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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이 책을 볼까? 타깃팅에 대한 어려움
    e비즈북스이야기/읽은책들 2010. 5. 7. 22:39

    원고검토서를 쓸 때마다

    원고검토서를 쓸 때마다, 어느 부분이 그렇지 않겠냐만은 특히 타깃팅 부분에서 참 막막해집니다. 출판은 산업이기 이전에 문화이며 당대의 목소리를 내는 의무라는 '출판의 의의' 쪽으로 도피해보기도 하지만 읽히지 않는 책의 의의를 찾는 것은 한쪽 날개로 시도하는 비행과 같습니다.

    시장성 운운을 떠나 순수하게 독자들에게 다가간다는 '예의'의 측면에서도 핵심독자를 설정하는 작업은 편집자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지요.

    하지만 정말 모르겠는걸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으로 독자라는 안개의 바다 속을 허우적대다보면 자연스럽게 손은 마케팅 관련 도서 쪽으로 가게 됩니다. 와인을 마시면 눈 앞의 여인이 학춤을 추는 환상이 보이는 세상인데 책 속에 길 정도는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면서...

    타케팅 도서를 기획하신 분들은 출판 편집자도 독자층에 넣었을까요? 넣었겠지요?




    독자를 겨눠라

    현대 마케팅에서 타깃팅은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공식이 되었습니다. 보통은 연령, 성별, 학력, 직업, 지역, 취미 등등으로 분류해 "대구 출신의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남성인 중소기업 임원으로 딸만 둘이고 취미는 바둑"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요.

    그러나 특정 지역 출신의 중장년 남성이며 경제 계급은 어떤 수준이라고 해도 반드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신문의 노조를 지지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어떻게 물처럼 흐르는 인간을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고 포커스 그룹을 인터뷰를 통해 니즈를 파악한다고 하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하지요.

    아마 독자 설정에 대한 답을 제시해주는 출판 마케터가 계시다면 매년 갱신되는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에 대한 구세주가 될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내 책을 볼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줄 선물을 사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선물을 받을 사람의 취향, 생활방식 등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면 선물을 고르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가?

                                                                                    - 《소비의 심리학》 중에서.






    바야흐로 타깃팅 전성 시대이지만, 막상 작성한 도서 기획서로 회의할 때 가장 많이 지적받는 한편, 문제를 제기하는 측에서도 마땅한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하는 부분이 바로 타깃팅입니다.

    원고를 검토하거나, 또는 도서 기획을 할 때에는 해당 원고나 기획의 독자 성향과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출간 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기획서를 작성해보신 분들께서는 대부분 공감하실 겁니다. 기획서의 상당수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컨셉 잡기에 주력하다가 막상 독자 분석에서는 힘이 떨어집니다.

    독자 분석에 초점을 맞춘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서점을 해킹해 유사도서를 구매한 고객들의 신상 정보를 하나하나 열람하지 않는 이상에야 도대체 어디에서 사는 어떤 분들이 언제 도서를 왜 구입하시는지 또렷하게 잡히지가 않지요.

    편집자들 스스로도 내가 편집했지만 도대체 이 책을 누가 사보는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 라며 의아해(?)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떽! 그러면 못쓴다능.) 



    독자 설정은 몽타주를 그리듯 구체적으로

    편집자들이 기획안을 들고 왔을 때 타깃 독자를 물어보면 추상적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편집자: 타깃독자는 20~30대 직장인입니다.
    사  장: 20~30대 전부가 타깃인가요?
    편집자: 아닙니다. 금융권에 있는 직장인이 중심이고 일반 대기업이 확산독자입니다.
    사  장: 그렇게 해서는 마케팅을 할 수가 없어요. 금융권과 대기업 전체에 마케팅을 할 건가요?
    편집자: ...
    사  장: 더 잘게 쪼개 보세요. 금융사가 아니라 은행원, 증권맨 이렇게 쪼개고, 다시 은행원이면 어디 은행 직원인지 쪼개야 합니다. 국민은행에 근무하는 연봉 5000에 입사 5년차 36세 이창업 대리 같이 구체적으로 타깃 독자를 설정해야 실제 독자가 어떤 사람인지 선명하게 그려지죠.
                                                           
                                                           《전략이 있는 쇼핑몰 창업계획서 만들기》에서


    21세기북스 사장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난 그런 말 한 적 없네, 라고 하신다면 대략난감)

    대부분의 기획서에서 타깃팅을 살펴 보면 정량적 분석, 즉 '얼마나', '무엇'에 대해서는 멋지게 제시되어 있지만 정작 중요한 '왜'에 대한 답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핵심 독자를 설정할 때 막연하게 '여행서를 주로 소비하는 20~30대 직장인 여성' 정도의 추상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지요.

