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컴퓨터 범죄인 반포AID차관아파트 부정추첨 사건
한국 최초의 컴퓨터 범죄는 컴퓨터 도입기인 1973년 10월에 발생한다. 바로 서울 ‘반포AID차관아파트 부정추첨사건’이다. 이전까지의 부정이 사람에 의해 발생한 반면, 이 사건은 컴퓨터로 이루어진 부정이라는 점에서 당시에 사회적으로 큰 화제와 충격을 주었다.
반포AID차관아파트는 미국 국제개발국(AID) 자금을 이용해 짓던 대규모 아파트로 입주 신청이 몰리자 입주자 선정을 컴퓨터를 이용해 추첨하기로 한다. 이때 용역을 맡은 곳은 과기처 산하의 중앙전자계산소(NCC)였다. NCC가 추첨을 맡게 된 이유는 당시 도입된 컴퓨터 중에는 가장 성능이 좋은 ‘유니백1106’을 보유한 정부산하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이라 부정이 일어날 여지도 적었다.
그러나 생각지 않은 곳에서 부정이 일어난다. NCC 소속 프로그래머인 정 씨가 수십 명의 입주신청자로부터 뇌물을 받고 프로그램 처리과정을 조작하여 9세대를 당첨시킨 것이다. 고발만 아니었다면 조작은 발견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추첨 프로그램은 컴퓨터의 능력 한계로 인해 추첨과정을 저장할 수 없었다. 즉 추첨과정을 콘솔장치(프린터)에만 출력시키고 처리과정은 디스크로 보관할 수 없었다. 때문에 콘솔장치의 출력만 조작하면 증거가 남지 않는 일이었다. 정씨는 25장의 조작된 프로그램카드를 끼워 넣었다가 다시 빼내는 수법으로 조작 흔적이 나타나지 않도록 했다.
이 사건이 발각된 이유는 NCC 직원의 검찰투서 때문이다. 청탁을 의뢰했던 수십 명 중 상당수가 정씨와 가까운 사람이었고 이 중에는 NCC 직원도 많았다. 실제로 부정 당첨된 9세대 중 5세대가 NCC 직원이었다. 청탁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직원이 내부고발을 함으로써 완벽했던 범죄가 드러난 것이다.
국내 최초의 컴퓨터 범죄인 이 사건은 컴퓨터 운영자나 프로그래머가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큰 경각심을 주었다. 결국 컴퓨터도 사람이 조작하는 도구의 하나에 불과하며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