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철폐가 가능할까?자유공간 2012. 4. 4. 15:43
<결혼불능세대>에 대한 반응을 체크하고 있는데 예상대로 비정규직 철폐에 반대하는 입장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군요.
저도 이 책의 보도자료를 쓸때 꼽사리를 꼈습니다. 원래 필로소픽 브랜드라서 저하고는 거리가 먼데 경제경영 담당이라고 끼워주더라구요^^ 저는 비정규직 철폐가 왜 불가능한지 상당 부분 할애했습니다만 아쉽게도 분량이 많다는 이유로 삭제되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비정규직이 현상태로 유지라면 절대악이 맞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세상이 우리를 편안케 할 것인가? 물음에는 단연코 No입니다.
제가 보도자료를 쓸때 노키아의 예를 들었습니다. 휴대폰 업계 부동의 1위를 지켰던 노키아는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한지 불과 몇 년만에 풍전등화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IT 전문가들은 노키아 스마트폰의 운영체제 심비안이 경쟁력이 없는 가망없는 플랫폼이라고 예상했고, 노키아의 CEO는 "우리는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다"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모토로라는 휴대폰 사업을 구글에 팔아치웠고, 노키아도 이 기회에 MS에 인수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삼성은 스마트폰 전쟁에서 이기고 있지만 대응을 제대로 못한 LG전자는 위기설에 주가가 반토막이 났습니다.
동종업계만 그럴까요? MP3,PMP,디지털 카메라부터 지하철 무가지 신문까지 사업이 존폐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것이 해당업종의 경영자와 노동자 입장에서 본 스마트폰 혁명입니다. 그럼 해당 업종의 기업은 한계가 올때까지 버티다가 파산해야할까요?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런 경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MP3업계는 시장이 형성된지 10년도 안되서 사양산업 소리를 들었습니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무의미하죠. 누구에게나 피곤한 환경인데 그렇다고 세상을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구멍가게 아줌마가 불쌍하다고 거기서 물건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오히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비하면 불친절하다. 고객은 좋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대형유통 업체들을 선호하죠. 생산자 중심의 경제체제에서 소비자 중심의 경제체제로 이동하는 흐름을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조변석개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려면 기업도 그에 맞게 빠르게 대응해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업이 조직을 유연하게 하려는 것이고, 고정비용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결혼불능세대>는 이런 흐름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대안으로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이야기합니다. 지금처럼 비정규직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정규직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벌일 경우 파국을 알기 때문이죠. 지금의 경영 환경에서 정규직만 채용해야 한다고 하면 신규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대규모 노조를 가진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죠. 그나마 수익이 나는 기업은 신규채용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신규 채용을 못합니다. 그러면 그만큼 청년들이 취업을 못 하는 것이죠. 이 책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생각하시길.
어쨌든 이 책에서는 비정규직 해법의 일환으로 중향평준화를 제안합니다. 동일노동이면 동일 임금이 될 수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죠. 오히려 비정규직은 고용의 안정성을 포기하는 대신 더 높은 임금을 줘야한다고 역설합니다. 투자에서 고위험에 높은 이자가 붙는 이치와 비슷하죠. 사실 김대호 소장님이 제안하는 비정규직은 지금의 비정규직과 다릅니다. 얼핏 지나가는 말로 중규직이란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일반인에게는 처음 듣는 용어라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논란을 보니 비정규직을 대체하는 중규직이란 용어를 띄웠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절반의 임금에, 고용도 보장안되는 비정규직은 철폐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어쨌든 이를 위해서 산별노조 차원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조정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요원한 일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 역시 자기 몫을 뺏기는 것을 원치 않거든요. 현대차 노조와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의 연대수준을 보면 얼마나 힘든 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스웨덴의 성공적인 사례가 소개되었는데 그 수준까지는 못되도 교사 직군을 보면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같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말이죠. 이것을 이끌어내는게 정치죠. 여태까지는 이런 시도들이 실패했는데 이런 책들을 통해서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면 합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비정규직이 없어도 굴러갈 수 있는 직장은 비정규직을 철폐해도 됩니다. 그런데 그런 직장이 앞으로 점점 줄어드는 흐름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비정규직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게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 대안이 중규직이죠.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은 중소기업 노동자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막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일자리 문제의 핵심이 '비정규직 VS 정규직'이 아니라 '대기업 VS 중소기업'에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이 올바른 접근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년들이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생을 하는 것보다는 중소기업에 들어가도 쉽게 연애할 수 있고, 결혼할 수 있는 세상이 더 낫지 않을까요?
'자유공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격차별의 경제학 (0) 2012.04.09 구글의 증강현실 안경 (0) 2012.04.06 아이패드를 아이에게 사줘도 될까? (0) 2012.03.02 부동산 임대료의 상승이 임대인에게 좋을까? (0) 2012.02.24 지구 온난화 음모론이 진흙탕 싸움이군요 (0) 2012.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