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기는 일수를 살짝 훔쳐보더니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선배님, 죄송한데요. 성급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창업력의 핵심은 무엇이고 성공하려면 어떤 능력이 가장 필요한지,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먼저 알고 싶은데요.”
찬기의 성급함을 보면서도 일수는 빙긋 웃기만 했다.
“그러죠. 뭐, 그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어차피 할 말이니까요. 창업력은 일곱 가지 능력으로 구성되는데요. 지력, 체력, 지도력, 자금력, 인력, 재창업력, 행복력입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능력은 재창업력과 행복력입니다. 이 둘만 잘 갖춘다면 최소한 실패는 없죠.”
“예? 행복력과 재창업력이요? 음……. 잘 이해가 안 돼요. 행복은 결과 아닌가요? 행복도 능력인가요? 재창업력이란 것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요.”
“재창업력은 창업의 목표와 목적을 명확하게 이해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겁니다.”
“창업의 목표와 목적이야 성공 아닌가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죠. 사실 창업의 목표를 제대로 정하고 창업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거든요. 찬기 씨는 창업 목표가 뭔가요?”
“창업 목표는 성공이라니까요.”
“그 성공의 기준은요?”
“돈을 많이 버는 거요.”
“돈을 많이 버는 게 성공이라……. 그건 너무 막연하죠. 질문을 달리 해 볼게요. 찬기 씨는 매출과 수익을 어느 금액까지 달성하면 돈을 많이 번 것이고, 찬기 씨 목표를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그냥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만…….”
“그 말은 곧 찬기 씨는 목표도 제대로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죠.”
“지금 생각해 볼게요. 제 생각에는 100억 매출에 1억 원 이상의 흑자를 매년 낸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창업의 목적은요?”
“목적이요? 목적도 돈을 많이 버는 것 아닌가요?”
“100억 매출은 창업의 목표지 목적이 아닙니다. 목표는 찬기 씨가 단기적으로 이루어야 할 일의 성과고, 목적은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찬기 씨의 꿈이죠.”
“제가 아둔해서인지,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하겠는데요.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실 수 없나요?”
“한국 등반사를 새로 쓴 고상돈, 박영석, 엄홍길, 한왕용 씨 알죠?”
“예. 잘 알죠.”
“박영석 씨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해 출국했다면 이때 박영석 씨의 목표는 무엇이죠?”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이죠.”
“그래요. 그런데 박영석 씨가 품고 있는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이죠?”
“에베레스트의 8,000미터 이상인 봉우리 14개를 오르는 것이죠.”
그 순간 찬기는 무언가 깨달은 듯 탄성을 질렀다.
“아, 목표가 단기적으로 성취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 이제 이해되네요.”
“에베레스트 14좌에 오르는 것도 목적은 아닙니다. 14좌 등반은 장기 목표죠. 14좌에 오름으로써 얻으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14좌 등정을 통해 자신의 나약함을 이겨 내려는 것이 목적이 될 수도 있고, 극한의 체험을 통해 성취욕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어요. 또는 어려움의 극복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죠. 물론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는 멋진 답을 남긴 맬로리처럼,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도 있기는 하죠. 그리고 목적이 분명해지면 목표는 언제든지 포기할 수도 있고 수정할 수도 있게 되죠. 목표를 포기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등반대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고요.”
“목표를 포기할 줄 아는 것이 등반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요?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 아니고요?”
“등반대가 에베레스트에 오를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최선을 다해서 올라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도 안 될 것이라고 판단되면 목표를 바꿔야 합니다. 1977년에 고상돈 씨는 1차 공격 때 정상까지 겨우 100미터를 남겨 두고 하산했죠. 몇 걸음만 더 내디디면 바로 정상이었어요. 한국 최초로 정상을 밟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온몸으로 자신을 유혹했죠. 하지만 그는 결국 하산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상에 오를 수는 있었어도 그렇게 하면 체력 고갈로 내려갈 수 없었기 때문 아닐까요?”