    독자를 이렇게 세심하게 그리는 까닭은 기획서를 작성하는 편집자이기 이전에 독자인 '나'의 욕구가 독자들의 욕구와 일치하지 않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독자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 보기 위함입니다. 과학에서 사물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원자 단위로 쪼개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게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일까?

    이창업. 35세.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상경.

    현재 서울시 망원동에 있는 원룸에 거주하며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중소 IT업체에서 영업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연봉은 2700만 원에 미혼이다.

    키는 160, 체중은 58이며 취미는 온라인 게임이고 이상형은 아스카짱이다.
    체격이 왜소한데다가 배로만 몰리는 나잇살 때문에 옷태를 맞추기가 힘든 것이 고민이다.

    오타쿠라는명칭을 가장 싫어한다. 남의 평가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이라 은근히 패션에 관심이 많지만 감각이 없고 자신에게 맞는 의류도 구하기 힘들어 적당히 포기하고 다닌다.

    스타일만 개선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돈을 쓸 용의도 있으나 고가의 브랜드 의류를 구입하는 데는 부담을 느낀다.

                                               《전략이 있는 쇼핑몰 창업계획서 만들기》고객 설정 부분에서


    그래서 저희도 위와 같이 독자를 한번 그려 봤습니다. 그런데 이창업 씨가 정말 독자가 맞을까요? 독자 세분화에는 독자군과의 동질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독자들의 공통된 욕구, 교집합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칫 도식적인 틀에 어거지로 끼워 맞추는 우를 범하기 쉽죠.

    그게 조사와 분석이라는 도구 자체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세상에나! 이야기와 역사와 텍스트는 그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수만큼  다양합니다. 그리고 독자들은 변덕쟁이지요. 마치 저처럼요! 욕구라는 감정적인 문제에 조사와 분석이라는 이성적 잣대로 접근해봤자 전제 자체부터 어긋날 뿐이지 않을까요.

    물론 그래도 독자를 알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코끼리 뒷꼬리라도 더욱 더 열심히 만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저런 모호함 때문이니까요.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라? 그냥 내 욕구를 들여다보면 안 될까?

    저는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조언을 믿지 않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직접 독자가 되는 편이 낫지요. 탁자에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야 현장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습니다. 머릿 속의 설계도와 실제 결과물은 층위 자체가 다르니까요.

    《전략이 있는 창업계획서 만들기》와 《마케팅이 있는 사업계획서 만들기》의 원고검토서를 작성할 때 독자 타깃팅을 '인터넷 쇼핑몰 창업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계획서를 준비하며 관련 정보를 수집 중인 40대 초중반의 일반 기업체 퇴직 남성'이라고 작성했고 나름 구체적인 근거를 확보한답시고 베타테스터 분들의 프로필도 정리하고 유난을 떨었습니다만 실제 판매 현황에서 독자 데이터를 살펴 보니 20대 여성분들이 많았습니다.


    거리를 두면 훈수가 가능하지요. 하지만 그 전에 몸을 담근 적이 없다는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공상한 저는 실제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뛰어 다녔다고 해도, 솔직히 자신은 없네요.

    그래서 요즘엔 그냥 차라리 속 편하게, 독자를 그릴 때에는 스스로를 독자로 설정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 중입니다. 이건 분석이 아니라 체험과 공감의 영역이니까요. 제가 평소 갈증을 느꼈던 부분을 짚어보면 독자라는 관념적인 대상과 이심전심할 것만 같거든요.

    하지만 여기서 얘기는 다시 위의 문제 제기로 돌아가고...

    독자를 그린다는 것,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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