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부의 액세서리 쇼핑몰 운영기 (1)
'홀아비 3년이면 이가 서 말이고, 과부 3년이면 구슬이 서 말'이란 말이 있다. 남자들은 앞만 보고 달리고 여자들은 주위를 보면 걷는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집을 통째로 말아 먹었다는 말은 거의 듣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주부는 행여 쪽박을 찰 수도 있는 일에는 올인을 할 수가 없다. 나로 인해 내 아이가 더 힘들게 살고, 우리 신랑이 더 뼈 빠지게 일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모험을 하면 그것을 극복했을 경우 큰 보상이 생긴다는 것을 알지만, 잘못하면 이가 서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큰 모험을 하진 않지만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듯 주위를 살피며 꾸준히 걷는다.
책을 읽어 달라는 핑계로 엄마의 작업실에 자주 들어오는 호기심 많은 푸름이
아주 오래 전 20대 초반이었던 때에 이모와 함께 미국 서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서부하면 빼놓을 수 없는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며칠을 머물렀는데, 그 곳에서 난생 처음 슬릿머신을 보게 되었다. 갬블러들을 위한 도시라고 불릴 만큼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들과 시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모는 게임을 해 보라며 내게 20불을 주셨고 자신도 동전을 바꿔 게임을 시작하셨다. 슬럿 머신 앞에 앉아 동전도 넣어 보고 조심스레 당겨도 보고 이것저것 시험을 해 보고 있는데, 바로 건너편 머신에서 잭 팟이 터졌다. 앰뷸런스처럼 불이 번쩍이며 동전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와 바닥 카펫에까지 쌓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곧바로 경호원 몇 명이 달려와 엄호하는 가운데 잭 팟의 주인공은 돈을 챙겨 떠났고,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돈을 들이부으며 게임에 더욱 몰두했다. 재미삼아 1시간만 하자던 이모 역시 몇 시간째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슬럿 머신이 동전을 그냥 먹어 버리기만 하는 것 같아서 재미도 없고 돈도 아까워 그저 동전 통만 들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거나 사람들이 슬럿 머신에서 대충 쓸어가는 바람에 그대로 남아 있는 동전들을 발견했다. 심심한 마음에 하나두 개씩 줍다 보니 그런 동전들은 생각보다 꽤 많았다. 두어 시간이 더 지난 후 돈이 다 떨어졌는지 이모가 나를 불렀다.
“미란아 이제 그만 가자.”
그때 내게는 70불이 넘는 동전들이 있었다. 물론 게임을 해서 얻은 돈이 아닌 순전히 슬럿 머신에서 주은 돈들이었다(주은 돈은 무조건 그 자리에서 다 써야 한다는 이모의 꼬임에 게임 밑천으로 다 빼앗겨 버리긴 했지만).
나는 새가슴이라 혹시라도 손해가 날 것 같은 큰일은 벌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주식투자를 해 본 적도 없고, 로또나 복권은 사 본 적도 없다. 남들은 인생 ‘한방’이라는데 아직껏 한방이란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고리타분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일이든 ‘땀’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선택하신 여러분은 ‘액세서리 쇼핑몰로 부자 되는 법’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이 책은 ‘액세서리 쇼핑몰로 먹고 사는 법’이다. 평범하지만 위험하지 않게 내 일을 시작하는 방법 정도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와 같은 주부들에게는 쇼핑몰 창업 자체가 큰 모험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100억 누구누구의 쇼핑몰은 머릿속에서 지우길 바란다. 액세서리 쇼핑몰 운영은 남들이 흘린 동전을 줍는 것만큼이나 구질구질하고 감질 난다.
나는 식당에 들어가거나 커피전문점, 마트를 가도 ‘몇 그릇, 혹은 몇 잔을 팔면 얼마가 남고’ 하는 기본적인 손익계산을 하고 있다(완전 직업병이다). 누가 장사꾼 아니랄까 봐 보는 족족 머릿속에서 저절로 계산기가 돌아간다. 그리고 결론을 낸다. ‘그래도 내가 좀 낫다.’
매딘차이나(Made in China), 서당개 출신. 친구들이 나를 이르는 별명이다. 나는 덜렁거리고 꼼꼼하지 못하고 성격이 급하지만, 손이 빠르고 특징을 빨리 파악하며 금방 배운다. 손은 빠른데 꼼꼼하지 못하면, 배우는 건 빠르지만 긴 시간을 들여 진득하게 깨우치는 일은 할 수가 없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뭐든 빨리 배우고 또 흥미를 잃으면 당장 때려치우곤 했다. 친구들은 내가 이 일을 이렇게 오래 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몇 년 만에 만난 동창들 모임에서 친구들은 “아직도 쇼핑몰인가 뭔가. 그거 하냐?”고 물었다. 그러나 헤어질 때쯤 되니 너도나도 명함 내밀며 연락 좀 하고 지내잔다. 번듯한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좀 낫다.’
번듯한 직장 다니는 것보다 내가 낫다는 것은 따뜻한 집안에서 살림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마살이 도져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이내 마음을 접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게끔 만드는 매력적인 조건임에 틀림없다.
출처_ <서랍장 속의 주얼리 가게>
강미란 지음, e비즈북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