐인데도, <화이트데이>를 생각하면 가끔 자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 많던
글을 쓰면서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으려 제 작은 기억과 역사를 찾아 방 구석 여기저기를 뒤졌습니다만,

책장 구석에 쌓였던 그 많던 <게이머즈> 들은, <지구촌영상음악>들은, <키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몇 년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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