“맞아요. 무리를 해서 100미터를 오를 수는 있었지만 산소 부족 등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사망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에게는 그의 귀국을 기다리는 가족과 많은 국민이 있었기에 살아서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가 그날 100미터를 더 올라갔다면 에베레스트는 정복할 수 있었겠지만 인생은 끝났을 테고, 자기 발이 아닌 남의 발로 하산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됐겠죠.”
“그래서 결국 그때 못 올랐나요?”
“아니죠. 잘 아는 것처럼 1977년에 결국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잖아요. 캠프로 하산한 고상돈 씨는 2차 공격 시도로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되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1차 시도가 아니라 2차 시도에 등정에 성공한 것이군요.”
“반면 영국 산악인 데이비드 샤프는 2006년에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하산하던 길에 사망했습니다. 내려올 때 산소통에 산소가 부족했기 때문이죠. 산소통 잔여분량을 생각했다면 그는 정상 정복을 포기했어야 합니다. 무리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 이후에도 자신이 꿈꾸던 다른 산을 계속 오르는 행복을 누렸을 겁니다.”
“그런데 고상돈 씨처럼 포기했다가 끝내 에베레스트에 오르지 못한다면 한이 되지 않을까요?”
“한이야 되겠지만 그래도 포기해야 해요. 그래야만 다시 산에 오를 기회가 생기거든요. 한왕용 씨도 1995년에 에베레스트 정상 100미터를 남기고 정상 정복을 포기한 일이 있었죠.”
“체력 때문인가요?”
“아니요. 그때 한왕용 씨는 조난자 때문에 포기했어요. 남 때문에 자신의 목표를 포기한 거죠.”
“그럼 더욱 아쉬웠겠네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결국 한왕용 씨는 13년 뒤인 2003년에 세계 산악계에서 열한 번째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를 완등한 등반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3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원하는 꿈을 이루었죠. 고상돈 씨나 한왕용 씨의 심정은 창업을 했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겁니다. ‘아, 지금 딱 1,000만 원만 있으면 분명 성공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반년만 더 버티면 성공할 수 있는데…….’, ‘시제품 만들 돈만 있으면 수주를 따내 성공할 수 있는데…….’라는 유혹을 받는 창업자가 얼마나 많겠어요. 고상돈 씨 외에도 수많은 등반가들이 정상을 불과 몇 미터 앞에 두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적은 한두 번이 아닐 테죠. 하지만 그래야 합니다. 목표를 수정해야만 다시 등정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눈앞에 잡힐 것 같은 작은 성공에 대한 욕심을 참고 냉정하게 현실을 판단하는 사람만이 결국 그 뒤에도 등반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듣고 보니 목표를 수정하거나 포기하고 제때 하산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네요.”
“고상돈, 박영석, 엄홍길, 한왕용 씨의 공통점은 더 큰 꿈을 위해 눈앞의 작은 성공을 포기할 줄 알고 작은 비난을 감수할 줄 안다는 겁니다. 자신의 현재 상황과 능력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하산할 수 있습니다. 제때 하산하는 능력을 지닌 등반인은 결국 살아남게 되고 재등반을 통해 언젠가는 에베레스트 14좌에 오를 수 있는 것이죠. 등반대장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정상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과 대원이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는 상황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목숨을 걸고 등반하지만 대원의 안전한 하산을 위해 등정 시도를 포기할 줄 알 때 모두가 믿고 따르는 등반대장이 되는 것이죠. 등산에서 하산할 수 있는 능력이 등반 능력보다 중요한 이유는 하산 능력이 결국 생명을 지키고 등반의 성공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창업에서도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제때 회사를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목표 달성 능력보다 중요합니다. 제때 안전하게 하산해야 다시 준비를 갖추고 재등반에 도전할 수 있는 것처럼, 제때 안전하게 청산해야 재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겁니다.”
≪창업력 - 당신의 창업력은 몇점입니까?≫ 중에서 김중태著. e비즈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